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빛나의 편지.
12. 한빛나의 편지.
#
편지에 적힌 이름 세글자, 한빛나의 이름을 본 강하온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빛나가 편지를 남겼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중에 아빠가 돌아오면 주라고 나래한테 준 거에요..”
그때, 앞에 있던 나래가 말했다.
“아빠가 돌아오면?”
“네! 엄마가 없을 때, 아빠가 올 테니까 나래한테 전해주고 했어요. 그래서 나래가 보물 상자에 넣어두고 있었어요.”
“······엄마가 없을 때, 아빠가 돌아온다고 했어?”
“네.”
강하온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래의 말대로라면, 마치 한빛나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견하고 편지를 남긴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래야, 고마워.”
강하온은 당장에라도 편지를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아직은 읽지 않았다.
‘나래를 걱정시킬 수 없지.’
편지를 읽는 변하는 자신의 표정 때문에 나래가 걱정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래를 먼저 재우고 읽을 생각이었다.
때마침, 나래가 졸린지 눈을 비볐다.
“아빠, 나래 졸려요.”
“그래? 나래 지금 잘래?”
“네.”
강하온은 편지가 신경 쓰였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나래를 안아 들었다.
그렇게 나래의 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강하온은 나래가 머뭇거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 모습이 뭐라도 마려운 새끼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응? 나래, 아빠한테 말하고 싶은 거 있어?”
“······네.”
“뭘까? 아빠한테 편하게 말해봐.”
“······나래, 아빠랑 같이 자도 돼요?”
나래는 고민 끝에 말했다.
오늘이 너무 행복한 나래였는데,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사라질 거 같아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아빠도 나래랑 같이 자고 싶었는데, 말해줘서 고마워.”
강하온은 나래가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뭔가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더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헤헤, 아빠 좋아.”
나래는 걱정하던 것이 해결이 되자 환하게 웃었다.
강하온도 나래의 표정이 풀어지자 같이 웃었다.
‘침대를 추가로 더 넣어달라고 하길 잘했네.’
강하온은 하나를 더 붙여서 패밀리 사이즈 침대로 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나래 잘 때까지 책 읽어줄까?”
나래를 눕힌 강하온은 아공간에서 동화책 한 권을 꺼냈다.
마가렛 수녀가 챙겨준 동화책이었다.
그녀에게 듣기를, 보육원에서는 아이들이 잠이 들기 전에 전체적으로 동화책을 읽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아이 중에서도 특히 나래가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네! 동화책 좋아요!”
강하온이 마가렛 수녀의 말에 동의했다. 금방이라도 잠들 거 같았던 나래의 눈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분명, 재우려고 동화책을 읽어주려는데, 오히려 잠이 깨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래, 편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강하온은 한빛나가 남긴 편지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나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아이랑 놀아줄 때는 오로지 아이한테 집중하라고 했나?’
강하온은 마가렛 수녀가 적어준 좋은 아빠가 되는 법에 적힌 말을 생각했다.
“옛날,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있있어요,”
강하온은 ‘옛날’이라는 전형적인 말로 시작하는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하고, 토끼의 방심으로 거북이의 승리고 끝나는 이야기였다.
“이 동화의 교훈은······, 많이 피곤했나 보네.”
강하온은 동화의 교훈까지 말해주려고 했지만, 이미 나래는 자고 있었다.
“그럼, 이제 편지나 읽어볼까.”
강하온은 한빛나가 남긴 편지를 읽기 위해서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대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빠······, 나래 혼자 두지 마요······.”
나래의 잠꼬대 때문이었다.
“······.”
나래의 잠꼬대에 강하온은 마음이 아팠다.
나래가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강하온은 나래가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실종되지 않았다면 한빛나도 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나래가 잠시 동안이었지만, 혼자 있을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 그런 일을 절대로 없을 거야.”
강하온은 잠이 든 나래를 보며 다짐했다. 다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래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결국 강하온은 그냥 침대에서 편지를 꺼내서 펼쳤다.
『강하온, 나래 때문에 많이 놀랐지? 하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딸이 생겼으니 안 놀라는 게 이상할 거야. 그치?
그런데 혹시 네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가는 너 죽어! 내 인생에 남자는 너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거고!』
편지의 초입을 읽은 강하온은 피식 웃었다. 마치 한빛나의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식 날 아침에 선물 있다고 한거 기억하지? 그게 나래였어, 혹시라도 의심했으면 네 딸 맞으니까 안심해.』
편지를 읽은 강하온은 그때 상황이 생생히 생각났다.
그리고 그 선물이 나래였다는 것을 안 강하온은 그 어떤 선물보다 만족스러웠다.
“······.”
거기까지 읽고 다음 장을 넘어간 강하온은 멈칫했다.
편지 중간마다 마른 곳이 보였는데, 그 흔적이 눈물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안해······.’
강하온은 잘 울지 않는 한빛나가 울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다시 편치를 읽어 내려가던 그의 심장은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한빛나가 편지에 남긴 내용 때문이었다.
『우리 나래는 잘 있지? 지금 여보가 편지를 읽는 순간이면 다섯 살이겠네······, 그래도 나래가 여보를 좋아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편지에는 현재 나래의 나이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지금 상황을 본 듯한 내용도 적혀 있었다.
‘미래를 보는 건가?’
강하온은 한빛나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본다, 만약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볼 것이다.
그것은 판게아거나 지구나 똑같았다.
그만큼, 미래를 보는 힘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이었다.
하지만 강하온은 한빛나가 미래를 본다고 확신했다.
강하온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지는 사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까지 볼 수 있나 보네, 나와 다르게.’
강하온이 아는 미래를 보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한빛나처럼 먼 미래를 볼 수는 없었지만, 5초 정도의 미래는 볼 수 있었다.
이 힘은 강하온이 판게아에 죽을 위기에 각성한 힘이었고, 이 힘이 그가 투신이라 불리게 될 수 있었던 근원이었다.
『아 참, 나 각성했는데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각성했어.
별로 놀라지는 않았지? 자세히는 못 봤어도, 하온이 네가 사라진 동안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건 알 거 같았거든.』
그리고 강하온의 확신대로 편지에는 한빛나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편지에는 그 뒤로도 많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래가 잘 부탁한다는 말부터, 한빛나는 자신이 어디론가로 끌려가는 미래를 봤다고 했다.
『그래서 미래를 바꾸려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그러다가 나래랑 여보가 행복하게 웃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봤어. 그 순간 결심했어, 혹시나 내가 지금 또 미래를 바꾸려고 했다가 나래와 여보가 같이 있는 미래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지? 세상에 내가 없어졌는데, 나래 혼자 남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딱 마음이 정해졌어. 나래와 헤어져야 하는 게 너무 힘들고 무섭지만, 그래도 지금 사라지면 내가 본 미래대로 여보가······ 나래 옆에 있어 줄 거니까.』
미래를 볼 수 있음에도 사라진 한빛나의 마음을 알게 된 강하온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힘들었겠어······.’
글씨 하나하나에서 한빛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보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어. 그 미래만큼은 전혀 보이지 않더라고. 그런데 하나는 확실하게 봤어. 나중에 우리 세 가족이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내가 돌아갈 때까지 나래랑 기다리고 있어 줘.
참, 그리고 다른 여자······, 아니 뭐든 적당히 해. 나도 한계가 있으니까.』
강하온은 한빛나가 남긴 편지를 모두 읽을 수 있었다.
‘네 말대로 나래랑 행복하게 살고 있을게······, 그런데 하나는 안 되겠어.’
강하온은 편지에 한빛나가 적은 대로 할 생각이었지만, 모든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꼭 찾아갈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 줘.’
그는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빛나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우리 세 가족······, 꼭 행복하게 살자.’
강하온은 옆에서 천사같이 자는 나래를 보며 다짐했다.
‘그나저나 마지막에 저 말은 뭐지······.’
강하온은 맨 마지막 줄에 다른 글씨보다, 힘을 써서 쓴 것 같이 진한 글씨를 보며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
판게아로 넘어갔던 강하온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게, 그가 판게아에 처음 떨어진 곳은 판게아에서 극악의 환경을 자랑하는 대수림이었다.
시작부터 그는 수많은 포식자의 눈을 피해 살아남아야 했고, 강해져서 포식자가 되어야 했다.
대수림을 벗어나서도 그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판게아 인에게 강하온은, 지구인에게 외계인과 같은 존재였다.
지구에서 외계인 얘기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인체 실험 및 고문한다는 루머가 떠도는 것처럼, 판게아도 같았다.
다른 차원의 인간은 판게아인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였다.
그리고 판게아에는 그걸 실행하려는 미친놈이 무수히 많았다.
이는 강하온이 강해져서도 바뀌지 않았다. 죽여도 죽여도 미친놈은 계속 나왔고, 미친놈들은 죽음보다 이계인에 대한 비밀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하온은 판게아가 간 뒤로 편히 자 본 적이 없었다.
“으으, 잘 잤다.”
그런데 나래를 만나고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강하온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응?”
잠에서 깬 강하온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나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래!”
강하온은 나래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당탕-!
그때, 주방 쪽에서 들리는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하온은 재빨리 주방으로 향했고, 안심할 수 있었다.
“헤헤, 아빠 일어났어요? 나래가 아빠 밥 준비했어요!”
주방에서는 나래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딸기잼이 뿌려진 식빵이 있었다.
그제야 강하온은 나래가 왜 그렇게 식빵이랑 딸기잼을 사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선작과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