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3연전 (3)
금강공은 자신의 파사검에 금이 갔다는 걸 눈치챘다.
에르나스의 검기가 자신의 검기를 부수고, 칼날 자체에 대미지를 입힌 것이다.
금강공은 자신이 고안한 금색 검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어떤 검기보다 위력적이고, 어떤 검기보다 견고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 검기가 깨졌다는 사실은 금강공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하하……!”
하지만, 금강공은 호탕하게 웃었다.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군가와 치열하게 싸우는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천 년 만이로군!”
생각해 보면, 영묘에 잠들기 전에도 한동안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했다.
마인이나 엘더 드래곤 같은 강적들을 다 쓰러뜨린 상태라, 제대로 된 맞수가 없었다.
토벌해야 하는 잔챙이들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놈들한테 직접 검을 휘두르는 건 비효율적이다.
결국 금강공은 부하들에게 잔챙이들을 토벌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다고 6공작끼리 싸울 수도 없었기 때문에, 금강공은 계속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갈증이 지금 이곳에서 해소되고 있는 것이다.
“좋다!”
금강공은 투지를 불태웠다.
검기가 손상되고 파사검에도 금이 가긴 했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에르나스의 목을 날릴 수 있다면 금강공의 승리다.
“오오오……!”
전력을 다한 힘겨루기.
파사검을 완전히 파괴하려는 에르나스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남아 있는 마력을 끌어올려 검기를 끊임없이 보강했다.
에르나스의 검기가 이쪽의 검기를 부순다면, 그 손상을 더 빨리 수복하면 된다.
그리고 에르나스를 떨쳐 내고 반격하면 되는 것이다.
“하아아압……!”
에르나스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육체가 검과 하나가 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정신도 검과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에르나스를 상대로, 금강공도 모든 것을 쏟아 냈다.
“오오오오……!”
그리고 어느 순간 균형이 깨졌다.
파사검에 더 큰 균열이 생기고, 에르나스의 검이 파고들어 왔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소리와 함께 파사검이 깨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금강공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이다!”
손목을 비틀면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부러진 검으로 에르나스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에르나스의 검이 먼저 닿았다.
“……!”
모든 힘을 칼날에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에, 호신기도 전개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무방비한 상태였던 금강공의 골격에 에르나스의 칼날이 파고들었다.
쇄골을 부수고, 흉골을 부수고, 늑골을 부수고, 척추까지 부쉈다.
“하하…….”
금강공은 웃었다.
철혈검제를 향한 충성심도 의구심도 어느새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지금 금강공에게 남아 있는 건 검사로서의 만족감뿐이었다.
“많이 배웠다, 에르나스.”
에르나스를 만나서 다행이었다.
이 만남이 있었기에, 천 년 만에 제대로 된 싸움을 즐길 수 있었다.
그 사실이 금강공을 웃게 만들었다.
“나야말로, 금강공.”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에르나스가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두개골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칼날의 궤적을, 금강공은 웃으면서 지켜봤다.
* * *
많은 것을 얻었던 싸움이었다.
금강공의 잔해 앞에서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온몸에서 피로가 느껴졌다. 정신적인 피로도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전력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의지가 아직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 남았어.’
청월공에 이어 금강공까지 쓰러뜨렸으니, 이제 남은 건… 비룡공이다.
근처에서 아직 마력이 느껴진다.
숨을 죽인 채 우리들의 싸움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까 가장 동요한 게 비룡공이었지.’
비룡공은 6공작 중에서 가장 교활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후손인 클라우비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클라우비체는 결국 마지막까지 나를 인정하지 않고 죽었지만… 비룡공은 상황이 다르다.
‘비룡공도 철혈검제에게 토사구팽당하는 건 원치 않을 거야.’
청월검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금강공은 일단 철혈검제한테 확인해 보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비룡공은 크게 동요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철혈검제를 배신하고 아군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비룡공의 충성심이 다른 공작들보다 약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비룡공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
쿠쿵!
무너진 요새의 잔해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구쳤다.
혈검장로회의 수석 장로 등 여러 사람의 시체를 사용해서 만든 크리처였다.
“비룡공!”
날개 달린 드래곤 형태의 크리처 위에, 해골 하나가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가만히 침묵하고 있었던 비룡공이었다.
“도망치는 건가!”
청월공과 금강공의 복수를 시도하지도 않고, 나하고 교섭을 시도하지도 않고.
혼자서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다니, 정말로 이기적인 놈이다.
“……!”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크리처와 검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룡공이 도망치기 전에 총공격을 명령했을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아군이 놈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아니…….’
나는 바로 달려가려 했지만, 그 직후에 생각을 바꿨다.
아군은 이미 제대로 진형을 갖춰 놓은 상태고, 욜스와 안겔라 같은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도 있다.
각지에서 온 원군 덕분에 전력도 충실해졌고, 주요 인물들은 호신강기도 터득했다.
그들의 힘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들을 믿자.’
비룡공이 어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도망치게 내버려 둬서 좋을 게 없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따라잡아 해치워야 한다.
흑천마교와 싸울 때하고 마찬가지로, 비룡공을 쓰러뜨리면 크리처들도 약체화될 테니까.
‘리히테나워 경신술에 창뢰검형의 노하우를 반영해서…….’
드래곤 형태의 크리처를 타고 날아가는 비룡공을 추격하려면 평범하게 뛰어가는 것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창뢰검형을 장시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우니, 경신술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리히테나워 경신술(S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S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SS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파앗!
하늘로 솟구쳤다.
바람을 가르고 하늘을 날며, 비룡공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 *
“하앗!”
욜스가 대검을 휘두르자, 드래곤 형태의 괴물이 일도양단되었다.
“저것이 욜스 교수님의 그라투시아 도룡검술……!”
“욜스 교수님이 계시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맞서 싸워라!”
다른 그래듀에이트들의 환호 속에서, 욜스는 선두에 서서 크리처들을 도륙했다.
‘도룡검’이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욜스는 드래곤 같은 대형 생명체와의 전투를 특기로 한다.
주력 검술인 그라투시아 도룡검술도 드래곤을 잡기 위한 검술이다.
그동안 그래듀에이트끼리의 싸움이 지속되어 제대로 활용할 기회가 없었는데, 비로소 진면목을 보여 줄 때가 되었다.
“세리느! 동료들과 함께 내 옆에서 움직여라!”
“네, 보좌하겠습니다!”
세리느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지시를 내리면서, 욜스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에르나스가 자리를 비웠으니, 선두에 서서 적들과 맞서 싸우는 건 욜스의 역할이었다.
“욜스 칼레시우스!”
이름 모를 그래듀에이트… 아니, 검귀가 욜스에게 달려들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욜스는 상대방이 필살의 일격을 날리려 한다는 걸 눈치챘다.
“……!”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온 공격은 욜스에게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칼날은 욜스의 복부를 찔렀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욜스가 전개한 호신강기에 완벽히 막힌 것이다.
“네놈, 호신기가 왜 그리 단단… 크악!”
파직!
놈이 당혹스러워하는 사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푸른 검기가 전개되었다.
검귀의 목을 베어 버린 뒤에도 욜스는 종횡무진 움직였다.
“검귀의 공격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하지만 그 공격이 어느 시점에 전개될지 미리 꿰뚫어 볼 수 있다면, 너희들 실력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네……!”
“에르나스가 전수한 호신강기로 맞서라! 너희들이라면 할 수 있다!”
그렇게 학생들을 격려하며 욜스는 검을 휘둘렀다.
저 멀리 폐허에서 누군가가 솟구치는 모습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쪽은 우리가 맡겠다! 너는 네가 할 일을 해라, 에르나스!’
에르나스가 적의 수장을 쫓는 동안, 욜스와 그래듀에이트들은 잔챙이들을 토벌할 것이다.
* * *
‘빌어먹을!’
비룡공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비행하고 있었지만, 비룡공의 마음은 어두웠다.
‘폐하가 우리를 토사구팽 할 생각이었다니……!’
아까 에르나스가 얘기해 준 정보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철혈검제는 6공작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검의 세계를 완성한 뒤 토사구팽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듣고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다른 얘기였다면 이렇게 동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르나스가 교묘한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룡공은 에르나스의 말을 사실이라고 느꼈다.
그동안 느껴 왔던 의문들을 모조리 해소해 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공작들처럼 단순 무식하지 않으니까……!’
그동안 이해가 안 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다른 공작들은 다 폐하의 뜻이라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비룡공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에르나스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그 의도가 명확해진다.
‘폐하는… 검의 세계가 완성된 뒤, 우리들을 토사구팽하고 란즈슈타인 가문을 중용할 생각인 거야!’
애초에 현시점에서 1등 공신은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이라 할 수 있다.
그 남자가 없었다면 부활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검의 세계에서 그 남자를 2인자로 삼아 통치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6공작들은 굳이 필요 없다.
‘설마 그놈이 영묘 쪽에 남아 있는 것도……!’
페르펙티오의 선조,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
그도 영묘 쪽에서 대기하고 있다.
설마 페르펙티오와 결탁하여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건 아닐까.
‘젠장, 그렇다면 차라리……!’
비룡공은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더 이상 철혈검제를 위해 싸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에르나스와 손을 잡고 함께 철혈검제와 싸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대로 몸을 숨긴 뒤, 철혈검제와 에르나스가 서로 싸우다가 공멸(共滅)하는 걸 기다리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비룡공이 이 세상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
온갖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거대한 마력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다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에르나스가 하늘을 날아 추격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저런 속도를……!’
이대로 가면 따라잡힌다.
청월공과 금강공을 연달아 쓰러뜨린 괴물에게 따라잡히는 것이다.
비룡공으로서는 절대로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젠장……!’
비룡공은 자신의 시옥검(屍獄劍)을 치켜들었다.
동료들의 검과는 달리 실용성이 떨어지는 기괴한 형상의 검이다.
이건 시옥검의 정체가 고대의 아티팩트이기 때문이다.
“하앗……!”
비룡공이 타고 있는 크리처에서 뼈다귀가 솟구쳤다.
크리처의 원료가 된 암살자들의 뼈다.
비룡공은 시옥검의 기능으로 뼈를 날카롭게 변화시킨 뒤, 손을 치켜들었다.
“죽어라, 에르나스!
파앙!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에 의해 발사된 골검(骨劍)이 바람을 가르고 에르나스를 덮쳤다.
공중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