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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97화 (196/212)

197화 3연전 (5)

“알레이시 란즈슈타인……?”

비룡공이 당혹스러워했다.

페르펙티오의 심복인 알레이시가 여기서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 못 했을 것이다.

“어째서 여기에…….”

“외부 활동 중이었습니다, 비룡공 전하.”

비룡공의 혼잣말에 알레이시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심상치 않은 공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다급히 이쪽으로 달려온 겁니다.”

“아…….”

하긴 하늘에서 그렇게 격렬한 싸움을 벌이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냥 검을 부딪치며 싸운 것도 아니고, 전투기가 싸우듯이 원거리 공격을 퍼부으며 싸웠으니까.

“그런데… 비룡공 전하의 태도가 좀 이상하더군요.”

“……!”

비룡공이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 비룡공은 철혈검제를 배신하고 나한테 정보를 넘겨주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비룡공 전하, 반역을 저지를 생각이었습니까?”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비룡공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에, 에르나스, 당신 쪽에서도 해명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알레이시가 먼저 움직였으니까.

“아……!”

쩌억!

알레이시의 검이 번뜩인 뒤, 비룡공의 두개골이 일도양단되었다.

아무리 비룡공이 검제급이라고 해도, 내 공격을 받고 추락해 무력화된 상태다.

절정급인 알레이시의 검기로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

“빌어먹을…….”

마지막 욕설을 내뱉은 뒤, 비룡공이 침묵했다.

결국 비룡공은 6공작 중에서 가장 추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룡공을 네 마음대로 처단해도 되는 건가?”

“네, 가주님이 저한테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

이건 페르펙티오에게도 6공작을 처단할 권한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페르펙티오의 권한은… 철혈검제가 부여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권한이 있을 뿐입니다. 평상시의 제가 공작님들을 처단할 수는 없지요.”

“그렇겠지…….”

“제가 비룡공을 처단할 수 있었던 건, 에르나스 도련님이 비룡공을 무력화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레이시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정말로 훌륭하십니다, 도련님.”

“…….”

“옛날하고는 달라지셨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레이시는 에르나스가 아무런 능력도 없는 ‘가짜 천재’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스레흐트가 도움이 된 모양입니다.”

“…….”

알레이시는 아티팩트 ‘유스레흐트’의 효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복사하여 강해졌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죠. 유스레흐트의 효과는 상당히 한정적인 것이니… 도련님의 재능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

“그 재능, 란즈슈타인 가문의 미래를 위해 활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오만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지금까지 계속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면서, 용케 그런 말을 하는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도련님의 동향을 가주님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지?”

“그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보다 더 과장되게… 소설 속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의식하면서.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겠지.’

그렇게 의식적으로 행동하면서, 나는 손을 치켜들었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지. 내가 아카데미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도… 유스레흐트 하나 던져 주고 영묘로 들어가셨을 뿐이야.”

“…….”

“차라리 영약 하나라도 미리 준비해 줬다면, 내가 그 고생은 안 했겠지.”

이것이… 소설 속에서 묘사되었던 ‘가짜 천재’ 에르나스의 속마음이다.

에르나스는 줄곧 피해 의식을 갖고 살아왔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외면받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아버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으실 거야.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든, 본인의 계획에 영향이 없으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겠지. 내 말이 틀린가?”

“그건…….”

알레이시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나한테는 매우 유용한 정보다.

내가 6공작들을 죽이고 다녀도… 페르펙티오의 계획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뜻이니까.

“모처럼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에 올라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내 앞길에 끼어들려 하다니, 솔직히 화가 나는군.”

“그러면, 도련님.”

알레이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련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대로 동부 지역을 수복해야지. 영묘가 와 있는 해안까지 진격할 거야.”

“혹시 가주님한테까지 칼을 들이대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뭐가 문제지?”

“도련님은 가주님의 계획을 모르시는 것 같군요.”

“아버지의 계획이라.”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게 뭐지? 6공작들과 함께 제국을 제압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그래?”

“가주님은 6공작들의 제국 제압 작전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다고 말입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가주님이 신경 쓰시는 건, 오직 철혈검제 폐하의 부활뿐입니다.”

“철혈검제 폐하의 부활? 이미 6공작들처럼 부활한 것 아닌가?”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말했다.

“아직 완전히 부활하신 상태는 아닙니다. 새로운 몸으로 다시 제국의 땅을 밟으시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6공작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활하는 건가 보지?”

“자세한 것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6공작들도 몰랐던 것 같으니, 기밀 중의 기밀일 것이다.

“가주님은 철혈검제 폐하만 부활하시면 모든 게 끝난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지? 철혈검제의 힘이면 혼자서도 제국을 제압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글쎄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흠…….”

“어쨌든… 도련님.”

알레이시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은 이미 6공작 중에서 다섯 명을 쓰러뜨린 절대 강자입니다. 아마 가주님도 도련님을 당해 내지 못하시겠죠.”

“…….”

“하지만 철혈검제 폐하가 부활하시면, 그때는 도련님도 무릎을 꿇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미리 결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레이시가 고개를 숙였다.

“결국 도련님은 가주님과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가주님도 도련님이 직접 찾아가시면… 환영하실 겁니다.”

“…….”

“도련님의 미래를 위해서도, 란즈슈타인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게 최선의 길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소설 속의 에르나스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말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다.”

“도련님.”

“아까 말했던 대로, 나는 동부 해안까지 계속 진격할 거다.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하면서.”

“에르나스 도련님, 부디…….”

“그리고 해안에 도착하면… 나 혼자서 결판을 짓겠다고 영묘로 들어가겠어.”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알레이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다음부터는… 아버지와 직접 만나 얘기해 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도련님, 그러면…….”

“착각하지 마라. 나는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골육상쟁을 막고 싶다면, 네가 아버지한테 잘 얘기해 봐. 앞으로 나한테 무엇을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아버지 입으로 제대로 설명을 듣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알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책임지고 가주님을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이만 가 봐. 너하고 같이 있는 모습을 남들이 보면 곤란하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알레이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도련님.”

“그래, 아버지한테 잘 얘기해 봐.”

“물론입니다. 그러면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알레이시의 모습이 사라졌다.

은신을 사용한 상태로 여기서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우…….”

알레이시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나스 흉내를 내는 것도 쉽지 않군.’

내가 직접 에르나스 흉내를 내면서 느낀 거지만… 에르나스의 본질은 결국 어린애다.

아버지에게 외면당했다는 콤플렉스가 내면 깊숙이 박혀 있다.

‘어떻게 보면 땡깡을 부리는 어린애 같은 태도였는데… 자연스러웠을지 모르겠네.’

알레이시는 오랫동안 에르나스를 지켜봐 온 친척 어른이다.

아버지인 페르펙티오 이상으로 에르나스의 내면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알레이시는 나를 만나고 어떻게 생각했으려나.’

역시 에르나스 도련님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쪽일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말해 두었으니… 페르펙티오와 알레이시는 영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내가 영묘로 쳐들어가도 다짜고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걸 이용해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산산조각 난 뼈다귀… 비룡공의 잔해를 확인했다.

‘하필이면 알레이시가 그 타이밍에 나타나는 바람에, 비룡공에게서 정보를 듣지 못했군.’

비룡공은 스스로 모든 정보를 털어놓을 분위기였다.

그걸 전부 다 듣고 비룡공의 처우를 결정할 생각이었는데, 알레이시가 멋대로 비룡공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그래도 뭐… 상관없지.’

나는 비룡공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근처에 떨어져 있던… 시옥검을 집어 들었다.

“…….”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아티팩트 ‘시옥검’에 대한 이해도가 몇 %입니다, 아티팩트 ‘시옥검’의 잠재 능력이 개방됩니다… 이런 메시지가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

‘내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시옥검은 소설에 직접 등장하지 않은 아티팩트다.

비룡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이쪽 세계로 끌려왔으니까.

그래서 이해도 부족으로 별도의 메시지가 표시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비룡공과 비슷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옥검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시옥검에서 기괴한 촉수가 뻗어 나와 비룡공의 두개골로 향했다.

‘비룡공은 이걸로 시체의 기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설정이었지.’

촉수가 비룡공의 두개골에 접촉한 순간, 막대한 기억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불필요한 기억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현재 놈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영묘가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그렇게 나한테 필요한 정보만 받아들이면 되니까.

‘그리고…….’

검신급.

철혈검제가 추구하고 있는 그 경지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내가 이 이야기의 결말에 도달할 수 있으려면… 검신급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니까.

* * *

동부 해안.

염옥공의 불꽃에 타 죽은 시체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바닷가에, 거대한 건조물이 조용히 군림하고 있었다.

철혈검제가 잠들었던 고대의 이동 요새 ‘영묘’였다.

영묘 주변은 특별히 조직된 ‘친위대’가 지키고 있었다.

친위대 중 절반은 란즈슈타인 가문 출신이다.

나머지는 바스티안 가문 등 여러 곳에서 긁어모았다.

“…….”

경비 태세를 점검하면서, 알레이시는 영묘로 접근했다.

오늘은 페르펙티오에게 보고할 소식이 많았다.

특히… 에르나스와의 만남을 자세히 보고해야 했다.

“멈춰라, 알레이시 란즈슈타인.”

“……!”

영묘 입구에 서 있는 해골의 모습을 확인하고 알레이시는 다급히 무릎을 꿇었다.

“무극공(無極公) 전하.”

무극공.

알레이시와 페르펙티오, 에르나스 등 모든 란즈슈타인의 선조인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

6공작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가… 영묘 입구에서 알레이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묘에는 들어갈 수 없다.”

“어째서입니까?”

“페르펙티오가 말하길, 최종 단계에 들어갔다고 하더군.”

“아……!”

이 말은… 철혈검제의 진정한 부활이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네가 페르펙티오의 오른팔이라고 해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누구의 방해도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게 페르펙티오의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페르펙티오의 말이라면 따라야 한다.

란즈슈타인 가문에서 페르펙티오의 말은 절대적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페르펙티오에게 에르나스 얘기를 할 수 없다.

“알레이시.”

“네, 무극공 전하.”

“검귀들에게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얘기를 들었다.”

“……!”

검귀들 중에는 에르나스의 싸움을 직접 목격한 그래듀에이트도 많다.

무극공이 관심을 보이면 자세히 얘기해 줬을 것이다.

“여러 소문들을 들어 보니… 아무래도 유스레흐트를 쓰고 있는 것 같더군.”

“그건…….”

“내 생각이 틀렸나?”

“아닙니다. 맞습니다.”

알레이시는 순순히 인정했다.

애초에 유스레흐트는 무극공이 입수하여 란즈슈타인 가문에 남긴 아티팩트다.

“아쉽구나.”

“네?”

“그 녀석이 란즈슈타인 가문의 검술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검술로 절대 강자가 되었다니 말이다.”

“……!”

“페르펙티오가 아들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무극공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온화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알레이시, 에르나스가 여기까지 올 것 같나?”

“네, 아마도…….”

“그러면 내가 에르나스를 맞이해야겠군.”

최초의 란즈슈타인 공작, 무극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란즈슈타인 무극검술(無極劍術)을… 내가 몸소 에르나스 녀석에게 가르쳐 주도록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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