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3연전 (2)
청월공을 쓰러뜨린 뒤.
나는 아티팩트 ‘니플가디르’를 사용해 마력을 회수했다.
눈보라처럼 백화검형를 전개하느라 마력을 대량으로 방출했기 때문이다.
청월공에게서 흘러나온 마력까지 흡수하여 소모된 마력을 회복하고 있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니플가디르를 갖고 있던 건가.”
금강공의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너진 기둥 위에 서 있는 금강공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염옥공이 사용하던 아티팩트다. 이그니아스 가문을 무너뜨리고 빼앗은 모양이군.”
“…….”
“그동안 니플가디르를 사용해 적들의 마력까지 흡수해 온 건가. 네가 왜 그렇게 강한 건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금강공은 아까보다 침착해 보였다.
고래고래 거칠게 소리치더니, 지금은 전혀 달랐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청월공을 상대하는 네 모습에서는 탁월한 검술 철학이 느껴졌다.”
“글쎄, 철학이라고 할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물론, 내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한 것들은 있다.
어떤 것들은 내가 소설가로서 이 세계 바깥에서 상상한 것이고… 어떤 것들은 이 세계에 와서 깨달은 것이다.
“너는 다른 스승 없이 스스로 자신만의 검술 철학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그건… 맞아.”
조금 놀랐다.
오늘 처음 만나는 금강공이 이런 것까지 꿰뚫어 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그렇군.”
금강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서는 폐하와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철혈검제하고?”
“그렇다. 폐하께서도 스승 없이 스스로의 검술 철학을 만들어 내셨으니까.”
“…….”
이 얘기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건 내 설정에도 없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철혈검제는 자세한 설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직접 등장하려면 한참 남은 상태에서 이쪽 세계로 끌려왔기 때문에, 아직 자세한 인물상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에르나스… 너는 아까 폐하께서 우리를 토사구팽 하실 거라고 했다. 그게 사실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사실이야.”
“흐음…….”
철혈검제가 6공작을 토사구팽 할 계획이라는 건… 내가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적어 놓은 메모에 있는 얘기다.
그런 것도 이 세계에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네 말을… 전적으로 신용할 수는 없다.”
“…….”
“하지만,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금강공의 목소리가 잠시 끊겼다.
만약 살아 있는 인간이었으면 길게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
“에르나스, 그동안 나는 폐하를 위해 전장에 나서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말하며 금강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인, 엘더 드래곤, 몬스터 엠페러… 그런 놈들과 싸우면서 나는 환희를 느꼈다. 폐하를 위해 싸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지.”
“…….”
“지금 이 싸움도 나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끝나고 난 뒤, 내가 더 이상 쓸모없어진 사냥개처럼 처분당해야 한다면…….”
금강공이 꽉 주먹을 쥐었다.
“대체 어디에 영광이 있냔 말이다.”
“…….”
“나에게는 긍지가 있었다. 폐하를 위해 싸우는 검사로서의 긍지다. 하지만 폐하께서 나를 검사가 아니라 개처럼 취급하신다면, 그 긍지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그렇게 말하면서 금강공이 나를 노려봤다.
“그러니… 내가 직접 확인할 것이다. 페르펙티오에게 그리고 철혈검제 폐하에게…….”
“…….”
“내 처신을 어떻게 할지는, 그 이후에 결정하도록 하지.”
금강공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그러니…….”
스릉!
금강공이 거대한 검을 뽑았다.
“지금 여기서는, 너를 쓰러뜨리겠다.”
“…….”
“말해 두지만, 설령 폐하께서 나를 토사구팽 할 생각이라고 해도 나는 네 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포섭할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애초에 금강공이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도발과 선동을 위해 꺼낸 얘기였으니까.
“에르나스, 네가 아까 청월공을 상대로 보여 준 검술… 매우 훌륭했다.”
“…….”
“솔직히 피가 끓더군, 하하하.”
금강공이 호쾌하게 웃었다.
이런 농담까지 입에 담는 걸 보니, 금강공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했다.
“에르나스, 나는 한 명의 검사로서 너와 싸우고 싶다.”
“그게 네 결정인가?”
“그렇다. 모든 것을 다 잊고, 검사 대 검사로서 전력을 다해 싸우고 싶군.”
“…….”
“복잡한 건 너와의 싸움이 끝난 뒤 생각하겠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금강공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무인(武人)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설정도 있고, 생전에는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무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미하일 발트펠트도 원래는 이런 성격이었을지도.’
문득 예전에 싸웠던 미하일을 떠올렸다.
클라우비체의 계략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미하일과는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금강공도 상황에 따라서는 내 아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금강공이 들고 있는 대검은 파사검(破邪劍)이라 한다.
그 커다란 칼날에 금색 검기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발트펠트 가문 특유의 검기로, 적의 검기를 부수는 효과가 있다.
“…….”
나는 흑천검과 염살검을 양손에 든 채 금강공과 대치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다.
“시작하지.”
쿠웅!
바닥을 박차며 금강공이 튀어나왔다.
금강공은 내 머리를 향해 파사검을 내리쳤다.
나는 흑천검으로 막으려 했지만, 곧바로 염살검까지 함께 동원했다.
“윽……!”
쿠쿵!
두 발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파사검을 막아 내기는 했지만, 충격이 엄청났다.
내가 충격을 견디는 사이, 금강공이 크게 몸을 틀었다.
“하압!”
꽈앙!
마력이 실린 주먹이 내 옆구리를 노렸다.
금강공의 커다란 주먹은 그 자체가 위협적인 둔기다.
환골탈태를 거쳤다고는 하나, 여전히 호리호리한 에르나스의 몸 정도는 일격에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가 필요했다.
“음……?!”
금강공의 주먹이 공중에서 튕겨져 나갔다.
흑천검이나 염살검으로 막은 것은 아니다.
그 부위에 마력의 방어막이 전개되었을 뿐이다.
“이건 무슨 기술이냐?!”
“검막(劍幕).”
염옥공의 디 인페르노를 막을 때 만들었던 기술이다.
그때는 전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국소 부위를 막는 작은 방어막을 전개했다.
날카로운 검기 앞에서는 찢겨 나가겠지만, 둔기 같은 주먹은 막아 낼 수 있다.
“으음……!”
쿠쿵!
검기와 검기가 충돌하면서 굉음이 발생했다.
금강공은 거대한 파사검을 휘두르면서 내 방어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내 검기를 버티다니……!”
발트펠트 가문의 금색 검기는 적의 검기를 파괴한다.
하지만 내 검기는 조금도 흠집이 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내 검기는 그동안 사용하던 검강 이상으로 견고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금강공의 검기가 아무리 강력해도, 버틸 수 있다.
“으음!”
금강공의 자세가 땅으로 꺼졌다.
거대한 몸집답지 않게 기민한 움직임이다.
자세를 극한까지 낮춘 뒤 땅을 쓸듯이 내 하체를 노렸다.
내가 공중으로 뛰어 공격을 피하자, 그럴 노린 듯이 튀어 올랐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엄청난 기세의 대공기였다.
하지만 그 공격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창뢰검형을 사용해 한 줄기 번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네놈……!”
천둥 소리를 발생시키며 종횡무진 움직였다.
하지만 금강공은 쫓아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두 발을 고정한 채, 탄탄한 자세로 내 움직임을 기다렸다.
‘그렇다면……!’
금강공을 향해 벼락 같은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금강공은 몸을 비틀어 그 공격을 정확히 막아 냈다.
파사검의 거대한 칼날은 그 자체가 방패였다.
“계속해서 와라!”
포효하는 금강공.
나는 금강공을 중심으로 하여 공전하는 천체처럼 그 주위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창뢰검형을 사용해 사방에서 금강공을 공격했다.
“오오오……!”
기합 소리를 내면서 금강공이 내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금강공은 난공불락의 요새이고, 나는 요새를 포위하고 공성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 금강 그 자체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도 금강공의 방어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초조함이나 불안감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즐거웠다.
전력을 다해 금강공과 검을 부딪치면서, 일종의 쾌감과 비슷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금강공이 내 공격을 어떻게 막아 내는지 확인할 때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내 다음 공격은 어떻게 막아 낼지 예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 이런 느낌인가.’
금강공도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뼈밖에 없어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동작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런 검사와 싸우고 있으니, 내 즐거움도 배가되었다.
‘이래서 나하고 싸우고 싶다고 한 거군.’
승리라는 결과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싸우는 과정 자체도 의미가 있다.
적을 쓰러뜨리는 카타르시스 못지않게, 적과 검을 맞대며 전력을 다하는 쾌감도 달콤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오오오……!”
“하압……!”
금강공은 방어에, 나는 공격에.
서로 전력을 다하면서 계속해서 검을 부딪쳤다.
지금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언제 이 균형이 무너질지 모른다.
방어 측이 요새를 뛰쳐나와 공격 측의 목을 찌를 것인가.
공격 측이 요새를 무너뜨려 방어 측의 목을 날릴 것인가.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너뜨린다!’
금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요새.
이걸 무너뜨리기 위해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금강공이라는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공성 병기가 필요하다.
“……!”
나는 공중으로 솟구치면서 염살검에 마력을 담았다.
그리고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7식 창뢰비강으로 사출했다.
푸른 번개에 휩싸인 염살검이 금강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 정도 비검술……!”
콰앙!
금강공이 코웃음을 치면서 염살검을 받아쳤다.
아무리 창뢰비강이라고 해도, 검제급의 힘을 지닌 금강공에게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염살검은 그대로 튕겨 나가 어딘가에 처박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나는 흑천검을 두 손으로 잡고 모든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무너뜨린다!’
예전에 나는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활용해 파천검강을 만들었다.
하지만 파천검강의 위력으로도 부족하다.
금강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극강의 공격력.
그것을 구현해야만 한다.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최강의 일격을 위해 재구성한다.
‘파천검형(破天劍形).’
몸도 마음도 단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존재하도록.
의념으로 궁극의 신검합일을 구현한다.
검의 세계가 나라 전체를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드는 거라면, 이건 내 모든 것을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 존재 전부를 담은 일격이다.
“……!”
금강공이 눈을 크게 뜨면서 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금강공을 향해, 전력을 다한 흑천검을 내리쳤다.
금색의 빛이 폭발하면서, 금강공의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