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나래 공주와 하온 왕비(ft. 레아 기사)
81. 나래 공주와 하온 왕비(ft. 레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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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지구로 돌아온 뒤, 거의 당황을 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한 적이 있다면, 돌고래 호이를 구해달라는 나래의 소원 때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마신룡의 정신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던 투신의 부동심은, 왕비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 제가 왕비를 하라고요?”
강하온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한지민한테 재차 물었다.
“네, 나래, 레아 아버님이 하시면 될 거 같은데요?”
한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원래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오면 부정하게 된다.
물론, 강하온은 힘든 상황이 오면 전부 부숴버리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진짜요?”
그래서 재차 한 번 물었다.
“네, 왕비 역할은 아버님이 되셨습니다.”
한지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그녀는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는 사람이었다.
강하온이 세계 최고의 각성자라고 해도, 지금 그녀에게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학부모일 뿐이었다.
“저는 그때 일이······.”
“나래와 레아가 무척이나 바라는 거 같은데요?”
강하온은 거절하려 했지만, 한지민이 먼저 선수를 쳤다.
나래는 반짝이는 눈으로 강하온을 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꼭 왕비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거 같았다.
레아도 강하온을 보고 있었다.
물론, 나래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긴 했다.
멍한 눈, 그냥 나래가 쳐다보니 따라 본 것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결국, 강하온은 왕비 역할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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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연극이라고는 하지만, 어린이반의 연극이었다.
사람들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아이들이 부리는 재롱잔치, 딱 거기까지였다.
여태 아카데미가 창립된 지 5년 정도, 유아반과 어린이반의 학예회 준비는 항상 그랬다.
그래서 연극에 참여하는 학부모는 자신의 대본만 외워오면 됐다.
따로 합을 맞추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자신이 한 대사만 하면서 다음으로 넘겨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하온은 달랐다.
“애들아, 연극 연습하자.”
그날 저녁, 강하온에 집에서는 곧바로 연극 연습이 시작됐다.
‘이왕 하게 된 거, 제대로 해야지.’
강하온, 그의 사전에는 대충은 없었다.
“일단은 나래부터 해볼까? 여기 대사부터 시작해볼까?”
“네!”
강하온은 나래의 대사를 짚어줬다.
“세상을 햇살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은 너라는 걸 기억해.”
나래를 대사를 또박또박 읽어나갔고, 강하온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발음은 좋네,’
안 좋은 습관 같은 게 없다 보니, 대사는 정확하게 들렸다.
‘역시 감정이 좀 부족하네.’
당연했다.
연기란, 그 역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몰입해야 하는 거였다.
물건을 훔친 도둑의 역할을 한다면, 그 도둑 어떤 상황이었는지, 왜 물건을 훔쳤는지를 이해하고 거기에 몰입해서 도둑 자체가 돼서 행동해야했다.
그래야 완벽히 그 연기하는 역할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나래가 정확히 백설 공주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 모든 이해를 하는 것은 힘들었다.
“나래야, 잠깐만.”
“네!”
강하온은 나래의 대본을 잡고, 하나하나 펜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래가 하는 대사의 옆에, 웃는 표정, 슬픈 표정, 무서운 표정, 이렇게 당시 어떤 감정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적었다.
완전한 이해를 하고 하는 것보다야 부족하겠지만, 이 정도만으로 확실히 연기의 달라질 게 분명했다.
강하온, 그는 판게아에서 투신이었고,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것을 통달한 달인이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변장술도 있었고, 그는 변장술도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변장술에서 연기는 필수항목이었다.
“여기 옆에 있는 걸 보고 하면 되는 거야.”
“웃는 표정?”
“응, 여기서는 웃으면서 대답을 하는 거야. 해볼까?”
“아빠, 그런데 여기는요?”
나래가 가리킨 곳은 대사 중간에 v자로 체크 해놓은 곳으로, 잠시 호흡을 쉬라고 체크 해놓은 곳이었다.
연기의 감정에는, 호흡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사를 하면서 어떤 순간에 틈을 주고, 이런 것으로 같은 대사지만 다른 뜻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거기서는 속으로 1초를 세고, 말을 하는 거야. 나래, 할 수 있겠어?”
“네!”
나래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세상을 햇살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은, 너라는 걸 기억해.”
나래는 강하온이 시킨 대로 잘 해냈다.
확실히, 전에는 그냥 국어책을 읽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백설 공주의 밝은 느낌이 확실히 살았다.
‘재능있네.’
그리고 나래는 연기에 확실한 재능도 있었다.
이건 딸 바보의 시선이 아닌, 변장술의 달인으로서 보는 시선이었다.
단순히 호흡을 멈추는 것이 아닌, 다시 대사를 뱉을 때 생긋 웃으면서 했다.
이건 강하온의 지도가 없던 부분이었다.
“나래, 잘했어.”
“헤헤, 아빠. 다른 것도!”
나래는 재미가 있었는지, 배시시 웃으면서 다음 대사도 하려고 했다.
“나도! 언니 나도 하고 싶어!”
그때, 옆에서 마시멜로를 뜯으면서 지켜보고 있던 레아도 다가왔다. 처음에는 관심 없어 보였는데, 나래가 재밌어하자 레아도 관심이 생겼다.
“레아도? 잠시만.”
잠시 대본을 훑어본 레아는 움찔했다.
‘대사가 없네.’
레아가 맡은 기사 역할은 공주한테 적이 왔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손을 앞으로 뻗으면서 저지하는 역할이었다.
‘일부러 그랬나?’
강하온은 한지민의 생각이 조금 이해가 가긴했다.
잠시 레아를 본다면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르게,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차라리 이렇게 대사 없이 조용히 나두는 게 좋을 수도 있었다.
“나도 해?”
“으음, 레아야.”
“응!”
레아는 꼬리를 붕붕 움직이고 있었다.
나래처럼 대사하고 싶은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기사는 뭐라고 했지?”
강하온은 대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일단 기사를 이해를 시키기로 했다.
“공주를 지키는 사람!”
“맞아, 공주를 지키는 사람이지. 그리고 기사는 과묵하고 진중하면서 충직한 역할이야.”
“과묵? 진중? 충직?”
레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옆에 있던 나래도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강하온은 애초에 이해를 바란 것이 아닌, 그냥 떡밥일 뿐이었다.
“응, 그래서 기사는 말없이 행동으로만 표현하는 거야. 공주를 지키는 모습만 보여주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았어?”
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넘어가서 다행이네.’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받아들이는 레아를 보면서 안도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지금 이러한 것이 큰 실수였다는 것을.
“말없이 행동······.”
레아는 강하온이 한 말을 곱씹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강하온과 두 아이와 학예회가 열리기 전까지, 매일 저녁 연기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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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아카데미의 학예회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축제였다.
그래서 학예회 날에는 신화 아카데미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원래는 엄마들만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아빠들도 거의 대부분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이번에 강하온 헌터가 학예회 참가한다는 거 진짜 맞지?”
“맞아, 이번에 딸들하고 학예회 참가한다고 들었어.”
“이참에 인연이라도 맺으면 좋을 거 같은데, 연극 끝나고 인사나 드려볼까?”
전부 강하온과 어떻게든 인연을 맺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자, 안녕하세요. 오늘 신화 아카데미의 학예회 MC를 맡게 된 강호석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답게, 학예회 진행을 국민 MC한테 맡겼다.
일반적인 학교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먼저 시작할 친구들은 유아반 친구들이군요? 유아반 친구들이 준비한 것은 율동에 맞춰서 동요를 부르기네요. 관객 여러분은 전부 박수로 아기 천사들을 맞이해주세요!
확실히 국민 MC답게 매끈한 진행으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고, 박수 세례와 함께, 첫 번째 학예회가 시작됐다.
꿀벌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왔다.
아이들은 담당 교사의 도움으로 일렬로 섰다.
물론,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서 금방 아이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중에는 자신의 몸을 공중에 뛰어서 날아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현중아, 가만히 있어야지.”
그래서 같이 도움을 주러 나온 학부모들은, 정신없이 움직여야했다. 그 모습에 관객 석에서는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난잡했던 것과 달리, 유아반의 동요와 율동은 꽤 괜찮은 반응을 보였다.
“어머, 귀여워라.”
“진짜 꿀벌들 같네.”
특수 효과나 음양 효과 등등, 전문가의 손길이 확실히 닿은 느낌이었다.
“듣기는 했는지, 진짜 열심히네.”
단순히 학예회라고 보기에는 조금 과한 준비, 하지만 강하온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상품이 세계 헌터 협회 견학이라고 했나?”
세계 헌터 협회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장 잘한 세 개의 반을 뽑아서 갈 수 있는 영광을 준다고 했다.
“대체 그게 왜 상품이야?”
하지만 강하온은 조금 이해가 안 갔다.
강하온에게는 세계 헌터 협회는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긴 해야지.”
강하온은 자신이 나온 이상, 1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물론, 여태 신화 아카데미가 생긴 이래로 어린이반이 받은 적은 없었다.
아이들이 준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하온은 다르게 생각했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강하온이 한때 좋아하던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대로, 그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자, 다음은 이능계 어린이반 친구들이 준비한 연극을 감상하겠습니다. 아주 유명한 연극이죠? 백설공주네요. 전부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그렇게 어린이반의 연극이 시작됐다.
“옛날 옛적, 어느 아름다운 왕국에 예쁜 공주 님이 태어났어요.
하얗고 고운 아이는 눈처럼 빛난다고 해서 백설이라는 이름을 지었답니다.”
연극의 시작은 한지민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했다.
한때, 성우도 꿈꿨다고 해서 그런지 확실히 금방 좌중을 압도하며 몰입했다.
“어느 날, 왕국의 왕비는 진실을 말하는 거울한테 말을 걸었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가며, 강하온이 등장했다.
“진짜 왕비 같네.”
“분장 잘했네.”
강하온은 조금 찢어진 눈이었는데, 그 분장이 악독한 왕비와 찰떡이었다. 그 때문인지, 아무도 왕비가 강하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강하온은 변장술의 달인이었다.
당연히 목소리 변조 따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여자 목소리로 아주 완벽한 연기를 시작했다.
“와, 저 학부모 연기를 했었나봐?”
왕비가 강하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전부 감탄하며 지켜봤다.
“······나래 아버님은 참 신기한 재주가 많네요.”
하지만 왕비가 강하온이라는 사실을 아는 학부모들은 전부 놀라서 쳐다봤다.
왕비가 강하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넘어갔다.
그 대상이 강하온이었으니까.
“왕비의 물음에 거울이 말을 했어요.”
한지민의 나레이션이 끝나자, 곧바로 거울이 있는 곳에 빛이 켜지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
순간 강하온은 움찔했다.
검은 타이즈에 거울을 얼굴에 쓴 분장을 한 마석도의 모습, 주먹을 부르는 모습이었다.
“저거 마석도 씨 아니야?”
마석도의 몸은 흔한 게 아니었다, 관객들도 단번에 알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백설 공주죠.”
마석도는 그러거나 말거나,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목소리 톤은 괜찮았다.
“뭐라고? 백설 공주라고! 지금 다시 한번 말해봐라!”
강하온은 아주 표독스러운 연기를 실감 나게 했다.
“이거 재밌는데?”
“그러니까, 진짜 연극을 보러 온 거 같네.”
강하온의 연기에 사람들은 몰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크나큰 질투를 느낀 왕비는 백설 공주를 죽이기 위해, 분장을 하고 독사과를 준비했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나래 공주와 하온 왕비가 만나는 순간이 됐다.
물론, 그 옆에는 레아 기사도 있었다.
‘말없이 행동, 공주를 지켜’
레아는 속으로 강하온한테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