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폴 데이비스 vs 스테락
92. 폴 데이비스 vs 스테락
#
드래곤.
그들은 지구로 따지자면 금수저, 아니 절대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요리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음식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영양소가 아닌, 마나가 그들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가다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드래곤도 있었다.
그들은 미식룡이라 불리며, 드래곤 사이에서 괴짜로 불리는 것만 봐도 드래곤이 얼마나 요리나 음식에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은순이는 요리에 요 짜도 몰랐다.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먹는 것뿐이었다.
‘······막막해.’
은순이는 실로 오랜만에 벽을 마주한 느낌을 받았다.
시작해야 하는데, 시작조차 어떻게 할지 몰랐다.
케이크를 먹어보기나 했지, 만들어 본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게다가 옆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는 두 아이 때문에 더 막막했다.
‘일단은 해보자.’
은순이는 계속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뭐든 시작해보기로 했다.
“애들아, 케이크 만들까?”
은순이는 앞에 있는 식기를 하나 잡으면서 아이들한테 말했다.
“······!”
은순이를 본 아이들은 순간, 움찔하면서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게다가 얼굴에는 겁에 질린 표정이 만연했다.
아이들이 이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교롭게도 집은 식기가 빵 자르는 빵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은순이의 차가운 무표정이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은순이의 얼굴은 물론 아름답지만, 살짝 무서운 느낌도 있었다.
‘뭘 잘못했나?’
정작 이런 공포를 조성하게 된 은순이는 자신의 잘못을 몰랐다.
“······.”
그렇게 은순이와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기류가 더욱 짙어졌다.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바오가 나섰다.
『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군.』
은순이를 돕겠다는 마음보다는 불편한 분위기가 싫어서였다.
『안 그래도 아이들이 너를 경계하는데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말하면 애들이 잘도 다가가겠다.』
상대는 드래곤이었지만, 바오의 언행은 거침이 없었다.
바로톨로 오르카스, 그는 몇백 년 만에 대수림을 통일한 제왕이었다.
상대가 드래곤이라고 해서, 겁을 먹거나 하지 않았다.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강하온뿐이었다.
『뭐가 문제지?』
은순이도 바오의 언행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도 바오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드래곤 사이에서 성룡 이하는 대수림 위를 지나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바오 때문이었다.
『일단은 손에 든 칼부터 내려놔라, 무슨 공포 영화를 찍냐?』
『아······.』
은순이는 자신이 손에 든 나이프를 보고는 재빨리 내려놨다.
공포 영화가 뭔지는 몰라도, 공포를 조성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
『이거면 되나?』
『되겠냐? 그런 싸늘한 표정 말고 웃으면서 다가가라, 애들이 무서워하잖아.』
바오, 그는 한동안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지내면서 어느 정도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랄 수 있었다.
『······웃으라고? 어떻게?』
은순이는 막상 웃으려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단 한 번도 웃으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드래곤이었고, 굳이 남 앞에서 기분 맞춰준다고 웃어줄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웃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얼음 마녀라고 불렸다, 단순히 얼음 마법을 자주 써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미녀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어떻게 웃냐고? 이런 무슨······, 대나무 잎을 뜯는 것부터 씹는 거까지 알려줘야 하는 거냐?』
바오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나왔다.
『그냥 웃어라, 입꼬리를 올리고 눈꼬리는 내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은순이는 바오한테 들은 대로 표정을 지었다.
“으앙!”
“······하악!”
그 순간, 앞에 있던 나래가 울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레아는 놀라서 하악질을 했다.
『······.』
웃으라고 표정을 말해준 바오마저 움찔할 정도였다.
『당장 표정 풀어! 그건 웃은 게 아니다!』
바오는 다급하게 외쳤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꼬리만 내려간 기괴한 모습, 전혀 미소라고 보기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냐?』
이해할 수 없다는 은순이를 본 바오는, ‘네 존재 자체가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선 넘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게 아니고, 웃는 거다. 하온의 앞에서 있을 때는 미소도 잘 짓더니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내가······ 하온 앞에서 웃었다고?』
은순이는 바오의 말에 멈칫했다.
자신은 그런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은순이는 하온을 떠올렸다.
『그래, 그 모습이다! 웃을 수 있었잖아.』
그때였다, 바오가 놀라서 말했다.
은순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렇게 웃으면서 말하면 된다.』
은순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강하온을 생각하면서 울먹이는 아이들한테 말을 걸었다.
“애들아, 케이크 만들까?”
“······네.”
“응!”
그러자 금세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아이의 경계심도 조금은 풀어졌다.
예쁜 것한테 호감이 가는 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똑같았다.
“나래야, 너튜브라는 걸로 케이크 만드는 거 찾을 수 있을까?”
나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색해서, 가장 상단에 조회 수가 많은 영상을 재생했다.
“케이크를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건가?”
은순이는 나래가 틀어준 영상을 보고 놀랐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만들려니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용암 화덕으로 케이크 만들기!』
공교롭게도 조회 수가 가장 높았던 것은 일반적인 케이크 만들기가 아닌, 예능적으로 만드는 케이크였다.
하지만 은순이, 나래, 레아, 바오까지.
전부 다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은순이 이모, 할 수 있어요?
“그럼! 내가 꼭 잘 만들어줄게.”
은순이는 나래의 말에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
세 번째 사도, 스테락을 향해 휘둘러지는 폴의 도끼에는 매혹적인 붉은색의 천살기가 일렁거렸다.
가까운 거리에서 휘둘러진 공격, 보는 것만으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당하는 당사자, 스테락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주 위협적인 공격이야, 하지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
스테락의 오른손에 있던 빛의 창이 입자화되며 사라졌고, 어느새 그의 왼손에 생겨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빛의 창은 정확히 도끼가 노리는 목을 막아섰다.
쾅-!
샛노란 빛의 창과 붉은 천살기가 넘실거리는 폴의 도끼가 부딪치자, 큰 폭발 소리가 들리고,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눈 부신 빛이 일대를 뒤덮었다.
그 여파로 생긴 후폭풍으로 둘을 중심으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잠시 후, 눈을 부시게 했던 빛이 잠잠해졌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크윽······.”
오히려 공격했던 폴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공격으로 인한 반동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제법이긴 하지만, 나한테는 되지 않는다.”
반면에 스테락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처음과 똑같았다.
공격이 통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폴은 웃었고.
“X 까.”
지상으로 추락하면서, 당당하게 스테락을 향해서 중지 손가락을 뻗었다. 그리고는 떨어지는 와중에 손에 든 도끼를 스테락을 향해 날렸다.
그 뒤로, 지상에 착지한 폴은 곧바로 다시 스테락을 향해서 돌진했다.
쾅-!
이번에는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발을 디딘 곳의 바닥이 부서질 정도였다.
“거기서 더 빨라져?”
스테락은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봤다.
물론, 그렇다고 위협이 된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더 빨리 질 거다, 그러니까 그 목이나 닦고 기다려.”
그때부터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폴이 먼저 공격하고, 그대로 스테락의 공격을 당해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폴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사기적인 재생력을 바탕으로, 방어는 도외시하고 오로지 공격만 해냈다.
서걱-!
결국에는 폴의 도끼가 스테락을 베어냈다.
물론, 몸이 아닌 옷자락을 살짝 베어낸 것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인간, 생각이 바뀌었다. 네 놈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 게 해주마.”
스테락은 분노했다.
자신을 공격한 폴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미개한 인간한테 옷자락이지만 공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만에 외출에 유희를 즐기려는 마음을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번쩍-!
거대한 빛과 함께, 스테락의 모습이 바뀌었다.
원래 덩치보다 10배는 커진 모습에 빛의 값옷과 창을 두르고 있는 스테락의 모습.
그 모습은 가히 전쟁의 신이라 칭하기 부족하지 않았다.
“······.”
압도적인 스테락의 위압감에 현장에 있는 모든 헌터가 전부 마른침을 삼켰다.
“개 같은 놈이 진작 사용할 것이지······, 괜히 기대만 주네.”
한껏 기세가 들끓었던 폴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폴은 조금 전까지는 자신이 좀 있었다.
강하온과 전투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고, 엘릭서를 먹은 덕에 훨씬 더 강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아바타를 사용한 스테락의 힘은,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아니었다.
“그분을 보는 거 같군······.”
그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강하온이 떠올랐다.
넘볼 수조차 없는 강력한 힘, 그가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강하온이 유일했다.
하지만 둘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은 조금 달랐다.
스테락은 이 일대를 잠식하는 거대한 파도 같은 느낌을 준다면, 강하온은 위압감은 스테락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막연하게 거대한 존재가 앞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 중 누가 더 위협적이냐고 하면, 당연히 강하온이었다.
미지에서 느껴지는 공포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쿵-!
스테락이 움직였다.
한쪽 발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땅이 흔들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설마 저 조잡한 방패를 믿는 것이냐?』
당장이라도 창을 휘두를 거 같았던 스테락은 세계 헌터 협회의 본부를 보며 말했다.
그가 말을 거는 사람은 폴이 아니었다.
지구를 지키는 성계신의 신물을 가진 협회장에게 말하고 있었다.
『끝까지 나올 생각이 없는 건가? 하긴, 태초 신의 힘을 가진 신물일 텐데 내 공격으로 부서지는 일은 없겠지.』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을 확인한 스테락은 그대로 협회를 향해서 거대한 창을 찔렀다.
“······이번에는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군.”
그 공격을 본 폴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부 뒤로 물러서라.”
그리고는 공격을 막으려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장? 지금 뭐 하려는 겁니까?”
“지금 저 공격을 혼자서 막겠다는 겁니까?”
“미친개 분명하네.”
집행부 부하들은 전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시렁거렸다.
그들은 이미 집행부에 들어오는 순간, 목숨 따위는 버린 지 오래였다.
“시간 없으니까 당장 꺼져, 이건 명령이다.”
“······.”
하지만 이어지는 폴의 말에 전부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폴이 명령이라고 말하는 것은 드물었고, 만약 명령을 내린다면 절대복종하는 것이 집행부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쉽네.”
부하들을 뒤로 물리고, 무시무시한 빛의 창을 보는 폴은 약간의 미련이 남았다. 그는 강하온을 만난 이후, 우연한 계기로 데이지와 관계에 좋은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고백하려고 철저히 준비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오히려 잘됐나?”
그는 고백하지 않은 것이 잘 됐다고 생각했다.
괜히 고백했다가 데이지가 받기라고 했으면, 큰 상처를 남길 뻔했으니까.
“하압!”
폴은 미련을 접어두고, 기합 소리와 함께 힘을 끌어올렸다.
주변의 마나가 그의 천살기에 공명하며, 그의 주변에 붉게 물들었다.
게다가 그의 몸은 근육이 터질 듯 부풀더니, 피부가 붉게 변했고, 눈 또한 붉게 물들었다.
마치 미에 미친 악귀 같은 모습이었지만, 현재 그가 하려는 행동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폴! 지금 당신 뭐 하려는 거야!”
폴의 모습을 본 데이지가 뒤에서 소리쳤지만, 폴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돌아봤다가는 마음이 약해질 거 같았기 때문이다.
쾅-! 후리릭-!
폴은 땅을 박차고 몸을 회전하면서 스테락이 찌르는 빛의 창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광채를 내뿜은 원형 톱날 같았다
“지금 하온······.”
뒤에서 데이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워낙 빠르게 회전하다 보니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죽겠군.’
빛의 창을 마주하는 순간, 스테락은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정면에서 느껴지는 창의 힘은 훨씬 더 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살 특공대야 뭐야? 여전히 무식한 놈이네.”
그때, 그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강하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