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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08화 (207/212)

208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1)

끝없는 추락, 추락, 추락.

아래 방향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위로,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추락한다.

공간의 법칙이 일그러진 어둠 속에서, 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감각은, 나한테 무한한 고통을 선사해 줬다.

“……!”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모든 법칙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켜 버린 공간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어떤 상황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철혈검제는 이 공간에서 나를 굴복시킬 생각이야!’

철혈무량검(鐵血無量劍)의 어둠에 갇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해라.

그것이 철혈검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철혈검제는 내가 생각을 바꾸길 기대하고 이 공간에 나를 가둔 것이다.

‘나를 죽이고 싶지 않은 거야!’

철혈검제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검의 세계를 완성하는 것.

두 번째는 검신급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세 번째는 다른 평행세계를 침략하는 것.

이 중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철혈검제가 자력으로 달성할 수 있지만, 세 번째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

나는 다른 평행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존재이기 때문에, 내 파장을 참조하면 쉽게 다른 평행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내 협력을 얻지 못하면 철혈검제는 우주의 미아가 되어 버릴 수도 있어! 그러니… 어떻게든 나를 굴복시키려고 하는 거지!’

그래서 철혈검제는 철혈무량검으로 만든 영역 속에 나를 집어넣었다.

검으로 공간을 찢어 버려서 모든 법칙이 뒤죽박죽이 된 영역을 만드는 게 철혈무량검 같았다.

그 철혈무량검에 당해서, 나는 지금 무한한 어둠 속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해! 이곳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지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다.

아니, 지금 손가락이 제대로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다.

어쩌면 손가락이고 뭐고 다 짓이겨져서 다진 고기처럼 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어둠속이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의념을 활용하는 것도 불가능해!’

페르펙티오의 설명에 의하면, 정신세계의 의념이 물질세계에 적용될 때는 육체의 통로를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육체의 감각조차 사라진 상태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대로… 무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건가?!’

물론, 철혈검제도 나를 계속 이 공간 안에 가둬 둘 생각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나를 꺼내 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언제일까?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철혈검제는 나를 꺼내 준 뒤 생각이 바뀌었냐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해도, 믿을 수 없다면서 나를 다시 이 공간에 처넣을 수도 있다.

나는 이 고통을 앞으로 얼마나 더 경험해야 하는 것일까?

“……!”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이 공간에 오로지 나 혼자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만약 여기에 철혈검제가 있다면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면서 활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

나의 적도, 나의 아군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냥, 이대로…….’

이대로 죽어 버리면 편해지지 않을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데, 굳이 열심히 저항할 의미가 있을까.

그냥 이대로 모든 것을 끝내 버려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면…….

‘아니,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이 세계의 작가로서, 나는 이 이야기를 제대로 된 엔딩에 도달시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주인공으로 한 If 스토리를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

여기서 절망하여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야!’

육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의념을 출력하는 통로가 막혀 있다고 하나,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면에만 집중해야 해!’

무한히 이어지는 고통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모든 의식을 내면에 집중시켜야 한다.

몸뚱이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오로지 내면만 들여다보자.

그러면 어떤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무한히 이어지는 내면의 탐구.

그 끝자락에서… 나는 마침내 찾아내고 말했다.

의식의 구석에 숨어 있었던, 누군가의 영혼을.

“그래, 이제야 겨우… 우리가 마주할 때가 되었군.”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온 뒤.

나는 새하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대해서, 페르펙티오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은 없다.

천 년에 걸쳐 란즈슈타인 가문이 연구해 온 것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철혈검제도 세계의 법칙을 깊이 이해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신이 되기 위해 이해한 것이다.

부활 의식을 페르펙티오에게 맡기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페르펙티오가 세계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다.

그렇기에… 페르펙티오는 단언할 수 있다.

‘타인의 육체를 강제로 뺏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란즈슈타인 가문이 천 년의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이다.

타인의 육체를 강제로 빼앗는 게 가능하다면, 철혈검제가 에르나스의 육체를 강제로 빼앗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철혈검제가 검신의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이건 불가능하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 사이에는 매우 강력한 연결이 존재하는데, 이건 타인이 외부에서 건드릴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육체를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결정해야만 이 연결을 해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비더케렌 환혼술에서도 반드시 육체 제공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비더케렌 환혼술은 사람의 영혼을 타인의 육체에 심기 위한 ‘마법’이다.

원래는 천 년 전에 철혈검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것으로, 란즈슈타인 가문에서 계승하여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이 비더케렌 환혼술을 사용할 때도 육체를 제공하는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다.

육체를 내놓지 않으면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서라도… 육체 제공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그렇기에… 에르나스가 누군가에게 육체를 빼앗겼을 리 없다.’

페르펙티오는 에르나스가 어떤 인물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무슨 고문을 해도 에르나스한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에르나스의 육체에 타인의 영혼이 깃든 상태라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에르나스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다.

철혈검제의 비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항을 제외하면, 에르나스도 란즈슈타인 가문의 기밀 사항을 많이 알고 있었다.

비더케렌 환혼술도 그중 하나였다.

‘에르나스는 스스로 비더케렌 환혼술을 시행해, 타인의 영혼을 자신의 육체에 집어넣은 것이다.’

* * *

어느새 나는 무한한 백색 공간에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있던 무한한 흑색 공간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은백색 머리카락을 지닌… 나하고 똑같은 외모를 지닌 남자가.

“에르나스……?”

“그래, 나다.”

그는 거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설의 묘사와 완전히 똑같은, 자아도취적인 미소다.

그동안 내가 흉내 내 보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아무리 해도 자연스럽지 못해서 결국 포기한 적이 있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어리석은 질문이군, 빙의자.”

그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 영혼이 내 육체에 들어왔다. 그럼 내 영혼은 어디에 갔을까?”

“뭐……?”

그런 건… 굳이 고민하지 않았다.

빙의물 장르의 클리셰니까, 그냥 사라졌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비더케렌 환혼술을 실시할 때는, 육체 제공자의 영혼을 제거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지.”

그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 제공자의 영혼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상태가 되니까 말이다.”

“……!”

그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그렇다면… 너는 계속 내 안에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빙의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내 육체를 사용해 승승장구하는 동안, 나는 줄곧 네 안에 숨어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영혼은 멀쩡히 육체 안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는 지금까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건… 완전히 내 실수야.’

나는 웹소설 작가다.

그렇기 때문에 웹소설 클리셰에 너무 익숙했다.

빙의한 육체의 인격은 그냥 사라졌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 탓에, 에르나스의 영혼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전혀 고민해 보지 않았다.

비더케렌 환혼술이라는 복선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지 마라, 빙의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너한테서 육체를 되찾을 생각은 없으니까.”

“뭐라고?”

“어차피 지금 육체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건 너다. 네가 자진해서 나한테 육체를 넘겨준다면 몰라도, 내 마음대로 육체를 되찾는 건 불가능하지.”

“…….”

“이건 비더케렌 환혼술을 연구하면 알 수 있는 얘기다. 딱히 너를 속일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상대는 권모술수의 달인…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니까.

“그러면… 너의 목적은 대체 뭐지?”

“목적?”

“지금 네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너는 비더케렌 환혼술을 사용해서 내 영혼을 네 몸으로 받아들인 거야.”

대부분의 빙의물이 그렇듯이,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얘기를 들어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지?”

“흠…….”

“애초에 나는 왜 이 세계로 오게 된 거지? 대체 무슨 원리로…….”

“일단 진정해라, 빙의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어떤 원리로 이 세계에 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검신급에 가까워진 네가 모르는 걸 내가 알 수 있겠나?”

“그건…….”

“하지만, 이건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며 그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원래 이 세계에 도착해야 할 ‘다른 세계의 존재’는 네가 아니었다. 하지만 네가 이 세계에 나타났고, 비더케렌 환혼술로 내 몸에 들어오게 된 거지.”

“뭐, 뭐라고?”

그는 이 세계에 원래 도착해야 할 ‘전이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

그 말은…….

“네가 어떻게 아칸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지?”

소설의 본래 주인공, 아칸델.

그는 다른 평행세계에서 흘러 들어온 전이자다.

하지만 지금 이 세계에는 아칸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칸델 얘기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모를 리가 없지. 그놈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는데 말이다.”

“뭐……?”

“아니, 내 숨통을 끊은 건 세리느였던가? 뭐, 별 중요치 않은 얘기지만.”

혀를 차면서 인상을 찡그리는 그를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그는 ‘소설의 본편 내용’을 언급했다.

아칸델과 세리느 등과 갈등하다가 결국 죽게 되는 전개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너는…….”

나는 침을 삼켰다.

이런 걸 뭐라고 하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회귀자……?”

“정답이야, 빙의자.”

그렇다.

그는 주인공 일행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뒤, 과거로 회귀한 존재였다.

그리고 회귀물 주인공이 다들 그렇듯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내가 과거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몰라. 몇 가지 추측을 해 봤지만…….”

“그 이유는 내가 알고 있어.”

“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승리하는 If 스토리를 생각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흐음?”

머릿속에서 점점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웹소설 클리셰라 생각하면서 막연히 넘어갔던 부분들이, 전부 다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슬슬 감을 잡은 것 같군, 빙의자.”

“그래, 이제야 겨우 이해가 되는 것 같아.”

비로소 세계의 진짜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소설 작가라고 모든 것을 아는 척 으스댔지만, 실상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행보와 페르펙티오의 행보가 맞물리면서 기적이 벌어졌다고 생각했어.”

“흠, 기적이라.”

“하지만 그건 기적도 아니었어. 진정한 기적은… 나와 네가 맞물리면서 벌어진 것이었지.”

나는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내가 창조한 소설의 악역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생명력을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내 눈앞에 있다.

그리고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러니… 에르나스.”

“뭐냐, 에르나스.”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서로 같을 것이다.

“네 힘을 빌려줘.”

“후후.”

그가 거만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의 목표는 서로 같으니까.”

“그렇지.”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승리하는 결말… 그것이 우리들의 목표니까.”

철혈검제를 쓰러뜨리고,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두 명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마침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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