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00화 (199/212)

200화 최초의 란즈슈타인 (3)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에 의해 염살검이 두 동강 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나는 창뢰검형을 응용해 바로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내 몸도 무극공의 검에 일도양단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란즈슈타인 무극검술!’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소설을 쓸 때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직접 묘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무극공이 제대로 등장하기도 전에 이쪽 세계로 끌려왔으니까.

실제로 경험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은 에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염살검이 이렇게 쉽게…….’

염살검은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인 염옥공을 쓰러뜨리고 얻은 명검이다.

게다가 나는 파천검형으로 검기를 한계까지 견고하게 만든 상태였다.

하지만 무극공은 마치 부드러운 과자를 자르는 것처럼 단번에 절단해 버렸다.

‘이 정도라면, 흑천검으로 방어해도 소용없을 거야.’

그동안 관찰한 결과, 흑천검이 염살검보다 성능이 좋다.

하지만 흑천검에 파천검형을 전개해 봤자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무극공의 란즈슈타인 무극검술과 부딪친 순간, 흑천검은 두 동강 난다.

‘그러니까… 검을 충돌시키는 것 자체가 위험해.’

검과 검이 부딪치면 곧바로 내 검이 절단된다.

파천검형으로도 버틸 수 없으니, 무슨 수를 써도 버틸 수 없다.

‘이러면 공격도 방어도 할 수가 없는데.’

자뢰검형으로 연속 공격을 펼친다고 생각해 보자.

몇 번은 허를 찌를 수 있겠지만, 무극공도 검을 휘두르면서 내 공격을 막으려 할 것이다.

검끼리 부딪치면 바로 흑천검이 부러질 테고, 내 연속 공격은 중간에 끊기게 된다.

그 틈을 타서 무극공이 검을 휘두르면… 그냥 나는 죽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에르나스.”

그때 무극공이 자신의 백인검을 든 채 입을 열었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로 네 목숨을 빼앗을 생각은 없으니까.”

“뭐라고?”

“애초에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죽이지 않고 어쩌겠다는 건가.

“나는 네가 패배를 경험하길 원한다.”

“패배……?”

“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런 건 오로지 신(神)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무극공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너는 아직 한낱 애송이에 불과하다.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나한테 그렇게 해 줘야 할 이유가 있나?”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무극공이 턱을 딱딱 부딪쳤다.

“너는 내 후손이다. 내 피를 계승한 존재인데… 당연히 네가 잘되기를 바라야 하는 것 아니냐?”

“…….”

나는 허를 찔렸다.

무극공의 입에서 저런 인간적인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나는 네 선조로서 너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다.”

“…….”

“너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일원으로서 철헐검제 폐하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것이 네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타이르듯이 말하는 무극공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군.”

“뭐라고?”

“페르펙티오가 당신만큼 에르나스에게 간섭했다면, 에르나스도 그렇게 비뚤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

무극공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무극공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무극공, 에르나스는 아마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려 주기를 바랐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페르펙티오는 에르나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지. 유스레흐트 하나 던져 준 뒤, 부하들을 이끌고 영묘로 들어가 버렸을 뿐이야.”

“…….”

“그렇기 때문에 에르나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에 오르기로 했어.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으니까.”

소설에서 에르나스의 목표는 6대 검술명가를 제압하고 제국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6대 검술명가에는 란즈슈타인 가문도 포함된다.

에르나스는 아버지의 란즈슈타인 가문조차 짓밟고 정점에 오르고 싶었다.

그런 동기가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온갖 모략을 꾸미면서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에 집착한 것이다.

“정말로 악독한 놈이지만… 그런 불쌍한 측면도 있었던 놈이야.”

“에르나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극공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페르펙티오에게 불만이 많다는 것이냐? 그래서 페르펙티오와 한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건가?”

무극공 입장에서는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할 테고 말이다.

“정말로… 어린애 같은 놈이군.”

무극공이 살아 있는 인간이었으면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한심해하는 목소리였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냐? 제국의 미래, 란즈슈타인 가문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시기인데, 고작 아버지에게 무시당했다는 불만 때문에?”

“무극공, 에르나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대 청소년이었어. 그런 게 아주 크게 작용하지.”

“남의 일처럼 말하지 말고, 정신을 차려라!”

무극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나스! 철혈검제 폐하께서는 이 세계를 한 자루의 검처럼 만들려 하고 계신다! 모든 인간의 역량이 철저하게 통제되는 검의 세계를 완성하여,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문명을 건설하시려는 것이다!”

“…….”

“우리 란즈슈타인 가문이 이 위업에 함께하는 것이다! 이그니아스, 랭커스터, 아그리파, 발트펠트, 슈라이에르 전부 다 무너진 지금… 우리 란즈슈타인만이 철혈검제 폐하를 보좌할 수 있단 말이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자식을 혼내는 부모 같았다.

“이런 상황인데 어찌 그런 개인적인 감정으로…….”

“무극공, 당신이 모르는 게 한 가지 있어.”

나는 무극공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란즈슈타인 가문만이 철혈검제를 보좌할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야.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서 이 제국을 실질적으로 다스리게 되겠지.”

“그렇다. 너도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로서 앞으로…….”

“하지만 그 란즈슈타인 가문에 무극공 당신은 포함되지 않아.”

“뭐라고?”

“철혈검제는 처음부터 당신들 6공작을 토사구팽할 생각이었거든.”

“……?”

무극공이 잠시 침묵했다.

“에르나스, 그게 무슨 뜻이지?”

“그 반응을 보니, 알레이시도 당신한테 말해 주지 않았나 보군.”

“알레이시……?”

“페르펙티오의 측근인 알레이시는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검의 세계에 당신들 6공작이 필요 없다는 걸.”

“그게… 무슨 소리냐?”

“철혈검제가 만드려는 건 살아 있는 ‘인간’의 세계야. 당신 같은 해골 인간들이 끼어들 곳이 없지.”

지난 번에 비룡공, 금강공, 청월공 앞에서도 했던 얘기다.

“철혈검제는 전 인류의 일체화를 원하고 있어. 당신처럼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 해골이 되어 살아가는 존재는 방해가 될 뿐이야.”

“무슨 얼토당토않은…….”

“무극공, 왜 철혈검제만 부활이 늦어지는 거지?”

“뭐라고?”

“당신들처럼 해골 인간으로 활동할 거면 철혈검제는 지금 당장 바깥으로 나오면 돼. 하지만 철혈검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

“지금 페르펙티오는 영묘 안에서 철혈검제를 ‘살아 있는 인간’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 당신들처럼 해골 인간으로 부활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무극공이 침묵했다.

짚이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무극공, 당신은 페르펙티오에게 속고 있었던 거야.”

“…….”

“페르펙티오에게 당신은 ‘위대한 선조님’ 따위가 아니야. 사냥이 끝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사냥개에 불과하지.”

무극공은 페르펙티오와 알레이시 같은 후손들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적대 세력인 나 같은 놈한테도 애정을 드러낼 정도이니… 정말로 후손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 무극공을… 페르펙티오는 이용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러니… 무극공.”

나는 무극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 입장에서는 차라리 내 편에 서는 게 좋아.”

“네 편에 선다고?”

“그래, 란즈슈타인 가문의 정통 후계자인 에르나스의 후견인이 되는 거지.”

“…….”

무극공은 내 말에 허를 찔린 듯했다.

“나와 함께 철혈검제를 쓰러뜨리고 페르펙티오를 제거해. 그렇게 해도… 란즈슈타인 가문의 승리잖아?”

란즈슈타인 가문의 정통 후계자와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이 힘을 합쳐 제국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것도 당연히 란즈슈타인 가문의 승리다.

“란즈슈타인은 세계를 구한 영웅의 가문으로서 칭송받을 거야. 그런 거라면… 당신도 만족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무극공의 반응을 기다렸다.

주위에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오로지 우리 둘만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미있는 얘기로군, 에르나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비로소 무극공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고려할 가치가 없는 얘기다.”

“어째서지?”

“일단 네 얘기가 사실이라는 보장이 없다.”

“알레이시를 붙잡아서 확인하면 돼.”

“그럴 수는 없지.”

무극공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네 얘기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폐하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

“배신하지 않겠다고?”

“그렇다.”

“…….”

토사구팽당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철혈검제에게 충성을 바칠 거란 얘기인가?

“에르나스, 나는 란즈슈타인 가문을 사랑하지만 그 이상으로 철혈검제 폐하를 경애하고 있다.”

“무극공…….”

“철혈검제 폐하께서 나를… 그냥 쓰다 버리는 도구처럼 생각하고 계신다고 해도, 나는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다.”

“…….”

“그런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무극공은 검을 고쳐 잡았다.

“어차피 내가 숙청당한다고 해도, 페르펙티오가 철혈검제 폐하를 계속 보좌할 것 아니냐?”

“그건…….”

“그렇다면, 결국 란즈슈타인 가문의 승리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승리.

이건 아까 내가 사용한 표현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무극공 본인이 숙청당한다.

본인이 영광을 누리지 못해도, 후손이 영광을 누리면 된다는 생각인가.

“그러니 에르나스, 나는 철혈검제 폐하를 배신할 생각이 없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철혈검제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어.”

“평행선이군.”

무극공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결국 검으로 결론을 낼 수밖에 없겠구나.”

“…….”

“이번에는 봐주지 않을 것이다, 에르나스.”

그리고.

무극공이 다시 기척도 없이 움직였다.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움직임으로 다가와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창뢰검형을 전개하여 후퇴하고 있는 상태였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에르나스.”

놀랍게도 무극공은 순수한 경신술만으로 나를 추격해 왔다.

무극공이 얼마나 대단한 검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 무극공은 나를 쫓아와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도망치기만 할 생각은 없어, 무극공.”

내가 태평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무극공과 온갖 얘기를 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란즈슈타인 무극검술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애초에 염살검이 부러진 것도…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일부러 희생시킨 거니까.’

데이터는 충분히 얻었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도 마쳤다.

이제 실제로 시도하는 것만 남았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의 절단력 앞에서는 어떤 검도 견뎌 내지 못해.’

검을 부딪치면 부서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부서져도 상관없는 검을 만드는 것뿐……!’

나는 모든 마력을 끌어올렸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에서 발전시킨, 백화검형이 전개되었다.

‘눈보라처럼 휘몰아쳐라……!’

얼어붙은 마력의 파편이 휘몰아쳤다.

하얀 조각들이 주위를 뒤덮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정도에 흔들릴 무극공이 아니다.

“소용없다!”

휘익!

하얀 조각들을 뚫고 무극공이 날아왔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뻗어 나온 은백색 검기가 나를 노렸다.

그걸 막아 내기 위해 나는 검을 휘둘렀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견뎌 낼 수는 없다!”

검이 산산조각 났다.

무기를 잃은 나에게 확실한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무극공이 크게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견딜 수 없어도 상관없어.”

내 손에 새로운 검이 출현했다.

백화검형의 냉기를 응축시킨, 얼음의 검이다.

애초에 방금 산산조각 난 것도 얼음의 검이었다.

지금 주위에 눈보라처럼 휘몰아치는 마력 조각들을 모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딜레이 없이 새로운 검을 준비할 수 있다.

“에르나스……!”

허를 찔린 무극공을 향해, 차갑게 얼어붙은 심검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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