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92화 (191/212)

192화 공작들 앞으로 (3)

에르나스가 항복을 요구했다.

비룡공과 금강공, 청월공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

에르나스가 자진해서 항복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비룡공이 말을 더듬으면서 확인했다.

“지금… 우리가 항복을 해야 한다고 한 겁니까?”

“네가 실성을 했구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한편 금강공은 대놓고 분노했다.

“우리들이 너무 두려워서 미쳐 버린 건가? 감히 그런 소리를……!”

“진정해라, 금강공.”

청월공이 냉정한 목소리로 금강공을 나무랐다.

“흥분할 필요는 없다. 이걸로 놈이 폐하의 적이라는 게 확실해졌으니, 그냥 죽여 버리면 된다.”

그렇게 말하며 청월공이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에르나스가 입을 열었다.

“청월공, 철혈검제에게 충성을 바쳐 봤자 의미 없어.”

“뭐라고?”

“철혈검제는 너 같은 건 그냥 소모품으로 생각할 뿐이니까.”

“……?”

청월공이 멈칫하며 에르나스를 빤히 쳐다봤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너뿐만이 아니야. 비룡공도, 금강공도… 철혈검제에게는 바깥에 있는 크리처들이나 별 차이 없는 존재지.”

“…….”

“애초에 너희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지?”

에르나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철혈검제가 추구하는 ‘검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지.”

검의 세계.

그건 철혈검제가 천 년 전부터 추구해 온 이상이다.

하지만 천 년 전에는 그걸 실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국을 만들어 놓은 뒤 영묘에 잠든 것이다.

“검의 세계라는 건, 절대적인 힘을 정점으로 하여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 세계야.”

“…….”

그렇다.

철혈검제가 진정으로 원한 건 지금과 같은 느슨한 봉건 제국이 아니다.

철혈검제를 정점으로 하여 일개 평민까지 모조리 통제되는 전체주의 제국… 그것이 철혈검제의 이상이었다.

“천 년 전, 너희는 마인과 엘더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대륙을 평정했지만… 그런 전체주의 제국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지. 무엇보다 너희들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어.”

에르나스의 말대로, 당시는 철혈검제도 6공작도 나이를 많이 먹은 상태였다.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체제를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철혈검제는 타협하기로 했다.

“너희가 원했던 건 어떤 적들이 나타나도 굴하지 않는 최강의 인류 제국이었지. 그러기 위해 모든 인류의 자유의지를 빼앗고 제국에 복종하는 부품처럼 만들려 했어.”

“…….”

“너희는 모든 인류가 한 자루의 검이 되어 적을 토벌할 수 있는 제국을 꿈꿨어. 하지만 그런 제국을 만든다는 건 당시로서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타협안으로써 지금 같은 봉건국가를 만든 거야.”

검술을 숭상하는 봉건국가를 만들고, 검술명가들이 스스로 검술을 갈고닦게 만들었다.

중앙정부가 국민 전체를 통제하지 못해도, 각지의 가문들이 스스로 강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습니다, 에르나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비룡공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검의 세계라는 것은… 세계 전체가 한 자루의 검이 된 세계입니다. 그런 체제가 갖춰진다면 어떤 적이 나타나도 무찌를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인이든 엘더 드래곤이든… 그 이상의 적이든.”

“…….”

“하지만 당시로서는 그런 세계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국민들이 스스로 검이 되어 힘을 갈고닦는 세계를 만들었죠. 한 자루의 거대한 검을 만들 수는 없어도… 수백, 수천 자루의 작은 검이 있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결국… 천 년 동안 지속된 제국은 타협안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으니, 그럭저럭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천 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우리가 부활했습니다.”

비룡공은 뼈만 남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렇게 뼈만 남았지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손에 넣었습니다. 모든 인류를 하나로 만들어 검의 세계를 완성할 때까지 몇십 년이고 몇백 년이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철혈검제 폐하를 위해서.”

“비룡공의 말이 맞다.”

청월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우리에게 이 중대한 업무를 맡기셨다. 그만큼 우리를 신뢰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

“폐하께서 우리를 단순한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청월공에 이어, 금강공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 단순한 소모품한테 이런 중대한 일을 맡길 리가 있나! 헛소리하지 마라!”

“오해하지 마. 철혈검제가 너희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니까.”

“그러면 대체 뭔…….”

“내 얘기는, 검의 세계가 완성된다면 더 이상 너희들이 필요 없어진다는 거야.”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에르나스, 그게 무슨 소리죠?”

“너희는 인류의 일치단결을 방해하는 존재거든.”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철혈검제가 원하는 건 인류 전체가 하나가 되어서 한 자루의 검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 꼭대기 층에 있는 게 너희 같은 해골 인간이어도 되는 걸까?”

“……!”

“너희들은 확실히 강력한 검사야. 하지만 검의 세계에서는 개개인의 힘은 중요치 않아. 완벽하게 통제되는 시스템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 같은 이질적인 존재는 오히려 시스템의 완성도를 떨어뜨려.”

충격적인 얘기에 다들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증거를 제시하지.”

“증거……?”

“너희들은 이 부분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한 적 없나?”

에르나스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왜 철혈검제는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영묘에 남아 있는 거지?”

“뭐……?”

“너희 같은 해골의 모습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영묘 바깥으로 나올 수 있어. 하지만 철혈검제는 아직도 영묘 안에 머무르고 있지. 그 이유가 뭘까?”

“그건… 우리들에게 제국의 평정을 맡겼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고개를 저으면서 에르나스가 말했다.

“지금 철혈검제는 영묘 안에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부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진정한 인류 황제가 너희 같은 해골의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거든.”

“……!”

에르나스의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냐!”

그때 금강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뭔데 영묘 안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알고 있단 말이냐! 허황된 소리는 작작…….”

“금강공,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뭐라고?”

“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야.”

에르나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철혈검제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의 친아들이지. 너희들을 부활시켜 준 것도 내 아버지였을 텐데?”

“……!”

“나는 너희들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동안 너희들을 부활시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해 온 것도 란즈슈타인 가문이야. 철혈검제가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에게만 밀명을 내렸거든.”

“미, 밀명?”

“란즈슈타인 가문은 훨씬 예전에 부활법을 완성했어. 하지만 때를 기다리다가… 이번 페르펙티오의 대에 이르러서 너희를 부활시켰지.”

“마, 말도 안 된다!”

금강공이 목소리를 높였다.

“훨씬 예전에 부활법을 완성했다고? 페르펙티오는 최근에야 부활법이 완성되었다고 말했단 말이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럴 리가……!”

금강공을 내버려 둔 채, 에르나스가 비룡공에게 시선을 향했다.

“비룡공, 네가 혈검장로회 수석 장로의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하니, 너한테 질문을 해 보지.”

“무, 무슨…….”

“페르펙티오는 어째서 이 시기에 너희를 부활시켰을까?”

“…….”

아무런 대답도 못 하는 비룡공을 보면서, 에르나스가 말했다.

“흑천마교가 멸망했기 때문이야.”

“……!”

“흑천마교가 추구하는 ‘투쟁의 세계’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검의 세계’와는 정반대의 세상이야. 국가를 없애고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 하지.”

에르나스가 계속 설명했다.

“너희가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어 세상을 강력하게 통제할수록, 흑천마교는 어둠 속에서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류의 일치단결을 무너뜨리고 검의 세계를 붕괴시키겠지.”

“그, 그렇다면…….”

“그래, 흑천마교는 언제든지 검의 세계를 위협할 수 있어. 문제는 흑천마교의 본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였지. 대륙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혈검장로회도 모르고 있었어.”

“…….”

에르나스의 말은 사실 같았다.

비룡공이 흡수한 수석 장로의 지식과 대조해 봐도 모순이 없었다.

“페르펙티오가 굳이 이 시대에 너희를 부활시킨 건, 흑천마교가 멸망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야.”

“…….”

“그러면… 이 정도 설명해 줬으니 다들 이해했겠지. 너희 모두가 란즈슈타인 가문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손바닥을 치켜들었다.

“철혈검제는 너희들을 제국 평정의 도구로 사용하고 토사구팽할 생각이야. 새로운 제국에서 너희들이 맡을 역할은 아무것도 없어.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이 철혈검제의 오른팔로서 제국을 통치할 테니까.”

“에, 에르나스, 그렇다면…….”

비룡공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왜 우리와 싸우는 거지? 가만히 있으면 페르펙티오의 아들로서 공신이 될 수 있을 텐데…….”

“비룡공, 수석 장로의 기억을 되새겨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뭐……?”

“나는 이미 이 제국의 최강자야. 앞으로 나는 리히테나워 대공으로서 제국을 좌지우지할 거고, 심지어 스스로 제위에 오르는 것도 가능한 상태지.”

“……!”

“굳이 철혈검제의 새 제국에 찬동할 이유가 없는 거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비룡공을 보면서, 에르나스가 계속 말했다.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라.”

“……!”

“계속 철혈검제를 위해 싸워 봤자 토사구팽당할 뿐이야. 내 밑으로 들어와서 철혈검제를 타도하는 것을 도와준다면… 너희들은 진정한 영웅으로 역사에 기록될 거다.”

그렇게 말하고 에르나스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공작들을 지켜봤다.

“시간 낭비를 했군.”

침묵을 깬 건 청월공이었다.

그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검을 뽑아 들고 에르나스를 노려봤다.

“헛소리를 아주 길게 늘어놓더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청월공…….”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내가 철혈검제 폐하를 배신할 일은 없다.”

청월공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모든 싸움이 끝난 뒤, 폐하께서 내 목을 원하신다면 기끼어 바칠 것이다.”

“그게 대답이라면, 어쩔 수 없지.”

에르나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군.”

“뭐라고?”

청월공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룡공을 발견했다.

“비룡공, 정신이 나갔는가!”

“청월공, 잠시만…….”

비룡공이 손을 치켜들며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이면 됩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비룡공……!”

청월공이 까득 이를 갈며 비룡공을 노려봤다.

그리고 고개를 획 돌려 금강공을 쳐다봤다.

“금강공! 너도 흔들리고 있는 건가?!”

“웃기지 마라. 저런 말을 믿고 폐하를 배신할 내가 아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금강공의 목소리에서는 패기가 사라져 있었다.

“다만 란즈슈타인 놈들이 수상한 건 사실이다. 폐하께서 그놈들의 수작에 넘어가신 게 아닌가 고민해 봐야…….”

“도대체……!”

항상 차가웠던 청월공의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었다.

“좋다! 마음껏 고민해 봐라, 이 불충한 것들!”

“청월공…….”

“에르나스를 참살한 뒤, 내가 스스로 너희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렇게 소리치면서, 청월공이 에르나스를 향해 움직였다.

* * *

청월공 혼자 나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겨우 유리해졌군.’

내가 여기로 찾아와 온갖 설정을 떠들어 댄 건, 순전히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심검을 사용하는 검제급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건 리스크가 너무 컸으니까.

‘역시 브랜틀리 아그리파의 선조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나한테 달려드는군.’

내가 온갖 비밀을 알려 주면 비룡공은 크게 동요할 거라 생각했다.

금강공도 꽤나 흔들릴 가능성이 높았다.

오로지 청월공만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향해 달려들 거라 예상했다.

‘이걸로… 청월공과의 일대일 대결이 성립되었어.’

만약 청월공도 동요해서 우물쭈물했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셋이서 의견을 교환한 뒤 ‘그래도 철혈검제를 배신할 수는 없다. 일단 에르나스는 죽이자.’라고 결론을 내리면 결국 일 대 삼 구도가 되니까.

하지만 청월공 혼자서 주저 없이 나한테 달려든 덕분에, 일대일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청월공이 무서운 기세로 나한테 달려들었다.

나는 흑천검과 염살검을 두 손에 든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와라, 청월공.”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놈들을 각개격파하는 일만 남았다.

“철혈검제에게 토사구팽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너를 소멸시켜 주마.”

검기와 검기과 부딪치면서, 초고속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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