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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06화 (205/212)

206화 철혈검제의 영역 (1)

철혈검제에게 가는 길은 예상대로 복잡했다.

게다가 다양한 보안 시설을 통과해야만 전진할 수 있었다.

‘페르펙티오를 죽였으면 여기서 막힐 뻔했군.’

앞장서는 페르펙티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페르펙티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철혈검제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고 있었다.

철혈검제에게 육체를 바치겠다는 내 거짓말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상태였다.

‘내가 에르나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속지 않았겠지만…….’

자신의 아들인 에르나스가 어떤 인물인지, 페르펙티오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육체조차 버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페르펙티오, 미안하지만… 이 세상에 네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

내가 에르나스의 몸을 차지하게 되면서, 에르나스의 인격은 사라졌다.

만약 페르펙티오가 그동안의 내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면 뭔가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페르펙티오는 나를 그냥 방치해 뒀을 뿐이다.

결국 페르펙티오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에르나스.”

“네, 아버지.”

“여기가 옥좌다.”

거대한 철문 앞에서 페르펙티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예를 갖춰라.”

쿠쿵!

철문이 저절로 열렸다.

페르펙티오가 복잡한 마법진을 그려서 보안장치를 해제한 덕분이다.

“…….”

철문 너머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건조했던 바깥과는 달리, 습기가 느껴졌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굵은 파이프나 튜브 같은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라… 스팀 펑크?’

바깥 세계와는 별도의 진화를 이룩한 기술 체계.

그것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공간에 복잡한 기계 장치들이 잔뜩 뒤엉켜 있었으며, 그 안에서 바닷물을 포함한 다양한 물질이 순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묘 주변에서 바닷물이 붉게 물들고 있던 건 여기서 나온 폐기물인가?’

그리고… 정중앙에 의자가 있었다.

아니, 여러 기계가 조합되어 의자처럼 사람을 받쳐 주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위치에 ‘결합’되어 있는 인물을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것이… 철혈검제.’

좀비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내 예상이 틀렸다.

굳이 말하자면 미라와 같은 모습이었다.

완전히 건조되어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그곳에 있었다.

‘저 모습으로 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건가? 아니면 저게 육체를 복원한 상태?’

다만, 말라비틀어져 있다고 해도 왜소한 느낌은 아니었다.

골격이 워낙 건장해서, 미라 상태여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주변의 장치가 철혈검제의 몸에 뭔가를 공급하고 있는 건가?’

수백 개는 될 법한 튜브가 철혈검제의 몸에 꽂혀 있는 상태였다.

대체 어떤 원리의 장치인지 내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엄청난 마력이 느껴져.’

말라비틀어진 철혈검제의 몸에는 막대한 마력이 저장되어 있었다.

아마 내가 갖고 있는 마력보다 더 많을 것이다.

“폐하.”

페르펙티오가 철혈검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비좁은 공간 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의 새로운 육체를 데려왔습니다. 제 아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입니다.”

페르펙티오의 목소리에는 철혈검제를 향한 충성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에르나스의 육체로 비더케렌 환혼술을 사용하면, 지금 당장 살아 있는 육체로 부활하시는 것이 가능합니다.”

“…….”

“지금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대신…….”

페르펙티오는 아까 내가 얘기했던 조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기회를 엿봤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철혈검제를 일격에 해치워야 했으니까.

‘무방비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철혈검제의 전신은 호신강기를 능가하는 마력의 방어막으로 보호되고 있다.

어중간한 공격을 해 봤자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

그러면 당연히 철혈검제도 반격을 할 테고, 이곳에서 철혈검제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러면 페르펙티오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이곳으로 들어온 의미가 없다.

‘파괴력을 극대화한 파천검형으로? 아니면 창뢰검형에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조합해서?’

어떻게 하면 철혈검제를 일격에 해치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기습하는 게 최선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철혈검제를 계속해서 관찰했다.

“그렇기에… 폐하께서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고 있는 사이, 페르펙티오의 설명이 끝났다.

설명을 하는 동안 철혈검제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과연 철혈검제는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할까?

“페르펙티오.”

“……!”

나는 흠칫 놀랐다.

근엄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의념으로 목소리를 보낸 건가?’

물질세계에서 공기를 진동시켜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념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여기 있는 전원에게 전달한 것이다.

어떤 수법인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쉽게 따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역시… 철혈검제가 나보다 더 검신급에 가까운 존재야.’

내가 입술을 깨물고 있자, 근엄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자리를 비워라.”

“네?”

페르펙티오도 놀란 모양이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철혈검제를 쳐다봤다.

“폐하, 지금…….”

“자리를 비우라고 말했다, 페르펙티오.”

“…….”

페르펙티오가 침묵했다.

어째서 철혈검제가 에르나스와의 독대를 원하는지, 페르펙티오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페르펙티오는 순순히 물러났다.

경애하는 철혈검제에게 이유가 뭔지 따지고 들 수는 없을 것이다.

철문이 다시 닫혔고, 철혈검제와 나만이 남게 되었다.

‘무슨 의도일까.’

내 기습을 눈치챈 거라면, 굳이 페르펙티오를 내보낼 이유가 없다.

나하고 단둘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걸까.

“긴장을 풀어라.”

철혈검제에게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공격하는 건 대화가 끝난 뒤에 해도 되지 않겠느냐.”

“……!”

철혈검제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철혈검제가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놀랄 필요는 없다. 만약 여기서 내가 너를 기습하려고 한다면, 너도 나처럼 사전에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

“검신급에 가까워진 존재끼리 서로 터놓고 얘기하면 어떻겠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기습은 불가능하다.

“철혈검제, 나하고 무슨 대화를 하고 싶은 거지?”

“후후…….”

머릿속에서 철혈검제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경의를 표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너는 페르펙티오를 잘 속여 넘긴 것 같군.”

“…….”

“너는 나한테 육체를 넘겨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육체를 넘겨주겠다면서 접근해서 나를 기습할 계획이었겠지.”

철혈검제는 내 계획을 완전히 눈치채고 있었다.

“나한테 육체를 넘겨주는 것이 그렇게 싫은가?”

“자기 몸을 남한테 넘겨주는 게 좋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말이야.”

“그렇지. 페르펙티오 같은 광인(狂人)들이나 하는 짓이다.”

의외로 철혈검제는 내 말에 동의했다.

“원래 인간은 수많은 욕망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자 하는 욕망도 그중 하나지. 그 욕망 이상으로 강렬한 광기(狂氣)를 가진 인물만이 선뜻 자신을 희생할 수 있지.”

“…….”

“페르펙티오는 네가 그런 인물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라면, 권력을 얻으려는 광기에 휩싸여 그런 선택도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철혈검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기에… 너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무슨 뜻이지?”

“너한테 새로운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철혈검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몸을 넘겨줄 필요는 없다. 그 몸 그대로 내 오른팔이 되도록 해라.”

나는 잠시 침묵했다.

철혈검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혈검제,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내 말을 들으면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설명해 줬으면 좋겠군.”

“설명해 주지.”

철혈검제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추구하는 ‘검의 세계’는 세계 전체가 한 자루의 검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세계다.”

“그건 알고 있어. 세계 전체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집중하여, 어떤 적이든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세계로 만드는 것이지.”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 철혈검제는 그런 세계를 꿈꿨다.

“당신은 마인, 엘더 드래곤, 몬스터 엠페러 등의 적들을 쓰러뜨리고 인류를 해방시켰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 인류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검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검의 세계를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만 만들어 놓고 영묘에 잠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 역시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던 건가.”

“뭐라고?”

“그건 6공작들에게 말해 둔 표면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소설에는 나오지 않은 얘기였다.

“생각해 봐라. 천 년 동안… 강대한 인류의 적 때문에 제국이 위태로워진 적이 있었나?”

“그건…….”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적이 나타나든… 제국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쓰러뜨렸지.”

흑색 6반의 첫 번째 수업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욜스 교수 앞에서 아카데미의 존재 의의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 검술을 가르치고 영약을 공급하여 강력한 그래듀에이트를 양산할 수 있었지. 그 덕분에… 어떤 존재도 제국을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다.”

“…….”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서 만들어내는 수백, 수천 자루의 검으로도 충분히 제국을 지킬 수 있다. 검의 세계라는 ‘한 자루의 검’은 굳이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일리 있는 설명이었다.

철혈검제가 아카데미의 효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면, 굳이 검의 세계를 만들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철혈검제는 무엇 때문에 검의 세계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세계에는… 제국을 위협할 만한 적이 존재하지 않아.”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몬스터들이 세력을 키워 봤자 아카데미 출신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조기에 진압해 버리지. 레서 드래곤은 엘더 드래곤보다 훨씬 약해서 그래듀에이트들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어. 세계를 아무리 뒤져 봐도… ‘검의 세계’로 싸워야 하는 적은 존재하지 않아.”

“그래, 그런 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검의 세계를 만들어서 싸워야 하는 적은…….”

나는 침을 삼켰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군.”

“바로 그거다.”

철혈검제가 미소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인도, 엘더 드래곤도, 몬스터 엠페러도 쓰러뜨렸다. 이 세계에는 더 이상 쓰러뜨릴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세계에서 적을 찾아야지.”

“그게 당신의 욕망인가?”

“검사로서의 본능이다.”

“…….”

“6공작들은 모든 싸움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검사로서의 본능을 잃어버렸다. 오로지 나만이, 끝없이 투쟁을 추구하는 검사로서의 본능을 유지하고 있었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이제 전쟁도 끝났겠다, 6공작들은 귀족으로서 제국을 번영시키는 것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혈검제는 검사로서의 본능을 상실한 그들을 보면서 실망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검의 세계의 진짜 목적을 6공작들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 목적을 알게 되면 6공작들이 호응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철혈검제가 6공작들을 토사구팽하려 했던 것도… 진짜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계 전체의 역량을 하나로 모은 ‘한 자루의 검’으로 차원의 경계를 벤다. 그 틈새를 이용해 다른 세계로 쳐들어가, 그 세계의 강자들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철혈검제의 진짜 목적이다.

영원한 싸움을 추구하는 철혈의 검사는, 다른 세계까지 쳐들어가서 싸우기를 원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검신의 경지에 도달하여 검의 세계의 모든 역량을 동원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

검신은 이름 그대로 신이다.

의념으로 심검을 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질세계를 뜻대로 조작할 수 있다.

검신급에 도달하면 평행세계의 문을 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걸 위한 막대한 에너지는 검의 세계를 통해 얻어 내면 된다.

“그러면, 당신이 나를 오른팔로 삼고 싶은 것은…….”

“그래, 이미 눈치챈 것 같군.”

나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를 향해, 철혈검제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눈치 못 챘겠지. 하지만 검신의 경지에 가까워진 나만은 눈치챌 수 있다.”

“…….”

“그렇기에 너를 원하는 것이다. 너라면… 다른 세계를 침략하기 위한 ‘안내인’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안내인.

철혈검제가 나한테 그 역할을 원한다는 건…….

“나에게 협력해라. 그러면 너는 네 고향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차원의 문을 열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

그것이 철혈검제가 나한테 제시한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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