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최초의 란즈슈타인 (4)
무극공의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은 모든 것을 절단할 수 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검술 중에서 가장 견고한 파천검형을 사용하더라도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아예 검을 충돌시키지 않고 무극공의 허를 찌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검이 절단되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
파앗!
얼음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렸다.
백화검형의 차가운 기운을 응집시켜 만든 얼음의 검이 깨지는 소리다.
무극공이 펼치는 은백색 검기 앞에서 얼음의 검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주위에는 차가운 마력의 파편이 눈보라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그것들을 내 손에 응집시키면 새로운 얼음의 검이 출현한다.
나는 이미 정신세계의 속도를 물질세계에 구현하고 있는 상태.
새로운 검을 만들어 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0에 가깝다.
“하압……!”
다시 한번 얼음의 검을 휘둘렀다.
무극공도 자신의 애검인 백인검을 휘둘러 막으려 했고, 검과 검이 충돌했다.
그러자 내 얼음의 검이 폭발하듯이 깨졌고, 그 반작용으로 무극공의 백인검도 뒤로 밀려났다.
“……!”
그사이 내 오른손에 새로운 얼음의 검이 출현했다.
빠르게 펼쳐진 내 공격에 무극공이 신속히 대응했다.
얼음의 검이 또다시 깨져 나갔지만… 이미 내 왼손에도 새로운 검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에르나스!”
파팟!
연속적으로 펼쳐진 공격에 무극공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극공이 수세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무극공의 실력이라면 금방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몰아쳐야 한다.
‘지금 나는 백화검형을 전개한 상태.’
나는 쉴 새 없이 양손에서 얼음의 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로 보다 유기적인 연속 공격을 펼치려면 백화검형만으로는 부족하다.
무극공에게 결정타를 입히려면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백화검형에… 자뢰검형을 조합한다!’
자색의 기운이 전개되었다.
얼음의 검이 자줏빛으로 물들면서, 정교한 연속 공격에 적합한 상태가 되었다.
속도를 끌어올리고, 반동을 줄이고, 관성을 초월해, 현란한 연속기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뢰검형 절기(絶技), 자천(紫天)!’
이천공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했던, 변화무쌍한 32연격.
현란한 연속 공격이 무극공을 향해 쏟아졌다.
“……!”
무극공도 내 공격을 막아 내려 했다.
물리법칙을 초월한 심검으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펼쳐, 내 공격 하나하나를 봉쇄하려 했다.
놀랍게도 무극공은 내 공격을 잘 막아 냈다.
만약 내가 파천검만 들고 있는 상태였다면,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에 검이 부러져서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얼음의 검을 무한히 생성할 수 있는 상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에도 충분히 대항할 수 있다.
“하아압!”
“……!”
파앗!
마침내 자뢰검형이 무극공의 빈틈을 찔렀다.
이어지는 연속 공격이 무극공의 전신을 상처 입혔다.
무극공은 자신의 백인검을 휘둘러 내 연속 공격을 끊어 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랭커스터 비익검술의 정수까지 반영하여 현란하게 변화하는 연속 공격이 무극공을 몰아세웠다.
“에르나스, 설마 랭커스터의……!”
유스레흐트로 랭커스터 비익검술을 흡수한 상태라는 걸 눈치채고, 무극공이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미끄러지듯이 무극공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정석적인 움직임을 중시하는 동부 검술로는 대응하기 힘든, 변칙적인 위치 이동이었다.
“……!”
자뢰검형으로 무극공에게 대미지를 입혔다.
하지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파천검형의 파괴력으로는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니, 아주 작은 틈새라도 꿰뚫을 수 있는 번개가 필요하다.
‘창뢰검형 절기… 뇌신(雷神)!’
청월공조차 쓰러뜨렸던, 창뢰검형의 궁극기.
나는 한 줄기 번개가 되어 무극공을 꿰뚫었다.
* * *
멀쩡한 상태였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무극공은 에르나스의 연속 공격에 대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그로 인해 치명적인 빈틈이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빈틈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틈이다.
평범한 검사라면 절대로 파고들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틈새.
그런데 에르나스는 그걸 정확하게 파고들어 왔다.
전광석화 같은, 푸른 검기가 실린 검으로.
‘훌륭하다, 에르나스.’
콰콱!
무극공의 골격을 보호하고 있던 호신기를 뚫고, 푸른 검기가 파고들었다.
왼쪽 쇄골을 부순 칼날은 늑골 상부를 지나 흉골을 분쇄했다.
그리고 반대편 늑골을 통해 빠져나갔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몸통이 거의 반으로 절단되었을 상처다.
‘하지만……!’
무극공은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백인검을 역수로 잡고 에르나스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에르나스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얼음의 칼날이 무극공의 팔뼈를 부쉈고, 백인검은 땅으로 떨어졌다.
“…….”
검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건 무극공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무극공은 씁쓸한 심정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 패배다, 에르나스.”
“…….”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무극공의 목소리에, 에르나스의 눈동자가 잠시 떨렸다.
“끝을 내도록 해라.”
“무극공…….”
“후손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절규하거나, 어차피 너는 철혈검제에게 죽을 거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극공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무극공, 이제부터 나는 영묘로 들어갈 거다.”
“그렇겠지.”
“페르펙티오와 철혈검제에게 검을 들이댈 텐데… 상관없는 건가?”
“나는 패배자다, 에르나스.”
무극공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로서 후회 없이 싸우고 패배했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그냥 운명에 맡기면 된다.”
“운명이라.”
에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무극공. 당신은… 위대한 검사였어.”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무극공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에르나스, 너도 위대한 검사였다.”
“아니, 나한테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아.”
“어째서지?”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에르나스는 무극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축 늘어진 왼팔을 잡았다.
“…….”
무극공은 에르나스가 무엇을 하려는지 바로 눈치챘다.
에르나스는… 유스레흐트로 무극공의 검술을 가져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탐욕스럽구나, 에르나스.”
“미안하군.”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너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
이미 에르나스는 막강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영묘 안에 들어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터득한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에르나스는…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배우는 게 꿈이었어.”
“…….”
“하지만 페르펙티오는 무능한 에르나스에게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가르쳐 줄 생각이 없었지. 나중에 에르나스는 유스레흐트를 손에 넣지만… 페르펙티오가 영묘로 들어가 버려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훔칠 수가 없었어.”
에르나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에르나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당신이 협조 좀 해 줘.”
“그렇군…….”
무극공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거라면… 선조로서 협력해 줄 수도 있겠지.”
란즈슈타인의 선조로서.
란즈슈타인의 막내에게.
애초에 무극공은 에르나스에게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러니 반발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페르펙티오가 처신을 잘못한 게 모든 것의 원인이라 할 수 있군. 그 녀석이 너를 잘 대해 주기만 했어도 이렇게 일이 꼬이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의 나는 페르펙티오를 딱히 원망하지 않아. 그냥 쓰러뜨려야 할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니까.”
“에르나스…….”
차분한 태도의 에르나스를 보면서, 무극공은 천천히 말했다.
“페르펙티오는 광인(狂人)이다.”
“…….”
“사랑스러운 후손이긴 하나, 나는 아직까지도 페르펙티오를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에르나스가 아무런 말을 섞지 않고 페르펙티오를 단칼에 베어 버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 없다.
“조심해라, 에르나스.”
“…….”
에르나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에르나스는 무극공에게서 손을 떼고 있었다.
유스레흐트로 무극공의 검술을 얻어 내는 작업이 끝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버틸 필요는 없다.
“그럼 작별이군…….”
무극공은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걸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영묘의 모습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영묘 안에서 침묵하고 있는 절대군주를 향해, 사과의 말을 입에 담았다.
“이 무극공의 불충(不忠), 용서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옥에서 폐하의 영광을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그것이 최후의 6공작인 무극공의 유언이었다.
* * *
무극공이 완전히 침묵했다.
모래바닥을 뒹구는 뼈를 응시하면서, 나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무극공… 아까운 사람이었어.’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이 이 정도로 후손들을 아끼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세세한 설정까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검을 들이대는 에르나스한테까지 애정을 드러내다니,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 덕택에 에르나스의 과거 설정까지 떠올리게 되었군.’
에르나스가 소설 속에서 어떤 심정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평소에는 생각할 일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하고는 별 관계 없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란즈슈타인 가문 사람들하고 마주하다 보면, 에르나스가 란즈슈타인 가문에서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나는 에르나스 행세를 해야만 하니까.
‘그리고 이제… 페르펙티오도 만나야 하겠군.’
에르나스의 아버지, 페르펙티오.
그는 이 이야기의 진정한 흑막이라 할 수 있다.
철혈검제와 6공작의 부활도 그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철혈검제 세력의 모든 전략은 페르펙티오의 머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에르나스가 그런 악인이 된 것도 페르펙티오 탓이다.
‘페르펙티오 앞에서 에르나스 행세를 하는 건 더 난이도가 높을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무극공의 잔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무극공까지 쓰러뜨렸으니, 그동안 동부를 공포에 빠뜨렸던 6공작 전원을 쓰러뜨린 것이 된다.
‘이건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아칸델도 달성하지 못했던 일이야.’
지금 나는 소설에서 도달하지 못했던 곳에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영묘로 들어가는 것뿐이다.
‘준비는 다 끝났어.’
나는 유스레흐트를 만지면서 현재 보유한 능력을 확인했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란즈슈타인 무극검술(SS랭크)]
[케르베스트 백화검술(SS랭크)]
[발트펠트 금강검술(SS랭크)]
[랭커스터 비익검술(SS랭크)]
[마르테리스 이륜검술(SS랭크)]
== 영구 귀속 ==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S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SS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SS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S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에르나스가 그토록 원했던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이 가장 위의 칸에 자리 잡았다.
이제 나는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까지 손에 넣은 것이다.
그 대신, 황제에게서 얻었던 철혈검마심법은 삭제했다.
이미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마력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특정 마력 연공법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철혈검마심법은 없어도 된다.
‘이걸로 무기는 다 갖춰졌어.’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응용성.
발트펠트 금강검술의 파괴력.
랭커스터 비익검술의 변칙성.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순간적 폭발력까지… 마지막 싸움을 위한 무기는 다 갖춰졌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영묘를 응시했다.
지금 영묘 안에서는 페르펙티오가 철혈검제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의식은 별로 중요치 않다.
철혈검제가 해골 인간이든 아니든 나한테는 큰 차이가 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철혈검제가 ‘다음 경지’에 도달했는지다.
‘검신급(劍神級)…….’
검제급을 넘어선 경지.
의념으로 심검을 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는 ‘신(神)’과 같은 경지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 경지에 도달한 적이 없다.
‘만약 철혈검제가 이미 검신급에 도달한 상태라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검신급에 도달한 철혈검제를 쓰러뜨리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나도 검신급에 도달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