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딸 바보 강하온
25. 딸 바보 강하온
#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강하온은 놀란 마가렛 원장 수녀한테 일단 사과부터 했다.
12시가 넘은 시간, 아무런 말도 없이 불쑥 찾아왔으니 잘못된 게 맞았다.
게다가 보육원에는 경비가 있었는데, 그 경비를 뚫고 나타났으니 놀랄만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이 늦은 시간에는 무슨 일인가요? 나래 아버님.”
마가렛 원장 수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는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마가렛 수녀님뿐이라서요.”
“후, 알았어요. 일단 들어와요. 들어가서 얘기하죠.”
“그게······.”
마가렛 원장 수녀의 말에 강하온은 머뭇거렸다.
“나래 아버님, 뭐해요? 안 들어오시고.”
“그게······, 옷을 갈아입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 잠시만 기다려요.”
마가렛 원장 수녀는 자신이 입은 핑크색 곰돌이 잠옷을 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뭐, 그러실 수 있지······. 귀여운 걸 좋아하시는 취향이신가 보네.”
강하온은 나이 불문하고 취향은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흠, 그게 그러니까 제가 옷을 다 빠는 바람에 유리아 수녀의 잠옷을 잠깐 빌린 거랍니다.”
잠시 후, 마가렛 원장은 검은 수녀복을 입고 나왔다.
그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조금 전 사태에 대한 변명을 주저리 뱉었다.
“아, 그랬군요.”
그제야 강하온도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취향이긴 해도 좀 깜짝 놀라기는 했다, 마가렛 원장의 나이는 70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유리아 수녀라······.’
강하온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성난 고양이 같이 공격했던 유리아 수녀를 생각했다.
‘호피면 몰라도 핑크 곰돌이는 어울리지 않네.’
강하온은 그녀가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와서 얘기하죠.”
“알겠습니다.”
“앉아 계세요, 모과차 좀 타드릴게요.”
강하온은 마가렛 원장을 따라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육아라는 게 힘들죠?”
마가렛 원장은 차를 준비하면서 말했다.
‘아······, 내가 나래 육아 때문에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건가?’
강하온의 생각이 맞았다, 마가렛 원장은 육아에 관한 얘기를 계속했다.
“잠깐만요, 마가렛 원장님.”
강하온은 자꾸 얘기가 딴 곳으로 빠지는 거 같아서 말을 끊었다.
“네? 말씀하세요, 나래 아버님.”
“그게 제가 온 건 육아 때문이 아닌데요?”
“그런가요?”
마가렛 원장은 멈칫했다, 육아 문제가 아니라면 강하온이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죠, 나래와 함께 있는 시간은 오히려 저한테 행복이니까요.”
강하온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나래가 좋은 아빠랑 있어서 다행이네요.”
마가렛 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했다.
“그런데 아이 문제가 아니라면 뭐 때문에 온 건가요?”
마가렛 원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하온이 올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때문에요.”
“네? 방금 아이 문제가 아니라고······.”
“그게 나래 문제는 아닌데, 아이 문제는 맞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신지······.”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서해에 있는······.”
강하온은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마가렛 원장한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해줬다. 어차피 마가렛 원장은 자신의 강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고, 판게아에 갔다 온 사실 또한 말했기에 상관이 없었다.
‘믿을 만한 사람이기도 하고.’
강하온은 마가렛 원장은 믿을 수 있었다.
그래도 흑룡 길드에 대한 언급은 제외했다.
흑룡 길드한테는 시킬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빛나를 찾고 나서, 그때 없애도 늦지 않지.’
강하온이 굳이 흑룡 길드를 그 자리에서 전부 죽이지 않은 이유였다.
그는 흑룡 길드를 시켜서 한빛나를 납치해간 검은 형체에 대한 정보를 찾을 생각이었다.
“뭐라고요?”
강하온의 모든 얘기를 들은 마가렛 수녀는 놀라서 눈이 커졌다.
“아, 놀라셨죠? 저도 놀랐습니다. 별 쓰레기 같은 놈들이 다 있더라······.”
“아니요! 지금 애들이 어디 있다고 했죠?”
“옥상에?”
“이 사람 좀 봐! 어린 애들은 찬 옥상 바닥에 지금까지 그냥 놔뒀다는 겁니까!”
강하온은 그제야 마가렛 원장이 놀란 이유가 따른 것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야, 그냥 밖에 뒀으면 오해를 받을까 봐서.”
강하온은 첫날 이곳에 있던 일 때문에 아이들을 옥상에 올려둔 것이다. 수십 명의 아이가 바닥에 누워있으면 충분히 오해 받을 상황이었으니까.
“변명은 됐으니까, 얼른 옥상부터 가봐요.”
“······네.”
강하온은 이상하게 학창시절 선생님한테 혼나는 기분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옥상에 도착한 마가렛 원장은 정신을 잃고 옥상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강하온이 힐링과 클린 마법으로 상처나 지저분한 것은 없앴지만, 그렇다고 입고 있는 옷이나 몸에 남은 흉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가렛 원장은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고,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 있었다.
“나래 아버님! 이런 애들을 어떻게 찬 옥상 바닥······.”
“잠깐만요!”
또다시 혼나려는 강하온은 마가렛 원장의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시죠?”
마가렛 원장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자, 잠깐 만요! 혼날 건 다 혼나고······.”
“진짜 급한 일이라서요, 애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강하온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사라졌다.
“저, 저 사람이!”
마가렛 원장은 꼭 혼나기 싫어서 도망간 것 같은 강하온이 사라진 곳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따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아이들을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마가렛 원장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자리에 없는 강하온에게 감사를 전했다.
아이들을 구해준 것도 구해준 것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편안한 것도 강하온 덕분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했기 때문이다.
“어, 나래야, 일어났어?”
그 시각 강하온은 집으로 와 있었다.
나래가 잠에서 깼다는 알람을 들어서였다.
‘예쁘기도 하지, 아빠가 혼나는 타이밍에 잠에서 깨어나고.’
강하온은 아직도 졸린 지, 눈을 비비고 있는 나래를 보며 헤벌레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이 상황을 봤다면, 모두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착각도 병이라고.
“······아빠, 어디 갔다 왔어요?”
나래는 잠이 약간 깼는지, 수상한 눈으로 강하온을 쳐다봤다.
마치, 어디 갔다 온 거냐고 묻는 거 같았다.
“아, 아빠? 잠깐 화장실 갖다 왔지.”
강하온은 나래에게 거짓말을 하지 싫었지만, 이번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 이건 선의에 거짓말이었다.
만약, 나래가 혼자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힘들어 할테니까.
하지만 나래는 강하온의 말을 믿지 않은 눈치였다.
“······옷이랑 신발.”
나래는 강하온의 옷과 신발을 가리켰다. 나래의 행동에 강하온은 움찔했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미처 신발을 벗는 것을 깜빡 한 것이다.
‘후, 혹시 몰라 정리해놔서 다행이네.’
강하온은 얼굴이나 몸은 물론, 옷에 묻었던 먼지나 피를 클린으로 없애 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이건 그러니까······, 내일 나래랑 인형 만들어 갈 때 입으려고 미리 입어 본 거지.”
강하온은 옛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은 또 새로운 거짓말을 낳은다는 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당장에 그럴 싸 하게 대답했다.
마침, 내일은 나래랑 헝겊 인형 만드는 강좌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래한테는 깜짝 이벤트를 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선을 돌릴 게 필요했다.
“인형?”
다행히 강하온의 의도는 제대로 먹혀 들었다.
나래가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래, 내일 나래랑 인형 만들 거야.”
강하온은 얼른 신발을 벗어 마법으로 신발장으로 옮기면서, 나래를 안아 들었다.
“헤헤, 좋아요.”
나래는 강하온이 어디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사라져서 그런지, 배시시 웃으면서 다시 잠에 들었다.
“귀여워라.”
강하온은 나래를 침대에 다시 눕히고, 한동안 미소를 짓고 바라봤다.
분노했던 투신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고, 딸 바보 강하온만이 있었다.
#
강하온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지구로 돌아온 첫날, 긴장이 풀려서 숙면을 취했던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일찍 일어나고 있었다.
“아기 공주님이 따로 없네.”
강하온은 작은 숨을 썍쌕 거리며 자는 나래를 보며 미소지었다.
“아빠가 금방 밥 준비해 놓을게.”
강하온은 자는 나래를 두고, 부엌으로 갔다.
강하온은 나래가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조금 느리다는 것을 안 이후로, 꼭 아침을 영양 가득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지. 나래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뼈에 좋은 멸치~ 채소는 나래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강하온은 이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흥이 넘치게 아침을 준비했다.
투신 강하온을 아는 이가 이 모습을 본다면, 기겁하며 바로 도망갈 것이다.
투신이 미쳤으니, 곧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면서.
“아, 뉴스.”
한창 요리를 만들고 있던 강하온은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켰다.
그는 아침마다 꼭 뉴스를 봤다.
지구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었다.
다른 노력으로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인터넷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보고 있었다.
-오늘 새벽, 바티칸에서 직접 들어온 특보입니다. 한국의 서해 부근에 있는 무인도에서······.
뉴스에서는 강하온이 새벽에 해결했던 일에 대해서 나오고 있었다.
“바티칸? 그쪽이랑 연결이 되어 있던 건가? 하긴, 수녀들이 죄다 각성자인데 평범한 곳일 리가 없지.”
강하온은 희망 보육원이 바티칸 소속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평범하지 않은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수녀들도 강했지만, 마가렛 원장도 무척 강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한국헌터 협회는 자국 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사과하고, 바티칸과 협력해서 납치당했던 아이들의 일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역시, 맡기길 잘했단 말이지.”
뉴스를 전부 본 강하온은 마가렛 원장한테 아이들을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잘했단 말이지?”
그때, 강하온의 뒤에서 강하온이 했던 말을 따라하는 귀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깬 나래였다.
“나래 일어났어? 밥부터 먹자, 아빠가 나래 좋아하는 계란말이랑 브로콜리도 해놨지.”
“헤헤, 맛있겠다!”
나래는 좋아하는 음식에 금세 잠에서 깼다.
“나래야, 얼른 밥 먹자.”
“네! 잘 먹겠습니다!”
나래는 어린이 젓가락을 사용해서 하나씩 집어서 꼭꼭 씹어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빠가 밥 다 먹었으면 뭐 해야 한다고 했지?”
“치카치카요!”
“그래, 나래 그럼 치카치카 하고 있어요. 아빠는 나래 옷 준비하고 있을게.”
“네! 헤헤, 인형 만들러 가요~”
나래는 인형을 만들러 갈 생각에 신나서 재빨리 양치했다.
“오늘은 이 옷을 입어 볼까?”
“좋아요!”
나래는 꽃 같은 노란 원피스를 입고, 강하온과 동사무소로 향했다.
처음 강하온이 왔을 때 신청했던 ‘엄마와 함께 만드는 헝겊 인형’ 강좌를 듣기 위해서.
‘이왕 만들 거 엄청난 인형을 만들어주지!’
강하온은 다른 엄마들한테 얕보이지 않게 의지를 불태웠다.
선작과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