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블러드 스타
76. 블러드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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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판게아에서 간혹 본 적이 있다.
별의 힘을 받아서 정해진 운명을 사는 자였다.
윈드 스타를 타고난 자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운명.
럭키 스타를 타고난 자는 천운이 따르는 운명.
이렇듯 수많은 별이 있었고, 그 별을 타고난 자들이 존재했다.
그중에는 특별한, 세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별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었다.
세상을 혼란에 빠트리는 카오스 스타, 혹은 제왕의 운명을 타고나서 군림하는 삶을 살아가는 엠페러 스타였다.
지금 밖에서 느껴지는 힘, 블러드 스타도 그랬다.
“피를 부르는 별이라.”
이름 그대로 피의 별, 항상 주위에 피를 부르는 별이었다.
대게 블러드 스타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은 피에 미친 살인귀가 된다.
심지어는 하늘의 재능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같이 가지고 태어나서 아주 끔찍한 살인귀로 자라난다.
“피 냄새도 짙네.”
실제로 밖에서는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는 굳이 살기를 뿜어내지 않아도, 몸에 밴 지독한 피 냄새 때문에 자연스럽게 풍기는 기운이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거였다.
“궁금하네.”
지구가 게이트가 생겨난 지는 5년, 그런데 이렇게 지독한 피 냄새가 몸에 배려면 전부터 사람을 죽였다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내가 착각하고 있었나.”
강하온은 세계 헌터 협회가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렇게 살기를 뚝뚝 흘리는 ‘블러드 스타’의 기운을 가진 사람을 보내다니, 이건 친해지고 싶다기보다는 싸우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한 번 보지.”
강하온도 ‘블러드 스타’의 기운을 느낀 순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별의 기운은 한 번이라도 엮이는 순간, 그 운명에 휘말린다.
이미 강하온의 집 근처에 온 순간, 거대한 별의 운명에 휘말렸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저 녀석인가?”
강하온은 집으로 걸어오는 폴과 데이지를 볼 수 있었다.
“별의 영향인가? 험악하게도 생겼네.”
강하온은 ‘블러드 스타’의 기운이 아니어도, 단번에 폴이 ‘블러드 스타’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긴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은 세월을 산 것도 아니었다.
지구와 판게아, 두 곳을 통틀어서 저렇게 얼굴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키는 수준은 본 적이 없었다.
오크나 트롤도 한 수 접을 정도였다.
“역시 싸우자고 보냈나 보네.”
강하온은 이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 헌터 협회는 자신과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을.
적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뿐-.
강하온은 폴과 데이지, 두 사람 앞에 천천히 내려왔다.
“······.”
두 사람은 멈칫했다.
폴도 그렇지만, 데이지 역시 세계에 놓고 봐도 손꼽히는 강자였다. 그런데 강하온의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하온 헌터입니다.”
“강하온 헌터가 맞군.”
두 사람은 단번에 강하온을 알아봤다.
세계 헌터 협회의 임원이라면 강하온의 얼굴을 모를 수가 없었다.
“······.”
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유심히 강하온을 쳐다봤다.
모든 생명에는 힘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나 작은 벌레나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기척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분명 강하온은 앞에 있었지만, 그 존재감이 희미했다.
사실 눈으로 봐서 느낄 수 있었고, 보고 있지 않았다면 강하온이 있다는 사실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건 강하온이 약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폴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하온이 일부러 기척을 숨기나?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강하온은 더할 나위 없이 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다.’
폴은 강하온이 약한 것이 아니라, 너무 거대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작디작은 인간인 지구, 우주를 볼 수 없지 않은가.
그저 지식으로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폴 역시도 같았다. 이미 한 번 겪어 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이 없었어도 폴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쳐 날뛰고 있군.’
폴의 몸속에 있는 피가 들끓고 있었다.
강자를 만나면 화학반응처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당장에 눈앞에 존재를 죽여야 한다는 살의가 들끓었다.
하지만 그는 본능에 휘둘리지 않았다.
‘진정하자, 폴.’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살의를 잠재웠다.
‘오호, 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건가?’
강하온은 흥미로운 눈으로 폴을 봤다.
‘블러드 스타’의 살기는 일반적인 살기가 아니었다.
하늘의 살기, 신조차 죽일 수 있다는 천살기였다.
보통은 천살기에 지배당해 피에 미친 살인귀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 ‘블러드 스타’를 타고난 자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폴은 미친놈 날뛰듯 날뛰는 살기를 단번에 통제했다.단순히 느끼는 기운보다 폴이 더 강하다는 거 였다.
통제되지 않는 살기보다는 정제된 살기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강해서 다행이야.’
폴은 강하온이 어떠한 생각을 하지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미소를 지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더 멀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그랬다.
현재 폴은 가장 높은 곳에서 세계를 보는 여럿 중 하나였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것이 있었고, 강한 적들이 많았다.
그런 걸 생각했을 때,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강하온이 강하다는 사실은 기뻐할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미소가 오해를 불러들이는 법이었다.
‘······섬뜩한 미소네.’
강하온은 폴의 미소를 보고 멈칫했다.
웬만한 것은 놀라지 않는 강하온도 흠칫 놀랄 정도였다.
‘바로 공격하려는 건가?’
강하온은 말도 없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이는 폴을 보면서 대비했다.
‘이참에 확실히 정리하는 게 좋겠어.’
세계 협회라는 거대한 적이라도 상관없었다.
강하온은 적에게 자비를 둘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폴을 공격하려는 강하온은 멈칫했다.
“안녕하십니까, 강하온 헌터. 저는 폴 데이비스라고 합니다.”
살짝 상체를 앞으로 숙였던 폴은 돌진이 아닌,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마치 신입이라도 되는 것처럼 깍듯하게 인사했다.
세계 헌터 협회의 집행부장, 그 위치에 대한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행동이었다.
“안녕하세요, 이 험악하게 생긴 사람의 비서, 데이지라고 합니다.”
옆에 있던 데이지도 인사를 했다.
데이지 역시, 적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지?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공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는 몰라도 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세계 헌터 협회의 뜻이기도 합니다.”
폴은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세계 헌터 협회의 뜻도 밝혔다.
물론, 그런데도 폴의 얼굴은 여전히 험악했다.
“그럼 조금 전에 그 살기 가득한 미소는 뭐였지?”
“원래가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대답은 폴이 아닌 데이지로부터 나왔다.
별다른 변명이나 핑계 없이, 강하온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데이지! 상사한테 그렇게 생겨 먹었다니, 그게 무슨 막말이야.”
“그게 맞잖아요. 안 그런가요, 강하온 헌터?”
폴은 발끈했지만, 데이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는 강하온을 보며 물었고, 강하온은 당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은 두 사람을 보고, 적대한다고 생각한 것이 자신의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오해의 근원은 폴의 얼굴이었다.
“······.”
강하온마저 데이지의 말에 동의를 표하자, 폴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나저나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이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는 왜 온 거지?”
“아, 그건 오늘 아침에 제 부하가 실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러 왔습니다.”
“사과는 무슨,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생긴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강하온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일을 약점 삼을까 생각도 했는데, 폴이라는 사람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그냥 넘어갔다.
‘생긴 건 산적같이 생겨서 왜 저러는 거야?’
강하온은 무작정 자신을 낮추면서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약했다.
굳이 따지자면, 인간 상성이 좋지 않았다.
‘어휴, 집행부장이라는 사람이 체면 좀 챙기라니까······.’
데이지는 집행부장이라는 높은 지위에도 한껏 자신을 낮추는 폴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 역시, 강하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과한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데이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데이지가 폴을 떠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참,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세계 헌터 협회의 집행부장, 폴 데이비스입니다.”
폴은 안도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강하온이라고 합니다.”
강하온은 폴이 내민 손을 보며, 악수했다.
그때였다.
싸아악-!
폴의 잠잠하던 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폴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몸의 근육는 터질 듯 부풀었다.
피에 미친 살인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잠깐! 부장님! 아니, 폴! 정신 차려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반응한 것은 데이지였다.
기계같이 항상 평정을 유지하던 데이지의 얼굴은 걱정스럽게 바뀌었다.
하지만 그사이, 폴은 이미 강하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붉은 도끼도 들려 있었다.
“전부 연기였던 건가?”
강하온은 초급접전에서 기습해온 공격이었지만, 전혀 당황하거나 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위력에 속도까지 있었지만, 강하온에게 닿을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피하더니, 폴의 가슴을 공격했다.
쾅-!
주먹과 가슴이 닿았지만, 폭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났고, 폴은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강하온 헌터, 이건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잠시만 공격을 멈춰주세요.”
데이지는 다급하게 강하온을 보며 말했다.
“오해? 저긴 아닌 거 같은데?”
강하온은 조금 전 튕겨 나간 폴을 보며 말했다.
폴은 금방 몸을 일으키더니, 엄청난 속도로 다시 강하온을 공격하기 위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광전사인가? 블러드 스타와 어울리네.’
조금 전, 죽으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시할 공격은 아니었다.
상당을 타격을 입었을 텐데, 오히려 폴은 더 강해져 있었다.
실제, 강하온의 예상대로 폴은 상처 입을수록 더 강해지는 힘을 가졌다.
‘역시 협회와 교단은 관련이 있던 건가?’
강하온은 똑똑히 봤다.
폴이 공격하기 전의 상황을.
폴은 악수하려다, 강하온의 손등에 있는 교단의 문양을 보고 살기를 터트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이걸 찾으러 온 건가?”
강하온은 확실히 하기 위해서, 폴에게 다시 한번 손등을 보여줬다. 선명하게 보이는 빛의 교단의 문장이 보였다.
“네놈!”
분노하는 폴, 강하온은 자기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노한다고 해도, 폴이 강하온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폴이 계속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둘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잠깐만요! 잠시만 멈춰주세요!”
데이지는 어떻게든 둘을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가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이 너무 강했다.
결국, 폴은 전신의 뼈가 부서진 채 바닥에 쓰러져야 했다.
“이봐, 교주는 어디 있지?”
강하온은 천천히 다가가서 교주의 위치를 물었다.
“퉤! 네놈의 교주를 왜 나한테 찾는거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폴은 몸이 움직이지 않음에도, 그의 기세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러한 폴의 모습에 강하온은 멈칫했다.
“······잠깐, 너 교단 사람 아니냐?”
지금 폴의 모습은 교단 사람이 아닌, 교단을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77.엘릭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