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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90화 (189/212)

190화 공작들 앞으로 (1)

이천공을 쓰러뜨린 뒤, 나는 다시 리히테나워 기사단과 합류했다.

도착해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르나스, 무사해서 다행이군.”

“황궁에서 받은 흑색 엘릭시르를 가져왔어. 학생들에게도 보급해 줘야겠지.”

다른 교수들을 데리고 도착한 욜스 교수와 안겔라 교수가 나를 맞이하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다 부상에서 회복하여 바로 전선에 나설 수 있는 상태였다.

페르디난드 교수는 암리타를 제조하느라 아직 황궁에 남아 있다고 한다.

“에르나스 님… 저희 철혈기사들도 이번 싸움을 돕겠습니다.”

“폴티아나 경, 감사합니다.”

철혈기사단 4석이었던 폴티아나 클라리온도 다른 기사들과 함께 리히테나워 기사단에 합류했다.

철혈기사단은 흑천마교의 음모 때문에 괴멸되었지만, 폴티아나처럼 음모에 관여하지 않은 기사들도 있었다.

폴티아나가 그들을 이끌고 철혈검제와의 싸움에 나서 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폴티아나는 나에게 호의적인 올레아나 클라리온 후작의 딸이기 때문에, 내 편에 설 수밖에 없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황녀 전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동부 지역을 침략하고 있는 것은 위대한 철혈검제와 6공작이 아니라… 무덤에서 기어 나온 사악한 악령들이라고 말입니다.”

“사악한 악령들… 맞는 말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제국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황녀 전하께서 저희들 앞에서 고개 숙여 부탁하셨습니다. 철혈기사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막겠습니다.”

현재 레이나데 황녀는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후방 지원을 해 주고 있었다.

그동안 본성을 숨기고 있었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자칫하면 대신들 사이에서 ‘철혈검제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차기 황제인 레이나데뿐이었다.

“저희 철혈기사들도 호신강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욜스 교수님과 안겔라 교수님에 비하면 아직 형편없습니다만, 조만간 숙달될 겁니다.”

“네, 호신강기는 놈들과 싸울 때 최대의 무기가 될 겁니다.”

검귀들이 사용하는 유사 심검에 대응하려면 호신강기로 방어력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강력한 방어막으로 육체를 보호하면 놈들이 아무리 빨리 공격해도 막아 낼 수 있으니까.

검귀는 검제급처럼 심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호신강기만 잘 써도 놈들에게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인 욜스와 안겔라는 충분히 검귀를 압도할 수 있어.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폴티아나나 세리느 등도… 여럿이서 협공하면 검귀를 쓰러뜨릴 수 있겠지.’

물론, 그들이 대적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검귀들뿐이다.

6공작들 상대로는 내가 나서야 한다.

놈들은 심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평범한 공격으로도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을 테니까.

‘가장 우려되는 건, 남아 있는 6공작들과 동시에 싸우게 되는 상황이야.’

초대 슈라이에르 공작.

초대 발트펠트 공작.

초대 아그리파 공작.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

이렇게 네 명만 남아 있다.

이들 중에서 두세 명만 동시에 나타나도 골치 아파진다.

만약 내가 한 놈을 상대하기 위해 한쪽 방향으로 달려간 사이, 다른 놈이 다른 방향에서 아군을 습격한다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욜스와 안겔라가 동시에 나선다고 해도, 잠깐 시간을 벌 수 있을 뿐이야.’

염옥공이나 이천공처럼 각개격파 할 수 있어야 좋다.

한 명씩 나타나서 나한테 결투를 신청해 주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미 염옥공과 이천공이 쓰러진 상황이니 놈들도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다.

‘차라리 놈들이 한꺼번에 내 앞에 나타나서 동시에 달려들면 좋겠어.’

여럿이서 나를 협공하면 복잡한 생각할 것 없이 맞서 싸우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놈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 우리를 포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에르나스.”

그때 베리스리제가 나한테 다가왔다.

“루퍼스 이그니아스가 왔어. 너를 만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할까?”

“루퍼스가? 만나야지.”

칼레온의 아들, 루퍼스 이그니아스.

그는 지금 아버지를 대신해 이그니아스 가문의 임시 가주를 맡고 있을 터였다.

* * *

“무사했구나, 루퍼스.”

“그래, 가족들을 이끌고 재빨리 몸을 피했지.”

오랜만에 만난 루퍼스는 많이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 노력하던 때는 물론이고, 이그니아스 가문이 패배했을 때보다 더 지친 모습이었다.

“세상을 뒤덮는 엄청난 불꽃… 그건 아버지가 펼치셨던 ‘디 인페르노’를 능가하는 화력이었어.”

루퍼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옛날 같았으면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고 달려들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내 분수를 알고 있고… 임시 가주로서 가족들을 지켜야 할 의무도 있어. 그래서 최대한 신속하게 대피한 거다.”

“현명한 판단이었어.”

루퍼스는 염옥공의 진격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친 모양이었다.

만약 루퍼스가 옛날처럼 혈기 왕성하게 염옥공에게 달려들었다면… 다른 희생자들처럼 불타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도망치던 도중… 끔찍한 괴물들을 발견했어.”

“끔찍한 괴물들?”

“얼핏 보기에는 날개 달린 드래곤 같더군. 하지만 자세히 보니 사람의 시체가 뒤엉켜 만들어진 괴물이었어.”

“……!”

“그놈들을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치다가… 이제야 너희들이 있는 곳까지 도착한 거야.”

시체로 만든 드래곤 형상의 크리처.

소설에서 묘사한 적은 없지만… 설정에는 존재한다.

“비룡공이군…….”

초대 슈라이에르 공작, 비룡공.

그는 아티팩트의 힘으로 시체를 조합하여 크리처를 만들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시체로 만든 드래곤을 타고 공중에서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로 폭격하는 것이 비룡공의 전투 스타일이다.

“비룡공? 초대 슈라이에르 공작 말인가?”

“그래,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건 철혈검제 시대의 6공작들이야. 너희 영지를 불태운 건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인 염옥공이고.”

“뭐, 뭐……?”

루퍼스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에르나스,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철혈검제가 부활하여 이 세계를 다시 지배하려 하고 있어. 6공작들은 철혈검제가 다시 이 땅을 밟기 전에 제국을 장악할 생각이고.”

“…….”

내 설명을 듣고, 루퍼스가 금붕어처럼 뻐끔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래… 우리 영지가 불타는 걸 보면서 ‘디 인페르노’와 비슷하다는 걸 느끼긴 했었어. 그게 염옥공의 힘이었던 건가.”

“납득해 주는 건가?”

“믿기 힘들지만,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납득할 수밖에 없지.”

루퍼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에르나스, 네가 그들과 싸우고 있다고?”

“그래, 이미 염옥공과 이천공은 내가 쓰러뜨렸어.”

“기가 차는군. 흑천마교의 총대주교를 쓰러뜨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제는 전설적인 영웅들도 쓰러뜨리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퍼스의 목소리에 부정적인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정말로 대단하군, 에르나스.”

“루퍼스…….”

“이제는 질투 같은 건 느끼지 않아. 네가 이 제국을 지킬 수 있도록 응원하고 싶은 마음뿐이지.”

루퍼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에르나스, 철혈검제 폐하와 6공작들은 분명 대단한 위인이지만… 무덤에서 되살아나서 제국의 신민들을 학살한다면 그냥 사악한 악령일 뿐이야. 반드시 막아야 해.”

“황녀 전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

“아, 그래? 영광이군.”

루퍼스가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에르나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 줘. 나 같은 녀석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아니, 그렇지 않아. 비룡공의 정보를 전해 준 것만으로도 벌써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래?”

“일단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지도상에서는 어디지?”

“가만있자…….”

루퍼스의 손가락이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좀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이 부근이야.”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군…….”

지도를 들여다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루퍼스, 만약 이 근방으로 공격해 들어간다면 어떤 루트를 사용하는 게 좋을까?”

“그야… 이렇게지.”

루퍼스가 손가락으로 지도 위에 진격 루트를 그렸다.

원래 루퍼스는 동부 출신이고, 얼마 전까지 칼레온 곁에서 이그니아스 가문의 전쟁을 보좌했다.

내가 직접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럴듯한 루트를 제시해 줄 것이다.

“이쪽으로 들어가는 편이 가장 빠르고 안전해. 기습을 당할 염려도 없고.”

“그렇군…….”

지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세리느, 클로에하고 의논하면서 확정해야 할 것 같았다.

“루퍼스,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

“뭐지?”

“이그니아스 가문을 추종하던 가문들이 있을 거야. 그들에게 협력을 요청해 줬으면 좋겠어.”

이미 올레아나 클라리온이 여기저기 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친(親)이그니아스 세력 출신들은 별로 도움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도 루퍼스의 요청이라면 도와줄 것이다.

레이나데 황녀가 전국에 메시지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고 있지만, 동부에서 직접 소집하는 게 더 빠르다.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만 필요해. 중급 이하는 필요 없어.”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이라…….”

루퍼스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내가 최대한 도움을 요청해 보지.”

“그래, 부탁할게.”

현재 루퍼스의 힘으로는 최전선에 나설 수 없다.

하지만 루퍼스가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로서 제 역할을 해 준다면… 동부에서의 싸움에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 * *

“놈들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룡공의 목소리에 금강공과 청월공이 반응했다.

“공격? 놈들이 선제공격을 하려 한다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

“이 근방에서 크리처를 제작하고 있던 게 들킨 모양이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비룡공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비룡공 옆에는 혈검장로회의 암살자들을 재료로 제작한 크리처가 대기하고 있었다.

“혈검장로회의 암살자들에게서 얻어 낸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할 때… 에르나스가 선두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실한 건가?”

“네, 혈검장로회의 정보력은 제국 최고라는 것 같더군요. 덕분에 에르나스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싸워 왔는지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비룡공은 혈검장로회 수석 장로의 두뇌에서 에르나스의 정보를 모조리 끄집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비룡공은 에르나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었다.

“에르나스는 수하들을 이끌고 이쪽으로 진격할 겁니다. 그리고 혼자 돌진해 와서… 지휘관을 찾겠죠.”

“지휘관이라.”

“이 경우에는 비룡공 자네겠군.”

청월공이 비룡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방해가 된다면 자리를 비켜 주지.”

“제가 지난번에 말했을 텐데요. 각개격파당하면 곤란하다고 말입니다.”

“그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기도 하군.”

“나 참…….”

투덜거리는 비룡공에게 금강공이 거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란즈슈타인의 후손 따위가 그렇게 두렵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비룡공.”

“염옥공이나 이천공처럼 각개격파당하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죠. 더 이상 폐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비룡공이 냉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쨌든… 이미 염옥공과 이천공이 당한 시점에서 우리들의 작전은 크게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더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함께 에르나스를 맞이하도록 합시다.”

“크흠… 알겠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작전은 결정되었다.

크리처들도 충분히 확보되었다.

이제 남은 건 에르나스의 도착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리 셋이서 한자리에 있으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도 겁을 집어먹고 꽁무니를 뺄지도 모르겠군요.”

비룡공이 뒷짐을 진 자세로 웃음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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