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98화 (197/212)

198화 최초의 란즈슈타인 (1)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내가 아티팩트 ‘시옥검’으로 비룡공의 기억을 흡수해 보니, 놈들의 거점이 다른 곳에도 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당 거점들은 철혈검제 세력에 굴복한 명문가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금강공의 작전에 따라 동부 지역 전체를 장악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비룡공의 크리처들을 전멸시킨 기사단을 이끌고 해당 거점들을 공격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로코드 바스톨즈의 이름을 기억하느냐?!”

“로코드 바스톨즈?”

바스톨즈 백작 가문의 요새를 공략하던 도중, 중년의 남자가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로코드는 내 아들이다! 하지만 너한테 당하고 폐인이 되었다!”

“…….”

미안한 얘기지만, 누군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옆에서 싸우던 베리스리제가 입을 열었다.

“내 파벌로 들어오려고 했던 벨리드 앤드류스의 똘마니야. 예전에 너를 기습했었잖아.”

“아…….”

벨리드의 이름조차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벨리드는 내 파벌에 붙으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놈으로, 나중에는 베리스리제 파벌에 들어갔다.

비슷한 처지인 놈들과 함께 나를 습격했지만, 내 반격에 큰 부상을 입고 아카데미를 떠났다.

“빛나는 미래가 약속되어 있었던 내 아들 로코드가, 네놈에게 당해 폐인이 되었단 말이다! 사과해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녀석들이 나를 먼저 습격했어. 한밤중에 여럿이서 말이야.”

“닥쳐라! 내가 너한테 반드시 복수를… 커헉!”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검이 남자의 가슴에 꽂혔다.

베리스리제의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이었다.

원래 베리스리제는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을 쓰지 못했지만, 황실에서 내려준 흑색 엘릭시르를 복용하고 사용 가능해졌다.

아버지인 클라우비체처럼 자유자재로 어검술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비검술로 장거리 공격을 하는 건 가능하다.

“저런 잔챙이들하고 일일이 말 섞어 줄 필요 없어, 에르나스.”

“그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톨즈 백작은 나에게 원한이 있어서 철혈검제 세력에게 붙은 걸까?”

“아마 그렇겠지? 말하는 게 딱 그런 느낌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카데미에서 다른 학생들과 좀 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걸 그랬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방해되는 놈들은 철저히 짓밟았으면서.”

베리스리제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너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걸?”

“그런가?”

“그러니 괜한 소리 말고 검이나 휘둘러. 빨리 이 요새를 함락하고 바다 쪽으로…….”

그때 전방에서 함성이 들렸다.

선봉으로 나섰던 슈미츠가 요새 꼭대기에 올라 바스톨즈 가문의 깃발을 꺾어 버리고 있었다.

“네가 나서지 않아도 금방 끝날 것 같네.”

“그러게.”

흑색 엘릭시르를 복용하고 호신강기를 터득한 그래듀에이트들은 예전보다 전투력이 향상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원군들도 합류했기 때문에,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전력은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다 쓸어버리고… 바다로 가야겠지.”

동부 해안에는 영묘가 있다.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인 무극공(無極公)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어느 정도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지는 비룡공의 기억을 흡수해서 알고 있지만…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무극공을 쓰러뜨리면… 비로소 영묘 안에 들어갈 수 있겠지.’

영묘 안에 들어가서, 페르펙티오와 철혈검제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 * *

“에르나스가 이곳으로 오고 있는 모양이군. 우리 쪽 협력자들을 쓰러뜨리면서.”

해안가에 세워진 막사 안에서,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인 ‘무극공’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에르나스는 이곳을 공격하려 하고 있는 모양이다.”

“네…….”

“참으로 오만한 녀석이군.”

무극공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에르나스는 내 후손이다. 페르펙티오의 아들이기도 하지.”

“…….”

“란즈슈타인 가문의 미래를 짊어진 후계자이면서…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극공은 딱히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목소리였다.

“반역자의 피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군.”

“무극공 전하…….”

“알레이시, 너도 알고 있겠지.”

무극공이 담담히 말했다.

“내가 엘더 드래곤을 섬기는 사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엘더 드래곤은 그 막강한 힘으로 대륙에 군림하고 있었다.

마인과는 달리 엘더 드래곤은 세력을 만드는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종족을 지배하며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다.

당연히 엘더 드래곤을 따르는 인간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아예 엘더 드래곤을 숭배하는 종교를 만들기도 했다.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은… 그 종교의 고위 사제였다.

“철혈검졔 폐하의 위용에 감동하여 엘더 드래곤의 세뇌에 벗어나셨지요. 란즈슈타인 가문의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얘기입니다.”

무극공은 엘더 드래곤의 사제였기 때문에, 당대의 어떤 인간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엘더 드래곤 세력의 내부 정보를 활용해 놈들과의 싸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고… 고대 아티팩트의 지식을 활용해 아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기도 했다.

“알레이시, 사실 그때 나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비난을 받다니요?”

“반역자라고 말이다. 내 가족들은 전부 엘더 드래곤을 숭상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배신을 저지른 나를 용서해 주지 않았지.”

“아…….”

“결국 나는 가족들을 내 손으로 죽여야 했다. 씁쓸한 기억이지.”

무극공의 담담한 목소리에 알레이시는 할 말을 잃었다.

“에르나스도 나하고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 같구나. 란즈슈타인 가문을 배신하고 반역자가 되려는 것으로 보이는군.”

“무, 무극공 전하.”

알레이시가 다급히 해명했다.

“에르나스 도련님도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영묘까지 도달하면… 입장을 바꿔서 우리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도 있습니다.”

“흠…….”

“그렇게 된다면… 란즈슈타인 가문이 똘똘 뭉쳐서 철혈검제 폐하를 보좌할 수 있습니다.”

에르나스는 어디까지나 무극공을 제외한 나머지 6공작을 쓰러뜨렸을 뿐이다.

그 덕택에 철혈검제 주위에는 무극공과 페르펙티오 같은 란즈슈타인 가문 관계자들만 남게 되었다.

만약 에르나스가 지금까지 함께 싸워 온 아군들을 배신하고 철혈검제에게 붙는다면… 철혈검제와 란즈슈타인 가문에 의한 독재 체제가 완성된다.

“알레이시.”

“네, 무극공.”

“혹시 페르펙티오가 에르나스에게 밀명을 내린 건가? 나를 제외한 6공작들을 쓰러뜨리라고?”

“그건…….”

“만약 페르펙티오가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거라면… 참으로 절묘하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무극공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에르나스는 란즈슈타인을 제외하면 검술명가들을 직간접적으로 무력화시켰다. 게다가 최근에는 나를 제외한 6공작들을 전부 쓰러뜨렸지.”

“…….”

“그 모든 것이 페르펙티오의 계략이라면, 페르펙티오는 유사 이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희대의 책사일 거다.”

그렇게 말한 뒤, 무극공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페르펙티오는 그런 계략을 꾸밀 사람이 아니다. 그냥 우연히 페르펙티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을 뿐이겠지.”

“네… 맞습니다.”

알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가주님이 에르나스 도련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한 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에르나스 도련님이 직접 시행하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결국 모든 것은 에르나스에게 달렸다.”

무극공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에르나스가 자진해서 우리들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가장 좋다.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네…….”

“하지만 에르나스가 우리들에게 검을 들이댄다면… 굴복시켜야 하겠지.”

“무극공 전하, 그렇다면…….”

“말로 해서 설득될 녀석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내 힘으로 굴복시키는 게 빠르겠지.”

“…….”

“페르펙티오와 의논하여 진행하는 편이 낫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현재 페르펙티오는 영묘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극공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떠냐, 알레이시.”

“알겠습니다, 무극공 전하.”

알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극공 전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페르펙티오는 영묘 안에 있으니 내 명령에 따르는 것이 맞지.”

사실… 알레이시는 에르나스가 영묘 안으로 들어와 페르펙티오와 독대하는 걸 바라고 있었다.

얼마 전에 에르나스와 만났을 때도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무극공이 직접 에르나스를 굴복시키겠다고 하니… 그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극공 전하,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지요?”

“다른 사람들?”

“에르나스의 부하들 말입니다.”

“에르나스는 살려 두더라도, 그 부하들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

무극공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폐하에게 검을 들이댄 역적들이다. 전부 다 죽이면 된다.”

* * *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마침내 동부 해안에 도달했다.

멀리서도 보이는 거대한 건조물의 모습에 다들 놀라워했다.

“저것이 영묘…….”

“철혈검제가 6공작과 함께 잠들었던 곳…….”

영묘의 정체는 고대 문명의 이동 요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우리들을 향해 일방적인 포화를 퍼부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주위에 있는 것이… 영묘를 지키는 친위대군요.”

“그래, 맞아.”

세리느에게 답하면서 나는 전방을 살폈다.

영묘 주위에는 수백 명의 검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도 있었지만, 검귀들도 많아 보였다.

“에르나스, 저기 있는 건… 란즈슈타인 가문의 검사들 아닌가요?”

“…….”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얼굴들이에요.”

아마 그럴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그래듀에이트와 싸운 적이 없었다.

그들이 전부 이곳에 집합하여 영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란즈슈타인 가문뿐만이 아닙니다. 바스티안 가문을 비롯한 동부 명문가 출신들이 보입니다.”

철혈기사단의 폴티아나 클라리온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 있는 검사들을 모아서 영묘를 지키는 친위대로 삼은 모양이군요.”

“그래, 정예 부대야.”

비룡공의 기억에 의하면, 여기 배치되어 있는 검사들은 최소 그래듀에이트 중급 이상이다.

검귀도 지금까지 싸웠던 검귀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많다.

“에르나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 곁에 있던 욜스 교수가 입을 열었다.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강해졌다. 호신강기를 터득한 사람도 많아졌고 말이다.”

“…….”

“그동안의 싸움을 통해 경험도 쌓았다. 이제는 검귀가 상대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다.”

욜스의 말이 맞다.

그동안 철혈검제 세력의 거점을 격파하고 다닌 건, 호신강기에 능숙해지기 위한 실전 훈련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백 명의 검귀와 싸우려면 최대한 호신강기에 익숙해져야 했다.

“현재 우리들 전력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 문제는…….”

욜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놈들이지.”

“…….”

영묘의 출입구 앞에 두 명의 검사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지난번에 만났던 알레이시 란즈슈타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 무극공.”

겉모습 자체는 그동안 만났던 6공작들과 별 차이가 없다.

예복을 몸에 걸친 해골 인간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어도 묘한 음산함이 느껴졌다.

최후까지 남은 6공작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에르나스, 무극공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너뿐일 거다.”

욜스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레이시 란즈슈타인은 나하고 안겔라 교수님이 상대할 수 있겠지만, 무극공과는 네가 싸워야 한다.”

“그래, 맞아.”

근처에 있던 안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나스… 교수로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무극공은 너한테 맡겨야 할 것 같다.”

“걱정 마십시오, 교수님.”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극공은 제가 쓰러뜨리겠습니다. 그러니 교수님들은 알레이시를 쓰러뜨려 주시죠.”

“에르나스…….”

“저 두 사람만 쓰러뜨리면 영묘의 문을 열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세리느를 쳐다봤다.

“세리느, 그러면…….”

“걱정 안 해도 되요, 에르나스.”

세리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나스와 교수님들이 저 두 사람과 싸우는 동안, 기사단과 함께 친위대들을 상대할게요.”

“그래, 클로에하고 의논하면서 움직여 줘.”

이미 아군은 공격 진형을 갖췄다.

우리가 선두에서 서서 움직이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욜스 교수님, 안겔라 교수님.”

나는 두 교수들에게 눈짓을 했다.

욜스와 안겔라의 결연한 표정을 확인한 뒤, 나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갑시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를 양 날개로 삼아,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이제 곧… 마지막 6공작과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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