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신 귀환하다
1. 투신, 귀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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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시원섭섭한 눈으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세 개의 보름달이 일직선을 이루려는 모습.
적어도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0년 만인가······.”
지금 보이는 달의 모습은 10년을 주기로 일어난다.
그리고 사내는 신혼 첫날, 과학이 아닌 검과 마법이 존재하는 이세계에 소환되고 다섯 번째로 보는 모습이었다.
“빛나는 잘 있겠지?”
한빛나,
신혼 첫날, 생각지도 못한 생이별을 하게 된 부인이었다.
그리고 사내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딴 남자가 생긴 건 아니겠지?”
사내는 괜스레 걱정이 생겼다.
그의 부인 한빛나는, 그가 살면서 봤던 그 어떤 여자보다 아름다웠다.
그런데 신혼 첫날 남편이 사라졌으니, 주위에 늑대 같은 놈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만약에 그러면 어떻게 하지······?”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던 사내는 막막함을 느꼈다.
그때, 사내의 뒤에 빛이 번쩍하며 한 여자가 나타났다.
고고한 느낌을 주는 은발에 미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여자는 사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웃긴 놈이야, 모든 인간에게 투신이라 추앙받는 놈이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여자의 말대로 사내는 투신이라 불리는 자였다.
모든 전투에서 이겼으며, 결국에는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신룡 헬디아크까지 처치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여자의 말대로 우스운 상황이었다.
“어, 은순이 왔어?”
사내는 환하게 웃으며 여자한테 인사를 건넸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도, 사내의 눈에서는 그 어떤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내 이름은 위대한 실버 드래곤 일족의 아이실리스 라이제르라고!”
아이실리스 라이제르는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정체는 마법의 종주, 최상위 포식자, 초월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이었다.
“에이, 뭔 이름이 그렇게 길어. 나는 그냥 은순이가 편하니까 그렇게 부를래.”
하지만 사내는 그녀의 반응에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웃을 뿐이었다.
사내가 드래곤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휴······, 마음대로 해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아이실리스는 체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는 그런 그녀를 보고 웃고는, 다시 하늘에 있는 달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 있는 세 개의 달이 일직선을 그리는 순간, 사내는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실리스는 그런 사내의 등을 말없이 보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서 옆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빛나라고 했나? 네 부인이라고 했던 인간 여자.”
“맞아, 한빛나. 그런데 왜?”
“그냥 궁금해서.”
아이실리스의 말에 사내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뭘, 그렇게 봐?”
사내가 빤히 바라보자,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신기해서, 드래곤인 네가 인간을 궁금해한다는 게.”
기본적으로 드래곤은 인간은 물론, 그 어떤 생물과도 태생이 다른 존재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물론, 작은 도시 하나를 괴멸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그들에게 인간은 개미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그런데 개미에게 관심을 뒀으니, 이건 신기한 일이었다.
“당연히 궁금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투신인 네가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생각하는 여자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궁금할 수도 있겠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답은?”
“빛나는······.”
사내는 자신의 부인 한빛나를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사내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의 나를, 그리고 투신을 있게 해 준 여자야.”
사내는 고등학생 때 절망적인 상황을 겪었었다.
고아였던 사내는 항상 괴롭힘에 시달렸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사내에게 나타난 것이 한빛나였다.
그녀는 이름처럼 빛이 나는 여자였다. 주변을 항상 밝게 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려 했던 사내를 바꿨다.
그녀와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고, 그냥 모든 것이 행복했다.
그렇게 사내에게 한빛나는 세상 전부인 여자였다.
그래서 이세계에 도착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사내의 목적은 한결같았다.
지구로 돌아가서 부인 한빛나를 만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했고, 사내는 살아남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 검술, 마법,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투신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아이실라는 오늘 사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냥 지구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지내는 건 어때?’
하지만 그 말은 속에 담아뒀다.
너무나 행복한 사내의 미소를 보니 말을 꺼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 드디어 됐다!”
그때,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늘에 뜬 세 개의 만월이 일직선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래, 됐구나······.”
인간과 다르게 수천 년을 살아가는 드래곤에게 시간은 무의미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녀에게는 시간이 흐른다는 게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마법진으로 올라가.”
그녀의 말에 사내는 거대한 차원 이동 마법진 중앙으로 이동했다.
판게아와 지구의 시간비는 10:1. 사내는 자신이 사라지고 5년 뒤에 지구로 갈 수 있었다.
“알았어.”
사내는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법진의 중앙으로 걸어갔고, 때마침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만월은 일직선이 됐다.
그 순간 세상에 있는 모든 마나가 증폭됐다.
고오오-!
아이실라스가 증폭된 마나를 사용해서 마법진을 발동하자, 대기 중에 떠 있는 마나가 휘몰아치며 마법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참, 걱정하지 마라. 한빛나라는 네 부인, 절대 한눈팔지 않았을 테니까.”
마법진이 제대로 발동한 것을 확인한 아이실리스는 웃으면서 사내에게 말했다.
“그런가? 하긴 나 같은 남편이 있는데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지.”
“······.”
평소에 아이실리스였다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보기는 힘들겠지?”
사내는 아이실라스를 보며 물었다.
“아마도?”
“······.”
사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그녀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그동안 고마웠다, 내 친구 아이실리스 라이제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내는 엄청난 빛과 함께 사라졌다.
“친구······.”
아이실리스는 사내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한참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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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가르고 한 사내가 나왔다. 이세계에서 투신이라 불렸던 사내였다.
“오랜만이네······.”
사내는 눈앞에 있는 하얀 호텔을 보고 감상에 젖었다.
눈앞에 있는 호텔은 사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기 때이다. 그리고 그가 이세계로 사라졌던 장소였기도 했다.
“구경은 나중에 해야지, 지금은 빛나부터 찾자.”
사내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호텔을 조금 둘러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찾은 뒤, 같이 와서 구경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진짜 챙겨두길 잘했지.”
사내는 아공간에서 검은 흑발 한 가닥을 꺼냈다. 그의 아내인 한빛나의 머리카락이었다.
우연인지 사내가 처음 이세계에 갔을 때 그의 몸에 붙어 있었고, 사내는 머리카락을 아내의 분신이라 생각하고 애지중지 모셔왔었다.
“이 주인을 찾아라.”
사내는 마법을 사용했다. 머리카락의 주인이 이는 곳으로 이동하는 마법이었다.
번쩍-!
그렇게 사내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희망 보육원?”
사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보육원이었다.
“마나가 조금 부족했나 보네.”
원래였다면 당사자의 바로 앞으로 이동하는 마법이었지만, 차원을 넘어오면서 마력 대부분을 소실한 사내였다.
“저쪽이구나.”
그래도 마법은 아직 남아있어서, 머리카락은 한쪽을 가리켰다. 사내는 아내를 볼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머리카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응? 여기가 맞다고?”
잠시 후, 머리카락이 안내해준 방향으로 도착한 사내는 멈칫했다. 그곳에는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역시 마나가 너무 부족했나?”
사내는 마법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공간에서 마나를 보충할 수 있는 물건을 꺼내서 다시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
그렇게 마법을 사용하려던 사내는 멈칫했다. 뒤에서 들린 어린아이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래는 거짓말쟁이래요.
“마자, 나래는 매일 거짓말 해.”
“나래 거짓말한 적 없어!
“에에, 강나래 또 거짓말한다. 너 아빠 얼굴 한 번도 본 적도 없다며.”
“아, 아니야! 나래도 아빠······가 있다고 했어!”
여러 명의 아이가 한 아이를 괴롭히고 있었는데, 사내의 멈추게 한 것은 바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의 이름이었다.
나래, 순우리말인 날개를 말이었다.
날개를 가지고 자유롭게 아이가 자라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지어주자고 아내와 약속했던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 누구 온다!”
“무서운 아저씨야! 도망가.”
사내가 천천히 아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괴롭히던 아이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꼬마야, 괜찮아?”
“네! 괜찮아요.”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는 금세 팔로 눈물을 닦더니 사내를 보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사내의 심장은 두근거렸다.
마신룡 헬디아크와 전투할 때도 잔잔하던 그의 심장이.
“그런데 아저씨는 왜 여기에 있어요? 처음 보는 아저씨인데······.”
어린아이는 그제야 사내가 낯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경계하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사내는 그 모습에 다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쁜 사람은 자기가 나쁘다고 안 한다고 했어요······, 엄마가······.”
하지만 사내의 노력에도 아이의 경계는 더욱 심해졌다.
“진짜 아닌데······, 그런데 아저씨가 나래한테 뭐 좀 물어봐도 될까? 대신 아저씨가 맛있는 사탕 줄게.”
사내는 아공간에서 사탕을 꺼냈다. 사탕을 좋아하는 아내를 주려고 제국에 사탕 장인에게 부탁해서 만든 사탕이었다.
“······네.”
아이는 고민하더니, 결국 사탕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래는 엄마 이름은 어떻게 되셔?”
“······엄마 이름이요?”
사내의 물음에 아이는 멈칫했다.
“그래, 아저씨가 아는 사람 같아서.”
“······우리 엄마 이름은 한빛나예요.”
머뭇거리던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사내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우연일지도 몰라······.’
사내는 우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한빛나라는 이름이 흔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아빠 이름도 알고 있니?”
“······.”
이번에 어린아이는 대답 대신에 눈치를 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아저씨는 나래가 거짓말하지 않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눈치 보지 않아도 괜찮아.”
사내는 단번에 아이가 왜 그러는지 파악했다.
“진짜요?”
“그럼, 아저씨는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데?”
“치, 거짓말.”
사내의 말에 아이는 긴장이 풀렸는지 웃었다.
“그래서 나래 아빠 이름은 뭐야?”
“아빠 이름은······강하온이요.”
그 순간 사내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강하온, 사내의 이름이었다.
선작과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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