95. 가이아
95. 가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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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는 기다란 보랏빛 몽둥이를 든 강하온을 보며 말했다.
“나를 때리겠다는 건가요?”
“으음, 그렇게 말하니 너무 야만적이네. 그냥 정신 교육이라고 하자.”
강하온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하······.”
가이아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누구인가? 태초 신, 아니 창조주가 직접 빚어서 만든 자식이었다.
자신을 신이라 지칭하는 가짜 녀석들과 달리, 진짜 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고귀한 존재.
그런데 고작 인간 주제에 자신을 교육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그대를 보니 더욱 확신이 두는구나.”
강하온을 보는 가이아의 눈빛은 싸늘해져 있었다.
그리고 말투 또한, 달라져 있었다.
“역시, 인간은 애초에 존재하면 안 되는 족속들이었어.”
그녀는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보였다.
사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과거,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한 가지 일로 인해, 가장 사랑했던 인간을 가장 증오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일은 아주 오래전, 지구가 생겨난 태초의 시기에 일어났다.그녀는 지구를 지키는 신으로 지구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과 어울려 사는 동물과 인간, 지금과는 다른 태초의 지구는 이상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강하온이 이곳으로 왔을 때 봤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가이아는 그중에서도 인간을 사랑했다.
자신과 창조주를 빗대어 만든 존재를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더없이 나약한 존재였다.
사냥 능력도 전무 할뿐더러, 동물들보다 신체 능력도 한없이 부족했다.
가이아는 그런 인간을 가엾게 여겨 지식을 내려줬고, 불을 내려줬다.
그 이후로 인간은 나약한 종족이 아니게 되었다.
단번에 최상위 포식자로 성장했고, 스스로 문명을 만들어가며 아름다웠던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이아에게 인간은 증오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그녀는 인간을 처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 모든 게 내 실수로 벌어진 일. 이제 바로잡아야겠다.”
하지만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바로 잡기로 했다.
“그 시작은 너다.”
가이아를 중심으로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국-!
땅이 솟구치며 동물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쿵-! 쿵-!
잠시 후, 그녀의 앞에는 돌로 이루어진 맹수 집단이 생겨났다.
“당장에 너를 포함한 인간은 죽이지 않으마, 너희들은 침략자를 막아야 하니 말이다.”
그녀는 지금 있는 특별한 공간에서는 다르지만, 지구에서는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만들어진 신, 혹은 인세에 존재에서 신이 된 자들과는 달랐다.
성계 신인 그녀가 현신할 경우, 그것은 섭리에 벗어나는 일이었고, 그랬다가는 지구를 노리는 승냥이 같은 신들이 전부 넘어와서 지구는 전쟁터가 될 게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강하온을 비롯한 인간들을 누스를 포함한 지구를 노리는 침략자를 방어하는 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해결하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버릴 생각이었다.
태초의 자연으로 돌리기 위해서.
“특히, 너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말이야.”
가이아는 레이나를 통해서 강하온을 지켜봤었다.
사실, 애초에 강하온을 보낸 것 자체가 가이아가 행한 일이었다.
그는 강하온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그는 지구를 침략할 존재를 막기 위해서 보낸 것이다.
“더럽게 말 많네, 이제 다 끝났나?”
강하온은 한쪽 귀를 파면서, 귀찮다는 듯 가이아를 쳐다봤다.
“······오만하게 그지없구나, 조금 전 행동을 후회하게 해주마.”
가이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지만, 그녀가 만든 돌로 된 짐승들이 거칠게 떨리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으음······.’
강하온은 자신을 향해서 달려드는 짐승 군대를 보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약하단 말이지.”
그렇다, 너무 약했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보다 약했다.
지금 돌 짐승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힘은 웬만한 초월자 수준으로 말도 안 되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저 정도 힘으로는 각성이라는 상식에 어긋나는 힘을 쓴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직접 물어보지.”
강하온은 궁금증을 굳이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가이아라는 미친 신을 굴복시키고 물어보면 됐기 때문이다.
“으음, 이곳에서는 전력을 다해도 상관 없겠군.”
현재 강하온이 있는 곳은 가이아가 따로 만든 차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이아가 인공적으로 만든 독립된 차원 같은 데 지나치게 견고했다.
이 역시 가이아의 느껴지는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하온은 이 모든 걸 직접 묻기 위해서, 손에 든 아다만티움 봉을 휘둘렀다.
지구로 돌아온 뒤로 처음으로 발휘하는 전력에 가까운 힘, 그 의 손에서는 기적이 발현됐다.
바사삭-!
각각 초월자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돌 짐승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돌 짐승이 있던 곳의 공기마저 사라졌다.
그의 봉이 닿은 자리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았다.
파지직-!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격의 여파로 견고했던 차원에 금이 갔다.
“휴······.”
강하온은 금이 간 차원을 보고, 마지막에 힘을 빼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안도했다.
만약, 견고하다고 생각한 차원을 믿고 힘을 빼지 않았다면 이대로 차원이 깨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내, 내 짐승 군대가······, 아니 어째서 아버지가 남긴 힘은······.”
강하온이 안도하고 있는 그때, 가이아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신이 힘이 담긴 돌 짐승이 사라진 것과 태초 신의 힘, 파편으로 만든 차원에 금이 간 것은 그의 상식을 벗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좀 혼란스럽지?”
강하온은 씨익 웃으면 가이아를 향해 다가갔다.
신이 놀라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 신기한 광경이지만 강하온한테는 익숙한 광경이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래.”
그렇다, 판게아에서 만났던 신들도 그랬다.
전부, 강하온과 전투를 하기 전까지는 의기양양하고, 강하온은 괘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강하온의 힘을 보고 난 뒤에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전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대, 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부정이라, 그것도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
강하온은 이해한다는 듯, 불안한 눈으로 말하는 가이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 다른 신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자신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을 겪으면, 백에 아흔은 같은 반응이었고, 아홉 정도는 전의를 상실했다.
심지어는 우는 예도 있었다.
하나 정도는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예도 있었다.
은순이의 아비인 드래곤 로드도 그랬고, 판게아를 멸망시키려 했던 마신룡도 그랬다.
판게아의 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맞고 나면 전부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더라고.”
“닥쳐라, 이제는 나도 진심으로 너를 공격하겠다.”
금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가이아는 다시 돌 짐승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조금 전에 소환했던 돌 짐승보다 배 이상 강했다.
강하온의 강함을 인정하고, 제대로 전력을 다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음, 나는 반댄데?”
가이아는 현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강하온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자신에게 다시 덤비는 짓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저항하면 그만큼 너만 힘들어질 거야, 지금이라도 순순히 교육을 받는 게 어때?”
“닥쳐라!”
강하온은 가이아를 교육하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상대가 한빛나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지만, 그래도 한빛나의 모습과 똑 닮아서 때리기가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마치 가정폭력범처럼 보였으니까.
그래서 마지막 기회를 줬다.
조금이라도 덜 맞을, 아니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어쩔 수 없군, 눈을 감아서 힘 조절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 잘 막아라.”
강하온은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은 그만의 방법이었다.
휙-!
강하온은 다시 아다만티움 몽둥이를 휘둘렀고, 조금 전하고 같은 상황이 생겨났다.
“······.”
더 강해진 돌 짐승이 바사삭 무너지는 것을 본 가이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래, 네 놈이 가진 힘! 그게 문제였다. 그 힘을 회수하겠어.”
가이아는 강하온이 이렇게 강한 것은 자신이 가진 태초 신의 힘, 그 힘을 사용해서 만든 각성 시스템으로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강함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 마음대로?”
강하온은 가이아가 힘을 회수하려는 것을 보고 웃었다.
그는 자신에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 뺏기지 않았다.
강하온은 강제로 빠져나가는 각성 시스템을 붙잡았다.
제대로 힘이 회수되지 않는 모습에 가이아는 인정했다.
“그냥 강한 거였어.”
사술이 아니라 그냥 강하온이 강하다는 것을.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강해진 것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강하온이 그냥 괴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 인간에게 힘을 내려줬던 일 이후로, 다시 후회라는 것을 했다.
첫 번째 후회는 강하온이라는 존재를 잘못 재단하고, 오만하게 대한 것을.
두 번째 후회는 강하온이 마지막 기회라고 준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꺄악!”
그 대가는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고통이었다.
대체 뭘로 때리는지, 뼈를 떠나서 영혼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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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진 타격음과 비명이 울려 퍼졌던 차원은 조용해졌다.
대신에 들리는 소리는.
“······흐윽, 흐윽.”
흐느끼는 여성의 소리뿐이었다.
그래, 가이아가 우는 소리였다.
“울지마, 내가 나쁜 놈처럼 보이잖아.”
가이아가 만든 돌 짐승 위에 앉은 강하온이 말했다.
“히끅!”
그러자 놀란 가이아가 놀라면서 흐느낌을 멈추고, 속으로 강하온을 욕했다.
“야, 아직도 인간이 없어져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
“아니요!”
가이아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몸, 아니 영혼에 각인 된 고통이 만들어낸 행동이었다.
정신 교육은 성공적이었고, 강하온은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그건 태초 신의······.”
그리고 강하온은 그 이유에 대한 것을 가이아한테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가이아가 태초 신이 직접 만든 신이라는 것과 그 힘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을 벌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지금 빛나는 어디에 있지?”
“죄, 죄송합니다!”
가이아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자신의 힘이 담긴 신물의 파편이 있다고 해도, 지구가 있는 차원을 벗어나면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한빛나가 현재 지구가 있는 차원에 없다는 것인데, 이건 강하온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후······, 쓸모가 없군.”
“······.”
아주 모욕적인 말이었지만, 가이아는 반박할 수 없었다.
“레이나랑 연락이 가능하다고 했지?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레이나를 통해 연락하도록 하지.”
“······네.”
그렇게 강하온은 가이아의 차원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늦어지셨네요.』
강하온이 협회장실로 다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레이나가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조금 전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대화는 잘 하셨나요?』
그녀는 가이아가 어떤 수모를 겪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대화는 잘 했지만, 별로 유익하지는 않았다. 그보다 이제 볼일이 끝났으면 난 가보도록 하지.”
강하온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빨리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가려는 그를 레이나가 붙잡았다.
『잠깐만요!』
“뭐지?”
『그게······ 조금 주제가 넘을 수도 있겠지만 한빛나 씨는 무사해요, 그리고 그리 머지않은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강하온은 레이나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가 멈칫한 이유는 한빛나 때문이 아닌, 레이나 때문이었다.
“그새 미래를 본 건가?”
『······.』
대답하지 않는 레이나를 본 강하온은 자기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보는 것은 육체에 부담을 준다, 그리고 레이나는 조금 전 보다 훨씬 창백해져 있었다.
“앞으로는 그 미래 보는 거 조심해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후······.”
강하온은 해맑게 웃는 레이나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일 물에 한 방울씩 넣어서 먹어라, 다 떨어지면 말하고.”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엘릭서를 꺼내서 건네고, 집으로 떠났다.
그냥 가기에는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레이나는 강하온이 사라진 뒤,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엘릭서에 대한 것이 아닌, 강하온에게 말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말한 것이었다.
조금 전 봤던 미래를 생각하는 레아니의 귀는 붉게 변해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뭐야······.”
집으로 돌아온 강하온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대체 뭔 짓을 했는지, 집이 전부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