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흉수의 사념
73. 흉수의 사념
#
신수, 그들은 짐승으로 태어나 신이 된 존재였다.
그렇다면 신수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강해야만 할까?
아니다.
물론, 모든 차원을 뒤져본다면 있을 수도 있다.
강하온처럼 단순히 무력만으로 이미 신이 될 위치에 오른 자가.
하지만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히 강한 것이 아니라, 엄청, 무식할 정도로 강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과연 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바로 인간의 믿음이다.
기본적으로 신은 인간의 바람과 믿음에서 비롯된다.
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영물이 인간의 믿음으로 신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신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보호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이들이 약할까? 아니다.
신수는 최소 고룡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강력한 존재가 되려 인간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타락해서 생겨난 게 흉수였다.
당연히 흉수의 강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수가 인간을 지키는 방패 같은 기운을 가졌다면, 흉수는 인간을 공격하기 위한 검과 같은 패도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레아의 몸 안에 있는 흉수의 힘 또한 그랬다.
‘지독한 힘이군.’
살기와 증오 같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모여 만들어진 힘이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무엇보다 인간을 향한 지독한 증오가 느껴졌다.
단순히 힘을 느끼는 것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 지나치게 강하네.’
강하온은 판게아에서 몇 마리의 흉수를 만난 적이 있었다.
물론, 만났던 녀석들은 전부 강하온의 아공간에 전리품으로 남아 있었다.
그건 그거고, 현재 레아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흉수의 힘은 지금까지 그가 만난 어떠한 흉수보다 강했다.
심지어 흉수는 본체도 아니었다.
‘웬만한 전투계열 신보다 강하겠어.’
처음에는 고룡급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레아의 뿌리가 되는 흉수는 확실한 신급의 강함을 가진 흉수였다. 그것도 신 중에서 강하다고 평가받는 전투 관련 신급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신이지.’
레아 몸속에 얼마나 강한 힘이 있던 신경 쓰지 않았다.
실제로 레아가 흉수 본체거나, 본체가 숨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흉수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고, 신수로 탈바꿈하게 만들 수 있었다.
실제 자신의 핏줄에 본체를 숨기는 영악한 흉수도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일단은 흉수의 힘은 전부 제거한다.’
강하온은 자신의 마나를 레아의 몸 속으로 넣었다.
『크르르, 꺼져라』
그 순간, 강하온의 머릿속으로 섬뜩한 짐승 울음이 들렸다.
흉수의 힘에 심어진 흉수의 잔류사념이었다.
‘놈의 성질은 혼란인가?’
신의 경지에 오른 자의 마나는 특수한 성질을 띠게 된다.
강하온의 마나가 상대를 움츠리게 하는 기운이 있다면, 흉수의 기운은 상대의 공포를 자극해서 혼란스럽게 하는 성질이 있었다.
하지만 강하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어이, 덜 떨어진 고양이. 꺼질 사람은 내가 아니고 너다.’
강하온은 오히려 흉수의 사념을 자극했다.
『크르릉!』
그리고 흉수는 강하온이 원한대로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알아서 와주니 고맙군.’
강하온은 흉수의 사념을 그대로 잡아챘다.
『크르르, 놔라! 버러지 같은 인간!』
그대로 잡힌 흉수의 사념은 거칠게 저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향한 증오가 느껴졌다.
‘저항해봐야 소용없다.’
흉수가 아무리 거칠게 저항한다 한들, 상대가 강하온이었다.
판게아의 그 어떤 신들도 괜히 역일까 봐 눈도 마주치지 않은 자였다.
강하온은 사방에서 흉수의 사념을 압박했다.
『크으윽!』
그제야 흉수의 사념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예측한 강하온은 사방팔방에서 흉수의 사념을 압박했다.
『이 아이를 구하려는 것인가? 크하하하.』
도망갈 곳이 전부 사라지자, 미쳤는지 흉수의 사념은 웃기 시작했다.
‘미친놈은 상종을 말아야지.’
강하온은 곧바로 흉수의 사념을 제거했다.
하지만 사념을 없앤 이후, 그는 왜 사념이 미친 듯이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아이의 몸은 내 차지가 될 것이다. 내 이름은 카심, 곧 찾아오도록 하지.』
흉수의 사념이 지워지며 남기고 간 말과 레아의 몸속에 남은 힘 때문이었다. 위험이 되는 흉수의 사념을 제거한 것은 맞지만, 피로 이어진 흉수의 힘 자체는 없어지지 않았다.
‘화신체가 될 몸이었나? 역시, 어린 것 치고 지나치게 강하긴 했지.’
간혹 이나 신수, 혹은 흉수 중에 그러는 자가 있었다.
육체가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자신의 핏줄을 이은 몸을 빼앗는 자였다.
일명, 화신체라 불리는 몸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레아가 가진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도 이해가 갔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해야지.”
아직 레아의 몸에 흉수의 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위험한 사념은 제거했기에 위험 요소는 확실히 제거했다.
잠든 레아의 얼굴을 봐도,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으음, 역시 이건 좀 그런가?”
강하온의 눈에 레아의 힘을 봉인하고 있던 구속구가 보였다.
“나름 사슬이나 족쇄보다는 나을 거로 생각해서 한 건데······.”
지금 레아를 보면 무슨 알피지 게임 코디나, 어디 액세서리 중독자를 보는 거 같았다.
뭐든 과한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혹시라도 수인의 본능이나, 남은 흉수의 힘이 어떤 반응으로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구속구는 계속 놔둬야 했다.
“이제 흉수의 사념도 사라졌고, 좀 단순하게 바꿔나야겠네.”
강하온은 곧바로 다시 구속구를 손 봤다.
그렇게 새로 만든 구속구는 호랑이 목걸이였다.
전보다 훨씬 보기가 좋았다.
“응? 일어났어?”
목걸이를 채워주려고 했는데, 레아가 눈을 떴다.
그래도 레아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나래가 없음에도, 레아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멍하니 강하온을 쳐다보다, 갑자기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얼굴을 강하온의 얼굴에 비비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레아야, 잠깐만.”
“응!”
확실히 레아는 밝아져 있었다.
강하온은 품에서 떨어트린 레아의 목에 구속구로 만든 목걸이를 채웠다.
“됐다, 마음에 드니?”
“응! 마음, 들어!”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꼬리를 격하게 빙빙 돌리는 것으로 레아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꼬르륵-!
그때였다, 레아의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레아, 배고파.”
레아는 홀쭉 들어간 배를 쓰다듬었다.
샌드위치를 몇십 개나 먹었지만, 한창 자랄 나이어서 그런지 벌써 소화가 된 듯했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을래? 금방 밥 만들어줄게.”
“응!”
강하온은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최고급 소고기를 꺼냈다.
원래는 나래와 먹을 저녁이었지만, 이미 아공간에는 상당한 양이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치익-!
강하온은 곧바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녹은 버터에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는 식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거기에 제대로 식욕을 자극당한 아이가 있었다.
“······.”
레아는 고기가 구워지는 순간, 귀를 쫑긋 세우고는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시선은 당연히 고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빨리 줘야겠네.”
강하온은 그런 레아를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마법을 사용해서 화력을 높였다.
“자짠, 먹어봐.”
강하온은 완벽히 레스팅까지 끝낸 스테이크를 레아의 앞에 뒀다.
레아는 강하온의 말이 떨어지자, 재빨리 손을 움직였다.
“잠깐.”
하지만 강하온은 레아를 막았다.
“응?”
레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 와중에도 침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손으로 먹으면 안 되지, 여기 포크를 사용해서 먹어봐.”
여태까지는 어땠는 지 몰라도, 앞으로는 인간들 틈 사이에서 살아가야했다.
손으로 음식을 먹거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강하온은 직접 포크를 들어서 시범까지 보여줬다.
“포크?”
“그래, 포크. 얼른 먹어봐.”
레아는 다행히 거부감을 가지지은 않았다.
포크를 쥐고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맛있어!”
한 입 먹더니, 입맛에 맛았는지 정신없이 흡입하기 시작했다.
잘 먹는 모습에 강하온은 절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간단히 3kg이나 되는 스테이크를 먹고 나서야 레아의 식사는 끝이 났다.
#
그날 저녁,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꺄르르, 레아가 이제 나래 얼굴에 화장해줘.”
“응!”
웃음소리의 정체 나래와 레아였다.
아카데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래는 기다렸다는 듯 레아와 함께 놀기 시작했다.
그 덕에 바오는 그토록 원하던 소꿉놀이에서 빠질 수 있었지만,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내 차례다! 나 먼저 해줘.』
바오는 레아를 노려보다가, 자진해서 그토록 싫던 소꿉놀이에 참여했다.
“웃긴 녀석.”
강하온은 질투하는 팬더를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으음, 그나저나 아카데미에 보내려면 준비 좀 해야겠네.”
강하온은 레아도 아카데미에 보낼 생각이었다.
나래가 레아랑 아카데미를 같이 다니고 싶다는 것도 있었지만, 강하온은 애초에 아이는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면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준비할 게 많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일단은 신분부터 어떻게 해야겠네.”
일단 아카데미를 등록하려면 신분이 있어야 했는데, 현재 레아는 아무런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그 외에도 귀나 꼬리 같은 수인을 상징하는 특징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부분은 인식 장애 마법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부탁 좀 해야겠네.”
강하온은 스마트 폰을 꺼내서 레아의 신분을 해결해 줄 사람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십니까, 강하온 헌터님.
스마트 폰 너머로는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박노식 협회장님.”
한국 헌터 협회장, 박노식이었다.
강하온이 아는 권력자 중 하나였고, 자신에게 진 빚도 있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강하온은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굳이 둘 사이에 그런 인사가 필요하나 싶지만,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그런데 어떤 일 때문에 이렇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최소한의 양심이, 결국 알아서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게 어린아이 신분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강하온은 레아에 대한 신분 얘기를 꺼냈다.
물론, 레아의 출처에 관한 것은 비밀로 했다.
원한다면 말해 줄 수도 있었지만.
-알겠습니다, 내일 이미소 과장을 보내도록 하죠.
박노식 협회장은 굳이 말하지 않은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 때문에 강하온은 박노식 협회장이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감사는 오히려 제가 해야죠, 덕분에 두 번이나 한국을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두 번, 여수에서 레비아탄과 일산에서 바오를 막은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굳이 강하온이 죽어도 막겠다. 이런 생각으로 막은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오해하는 상황은 강하온 쪽에서는 오예! 였으니까.
전화를 끊은 강하온은 준비해야 할 다른 것을 생각했다.
“으음, 이제 교복이랑 각성자 검사만 하면 끝인가?”
남은 문제는 내일, 나래를 아카데미에 보내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음 날, 나래 아카데미 등교를 끝낸 강하온은 레아와 함께 교복을 맞추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아니 나려서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손님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구십니까?”
검정 정장을 입은 강력한 헌터 둘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강하온 헌터. 우리는 세계 헌터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강하온을 찾아온 사람들은 세계 헌터 협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