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수인, 레아.
70. 수인, 레아.
#
리차드의 손에 들린 수인 소녀, 사슬과 수갑으로 온몸이 구속당해 있었다. 게다가 숨을 쉬고 있음에도 어떠한 미동도 없다.
이미 오랜 시간을 저렇게 보냈다는 말이었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수인? 이번에는 진짜 수인이군.”
강하온은 구속된 소녀 수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수인이 아닌, 진짜 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판게아에서 많은 아인종을 봤고, 그중에는 당연히 수인도 존재했다.
“그나저나 상종 못 할 쓰레기 새끼였군, 역시 네 놈같이 멀쩡하게 생긴 새끼들이 더 지저분하단 말이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던 강하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수인이라는 종족은 인간과 성장 속도라 달라서 나이는 다르겠지만, 몸 크기를 보면 나래와 비슷한 키였다.
그런데 그런 소녀가 무식하게 구속당해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크크큭, 네놈이 그렇게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거다.”
공포에 질려있던 리차드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는 미친 것이 아닌 자신감이었고, 그 자신감의 원천은 손에 들린 수인 소녀, 레아였다.
레아는 강하온이 파악한 것처럼 만들어진 수인이 아닌, 진짜 수인이었다.
리차드가 레아를 발견한 것은 2년 전이었다.
수인화 실험에서 계속 실패하던 중,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의 연구실 주변에 게이트가 발생했다.
등급은 S급, A급 헌터와 맞먹는 수준의 고양잇과 마수가 나오는 곳이었는데, 그 마수들은 게이트 안에 있는 고대 사원을 지키고 있었다.
바루스의 몸의 모델이 된 일각 백호도 여기서 구한 마수였다.
고대 사원을 지키던 가장 강력한 마수였다.
그 고대 사원의 지하에 있던 것이 레아였다.
레아는 리차드가 꿈꾸던 연구의 결정체나 다름 없었다.
강력한 육체, 생긴 것처럼 어린아이 수준이기는 했지만,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능까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너무 강해서 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리차드는 그러한 문제가, 지금은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사도조차 압도했던 레아라면, 강하온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철컥-! 차르륵-!
리차드는 레아의 구속하고 있는 사슬과 족쇄를 풀어냈고, 레아의 몸에는 자유가 생겼다.
사슬과 족쇄는 처음 레아와 함께 있던 것이었다.
레아의 힘을 완벽히 봉인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사라지자, 억눌렸던 레아의 힘이 터져 나왔다.
사악-!
작은 몸에서 나왔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이 일대를 잠식했다.
강하기도 했지만, 맹수 모델의 수인답게 거칠었다.
힘을 느낀 강하온의 눈썹이 올라갔다.
“신수의 핏줄을 이은 건가?”
수인은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성장이 빨랐다.
만약, 저러한 모습이라면 태어난 지 1~2살 정도였다.
그런데 저런 어린 수인이 저렇게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신수의 핏줄을 이은 것이다.
실제로 수인의 뿌리를 보면 영물이라 불리는 짐승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영물은 단순히 내단을 가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의태, 변신을 할 수 있는 짐승을 말했다.
그러한 영물이 인간과 정을 통해서 생긴 종족이 수인이었다.
그런데 레아 정도의 힘을 내는 수인이라면, 신수라고 불리는 존재의 피를 이었을 확률이 높았다.
“으음······, 좀 애매하단 말이지.”
하지만 강하온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신수라고 하기에는 레아한테서 뿜어나오는 기운이 너무 거칠었기 때문이다.
“레아! 당장 저놈은 죽여라!”
리차드의 목소리에 레아의 작은 귀가 움직였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샛노란 백호의 눈동자, 하지만 신수라고 부르기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뿌리는 흉수였나?”
강하온은 레아의 눈을 보는 순간, 핏줄의 뿌리를 알 수 있었다.
흉수, 신수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였다.
신수가 인간을 보호하는 존재라면, 흉수는 인간을 해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신수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흉수는 신수가 타락해서 된 존재였으니까.
“크르르, 캬아악!”
레아는 강하온을 보더니, 꼬리와 몸에 머리털을 삐죽 세우면서 달려들었다.
리차드의 명령보다는 생존 본능으로 인한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강하온의 힘을 느꼈고, 없애야 할 적이라는 것을 판단한 것이다.
“어려도 맹수는 맹수라는 건가?”
강하온은 레아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봤다.
단순한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부서진 건물 잔해와 죽어 나간 시체들을 이용해서 사방으로 움직이며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지켜보는 강하온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딸이 재롱부리는 것을 보는 아빠의 미소 같았다.
“아직은 백호보다 고양이가 어울리겠다.”
수준이 비슷했다면 레아의 움직임이 위력적일 수 있겠지만, 그건 수준이 비슷할 때 얘기였다.
압도적으로 강한 강하온의 눈에는, 고양이가 재롱을 펼치는 모습처럼 보였다.
“캬악!”
강하온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레아는 이빨을 드러내며 강하온에게 돌진했다.
날카로운 이빨만큼은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장성한 맹수의 이빨이었다.
“놀고 싶은가 보구나,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바빠서 미안하구나.”
강하온은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레아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레아를 그대로 받아냈다.
레아는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으로 할퀴고, 날카로운 이빨로 숨통을 당장에 물어내려고 했지만 전부 강하온의 움직임에 무력화됐다.
강하온은 공격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어느 순간 레아의 목덜미를 잡아챈 것이다.
레아는 주인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려는 새끼 고양이처럼 반항했지만, 강하온의 손에 둘러진 강력한 쉴드 마법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으음, 레아라고 했지? 조금 자고 있어라.”
강하온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이 수인 소녀를 죽여도 될지 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이지 않기로 했다.
나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죽이기에는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제대로 된 의지도 없이, 그저 본능에 움직이는 아이를.
“캬악······코오······.”
레아는 강력한 수면 마법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어, 어떻게······.”
깊게 잠든 레아를 본 리차드는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게, 레아는 코끼리 100마리를 재울 정도의 수면제를 써도 제대로 재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레아를 간단하게 재운 것이다.
이렇게 그가 유일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자, 지독한 두려움이 리차드를 잠식했다.
“대, 대체 네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하지만 그의 두려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려고 하는 것처럼, 리차드 또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강하온은 고양이도, 호랑이도 아닌 굳이 따지자면 드래곤이었다.
“네가 궁금해할 것은 없다, 고통 속에 죽어가라.”
강하온은 더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나래가 있는 집 안의 결계는 멀쩡했지만, 밖에 있는 결계에 약간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말은 침입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바오와 드라쿨을 믿기는 했지만, 그래도 차원석 같은 이상한 물건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빨리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네, 네놈! 대체 내게 무슨 짓을······크아아악!”
강하온은 공포에 질린 리차드에게 다가가, 기억을 읽어냈다.
리차드는 뇌를 헤집는 마나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강하온의 머릿속에는 리차드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아쉽게도 리차드에게는 교단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는 열두 번째 사도 바루스의 직속이었기 때문에, 바루스하고만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리차드가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었다.
“빌어먹을 놈이었군.”
그의 기억 속에는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될 끔찍한 실험이 가득했다. 특히, 마수나 동물의 유전자에 대한 저항이 적다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진행한 실험은 강하온은 분노하게 했다.
“죽어서도 죽지 못하게 해주지.”
강하온은 죽은 리차드와 그의 부하들을 전부 언데드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지금까지 그가 만든 언데드와는 달랐다.
리차드와 그의 부하들은 한 곳에 뭉쳐서 흉물스럽게 합쳐지기 시작했다.
시체 덩어리의 결합체, 어보미네이션이었다.
『끅······,끅······.』
『사, 살려어억······.』
안에서는 영혼의 절규가 들려왔다.
서로의 영혼이 서로를 뜯어먹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원하던 유전자의 결합을 영혼으로 이뤄봐라.”
리차드의 부하들 역시, 전부 리차드와 다를 것 없는 놈들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미 사형이 확정된 범죄자들이었다.
강하온은 그들 역시, 리차드와 같은 죽어서도 고통스러운 형벌을 내린 것이다.
“평생 말이야.”『아, 안······.』
강하온은 어보미네이션을 그대로 역 소환했다.
이제 그들은 강하온이 해방해주기 전까지는 평생을 어두운 아공간 속에서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살아가야 했다.
“그럼, 요 녀석이 문제네.”
강하온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잠든 레아를 품아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래가 좋아하려나? 또래라 친구처럼 지내도 될 거 같은데.”
강하온은 나래를 생각하며 레아를 집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잠시 힘은 봉해두자.”
앞으로 강하온과 지낸다면 나래와 같이 지내야 할 텐데, 지금 이 상태로 둔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강하온의 의지에 따라, 바닥에 있던 쇠사슬과 족쇄가 두둥실 떠올랐다.
우지직-!
그리고는 뭉치더니, 강력한 압력에 의해서 형태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쇠사슬과 족쇄는 귀여운 팔찌와 발찌, 그리고 반지와 목걸이로 변화했다.
“어린애한테 흉물스러운 물건을 채워놓을 수는 없지.”
강하온은 새로 만든 레아의 힘을 봉인시키는 물건을 전부 착용시킨 뒤, 집으로 돌아갔다.
#
“혼자서 나 처리한 건가? 제법 강해졌네.”
집으로 돌아온 강하온은 드라쿨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뱀파이어는 수련도 있지만, 상대방에 힘을 흡수함에 따라서 힘이 강해질 수 있는 종족이었다.
최소 A급 헌터 이상의 힘을 가진 수많은 적의 피를 흡수한 드라쿨은 떠나기 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어! 투신, 왔나?”
바닥에 죽어있는 가짜 수인의 시체를 한곳에 모으던 드라쿨은 강하온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아, 이거? 별건 아니다. 쥐 새끼들 몇 마리가 감히 우리 나래를 노리고 쳐들어와서 간단하게 처리해줬다.”
드라쿨은 굳이 강하온이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알아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평소에 그냥 불렀던 나래는 우리 나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별것 아니라고 말했지만, 별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 이거 필요할 거 같아서 챙겨뒀다.”
드라쿨은 아공간에 고히 모셔뒀던 영혼석을 꺼냈다.
『네놈! 대체 내게 뭔 짓을 한 거냐!』
안에서는 바루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말한 그 사도라는 놈 같더군.”
“고생했다.”
강하온은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기분이 좋아졌다.
“필요한 거라도 있나? 피 한 방울 정도면 되려나?”
“두 방울······.”
“욕심이 많군,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했으면서. 그냥 없던 일로 하지, 어차피 이건 경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순간, 드라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끝까지 말을 들어라! 두 방울 같은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드라쿨은 이대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바꿨다.
“그래, 욕심은 적당히 부리는 게 좋다. 대신 지금은 줘봤자 소화도 못 할 거 같고, 몸에 있는 힘이 완전히 소화되면 주도록 하지.”
“고, 고맙다! 더 열심히 하겠다!”
“고생 많았다.”
강하온은 드라쿨의 인사를 받으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진솔한 대화 좀 해보자고.”
그의 손에는 바루스의 영혼석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