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나래와 레아.
72. 나래와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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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는 나래와 레아를 쳐다봤다.
“이렇게 보니까 뭔가 닮은 거 같기도 하네.”
레아도 나래와 마찬가지로 눈이 동그랗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보니까 뭔가 닮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닮은 거 같기도 하네, 혹시 그런 건가? 밖에서 나은 자식 같은 거 말이야.』
어느새 식탁에 앉은 바오가 눈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요새 밤늦게 드라마를 보더니 상상력이 풍부해진 바오였다.
“앞으로 TV 보기 싫은가 보네?”
『노, 농담이다. 내가 아직 잠이 덜 깨서······미안하다.』
변명에도 강하온이 계속 쳐다보자, 바오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래, 그런 선 넘는 농담은 조심하라고.”
『알았다, 앞으로 조심하지.』
바오는 안도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너 요새 다크서클 심해졌더라, 자꾸 그렇게 심해지면 진짜 금지하는 수가 있다.”
『······.』
바오는 순간 멈칫했다.
“농담이다, 농담.”
『하하······, 그렇군.』
바오는 농담이라는 말에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찾았다.
하지만 바오의 속은 그렇지 않았다.
‘저 새끼는 자기가 하는 농담은 생각도 안 하나?’
팬더한테 다크서클 농담이나니, 악질도 저런 악질이 없었다.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말이었다.
“······.”
바오는 강하온이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자, 혹시라도 속마음이 들키는 게 아닌가 싶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저 수인은 어디서 데려온 거야? 분명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은데, 꺼림칙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감이 좋네.”
강하온은 내심 놀랐다.
현재 레아의 몸에 차고 있는 구속구는 힘을 완전히 봉인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레아한테 뭔가를 느꼈다는 것은, 감이 아주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흐흐, 이 몸의 직감이 뛰어나기는 하지.』
바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 바오가 대수림의 왕 중에서도 무력이 제일 약했지만, 왕으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위험을 감지하는 직감 덕분이었다.
『그나저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특별한 수인은 맞나보군. 신수의 피라도 이은 건가?』
“맞아.”
『신수라고? 진짜 맞나? 신수보단 흉수······, 흉수?』
바오는 미심쩍은 눈으로 말하다가 멈칫했다.
『설마······, 흉수의 피를 이은 거냐?』
바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고, 강하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쳤군, 흉수를 집에 들여? 당장 밖으로 갖다 버려라, 아니 죽이는 게 편하겠군.』
바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흉수는 재앙을 불러들이는 짐승이었다.
흉수가 머문 곳에는 파멸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래의 또래로 보여서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거냐? 그게 힘들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지.』
그렇긴 해도 바오의 반응은 좀 지나치긴 했다.
하지만 이러는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본래, 킹팬더는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대수림에서 부락을 이루고 살 정도로 상위 포식자였다.
그런데 바오가 어릴 때, 아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우연히 무리에서 버려졌던 새끼 뱀을 킹팬더 부락에서 거뒀는데, 그 새끼 뱀이 흉수였다.
그 때문에 바오를 제외한 모든 킹팬더는 전부 죽었고, 바오는 유일한 킹팬더가 되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흉수가 재앙을 불어오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그래, 네 말대로 흉수가 재앙을 불러오는 것은 사실이지. 그런데 그 어떤 재앙이 와도 상관없다, 내가 오지 못하게 만들면 되니까.”
『······그렇군.』
한껏 격양되어 있던 바오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온의 말에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하온이 있었다면······달라졌을까? 그래, 달라졌겠지.’
바오는 오랜만에 기억 속 희미해진 자신의 동족을 떠올렸다.
『그래도 혹시 나래한테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면 가만둘 생각은 없다.』
바오는 여전히 레아를 적대적으로 보며 말했다.
단순히 강하온의 말로 풀리기에는, 바오가 가지는 흉수에 대한 증오는 너무도 컸다.
“그래, 그런 일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강하온은 미소를 지으며 바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오는 의식했는지, 무의식으로 말했는지는 몰라도 나래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저렇게 서로 쳐다보려는 거지?”
강하온은 나래와 레아는 서로를 계속해서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래가 고개를 갸웃하면, 레아는 거울처럼 따라 움직였다.
그때, 나래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나래야, 너는?”
“나는······레아?”
“레아? 이름이 레아야?”
“······응.”
레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리차드를 비롯한 연구원이 자신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레아야, 안녕? 나는 강나래야.”
나래는 환하게 웃으면서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나래, 나 레아. 안녕.”
멍하니 나래를 보던 레아도 나래를 따라서 인사했다.
적어도 적대하는 모습은 없었다.
아직은 나래가 신기한지, 눈을 깜빡이며 멀뚱히 보고 있었다.
반면에 나래는 또래 친구가 생긴 것이 좋은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비몽사몽 하지 않고 눈이 또렷한 것이 그 증거였다.
“레아는 머리에 귀가 있어?”
나래는 레아의 머리 위에 달린 귀가 신기한지 쳐다보며 물었다.
“······응.”
“신기하다, 꼬리도 있어! 레아 꼭 호랑이 같다.”
“호랑이?”
“응! 동물원에서 봤는데 엄청 크고 힘이 센 동물이야. 그런데 레아는 백호랑이 닮았어.”
“······백호?”
“뭔지 몰라?”
“······응.”
“그러면 나래랑 같이 보러 갈래? 아빠한테 말하면 데려다 줄거야.”
“······응.”
나래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금방 레아와 친해졌다.
물론, 말은 나래만 하고, 레아는 대답만 했지만.
“이제 인사는 끝났으니까, 슬슬 밥을 먹여야겠네.”
조금 더 늦으면, 아카데미에 늦을 수도 있었다.
강하온은 나래와 레아가 있는 거실로 다가갔다.
“캬악······.”
레아는 강하온을 보고 잠들기 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한 바퀴 돌아 쇼파에 착지하면서 경계했다.
모든 힘이 봉인되어 있음에도 깔끔하면서 날렵했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 자체가 뛰어났다.
“이름이 레아라고 했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적이 아니란다.”
“캬오.”
강하온은 놀라지 않도록 조심히 다가갔지만, 레아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니,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봐라, 흉수의 피는 통제되지 않는다.』
뒤에서 지켜보던 바오는 한마디 거들었다.
바오는 여전히 레아한테 못마땅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가만히 있던 나래가 움직였다.
나래는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레아한테 다가갔다.
『위험······.』
“기다려봐.”
바오는 놀라서 앞으로 튀어 나가려고 했지만, 강하온은 바오를 막았다.
『너 지금 뭐 하······, 응? 저게 어떻게······.』
강하온한테 화를 내던 바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
“레아야, 괜찮아.”
“······.”
나래가 다가가서 레아를 안자, 레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경계를 풀었다.
‘노아스의 축복 때문인가?’
강하온은 레아가 나래한테만은 경계를 푸는 이유를 단번에 파악했다.
흉수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 동물의 원형이 가지는 특징은 사라지지 않는다.
흰 돌고래는 물, 새는 바람, 헬 하운드는 불과 땅, 이렇듯 각자 친화적인 자연의 힘이 있었다.
레아가 피를 이은 흉수는 백호, 백호는 땅하고 밀접한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 신화에서 백호는 대지를 관장하는 신으로 표현 될 정도였다.
그리고 점점 바오가 나래한테 마음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킹팬더 역시, 땅과 친화적인 동물이었다.
‘피 냄새가 없는 것도 한몫했나 보군.’
그는 자신도 노아스의 축복이 있는데, 왜 경계하는지도 알았다.
바로 몸에 밴 피 냄새 때문이다.
뛰어난 후각을 가진 레아한테서는 다 맡아진 것이다.
피 냄새는 없앤다고 없앨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몸에 배어버린 낙인 같은 것이었으니까.
“나래, 아빠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빠?”
“응! 아빠!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응! 괜찮아!”
나래가 확실히 설명을 해주자, 레아는 그제야 조금 경계를 풀었다.
“나래는 레아한테 손 씻는 거 알려주고, 얼른 밥 먹자.”
“네! 레아야, 가자.”
나래는 친구가 생겨서 기분이 좋은지, 레아의 손을 잡고는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
강하온의 옆으로 지나가는 레아는 아직 피 냄새가 거부감이 느껴지는지, 코끝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래도 나래가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고양이처럼 하악질을 하지는 않았다.
“다행이네, 마음에 든 거 같아서.”
강하온은 나래도 기분이 좋아지고, 레아도 마음이 안정된 거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그는 곧바로 준비된 토마토 샌드위치를 테이블 위에 셋팅하기 시작했다.
『······.』
멍하니 테이블에 있던 바오는 허털한 표정을 지었다.
바오가 이러는 것은 레아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나래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항상 품 안에 자신을 안고 있던 나래였지만, 오늘은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래, 나도 손 씻어야 한다!』
몸에 물이 묻는 것을 싫어하는 바오였지만, 오늘은 자진해서 나래한테 달려갔다.
“웃긴 녀석.”
강하온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레아야, 차가워.”
잠시 후, 욕실 안에서는 꺄르르 웃는 나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 묻는다. 그만해라.』
그리고 짜증 가득한 바오의 목소리도 들렸다.
“대체 뭐 하는 거야?”
강하온은 궁금함에 욕실로 갔고, 물 바다가 된 욕실을 볼 수 있었다.
욕실에서는 한창 물놀이 중인 두 아이와 팬더를 볼 수 있었다.
레아는 물을 좋아하는지,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을 이리저리 튀기고 있었다.
나래는 물놀이라 생각했는지, 샤워기를 틀어서 염동력으로 물방울을 만들어서 놀고 있었다.
“······우와.”
레아는 이곳에 온 뒤로 처음으로 미소까지 지으면서 좋아했다.
이제야 레아가 나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과 땅의 정령왕 축복, 거기에 그 어떠한 살기나 피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순수한 신체.
레아 입장에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자, 인제 그만. 밥 먹어야지.”
아이들이 좋아하기는 했지만, 계속 놀게 나둘 수는 없었다.
강하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바닥에 있던 물도, 아이들의 젖은 옷도.
“네!”
“······응.”
레아는 조금 더 놀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래의 대답을 보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토!”
식탁으로 온 나래는 샌드위치 속 토마토를 봤는지, 눈을 반짝였다.
“잘 먹겠습니다.”
나래는 곧바로 샌드위치를 잡아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헤헤, 맛있어요!”
그리고는 맛있게 먹었다.
“······잘 먹겠습니다?”
옆에 있던 레아는 눈치를 보다, 나래를 따라서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
그러더니 갑자기 눈이 커졌다.
“······맛있어.”
강하온은 혹시나 육식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레아는 샌드위치가 입맛에 맞았는지,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그런데 강하온의 생각보다 훨씬 더, 샌드위치가 레아의 입맛에 맞은 듯했다.
“잘 먹네······.”
그렇게 레아는 샌드위치를 원래 어린이반 친구들한테 선물하려고 쌌던 샌드위치까지 전부 먹고 나서야 식사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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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를 아카데미에 등교시킨 강하온은 레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나래는 레아도 아카데미를 다니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위험 요소는 지우든지 해야지.”
현재, 레아의 몸속에는 폭탄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래의 옆에 계속 붙여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금 그 폭탄을 지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만약, 자기 생각이 맞는다면 레아를 흉수가 아닌 신수의 힘을 가진 수인으로 바꿀 수 있었다.
“잠시 몸 좀 살피마.”
강하온은 슬립 마법으로 잠들어 있는 레아한테 말하고는 배에 손을 올렸다.
‘저기 있군.’
그리고 레아의 몸 안에 있는 강력하고, 흉악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흉수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