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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15화 (완결) (212/212)

215화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 (2)

“아카데미……?”

에르나스라는 인간의 말을 듣고, 오크 엠페러는 인상을 찡그렸다.

“인간 애송이들을 모아 놓고… 싸우는 법을 가르친다는 곳 아니냐?”

“용케 알고 있군.”

“흥, 포로한테서 들었지.”

오크 엠페러는 예전에 그래듀에이트 한 명을 포로로 잡은 적이 있다.

그에게서 인간 세상의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아주 무능한 집단이라던데, 맞나?”

“뭐?”

“형편없는 놈들만 가득하다고 하더군. 나 혼자서 괴멸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

에르나스가 입을 다물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을 보며 오크 엠페러는 히죽 웃었다.

“총장…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겠지? 그런 형편없는 집단의 우두머리이니, 한주먹 거리도 되지 않겠군.”

그렇게 말하면서 오크 엠페러는 그레이트 슬레이어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붉은색 검기를 전개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만났으니, 내 검기로 죽여 주마.”

“그 검기…….”

에르나스는 꽤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오크가 인간들의 검기를 펼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붉은색 검기… 흑천마교 잔당을 포로로 잡아 놓고 있었던 모양이군.”

“뭐라고?”

“오크 엠페러, 한 가지 알려 주지.”

에르나스가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 포로한테 속았어.”

“뭐라고?”

“그 포로는 네가 아카데미를 얕잡아 보기를 원했던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아카데미를 얕잡아 보면서 무모하게 덤벼들다가 토벌당하라고 말이야.”

“……?”

오크 엠페러는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에르나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오크의 지능으로는 이런 걸 이해할 수 없는 건가.”

“지금 나를 욕한 건가?”

“욕이 아니야. 학술적인 견해지.”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오크의 지능이 통념보다 뛰어나다는 박사 논문이 있었는데, 엉터리 논문이었나?”

“네놈…….”

잘 이해는 안되었지만, 오크 엠페러는 모욕감을 느꼈다.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하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너야말로, 오크치고는 너무 말이 많은데.”

“뭐라고?”

“왜 빨리 덤벼들지 않는 거지?”

에르나스가 오크 엠페러의 발밑을 쳐다보며 말했다.

“칼은 진작 뽑았는데, 계속 뒷걸음치고 있잖아.”

“……?”

그 말을 듣고, 오크 엠페러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총 다섯 걸음 후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본능적으로 깨달은 거지. 여기서는 도망쳐야 한다고.”

“……?”

“아, 이것도 이해 못 하려나.”

에르나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됐어. 시간도 별로 없으니, 내가 선공을 하도록 하지.”

“뭐라고?”

“아내가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야.”

“아내……?”

무슨 소리인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오크 엠페러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주위에 있는 몬스터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머뭇거리고 있으면… 안 된다.

“까불지 마라, 인간!”

오크 엠페러는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레이트 슬레이어에 전개된 검기가 거대화되었다.

그 위용에 주위의 몬스터들이 환호했다.

“오크 엠페러, 오크 엠페러!”

“죽여라! 죽여라!”

“그오오오오! 그오오오오!”

몬스터들의 환호성에 오크 엠페러는 히죽 웃었다.

에르나스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짓이겨 주마!”

쿵!

땅을 박차면서 돌격했다.

꽤 거리가 있었지만, 두 걸음 만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우오오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인간처럼 왜소한 존재한테 너무 큰 힘을 쓰는 것 같았지만, 왠지 여기서는 전력을 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엄청난 마력이 담긴 검기가 에르나스에게…….

“……?!”

검기는 에르나스에게 닿지 못했다.

에르나스가 치켜든 은백색 검이 검기를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으윽!”

오크 엠페러는 팔에 힘을 줘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크 엠페러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느다란 팔뚝인데… 오크 엠페러 이상의 근력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뭐냐……!”

“선공은 양보해 줬다, 오크 엠페러.”

에르나스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후회 없이 죽어라.”

“뭣……!”

그 직후.

오크 엠페러는 그레이트 슬레이어를 떨어뜨렸다.

손에 힘이 빠져서가 아니다.

두 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다.

“어……?”

팔이 절단되었다.

에르나스가 검을 휘두른 것 같은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

스륵.

상반신과 하반신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오크 엠페러는 깨달았다.

에르나스가 눈에 보이지 않은 속도로 자신의 육체를 두 동강 냈다는 것을.

“그리고, 너희들.”

에르나스는 더 이상 오크 엠페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크 엠페러에 호응해 집결한 몬스터 군단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너희는 인간을 해치는 몬스터들이다. 여기 온 것도 저 도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을 테고… 자비를 베풀어 줄 필요는 없겠지.”

몬스터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오크 엠페러를 단칼에 두 동강 낸 절대적 강자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냥 전부 다 죽이고 싶지만… 그러면 생태계 다양성에 좋지 않거든. 요즘 아카데미에서 가장 핫한 이슈가 환경 보호거든.”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5분의 1만 살려 주마. 살아남은 놈들은 각자 둥지로 돌아가서 조용히 지내도록 해라.”

그리고 막대한 빛이 주위를 뒤덮었다.

몬스터들의 비명을 들으며 오크 엠페러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포로의 거짓말을 믿고 아카데미를 우습게 여겼던 것을 후회하면서.

* * *

뿔뿔이 도망치는 몬스터들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본 뒤,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차, 시간이 벌써 이렇게…….”

“총장님……!”

약속 시간에 늦은 걸 확인하고 혀를 차고 있었을 때, 도시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경신술을 사용하면서 날아오고 있었다.

“슈미츠 교수, 늦었군.”

“공간 전이를 하는 총장님과 비교하면 당연히 늦을 수밖에 없죠!”

얼마 전에 소꿉친구 약혼자와 결혼식을 한 슈미츠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슈미츠 클래스의 담당 구역입니다. 총장님이 직접 나서실 필요는…….”

“혹시나 해서 직접 와 본 거야. 너보다 강한 놈일 수도 있으니까.”

“초, 총장님, 저도 절정급의 지도 교수입니다. 기회를 주셔야죠.”

“음… 그런가?”

“총장님도 강적들과 싸우면서 지금의 경지에 오르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총장님이 다 해치워 버리시면… 저희는 언제 성장합니까?”

슈미츠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면 네가 직접 해 보든가.”

“네?”

그 순간.

오크 엠페러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다시 결합되었다.

그리고 오크 엠페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살려 놨으니, 쓰러뜨려 봐.”

“초, 총장님, 지금 대체 무슨 짓을…….”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초, 총장님! 에르나스 님……!”

슈미츠가 다급히 나를 불렀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검신의 힘으로 잠시 시공을 조작한 거라, 30분쯤 뒤에는 다시 사체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슈미츠에게 강적과 싸울 기회를 준 뒤, 나는 공간 전이를 통해 본래 가야 할 곳으로 향했다.

“흠…….”

공간을 도약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야경이 돋보이는 동부의 번화가였다.

“7분 늦었네요, 에르나스.”

약속 장소에는 세리느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우아한 원피스를 몸에 걸친,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유가 뭘까요? 듣고 싶네요.”

“중요한 일이 있었어.”

“중요한 일이라.”

세리느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내와의 1년 만의 데이트보다 중요한 일인가 보죠?”

“아니, 그건…….”

“농담이에요. 저도 가끔은 짓궂은 말을 해 봐야죠.”

“…….”

내가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자, 세리느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말아요. 아카데미 일 때문에 늦어진 거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갖고 화내지는 않아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

“클로에 내무장관이나 베리스리제 남부지사와의 밀회를 즐기느라 늦었던 거라면 진지하게 화냈겠지만 말이죠.”

“잠깐, 요즘 나는 걔네들하고 밀회는커녕 만난 적도 없어.”

세리느의 말에 나는 다급히 항변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뿐이니까,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흐음… 언제부터?”

“그건… 전생 때부터?”

“뭔가요, 그게.”

세리느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농담이 아니야.”

“네?”

“진심으로 하는 얘기야.”

에르나스가 회귀하기 전부터 사랑했던 여자고.

작가로서 가장 애정을 쏟았던 히로인이니까.

전생 때부터 사랑했다고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뭐, 뭔가요, 쑥스럽게.”

세리느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나이는 먹었지만, 세리느의 모습은 아카데미 학생 시절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빠, 빨리 식사나 하러 가요. 오늘은 당신하고 할 얘기가 많이 있으니까.”

“요새 서로 바빠서 대화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지. 아, 혹시 치안장관으로서의 얘기야?”

“그것도 있고요.”

밤거리를 나란히 걸으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하인리히… 아니, 리히테나워 대공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냈는데 한번 봐 달라고.”

“여전하네. 황제의 남편으로서 할 일도 많을 텐데, 지금도 학생 때처럼 검술 수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건가.”

“검사로서 당연한 것 아닐까요?”

“나는 검술 수련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보람 있어.”

“흐음…….”

“나도 몰랐던 거지만 말이야.”

철혈검제와의 싸움이 끝난 뒤.

나는 리히테나워 대공으로서 국가의 개혁에 힘썼다.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 권력을 손에 넣는 건 에르나스의 오랜 소망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 외로 보람이 없었다.

역시 에르나스한테 중요했던 건 아버지한테 한 방 먹여 주는 것이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했기 때문에… 10년 동안 세리느와 클로에 등의 협력을 얻어 개혁을 마무리했다.

그 뒤에는 하인리히에게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물려주고 깨끗이 은퇴했다.

하인리히는 이미 검제급에 도달한 상태여서 충분히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격이 있는 데다가… 레이나데와 어느새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실 레이나데는 황녀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비호감 취급하고 하인리히한테 호감을 드러냈다.

어차피 나는 레이나데와 결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 하인리히가 새로운 리히테나워 대공으로서 레이나데와 결혼하면 된다.

“아카데미 총장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 중이야.”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에서 내려온 뒤, 나는 아카데미 총장을 맡게 되었다.

페르디난드가 이제 슬슬 은퇴하고 싶다고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욜스는 여전히 각지를 떠돌고 있었고, 안겔라도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에… 누군가 무게감 있는 인물이 아카데미 총장을 맡아 줘야 했다.

결국 내가 총장이 되어 아카데미를 이끌게 되었는데… 이게 의외로 적성에 맞았다.

여러 교수를 통솔하며 학생들을 육성하는 건 매우 보람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게 에르나스의 진짜 적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에르나스는… 스스로 싸우는 것보다 남에게 영향을 주는 것에 특화된 인물이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카데미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황궁에서도 자주 듣거든요.”

“그래?”

“지난번에 클로에한테 들었는데, 천재적인 교육자로서 제국의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일까.

낯간지럽긴 하지만, 뿌듯한 마음이 드는 평가다.

“에르나스, 당신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왜 그래?”

“학생 때도, 교육자 때도… 아카데미에서 독보적인 재능을 보여 주고 있잖아요. 그런 사람 드물어요.”

“음…….”

“후세의 역사가들은 당신의 시대를 다룰 때 이렇게 말할 거예요.”

세리느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 이렇게 말이죠.”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무슨 소설 제목도 아니고 말이야.”

“소설이요?”

“그래도, 뭐… 소설 제목으로는 나쁘지 않네.”

세리느와 함께 밤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번 그런 제목으로 소설을 써 볼까?”

“네? 소설을 쓴다고요?”

“사실 내가 소설 집필에도 재능이 있거든. 천재적인 재능은 아니겠지만.”

“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요, 에르나스. 역시 철혈검제와의 싸움에서 머리에 부상을 입었던 게 아직도…….”

농담처럼 꺼낸 얘기였지만… 나는 마음이 끌리는 걸 느꼈다.

나는 소설가로서의 인격도 이어받은 존재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 온 이후 소설을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어차피 현실 세계의 나는 그냥 아칸델을 주인공으로 해서 평범하게 완결을 냈을 테니…….’

에르나스가 주인공이 되어서, 6대 검술명가를 제압하고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는 스토리.

담당자가 제안했던 그 이야기를, 여기서 집필해 볼까.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건 모든 평행세계를 통틀어 나밖에 없을 것이다.

‘재미있겠어.’

밤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 내일 아카데미 매점에 가서 원고지부터 구입해야겠다.

그리고 세리느가 말한 것처럼 역사가들이 써먹기 전에 내가 먼저 원고지에 첫 줄을 적을 것이다.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 라고 말이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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