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3연전 (4)
뼈로 만든 검… 골검(骨劍)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비룡공이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을 사용한 것이다.
클라우비체의 주특기였던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은 비검술 및 어검술에 특화된 원거리 공격 검술.
드래곤 형태 크리처에 탑승하여 하늘을 날고 있는 비룡공이 이 검술을 사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나도 지금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지.’
리히테나워 경신술이 SS랭크로 성장한 상태에서 창뢰검형의 노하우를 적용하니, 마력을 활용해 장시간 비행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마력이 외부로 유출되긴 하지만, 그건 니플가디르로 회수하면 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창뢰검형을 전개하면…….
‘공중에서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있지.’
쿠릉!
천둥소리와 함께 지그재그로 움직여 골검을 피했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회피 기동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비룡공의 시옥검(屍獄劍)은 시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
지금 타고 있는 크리처에서 암살자의 뼈를 뽑아내 무기로 만들 수 있다.
‘또 온다!’
쿠쿠쿵!
이번에는 두 자루의 골검이 동시에 날아왔다.
하나는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피했고, 다른 하나는 흑천검으로 받아쳤다.
‘클라우비체와 싸웠을 때하고 비교하면… 지금이 더 쉽군.’
슈라이에르 본성에서 클라우비체와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클라우비체의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은 비룡공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내 실력은 그때보다 훨씬 좋아졌으니, 당연히 지금이 더 수월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공격해 봐라, 비룡공.’
나는 염살검까지 뽑아 들었다.
양손에 검을 들고 요격 준비를 마쳤다.
‘크리처에서 뼈다귀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발버둥 쳐 보란 말이다.’
마음속으로 건넨 말에 호응하듯이, 골검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빌어먹을!’
비룡공은 마음속으로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을 사용해 계속 골검을 날리고 있지만, 에르나스한테 명중시킬 수 없었다.
에르나스는 금강공을 상대할 때처럼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공격에 대응했다.
간발의 차이로 골검을 피하기도 하고, 양손의 검을 휘둘러서 골검을 받아치기도 했다.
‘이래서는… 클라우비체와 똑같은 꼴을 당한다!’
비룡공은 혈검장로회 수석 장로의 기억을 되새겼다.
혈검장로회는 에르나스와 클라우비체의 싸움도 지켜봤다.
클라우비체는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을 사용해 에르나스를 제압하려 했지만, 에르나스는 검을 휘둘러 모조리 받아치려 했다고 한다.
급기야 에르나스의 반격술에 부상을 입었고, 접근을 허용하여 패배했다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비룡공도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청월공과 금강공을 쓰러뜨린 놈과 접근전이라니, 너무 위험하다!’
비룡공은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검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래곤 형태 크리처 위에서 일방적으로 폭격을 하는 게 특기다.
접근전에서는 청월공이나 금강공보다 뒤지는 게 엄연한 사실이었다.
‘젠장……!’
비룡공은 골검을 더 많이 전개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에르나스를 격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떠냐……!’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골검 하나하나를 마력으로 컨트롤하면서 에르나스를 노렸다.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골검으로 3차원 포위망을 만들어 격추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
이것도 통하지 않았다.
에르나스는 복잡한 궤도를 전부 이해한 것처럼 유유히 포위망을 돌파했다.
‘대체 어떻게 된 공간 지각력이지?!’
평범한 인간하고는 감각이 다른 걸까.
아니면 어떤 아티팩트의 힘일까.
시옥검으로 시체의 기억을 흡수하여 막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비룡공이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젠장……!’
역시 에르나스를 셋이서 동시에 공격해야 했다.
협공을 하는 거라면 비룡공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청월공과 금강공을 전방에 내세운 뒤,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하면 되는 거니까.
아무리 에르나스라도 셋에게 집중 공격을 하면 당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청월공이 혼자서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셋이서 의논하여 방침을 정해야 했다.
비룡공과 금강공이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청월공 혼자 달려 들었고, 결국 에르나스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패배했다.
급기야 금강공까지 패배하면서, 비룡공 혼자 남게 되었다.
‘가만있자, 이건 혹시…….’
어쩌다 보니 에르나스에게 각개격파당하고 있었다.
혹시 에르나스는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의도한 것 아닐까?
‘아, 아니, 지나친 생각이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페르펙티오의 아들로서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청월공 등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행동을 완벽히 예상할 수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만약 에르나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神)이다!’
그렇다.
인간의 영역에서는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세계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신의 영역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에르나스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거라면…….
‘폐하처럼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신의 영역.
그것은 철혈검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의념으로 심검을 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계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려 하고 있다.
그게 언제 가능할지는 비룡공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윽……?!”
바로 그때.
에르나스에게서 무서운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 정체를 눈치채고 비룡공은 경악했다.
‘골검?!’
이쪽에서 발사한 골검을 낚아채서, 비검술로 날린 것이다.
게다가 푸른 번개에 휩싸인 상태였다.
직선적인 공격이긴 했지만, 속도만큼은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감히……!”
비룡공은 모욕감을 느꼈다.
에르나스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에르나스를 격추하기 위해, 비룡공은 더 많은 골검을 날리려 했다.
“앗……!”
그 순간, 비룡공은 깨달았다.
너무 많은 뼈다귀를 빼냈기 때문에, 크리처가 제대로 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거기까지인가?”
“……!”
어느새 목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까지 에르나스가 접근한 상태였다.
경악하는 비룡공 앞에서 에르나스가 흑색의 검을 던졌다.
푸른 번개에 휩싸인 검을 막기 위해 비룡공은 다급히 시옥검을 치켜들었다.
“아……!”
하지만 에르나스의 표적은 비룡공이 아니었다.
시커먼 검은 비룡공이 아니라, 비룡공이 타고 있던 크리처에게 꽂혔다.
“……!”
충격파에 크리처가 갈기갈기 찢어졌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룡공도 함께 지상으로 추락을 시작했다.
“이런……!”
마력을 사용해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에르나스가 접근하는 게 더 빨랐다.
“……!”
에르나스가 염살검을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비룡공은 시옥검으로 막아 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에르나스……!”
콰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린 칼날이 비룡공을 덮쳤다.
* * *
나는 이름 모를 숲에 착지했다.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장시간 비행 때문에 전신이 흥분 상태에 놓인 것 같았다.
육체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비룡공.”
“끄으으…….”
숲속에 비룡공이 쓰러져 있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진 상태였지만, 놀랍게도 아직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비룡공이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항복한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와서?
“결심하는 게 너무 느리군, 비룡공.”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당혹스러워서…….”
비룡공이 두개골을 까닥거렸다.
고개를 숙이는 동작 같았지만, 뼈가 다 어긋나 있어서 좀 이상했다.
“모든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
“너희한테도 목숨이라는 게 있나?”
“적어도 저는 아직 제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목숨이 아쉬워서 이러는 거고요.”
“그것도 그렇군.”
비룡공이 클라우비체와 닮았기는 해도, 역시 다른 인물이다.
클라우비체는 적어도 목숨 구걸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서 굴욕을 당하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딱히 6공작이라고 해서 후손들보다 위대한 인물 같지는 않단 말이지.’
이 세계에서는 위인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6공작들도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비룡공처럼 추하게 밑바닥을 드러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모든 정보라… 어떤 것 말이지?”
솔직히 나는 비룡공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비룡공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여 크리처로 만든 악당이다.
게다가 도망치기 전에 크리처와 검귀들에게 명령을 내려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공격하게 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항복했다면 몰라도… 이제 와서 저렇게 목숨 구걸을 하는 걸 받아 줄 수는 없다.
“지금 영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묘에 남아 있는 전력은 어느 정도인지, 그런 것들을… 모조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흠…….”
“앗, 란즈슈타인 가문 출신이니 그런 건 굳이 알려 드리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까요?”
나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비룡공이 지레짐작으로 허둥지둥 떠들어 댔다.
“그, 그렇다면… 철혈검제 폐하가 추구하는 경지에 대한 정보는 어떠십니까?”
“철혈검제가 추구하는 경지?”
“검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 말고도… 철혈검제 폐하가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초월적 경지입니다.”
비룡공이 턱을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검신급(劍神級)의 경지… 제가 알고 있는 걸 전부 알려 드리겠습니다.”
검신급.
그것은 검제급조차 초월한 곳에 있는 경지다.
철혈검제는 검제급에서 만족하지 않고 검신급이 되려 한다는 설정이다.
의념으로 모든 한계를 초월하여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만… 자세한 설정은 나도 생각해 두지 않았다.
‘소설을 끝까지 쓰지 못한 상태에서 이쪽 세계로 온 거라… 정보가 부족해.’
놈들의 내부 정보는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두는 게 좋다.
비룡공를 용서해 줄 생각은 없지만, 일단 얘기는 들어 봐야겠다.
“좋아, 비룡공. 그렇다면…….”
바로 그때.
묘한 시선을 느끼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가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마력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혈검장로회의 은신술? 아니, 이건…….’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을 사용했다.
검제급의 힘을 최대한 활용해, 희미한 반응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전방위로 마력을 뿌리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으니… 반응이 왔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S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다른 나무와 전혀 다를 게 없는 것 같은 침엽수.
그곳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훌륭하십니다, 에르나스 도련님.”
새카만 옷을 입은, 은백색 머리카락의 여성.
그 얼굴 생김새를 살펴보면, 나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는 거지만,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깨달았다.
“란즈슈타인 가문에서도 제 은신을 간파할 수 있는 건 가주님 정도였습니다. 정말로 엄청난 실력을 갖게 되셨군요.”
“알레이시…….”
알레이시 란즈슈타인.
에르나스의 친척으로,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의 실력자.
그동안 제국 곳곳에서 암약하며 영묘 안으로 정보를 전달한 것이 그녀다.
“가주님도 도련님의 성장을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레이시가 나한테 손을 뻗었다.
“가주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와 같이 가시죠.”
이쪽 세계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란즈슈타인 가문이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