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엘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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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의 집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한적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차도 잘 다니지 않았고, 밤에는 귀뚜라미 같은 벌레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하온과 폴이 동시에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말없이 서로를 흔들리는 눈으로 보자 정적이 흘렀다.
‘교단이 아니라고? 그럼 대체 왜? 나를 공격한 거야?’
‘응? 교주가 어디 있냐고? 설마 교단의 사람이 아닌가?’
강하온과 폴은, 두 사람은 서로가 한 말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아바타를 죽기 직전인데도 아바타를 사용하지 않았구나.’
‘······교단의 놈들처럼 빛의 모습을 변하지 않았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가 빛의 교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잠시 불편한 정적이 흘러갈 때, 정적을 깬 사람이 있었다.
전투를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던 데이지였다.
“폴 부장님은 그 빛의 교단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절실하게 교단을 찾아서 없애려는 분입니다!”
그렇다.
폴은 빛의 교단 사람이 아니었다.
데이지의 말대로, 폴은 빛의 교단에 강렬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다짜고짜 공격한 게······.”
“그 손등에 문양 때문일 거예요, 강하온 헌터가 빛의 교단 사람이라고 오해한 거 같아요. 맞죠, 폴 부장님?”
데이지는 심각한 상처에 반쯤 죽은 폴을 보며 물었다.
“쿨럭······.”
폴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의 예상대로 폴은 강하온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공격한 것이었다.
“아니, 이유를 말하고 공격을 하던가.”
강하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일단은 의심부터 해보는 것 아닌가? 의심도 없이 바로 사람을 죽일 듯 공격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약에 적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강하온은 폴이 생긴 것만큼 무식하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폴을 반쯤 죽여놓고 확인했지만, 본인이 한 행동은 생각하지 전혀 하지 않는 강하온이었다.
“적이라고 확신한 사람한테 이유를 말하고 공격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
그때, 옆에서 조용히 들리는 데이지의 목소리에 강하온은 말문이 턱 막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거 큰일이군.”
강하온은 폴한테 시선을 돌렸다.
전신의 뼈는 안 부러진 곳을 찾기 어려웠고, 바닥에 흘린 피를 보면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시다시피 회복력 하나는 끝내주거든요. 저 험악한 머리만 멀쩡하면 금방 회복하실 겁니다.”
그때, 옆으로 다가온 데이지가 말했다.
폴은 상처를 입을수록 회복력도 빨라졌다.
그래서 폴의 다른 별명 중 하나는 불사신이었다.
“응?”
말을 꺼냈던 데이지는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이렇게 말했다면, 옆에서 상사한테 못하는 말이 없다면서 뭐라고 했을 폴이었는데,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은 것이다.
“쿨럭······.”
폴은 힘없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가 자랑하는 회복은 되지 않고 있었다.
강하온의 마나가 회복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부장님? 부장님, 왜 회복하지 않는 거예요.”
데이지는 바닥에 쓰러진 폴에게 다가가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쿨럭, 얼음 마녀가 우는 걸 보고 가다니······, 나쁘지 않군.”
“빨리, 정신 차려요! 이 바보 같은 놈아!”
폴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화를 내는 데이지를 보며, 힘없이 웃었다.
‘꼭 영화의 주인공 같네, 쉬는 날에 애들 데리고 영화나 보러 갔다 오는 것도 좋겠네.’
강하온은 두 사람을 보자, 예전에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거 참······.”
강하온은 죽어가는 폴을 보고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강하온은 폴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빛의 교단 사람이라 생각했고, 죽이기 직전에 기억만 읽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뛰어난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데이지라고 했나? 잠깐만 비켜봐.”
강하온은 폴을 살리기로 했다.
폴은 교단에 대해서 아는 자였다.
심지어는 교단의 사람이 아닌데, 교단을 아는 자였다.
강하온에게 좋은 정보처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핑계고, 마음이 찝찝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네?”
“이 사람 살리고 싶은 거 아니야? 살려 줄 테니까 비켜봐.”
“네!”
데이지는 눈물을 닦으며 재빨리 옆으로 비켰다.
“아파도 조금 참으라고.”
“······쿨럭.”
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이라면 이골이 난 폴이었기에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오케이, 동의받았으니까 시작한다.”
“······.”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하온을 보고 폴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강하온은 부서진 폴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폴의 몸 구석구석에 스며든 자신의 기운을 회수했다.
“크아아악!”
그 순간, 폴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근육, 뼈, 신경, 세포 곳곳에 스며든 강하온의 마나였다.
그런 마나를 떼어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하온이 자신의 모든 마나를 거둬들이자 폴의 표정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이봐, 이거 나도 몇 개 없는 비싼 거니까 은혜는 꼭 갚으라고.”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면서 말했다.
황금빛 액체가 찰랑거리는 약.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이 있는 비약, 엘릭서였다.
실제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정도로 엄청난 약효를 가진 것은 틀림없는 약이었다.
“은혜는 꼭 갚을 테니까, 살려주세요.”
대답은 뒤에 있는 데이지가 대신했다.
“그럼 동의한 거로 하지.”
강하온은 엘릭서의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싱그러운 향기가 퍼져 나왔다.
“아······.”
그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폴과 데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할 정도였다.
강하온은 엘릭서를 폴의 입에 흘려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 회복될 거야.”
“네? 아,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가 아니라 화장 다 번졌다고 말 한 거야. 고쳐야 할 거 같아서.”
“아!”
데이지는 곧바로 거울을 꺼내서 번진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화악-!
폴의 몸에서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뿜어져 나오며,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우드득-!
그리고는 뼈과 맞춰지는 소리와 함께 피부와 근육이 새로 자라나는 괴상한 상황이 일어났다.
“가, 강하온 헌터. 괜찮은 거 맞나요?”
화장을 고치던 데이지는 놀라서 물었다.
“괜찮냐고? 당연한 소리, 조금만 기다려봐, 나한테 고맙다고 절을 할 테니까.”
강하온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연을 얻은 거니까.”
강하온의 말대로, 폴은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
지금 폴이 겪는 현상은 바디 체인지였다.
무협 소설에 나오는 말로 치면 환골탈태,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깨달음을 얻어야 가능했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방법으로도 가능했다.
그 방법의 하나가 엘릭서였다.
바디 체인지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비약, 그래서 엘릭서가 전설의 비약이라 불리는 거였다.
“이제 끝났군.”
잠시 후, 폴의 바디 체인지가 끝났다.
폴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의 몸에 있던 모든 상처는 전부 사라졌으며, 까무잡잡했던 피부는 신생아처럼 뽀얗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미남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좋게, 아주 좋게 말해서 남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었다.
사실 이런 건 부가적인 요소였고, 바디 체인지의 진 면목은 따로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폴은 강하온한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힘, 폴은 자신의 힘이 배 이상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몸속에 마나가 증가한 것은 물론, 고속도로라도 뚫린 것처럼 마나가 움직이는데 막히는 게 없었다.
“감사는 무슨, 보기 흉하니까 옷이나 좀 입어.”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남는 옷을 하나 꺼내서 줬다.
전투와 바디 체인지의 영향으로 폴은 발가벗고 있었다.
“그쪽도 그만 좀 보지? 그거 성희롱이야.”
“······.”
강하온의 말을 들은 데이지는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돌렸다.
“할 얘기 있으니까 들어와.”
강하온은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마당에 있는 테이블과 벤치가 있는 곳에 앉았다.
“애들이 자고 있어서 여기서 얘기하지.”
“······.”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강하온이 아닌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크크큭, 잡았다.”
모기를 잡고 좋아하는 드라쿨이었다.
“그냥 경비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얘기나 좀 하는 게 어때?”
“아, 알겠습니다.”
폴은 언제 공격을 했다는 듯, 다시 깍듯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교단과는 무슨 사이지.”
“저는 고아였습니다.”
폴은 물음에 답하기 전, 자신의 과거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고아였다고 했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의 부모가 폴 때문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블러드 스타’의 운명을 가진 자들은 항상 그랬기 때문이다.
피를 부르는 저주, 가장 가까운 사람을 항상 죽게 만들었다.
하여튼 어려서 버려졌던 그를 부모처럼 키워준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폴이 심상치 않은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폴을 받아들인 사람.
그는 바질리오 3세였다.
“교황을 말하는 건가?”
“네, 맞습니다.”
강하온도 알고 있는 존재였다, 그가 판게아로 가기 전에도 교황으로 있던 자였다.
워낙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인물로, 한국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병사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자를 죽인 게 교단인가.”
“······그렇습니다.”
폴은 그때가 다시 생각에 분노가 치솟았는지, 눈이 붉게 변했다.
“폴!”
옆에 있던 데이지가 놀라서 폴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
하지만 폴은 아까와 달리 살기를 금방 잠재웠다.
바디 체인지의 영향으로 살기를 제어하는 것이 훨씬 편해진 덕이었다.
“복수였군.”
강하온은 폴의 얘기를 듣고 나니, 다짜고짜 공격했던 것이 이해가 갔다.
그 역시도 한빛나와 나래과 같은 일을 당했다면 그랬을 거니까.
실제로도 그러고 있었다.
“현재 교단에 대해 아는 것은?”
“······없습니다, 최근에 쫓던 놈이 하나 있었는데 몇 주 전 갑자기 종적을 감췄습니다.”
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몇 주 전, 강하온이 지하 경매장을 습격했을 때다.
애초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강하온은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사도였던 니우다가 있는 강하온보다, 폴이 교단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의심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강하온이 폴을 치료해준 진짜 이유는 찝찝해서였다.
“그렇군, 그나저나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뭐지?”
“리차드 박사 일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안이 크다 보니······.”
이번 리차드의 일로, 10대 길드 몇 곳에 협회에 불만을 표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상으로 강하온을 헌터 협회에서 조사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리차드라는 놈, 빛의 교단 사람이었다.”
“!!!”
강하온의 말에 폴과 데이지는 눈이 커졌다.
“전혀 몰랐나 보군.”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증거라도 남은 게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길드의 불만을 재울 수 있을 겁니다.”
“여기.”
강하온은 그동안 했던 수상한 연구와 빛의 교단과 관련 있는 모든 흔적을 적힌 서류를 건넸다.
미리 챙겨놓은 것이었다.
서류를 받은 폴은 데이지한테 건넸다.
“이거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데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번에 불만을 표했다는 길드에 대한 명단 좀 줄 수 있을까?”
강하온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낸 놈들 가만 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 놈들이 빛의 교단과 연결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원래는 무조건 지켜야 할 비밀이었지만, 오늘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10대 길드 전부보다, 강하온 하나가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폴은 그렇게 다시 협회로 돌아갔고, 다음 날 아침에는 리차드의 악행이 전부 세상에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을 밝혀낸 영웅이 강하온이라는 사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