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최초의 란즈슈타인 (2)
굳게 닫혀 있는 영묘 출입구.
그 앞에서 알레이시는 무극공과 함께 전방에 시선을 향했다.
“에르나스가 움직이는군.”
“네…….”
무극공의 목소리를 들으며, 알레이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건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의 욜스 교수와 안겔라 교수입니다.”
“절정급인가.”
“네, 맞습니다.”
에르나스는 두 절정급을 양 날개 삼아 돌격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리히테나워 기사단도 전진하고 있는 상황.
다들 검을 뽑아 들고 검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대화나 위협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다.
지금 그들은 영묘를 향해 총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에르나스는 자진해서 무릎을 꿇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고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다니.”
“무극공 전하…….”
“걱정하지 마라, 알레이시.”
무극공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얘기했지 않느냐. 에르나스를 죽일 생각은 없다.”
“무극공 전하, 에르나스 도련님은 란즈슈타인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입니다.”
알레이시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러니… 선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무극공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친아비인 페르펙티오보다 알레이시 네가 더 에르나스를 아끼는 것 같구나.”
“그건…….”
“나는 버릇을 고쳐 줄 생각밖에 없다. 녀석을 죽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네,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면서 알레이시는 고개를 한층 더 깊게 숙였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원래 알레이시는 에르나스를 영묘로 들여보내 페르펙티오와 독대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무극공이 에르나스를 죽여 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
차라리…….
‘차라리 에르나스 도련님이 무극공 전하를 쓰러뜨리는 편이 더 낫지.’
무극공과 에르나스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면 에르나스다.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 알레이시는 이쪽으로 돌격해 오는 에르나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 * *
흑천검과 염살검이 자색으로 번뜩일 때마다, 검귀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나는 자뢰검형으로 종횡무진 검을 휘두르면서 적진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것 참 기분 나쁘군!”
내 배후에서 검을 휘두르면서 안겔라가 혀를 찼다.
“기합 소리도 비명 소리도 내지 않는 검사들이라니! 골렘과 싸우는 기분이야!”
“세뇌를 당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함께 싸우던 욜스도 인상을 찌푸렸다.
이렇게 말 한 마디 안 하는 검사들과 싸우는 건 욜스도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흐읍!”
쿠쿵!
검귀의 공격을 호신강기로 막아 낸 뒤, 욜스가 번개 같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로 반격했다.
“다른 검귀들처럼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느낌이 없습니다. 다들 냉정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 그래서 더 어려운 느낌이야……!”
베르틴스키 흑쇄검술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안겔라가 동의했다.
“호신강기가 없었으면 진작 목이 달아났겠어!”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욜스와 안겔라는 다른 사람들보다 호신강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검귀들의 유사 심검을 맞아도 상처 하나 없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여기 있는 검귀들이 유사 심검을 제외하면 그래듀에이트 절정급보다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알드바우트 총장이나 헨리 랭커스터처럼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에서 검귀가 되었다면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니… 알레이시도 위험한 상대야.’
알레이시도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다.
란즈슈타인 가문은 다른 검술명가에 비해 세력이 작은 편이었지만, 페르펙티오와 알레이시라는 두 명의 절정급을 보유하고 있어 다른 가문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알레이시도 검귀가 된 상태라면 욜스와 안겔라가 동시에 덤벼도 위험해. 웬만하면 내가 직접 상대하고 싶지만…….’
지금 나는 무극공을 상대해야 한다.
알레이시는 욜스와 안겔라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앗……!”
파아앗!
새카만 궤적을 그리면서 안겔라가 전방의 검귀들을 일도양단했다.
덕분에 영묘 가까이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는 창뢰검형을 사용하여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나를 붙잡으려 하는 검귀들을 뿌리치고, 영묘 출입구 근처까지 도달했다.
마침내 무극공 앞까지 온 것이다.
“…….”
무극공이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다른 검귀들이 달려들려 했지만, 무극공이 한쪽 손을 치켜들자 그자리에 멈춰 섰다.
덕분에 욜스와 안겔라도 내 곁까지 올 수 있었다.
“저게 무극공…….”
“상당한 압박감이군.”
욜스와 안겔라가 긴장하면서 침을 삼켰다.
그 정도로 무극공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다.
“만나서 반갑구나, 에르나스.”
욜스와 안겔라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극공이 입을 열었다.
“란즈슈타인 가문에 너 같은 실력자가 태어나다니… 정말 뿌듯하구나.”
“…….”
“네 아버지는 너한테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다르다.”
무극공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동안 만난 6공작 중에서 가장 차분했던 건 이천공이지만, 무극공에게선 이천공 이상의 지성과 품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방황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겠다.”
“방황?”
“이제는 란즈슈타인으로 돌아와라, 에르나스.”
무극공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현재 철혈검제 폐하 곁에는 우리 란즈슈타인 가문밖에 남지 않았다. 이그니아스도, 랭커스터도, 아그리파도, 발트펠트도, 슈라이에르도… 전부 사라졌지.”
“…….”
“네가 란즈슈타인으로 돌아온다면, 더 이상의 싸움은 필요 없다.”
그렇게 말하며 무극공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너라는 절대 강자가 전향한다면 다들 전의를 상실할 테니 말이다. 승산 없는 싸움 따위는 내던지고 백기를 들겠지.”
“……!”
욜스와 안겔라가 흠칫 놀랐다.
확실히 내가 저쪽으로 넘어가면 승산이 없긴 하다.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도록 그냥 항복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선조님, 미안하지만 나는 전향할 생각이 없어.”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래, 진심이야.”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지난번에 알레이시에게 했던 얘기를 덧붙였다.
“어차피 당신들을 쓰러뜨리면 나는 이 제국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존재가 될 수 있어. 당신들 밑으로 기어 들어가 봤자 란즈슈타인 가문의 막내가 될 뿐이니, 굳이 메리트가 없지.”
“흐음…….”
무극공이 뼈밖에 없는 턱을 쓰다듬었다.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것 같군.”
“말했잖아, 진심이라고.”
“역시 너에게는 훈육이 필요하겠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무극공이 고개를 돌렸다.
“알레이시.”
“네, 무극공 전하.”
“잔챙이들은 너에게 맡기겠다. 에르나스는 내가 상대하지.”
“알겠습니다.”
알레이시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욜스와 안겔라에게 눈짓을 한 뒤, 우측으로 움직였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래, 여기 있어 봤자 에르나스에게 방해만 될 것 같으니.”
욜스와 안겔라는 마지막으로 나하고 한번 눈빛을 교환한 뒤, 알레이시를 따라갔다.
검귀들도 접근하지 않고 있어서, 이곳에는 나와 무극공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면, 에르나스…….”
무극공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설정대로라면 백인검(白刃劍)일 것이다.
“재능이 부족해서 란즈슈타인의 독문 검술을 터득하지 못했다고 하더군. 맞나?”
“뭐… 그렇지.”
“그래서 유스레흐트로 다른 가문의 검술들을 습득했나?”
“…….”
“아무래도 너는 유스레흐트의 잠재 능력까지 개방한 것 같더군.”
역시… 무극공은 유스레흐트의 기능을 알고 있었다.
소설 설정에서 무극공은 엘더 드래곤의 사제였던 인물로, 각종 아티팩트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유스레흐트를 란즈슈타인 가문에 가져온 것이 무극공이기 때문에, 무슨 기능을 갖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에르나스, 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러 검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것 같았다.”
“…….”
“이건 단순히 유스레흐트를 쓴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너에게… 엄청난 재능이 숨어 있었다는 뜻이지.”
그렇게 말하고 무극공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 재능으로 처음부터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배웠다면 지금쯤 제법 괜찮은 수준에 도달했을 텐데 말이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
그것은 란즈슈타인 가문의 독문 검술이다.
소설 속에서 에르나스는 이 검술을 익히길 원했지만, 페르펙티오가 금지했다.
재능 없는 놈에게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면서.
이건 에르나스가 비뚤어진 성격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니, 에르나스… 내가 너한테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을 가르쳐 주겠다.”
“가르쳐 주겠다고?”
“그렇다.”
무극공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몸으로 깨닫게 해 주마.”
“……!”
바로 그때.
무극공의 몸이 전방으로 움직였다.
마치 가볍게 산책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동작은 분명 내 목숨을 노리는 살초였다.
“윽……!”
휘익!
물리 법칙을 초월한 심검이 내가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내가 정신세계의 속도를 구현하여 회피했기 때문이다.
“피했군.”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무극공이 계속 움직였다.
아무런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동작이었지만, 곧바로 내 목숨을 빼앗을 듯한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왔다.
나는 창뢰검형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
콰르릉!
천둥소리를 내면서 움직였다.
전광석화처럼 무극공의 배후로 파고들어 공격하려 했지만, 무극공의 대응 속도도 빨랐다.
“윽……!”
콰앙!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면서 충격파가 발생했다.
여전히 무극공의 움직임에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볍게 운동을 하는 듯한 움직임으로 모든 상황에 대응하고 있었다.
“흠, 매우 훌륭하군.”
무극공이 중얼거렸다.
“이 정도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힘 조절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
“……!”
무극공은 내 역량을 이미 파악했다.
그러니 이제 곧 진짜 공격이 올 것이다.
“란즈슈타인의 검은 특별할 게 없는 하나의 검.”
마치 시를 낭송하는 듯한 목소리로 무극공이 말했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처럼 엄청난 화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랭커스터 비익검술처럼 화려한 연속기를 펼치지도 못한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처럼 공간을 절단하지도 못한다. 발트펠트 금강검술처럼 극강의 견고함을 보여 주지도 못한다.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처럼 원거리의 적을 공격하지도 못한다.”
무극공이 들고 있는 검에 마력이 집중되었다.
일반적인 검기가 아니다.
마력을 한계까지 압축했기 때문에, 내가 만든 검강과 비슷하다.
검강과 차이점이 있다면…….
“란즈슈타인 무극검술은 그저… 모든 것을 베어 버릴 뿐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오로지 절단력만을 추구한 검기’가 펼쳐졌고.
내가 치켜든 염살검은 그 검기에 의해 두 동강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