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한 투신은 초보아빠-75화 (75/186)

75. 폴 데이비스

75. 폴 데이비스

#

세계 헌터 협회에는 수많은 부서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 세 곳을 뽑으라면 모두 입을 모아서 똑같은 곳을 말할 것이다.

헌터 법을 집행하는 집행부.

헌터를 감찰하는 감찰부.

협회 주요 임원진들의 옆에 꼭 붙어 있는 비서를 총괄하는 비서실.

이렇게 세 곳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힘이 강한 곳은 집행부였다.

기본적으로 헌터를 잡으려면 무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행부의 정식 직원이 되려면 S급 헌터가 되어야만 했다.

S급 이상으로 이루어진 엘리트 집단, 권력이 모이기 싫어도 모이는 구조였다.

폴 데이비스는 그런 집행부의 수장이었다.

협회장과 부협회장을 제외하면 협회 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자였다.

게다가 협회장 부협회장과는 형 동생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보니, 부동의 권력 3위라 할 수 있는 자였다.

그런데 그런 폴이 지금 발 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뭔 일 났어?”

“그러게 폴 부장님이 저렇게 움직일 정도면 심각한 일 아냐? 협회장님이 불러도 느긋하게 다니시잖아.”

“부장님, 뭔 일 있으십니까?”

평소 폴을 하는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제기랄, 빌어먹을 놈들······.”

하지만 지금 폴은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야 했다.

현재, 강하온은 협회에서도 가장 주시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들은 강하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은 이유는 강하온이 강한 것도 있었고, 나래의 천재적인 재능.

그 외에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흑룡 길드, 효토 길드, 정확히는 이유는 모르지만 사라진 마약왕 리카르도, 거기에 전 세계에 있는 건물 테러까지.

모든 일을 알고도 눈을 감았고, 웬만한 것은 전부 강하온의 편의에 맞춰서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차근차근해온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시간이 좀 걸려도 그놈들만 보내는 게 아니었어.”

폴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부하 놈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보낸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데이지, 설마 그놈들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한 건 아니겠지?”

폴은 크나큰 전세기,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금발의 미녀를 보며 말했다.

데이지, 협회 설립부터 그와 함께해 온 비서였다.

그리고 자기 비서 실장으로 점찍힐 정도로 유능한 인재였다.

“글쎄요? 워낙 칭찬에 목이 마른 두 사람이 모르겠군요. 그러게 평소에 칭찬 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데이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고.

“끄응······.”

안심되는 말을 듣고 싶었던 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 폴은 친절한 불도그라고 불릴 정도로 친절하지만, 칭찬에는 인색한 편이었다.

특히, 자신의 밑에 있는 집행부한테는 그랬다.

칭찬하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진다나? 자신도 그렇게 배우고 자라왔다고 했다.

즉, 폴은 꼰대지만 꼰대 아닌 척하는 상꼰대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죠,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

“그래서 더 문제 아냐?”

그렇다.

세계 헌터 협회에서 직접 접근하지 않은 이유는 강하온의 여태 행보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제가 볼 때 강하온 헌터는 적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물론, 아군에게는 한없이 따듯한 사람이죠. 그렇게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명확한 사람이 두 사람이 살려뒀다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데이지는 실제로 강하온을 본 적은 없지만, 정확히 강하온을 파악하고 있었다.

실제로 강하온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집행부 헌터 둘이 직접적인 해를 끼쳤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휴······, 그렇다면 다행이군.”

“······.”

너무 쉽게 안도하는 폴을 보며, 데이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계 헌터 협회의 서열 3위, 그 자리는 결코 지능이 아닌 무력으로 따낸 자리였다.

#

세계 헌터 협회가 있는 알래스카에서 폴이 전세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고 있을 때, 강하온은 레아와 함께 쇼핑 중이었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그는 간지러운 귀를 파면서 레아의 옷을 사기 위해서 ‘프린세스 메이커’에 와 있었다.

“나래 아버님, 안녕하······어.”

‘프린세스 메이커’의 주인, 이정현은 강하온을 보고 인사하다 멈칫했다. 손을 잡는 레아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정이 있어서 같이 지내게 된 아이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래 동생이랄까?”

“아, 그런가요? 이렇게 보니까 나래랑 닮은 거 같기도 하네요. 우리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어떻게 되니?”

이정현은 혹시라도 레아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레아한테 다가가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레아.”

하지만 레아는 강하온의 옆에 딱 붙어서 경계하며 대답했다.

“레아가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요.”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강하온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처음 집행부 직원이나, 평소에 다른 사람을 만나도 낯을 가리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강하온이 낯을 가린 사람은 딱 셋이었다.

한지민, 이미소, 이정현이었다.

“네?”

“아닙니다. 그나저나 손님이 많아졌네요.”

파리만 날리던 이정현의 매장은 이제 손님들로 가득해서, 직원까지 두는 정도로 커졌다.

“전부 나래 아버님, 덕분이죠.”

이정현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손님이 붐비게 된 것은 전부 강하온 덕분이었다.

강하온이 만든 교복을 본, 신화 아카데미 어린이반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학부모 카페, 일명 ‘아모카’라는 곳에서 유명해져서 지금은 전국에서 사람이 찾아온다고 했다.

“제가 아니었어도 유명해졌을 겁니다, 이곳의 옷은 최고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감동한 이정현은 반짝이는 눈으로 강하온을 쳐다봤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레아가 강하온은 손을 당겼다.

“옷.”

레아는 벽에 걸린 옷을 가리켰다.

“옷 보러 갈까? 잠시 구경 좀 하겠습니다.”

“네! 편하게 둘러보세요, 그리고 맞춤으로도 가능하니까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나래 아버님은 저희 가게 VVIP 시니까요.”

“고맙습니다.”

강하온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아의 손을 잡고 옷을 구경했다.

“······.”

이정현은 강하온과 레아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어, 안녕하세요.”

“네.”

그때, 이정현은 자신을 보는 이미소를 확인했고, 둘을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

강하온은 기본적인 준비를 전부 끝낼 수 있었다.

원래는 이미 예약이 밀려 있어서 옷을 구하기 힘들었지만, VVIP라는 이유로 금방 옷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소가 전부 준비해둔 덕에, 레아의 신분 문제도 전부 끝났다. 이제 레아는 강레아, 나래의 동생으로 등록됐다.

정식 한국인이 된 것이다.

“이미소 씨,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고생은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응?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미소는 뭐라도 마려운 강아지처럼 머뭇거렸다.

“지금 집행부장인 폴 데이비스가 한국으로 오고 있다는 데, 괜찮으세요?”

그녀가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은 협회로부터 받은 소식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의 권력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세계 헌터 협회, 그곳의 서열 3위가 강하온을 찾으러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상황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전혀 좋은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안 괜찮을 거라도 있나요?”

강하온은 걱정스러운 이미소과 다르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그게······ 폴 데이비스라는 집행부 부장 별명이 미친개거든요. 한 번 화가 나면 미친개처럼 달라붙어서 공격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래요.”

“미친개라······, 패는 맛이 있겠네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혹시나 도착해서 저를 찾는다고 하면 문자나 남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강하온은 이미소를 보내고 집으로 들어왔다.

“미친개라······.”

그는 이미소의 말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과연 덤빌지 모르겠네.”

강하온이 예상할 때, 이미소가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거였다면 진작에 세계 헌터 협회에서 자신한테 어떤 액션을 취했을 테니까.

“으음, 미친개라고 했으니까 꼬리를 흔들려나?”

강하온은 오히려 자신을 적대하는 것이 아닌, 자신한테 호감을 사기 위해서 행동할 거로 생각했다.

“아마 나한테 부탁할 게 있을 거 같긴 한데.”

강하온도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헌터 협회가 모종의 배려를 해준 것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굳이 먼저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사람은 강하온이 아닌 협회,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올 게 분명했으니까.

이건 판게아의 삶에서 배운 삶의 진리였다.

“빨리 왔으면 좋겠군.”

강하온은 알래스카에서 오고 있다는 미친개, 폴 데이비스를 빨리 보고 싶었다.

그 역시, 시킬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각성자 검사 얘기하는 걸 까먹었네.”

강하온은 이미소한테 문자를 보냈다.

레아의 각성자 검사가 필요하다고.

#

레아가 강하온의 딸로 등록됐다는 사실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나래였다.

“강레아?”

“응! 나, 강레아야.”

“나래가 언니야?”

“응! 언니라고 했어.”

“헤헤.”

나래는 자신이 언니라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레아야, 우유 마실래?”

“우유? 응!”

“기다려, 언니가 우유 갖다 줄게.”

“응!”

나래는 언니가 됐다는 사실에 안 그래도 끔찍이 챙겼던 레아를 더욱 챙기기 시작했다.

“동생이 생겨서 저렇게 좋나?”

강하온은 불과 하루 만에 의젓해진 나래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빛나를 찾으면 남동생도 하나 낳자고 해야겠네. 아니, 쌍둥이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고아로 자란 강하온은 대가족을 꿈꿨다.

농담 삼아 농구단, 야구단 얘기도 많이 했었다.

그는 자신의 바람이었지만, 나래를 핑계 삼아 이루려는 계획을 짰다.

“아빠, 아빠!”

“아빠?”

“응, 레아도 이제 나래 동생이니까, 아빠라고 해야 해.”

“응! 아빠.”

둘이서 돌던 딸들이 강하온을 향해 다가왔다.

“갑자기 아빠는 왜 불렀을까?”

“레아도 나래랑 이제 아카데미 가요?”

“으음, 내일은 아니고 다음 주부터 갈 거야. 레아는 아직 각성자 검사를 안 받았거든.”

다음 주부터 레아랑 같이 아카데미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래는 기뻐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레아도 나래가 좋아하자, 같이 방방 뛰었다.

『나, 나도! 같이 뛴다!』

뒤늦게 소외감을 느낌 바오도 합류했고, 두 아이와 팬더는 같이 놀다가 늦은 밤에 잠이 들었다.

“왔군.”

아이들이 다 잠들었을 때 즈음,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상당히 먼 거리임에도 느껴지는 기운, 지구에서 만난 그 누구보다 강한 자였다.

“블러드 스타?”

강하온은 폴로 추정되는 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지구에도 있었나?”

강하온은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자신의 집으로 오는 손님을 맞이하러 움직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