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투신은 초보아빠-94화 (94/186)

94. 헌터 협회장, 레이나

94. 헌터 협회장, 레이나

#

눈을 의심했다.

소환된 이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던 얼굴. 방 안에는 한빛나가 앉아 있었다.

새하얗게 바래있고 피부가 창백하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강하온의 기억 속에 있는 그대로였다.

구구궁-!

그 순간, 협회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강하온의 중심으로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강하온은 분노하고 있었다.

모습은 마치, 광인에게 빙의 당한 인간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으윽, 잠시만요.”

“······.”

강하온의 기운이 얼마나 강력한지, 곁에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력한 기운에 폴은 이를 악물고 간신이 말하는 게 전부였고, 데이지는 정신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괴물이야······.’

강하온의 기운에 폴은 자신이 아주 큰 오산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테락을 보고, 강하온이 떠올렸던 것을 말이다.

‘언터처블······.’

그렇다, 강하온이 처음 각 기관에서 불렸던 것처럼 그는 언터처블.

비교 불가의 대상이었다.

데이지가 한쪽 무릎을 꿇었을 때 즈음, 협회장이 나섰다.

『강하온 헌터님, 제가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기운을 거둬 주세요.』

“······.”

강하온은 잠시 협회장을 보다가 기운을 갈무리했다.

“잘 설명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곳은 지도에서 지워질 테니까.”

『그거참, 무시무시한 말이네요.』

협회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억, 허억·········.”

『두 사람은 잠시 나가 있으세요, 저는 강하온 헌터님과 긴밀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요.』

협회장은 거친 숨을 토 해내는 두 사람을 보고, 장난을 치듯 말했다.

‘대체 뭘까?’

강하온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눈썹을 찡그렸다.

한빛나와 똑 닮은 협회장은 강하온이 힘을 발산했을 때에도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장난까지 치면서 말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분명 의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초월자가 분명한데 협회장에게서는 그만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힘은커녕, 죽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네.”

폴은 협회장이 걱정돼서 같이 있겠다고 하려고 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자신들이, 아니 누가 있어도 강하온이 협회장에게 해를 끼치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를 통틀어도 말이다.

『아직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했네요.』

두 사람이 나가자, 협회장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 헌터 협회장이라는 과분한 자리를 맡고 있는 레이나라고해요.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협회장, 그녀의 이름은 레이나였다.

레이나는 해맑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한빛나의 모습을 한 자가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은 오히려 그의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들었다.

“내가 인사할 기분으로 보이나?”

당연히 강하온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미안해요, 제가 눈이 안 보여서 얼굴을 못 봤네요.』

레이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녀의 검은 자는 하얗게 혼탁해져 있었다.

“······.”

그 모습을 본 강하온은 멈칫했다.

‘설마······.’

강하온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보이지 않은 눈, 이렇게 방에 들어왔는데도 계속해서 사용하는 의념.

거기에 지금까지 레이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딱-!

강하온은 자기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의 이름은 더티 스멜, 지독한 냄새가 나게 하는 마법이었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생각하시는 게 맞으니까요.』

그때, 강하온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레이나가 직접 입을 열어 확인시켜줬다.

“오감이 망가진 건가?”

『망가졌다······? 그 표현이 맞네요, 망가졌습니다..』

“······그렇군.”

『으음, 그냥 믿으시네요?』

레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자신이 이렇다는 것을 안 사람들은 전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믿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

『그야······, 당신과 대화를 하고 있으니까요.』

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각을 말하는 건가?”

『네, 보통은 그래서 의심을 하거든요. 이렇게 제 말은 한 번에 믿어주신 분은 강하온 헌터님이 처음이에요.』

“그야 그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렇겠지.”

레이나는 신기한 듯 미소를 지었고, 강하온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는 판게아에 있을 시절, 수많은 이종족을 만나봤다.

그중에는 청각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아니 느낄 수 있는 종족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주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느껴진다고 했었다.

‘진짜 빛나랑 닮았네.’

강하온은 보면 볼수록 레이나가 한빛나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외모도 그렇지만, 더 닮은 것은 성격이었다.

오감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어둠에서 혼자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힘들어할 상황을 겪고 있음에도 레이나는 지나치게 밝았다.

『참, 저는 강하온 씨의 아내인 한빛나 씨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

강하온의 목소리에 있던 적의는 없었다.

그 또한 이제 레이나가 한빛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조금만 침착했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건, 강하온의 침착함을 잃게 할 정도로 한빛나가 중요한 존재라는 거였다.

『그럼 왜 제가 한빛나 씨와 닮은 모습은 했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아니, 그건 지금부터 들어야 할 얘기지.”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지만, 강하온 씨한테는 특별히 말해드리죠.』

레이나는 마치 강하온과 무슨 사이라도 되는 뉘앙스로 말했다.

“장난 그만 치고 말해.”

『쳇, 알았어요.』

레이나는 아쉽다는 혀를 차며 이유를 말했다.

『제가 한빛나 씨와 닮은 건, 정확히는 한빛나 씨가 제가 닮았다고 해야겠네요. 이래 봐도 제가 이제 서른 살이거든요.』

강하온은 해맑은 레이나를 보자,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자꾸 한빛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유머라고 생각하고 한 건데 별로였나 보네요? 하여튼, 한빛나 씨와 제가 닮은 것은 저희가 가이아 님의 신물 파편이기 때문이에요.』

레이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와 한빛나는 가이아가 지구가 위험에 처할 것을 알고 준비한 신물의 파편, 정확히는 신물의 힘을 나눠서 몸속에 심어 놨다고 했다.

둘의 외모가 닮은 것은 신물의 영향이라고 했다.

“신물의 힘으로 미래를 읽는 건가?”

『······알고 계셨나요?』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안 것은 아니었다.

눈치를 챈 것은 레이나의 얘기를 들은 뒤였다.

레이나는 강하온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고, 한빛나 역시, 강하온에게 남긴 편지를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빛나와 레이나,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신물의 파편이었고,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감각이 그렇게 된 것도 신물 때문인가?”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나요? 미래를 보는 것은 육체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을요.』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 역시 몇 초이기는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보는 것이 얼마나 육체에 많은 부담을 주는지를 말이다.

사실 당연했다.

미래를 보는 것은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섭리를 어긴 반동은 육체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

그 순간, 강하온은 한빛나가 떠올랐다.

그녀 역시, 파편의 힘을 몸에 담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아내분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기분 나쁘게 들으실 수도 있지만, 한빛나 씨는 저한테 문제가 생겼을 때를 생각해서 만드신 대체재입니다. 파편의 힘도 아주 일부만 있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잔병치레 정도가 전부일 겁니다. 다른 부분으로는 오히려 건강한 삶을 사셨을 겁니다. 저와는 달리.』

레이나는 처음으로 뭔가 씁쓸하게 말했지만, 오히려 강하온은 안도했다.

실제로 한빛나는 잔병치레는 꽤 많았지만, 그 외에는 지나치게 건강했다.

“그나저나 날 보고 싶다고 했던 이유는 뭐지?”

『아! 잠시 있었네요, 강하온 헌터님을 만나 보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침울해 있던 레이나는 금방 미소를 회복하고는 말했다.

“그분이라는 게, 가이아를 말하는 건가?”

『강하온 헌터님이 지구로 돌아오기 전부터 유심히 지켜보셨습니다, 만나시겠습니까?』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안 그래도 궁금하긴 했거든.”

강하온은 레이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역시도 지구의 신, 가이아가 궁금하기는 했다.

각성 시스템이라는 그의 상식을 벗어나는 힘의 정체와 그리고 이번 레이나와 대화를 통해서 할 얘기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레이나는 끝까지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강하온에게 말했다.

그 순간, 빛이 번쩍했다.

#

눈이 부실 정도의 빛에 강하온도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완전히 달라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설산, 그 아래 있는 푸른 초원과 밀림, 그리고 처음 보는 동물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아름답지요? 태초의 자연이랍니다, 지구에 제가 탄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죠.”

그때, 강하온의 마음을 대신 말하는 말이 들렸다.

강하온은 이미 뒤에 누군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뒤로 돌고,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강하온은 멈칫했다.

“······당신이 가이아군.”

한빛나와 똑 닮은 모습, 거기에 머리 색은 갈색빛이라 그런지 더 한빛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보니, 한빛나와 레이나, 두 사람은 가이아를 닮은 거 였다.

“네, 제가 가이아입니다. 그대는 판게아의 투신이죠? 반가워요. 레이나를 통해서 항상 보고 있었답니다.”

“······.”

강하온은 레이나 때와 다르게, 별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적대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

조금 전, 가이아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역시, 너 또한 다른 신하고 다르지 않네.”

강하온은 가이아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닌, 나지막하게 할 말을 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하긴 인간들을 위하는 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보통의 신 중에 인간을 위하는 신은 없었다.

인간 출신의 신이라도 그렇다.

겉으로는 인류를 위하는 척 행동해도, 사실 그러한 모든 행동은 자신의 목적을 위한 연기일 뿐이다.

신만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하온은 맨 처음 지구의 신, 가이아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됐을 때는 지구의 신은 인간, 인류를 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각성 시스템이라는 기적적인 힘을 인류에게 나눠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레이나를 만나고, 직접 만나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인간을 이용하는 것뿐이었군.”

가이아가 각성이라는 시스템은 인류에게 내려 준 것은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사랑하는 지구를 지키라고, 무기를 내려준 것뿐이었다.

자연을 말할 때 사랑스러운 표정과 인간을 언급할 때 싸늘한 가이아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래를 보는 것을 레이나를 통한다는 것부터 알 수 있었다.

미래를 보는 것은 신조차 부담이 갔으니까, 그걸 레이나의 몸을 통해서 사용한 것이다.

인간을 사랑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라도 되나요? 지구를 해친 것은 인간인데.”

지금까지 연신 미소를 유지하던 가이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아니, 문제 될 건 없지. 그런데 내가 기분이 안 좋아서, 너 좀 맞자.”

강하온은 팔을 걷어붙이면서, 아공간에 있는 아다만티움 봉을 꺼냈다.

차마 한빛나와 똑 닮은 모습에 검으로 흉터를 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