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3연전 (1)
청월공은 남부 아그리파 가문의 선조.
당연히 빠른 움직임을 특기로 한다.
하지만 심검으로 싸우는 거라면…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죽어라!”
쿠웅!
청월공의 무기인 참공검(斬空劍)이 흑천검과 충돌했다.
자신의 공격이 틀어막히자 청월공이 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놈……!”
“하압!”
나는 기합 소리와 함께 자뢰검형을 전개했다.
흑천검으로 참공검을 받아치면서, 염살검으로 청월공의 빈틈을 노렸다.
공격 담당과 방어 담당을 나누는 랭커스터 비익검술의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
“이것은……!”
역시 브랜틀리의 선조다.
눈치가 빠른 듯했다.
“랭커스터 비익검술?!”
파파팟!
현란한 연속 공격이 청월공을 덮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하고만 있을 청월공이 아니었다.
청월공이 자뢰검형의 현란함에 정교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네놈, 어떻게……!”
정확한 몸놀림으로 내 공격에 맞서면서, 청월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랭커스터 비익검술을 사용하는 것이냐?!
“이게 정말로 랭커스터 비익검술이라 생각하나?”
“뭐라고?”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큰코다칠 텐데.”
자뢰검형은 랭커스터 비익검술만 반영된 검술이 아니다.
애초에 마르테리스 이륜검술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하여 만든 자뢰검기에서 출발한 거니까.
“……!”
콰릉!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흑천검이 청월공의 어깨로 쇄도했다.
청월공이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그 직후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의 정교한 연속 공격이 쏟아졌다.
“이런……!”
콰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청월공이 밀려 나갔다.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공격을 완전히 막아 내지는 못했다.
걸치고 있던 우아한 예복이 갈기갈기 찢겨,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뼈다귀가 드러났다.
“…….”
청월공의 눈구멍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면 눈매가 매서워졌을 것이다.
“그렇군. 염옥공과 이천공을 쓰러뜨린 건 우연이 아니었던 건가.”
“…….”
“좋다.”
그 순간.
청월공에게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너는 폐하의 적이다. 전력을 다해 쓰러뜨려 주마.”
그렇게 말한 뒤, 청월공이 시선을 움직였다.
그 방향에는 비룡공과 금강공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룡공, 금강공, 끼어드는 건 허용하지 않겠다.”
“청월공…….”
“어느 쪽에 가세하든, 마찬가지다.”
콰앙!
바닥을 박차고 청월공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죽어라, 에르나스.”
“……!”
아그리파 청월검술.
공간을 절단하는 아그리파 가문의 독문 검술이 온다.
‘피해야 한다!’
현재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창뢰검형을 사용했다.
한 줄기 번개가 되어 회피하자, 곧바로 내가 있던 자리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요새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안 그래도 폐허가 된 요새였는데,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으로 벽과 기둥이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유효 범위가 넓어!’
브랜틀리의 아그리파 청월검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만약 무방비한 상태에서 청월공의 기습을 받으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
청월공이 말없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무너져 내리는 요새의 파편 사이에 섞여, 나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거리를 좁힐 필요도 없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은 상당히 먼 거리까지 도달하니까.
“……!”
창뢰검형으로 피하자, 또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요새 전체가 연속적으로 붕괴하고 있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
무너진 기둥을 발판 삼아, 청월공이 연속적으로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날렸다.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막아 낼 수 없다.
검막도 호신강기도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에는 소용이 없다.
정통으로 명중하면 그냥 내 몸이 두 동강 날 것이다.
그렇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창뢰검형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브랜틀리의 선조야. 빈틈이 없어.’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나는 계속 기회를 엿봤다.
청월공은 내 접근 자체를 허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정교하게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으로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후퇴해서 유효 범위 바깥으로 도망치면 되겠지만…….’
내가 여기서 꽁무니를 빼서는 안 된다.
청월공이 스스로 나와의 일대일 대결을 바랐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여기서 반드시 청월공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러니……!’
나는 한계 이상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미 창뢰검형에 대량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백화검형……!’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물론, 실제로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정체는 무수히 많은 얼음의 검기다.
순식간에 주위에 하얀 눈보라가 가득 찼고…….
‘보인다!’
눈보라가 갈라지는 모습이 정확히 포착되었다.
아그리파 청월검술로 공간이 어떻게 갈라지는지, 그 궤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음……!”
청월공도 사태를 파악했다.
이 눈보라 속에서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펼치면 공간 절단의 궤도가 처음부터 노출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월공이 전술을 바꾸지 않았다.
“이런 걸로 파훼될 아그리파 청월검술이 아니다!”
파아앗!
오히려 눈보라 속에서 더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심검으로 휘두르는 것이기에 물리법칙을 초월한 속도다.
하지만 어떤 각도로 발사되는지 처음부터 파악할 수 있다면… 내 능력으로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창뢰검형……!’
콰르릉!
하얀 눈보라 속에서 푸른 번개가 쳤다.
눈보라를 찢어 버리는 공간 절단을 피해, 지그재그로 질주했다.
“…….”
그 모습을 보고도, 청월공은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인간의 얼굴이었어도 표정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생전의 브랜틀리를 연상케 했다.
‘그러고 보면, 브랜틀리하고는 제대로 승부를 내지 못했지.’
브랜틀리하고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했을 무렵 아카데미에서 잠깐 대련을 해 봤을 뿐이다.
언젠가 한번 제대로 싸워 보고 싶었지만, 흑천마교 총본산에서 알베리히 대주교와 싸우다가 사망했다.
나는 그 사실이 상당히 안타까웠다.
‘브랜틀리, 당신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청월공한테도 당당히 맞섰겠지?’
자신의 선조라고 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맞서 싸웠을 것이다.
그게 브랜틀리라는 검사였으니까.
‘그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브랜틀리와 싸우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 브랜틀리가 되어 싸우는 기분도 들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브랜틀리라는 검사를 꽤나 존경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하인리히가 돌아오면 이 얘기도 해 봐야겠어.’
이런 잡생각을 하면서도, 내 움직임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백화검형을 유지하면서 창뢰검형을 사용하고 있는데, 마력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었다.
내가 검사로서 크게 성장했다는 증거였다.
‘여기서 청월공을 꺽어… 더 성장한다.’
콰르릉!
푸른 번개가 공간 절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청월공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그 순간.
청월공의 몸에서 한층 더 격렬한 마력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기술이 온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다면……!’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창뢰검형을 보다 정교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야 한다.
할 수 있다. 내 의념을 담으면 가능하다.
“에르나스……!”
포효하면서 청월공이 상반신을 움직였다.
질리도록 봤던 동작이다.
아그리파 절검술을 대표하는 4연속 공격, ‘더 크럭스’.
그것이 아그리파 청월검술과 조합되어, 동시에 4개의 공간 절단이 전개되었다.
피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입체적인 죽음의 그물이 나를 향해 전개되었다.
‘아니, 피할 수 있어!’
동시에 전개된 것 같지만, 결코 동시가 아니다.
아무리 심검이라고 해도 4개의 공격을 완전히 동시에 펼치는 건 불가능하다.
미세한 시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틈새를… 파고든다!’
누구보다 정교하게.
누구보다 날카롭게.
브랜틀리보다도, 청월공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아무리 작은 틈새라도 꿰뚫을 수 있는 번개가 되어, 나는 눈보라 속을 질주했다.
* * *
콰르르릉!
엄청난 천둥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욜스 칼레시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욜스 교수님, 이 소리는… 교수님의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아닙니까?”
옆에 있던 슈미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슈미츠는 에르나스 다음으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터득한 학생이었다.
“아니, 저건 이미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 아니다.”
“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제는 에르나스의 검술이지.”
욜스는 씁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슈미츠, 에르나스는 특정 검술을 누구보다 빠르게 익히고 능숙해지는 재능을 지녔다.”
“네, 정말 대단하시죠.”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에르나스는… 검술을 진화시키고 다른 검술과 조화시켜 아예 새로운 검술을 창조해 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지.”
“아…….”
“어설프게 자기 마음대로 검술을 어레인지하는 게 아니다. 에르나스가 만들어 낸 검술은 그야말로 절세 검술이지. 한 명의 검사로서… 가르침을 청하고 싶을 정도야.”
그렇게 말하며 욜스가 피식 웃었다.
“지금 내 경지로는 가르침을 받아 봤자 흉내도 낼 수 없겠지만 말이다.”
“교수님…….”
“정말로… 대단한 놈이다.”
욜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던 천둥소리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 * *
파직, 파직.
내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창뢰검형을 한계 이상으로 사용한 여파다.
내 의념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혈관에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후우…….”
힘겹게 숨을 내쉬면서, 나는 눈앞을 쳐다봤다.
자욱한 먼지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청월공이 가만히 서 있다.
오른팔이 부러졌고, 참공검은 바닥을 구르고 있다.
청월공의 오른손 뼈가 참공검의 칼자루를 꽉 잡고 있어,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을 다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슴을 흑천검이 꿰뚫고 있었다.
흉골은 완전히 가루가 되었고, 늑골도 대부분 부러졌다.
심지어 흉추까지 정확히 관통한 상태라, 흑천검을 뽑으면 척추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방금 그 기술…….”
청월공의 턱이 움직였다.
“이름은 뭐라고 하지?”
“창뢰검형 절기… 뇌신(雷神).”
방금 지어낸 이름을 입에 담자, 청월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훌륭했다.”
그 목소리는 브랜틀리와 비슷했다.
아까는 철혈검제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분노에 찬 목소리였지만, 그게 진정되니 확실히 브랜틀리의 선조다운 목소리였다.
검사로서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폐하의 모든 적을 참살하고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끝이군.”
“청월공…….”
“어쩔 수 없군.”
청월공이 스스로 몸을 뒤로 뺐다.
내 칼날이 청월공의 몸에서 스륵 빠져나왔다.
“폐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먼저 가는 불충(不忠), 용서하지 마십시오. 아그리파 공작은 영원히 지옥에서 참회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골격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초대 아그리파 공작인 청월공이 완전히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