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염옥 (5)
사람은 ‘검을 휘두른다’라고 생각한 뒤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검을 휘두른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완료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듀에이트는 마력으로 이 시간을 단축하지만, 절정급에 도달하더라도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심검(心劍)은 이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정신세계에서 ‘검을 휘두른다’라는 생각을 떠올린 순간, 물질세계에서도 그 움직임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마음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속도와 실제로 검을 휘두르는 속도를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정말로 100% 동일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기량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방금 전에 싸웠던 유스트나 검귀들도 정신세계의 속도를 구현하여 물질세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었지만, 명백한 ‘지연’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움직이는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으나, 자기 몸을 그 속도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염옥공은 나하고 거의 같은 수준의 속도를 구현하고 있다.
내가 정신세계의 속도를 구현하여 물질세계의 한계를 초월한 공격을 날려도, 염옥공도 똑같은 속도의 공격으로 맞받아칠 수 있다.
심검 사용자끼리의 초고속 공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에르나스……!”
염옥공의 검이 불타올랐다.
칼레온이 사용하던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원형(原型)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죽여 주마!”
쿠쿠쿵!
불타오르는 염살검이 굉음을 발생시켰다.
다만 소리가 들리는 것보다 염살검이 움직이는 것이 더 빠르다.
소리는 물리법칙에 의해 퍼져 나가지만, 심검은 물리법칙을 초월해 펼쳐지기 때문이다.
“……!”
나는 흑천검을 두 손으로 잡고 염살검을 받아쳤다.
휘몰아치는 불꽃이 나를 집어삼키려 했지만, 지금 나는 백화검형을 전개한 상태였다.
흑천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냉기가 염살검의 불꽃에 대항해 주고 있었다.
“빙검(氷劍)인가!”
쿵, 쿵, 쿠웅!
염옥공의 연속 공격이 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쳤다.
“네놈, 어떻게……!”
“얕보지 마라, 염옥공.”
나는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은 질릴 정도로 연구했단 말이다……!”
“……!”
파아앙!
냉기를 조종해 얼음의 칼날을 만들어, 염옥공의 빈틈을 노렸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은 전형적인 동부 검술.
정확한 자세와 동작을 준수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더군다나 염옥공의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은 천 년 전의 초기 형태.
칼레온이 쓰던 이그니아스 염옥검술보다 변화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네놈……!”
파앗!
빈틈을 노린 얼음의 칼날을 염옥공이 튕겨 냈다.
하지만 이미 나는 흑천검으로 염옥공의 측면을 노리고 있는 상태였다.
물리법칙을 초월한 속도로 흑천검이 염옥공의 허벅지로 파고들려 한 순간.
“흐읍……!”
콰앙!
염옥공의 전신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 여파에 휘말려 검의 궤도가 흐트러졌고, 결국 칼날은 염옥공에게 닿지 못했다.
‘불꽃의 호신기!’
이그니아스 가문의 인물들이 펼치는 불꽃의 검기는 상대방의 검기를 불태우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함부로 검기를 충돌시키는 일은 피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염옥공은 불꽃의 검기에 그치지 않고 불꽃의 호신기까지 펼쳤다.
어설프게 공격을 했다간… 공격을 가한 내 검기 쪽이 손상을 입게 된다.
“오오오……!”
염옥공이 포효했다.
그리고 움직임이 한층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번개로 속도를 끌어올리던 것처럼, 타오르는 마력으로 자신을 강화한 것이다.
“하앗!”
“……!”
쿠웅!
폭발적인 공격이 나를 덮쳤다.
창뢰검형으로 대응한 순간, 강한 충격이 내 전신을 뒤흔들었다.
방금 전까지의 공격보다 훨씬 더 위력이 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흥!”
콰쾅!
칼날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염옥공이 마력을 폭발시켜 내 칼날에 충격을 가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강해진 열량이 내 검기로 파고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흑천검에 전개되었던 푸른 검기가 불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염옥공이 미소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리 주춤하는 것이냐, 에르나스!”
쿵, 쿠쿵, 꽈아앙!
검기와 검기가 충돌할 때마다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내 검기가 불타면서 마치 재 가루가 흩날리듯이 주위로 퍼졌다.
“더 공격적으로 나와야 되지 않겠나!”
쿠쿠쿵!
격렬한 폭발이 내 전신을 덮쳤다.
나는 백화검형의 냉기로 몸을 보호하려 했지만, 염살검의 칼날이 냉기를 찢어발기고 들어왔다.
“큭……!”
촤악!
염살검이 내 좌측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호신기를 전개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어깨가 떨어질 뻔했다.
“고작 그 정도인가, 에르나스!”
호통을 치면서 염옥공이 검을 휘둘렀다.
몸을 뒤로 날려 피하자, 염살검이 땅을 후려치면서 주위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후방으로 움직여 거리를 벌리는 나를 향해 염옥공이 불타는 눈빛을 향했다.
“자신만만하더니, 결국 그 정도인가.”
“…….”
“심검의 경지에 도달한 건 칭찬해 주마. 하지만… 너는 아직 애송이다.”
그렇게 말하며 염옥공이 염살검을 치켜들었다.
“잔꾀를 부리는 건 잘하는 것 같지만 기초가 부족하다.”
“…….”
“앞으로 최소 10년은 기초 수련을 해야 내 상대가 될 것이다. 물론, 나를 꺾으려면 천 년은 필요하겠지.”
염옥공이 짓궂은 미소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너에게 그런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
“지옥에서 반성하도록 하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렇게 말하며 염옥공이 자세를 잡았다.
검을 앞으로 내밀면서, 전력을 다해 돌격하는 자세다.
“이걸로 끝이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염옥공이 움직였다.
염옥공의 전신은 불꽃에 휩싸여 있었고, 검기와 호신기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타오르는 검이 되어 적을 말살하는, 불꽃의 신검합일(身劍合一)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의념을 전개했다.
‘끝이 아니다, 염옥공.’
방금 전까지, 나는 염옥공과 계속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검기를 구성하는 마력이 주위로 흩날렸다.
불꽃의 검기에 손상되어 흩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주위에 흩뿌린 것이 더 많았다.
그래야만… 염옥공의 감각을 속일 수 있었다.
‘그 직선적인 움직임이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으니까.’
염옥공 몰래 주위에 잔뜩 전개해 놓았던 마력.
나는 니플가디르의 ‘마력 장악’과 흑천검의 ‘공간 이해’를 사용해 그것들을 완벽히 지배한 상태다.
그 마력에… 의념을 담는다.
‘의념으로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 세상 무엇보다 단단하게.
이 세상 무엇보다 날카롭게.
그리고… 화염의 호신기에도 녹아내리지 않을 정도로 차갑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극한의 빙검을 만든다.
‘심검은 단순히 속도만을 끌어올리는 힘이 아니야.’
의념의 힘으로 물질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것.
그것이 심검의 본질이다.
속도를 끌어올리는 건 출발선에 불과하다.
‘애초에… 속도만으로는 6공작들에게 이길 수 없으니까.’
그냥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라면, 동등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6공작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
방금 전에 염옥공이 지적한 대로, 나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니까.
‘6공작들은 천 년 전에 철혈검제를 보좌했던 최강의 검사들… 내가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하지만.
내가 6공작들보다 명확히 우위에 설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존재한다.
나는 이 소설을 직접 창조한 작가로, 그들의 창조주라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평생 검을 수련했겠지만, 나는 그들 같은 검사들이 승리하고 패배하는 이야기를 수없이 만들어 왔다.
그런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창조하고, 실제로 소설로 적어 구현하는 것.
이것은… 정신세계의 의념을 물질세계에 구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내가 명확한 의지를 갖고 그들을 꺾으려 한다면… 내 의념이 그들의 의념을 능가할 수 있다.’
더 정확하게.
더 명료하게.
더 강렬하게.
내 머릿속의 발상을, 꺾이지 않는 의념으로 이 소설 세계에 구현할 수 있다면……!
‘백화검형 절기(絶技), 빙옥(氷獄)!’
허공에 전개된 여섯 자루의 빙검.
그것들이 직선으로 돌진해 오던 염옥공에게 꽂혔다.
“……?!”
염옥공이 경악했지만, 이미 늦었다.
빙검은 불꽃의 호신기를 뚫고 염옥공의 몸에 꽂혔다.
내 의념에 의해 강화되었기에, 불꽃의 호신기 따위에는 전혀 녹아내리지 않았다.
날카로운 빙검은 염옥공의 다리와 발등까지 관통해, 염옥공의 돌격 자체를 봉쇄했다.
“이게 무슨……!”
염옥공은 명백히 동요하는 목소리였다.
한낱 애송이가 펼친 빙검술이 자신의 온몸을 관통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동요하면서… 염옥공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이 공격은 무엇이냐!”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염옥공.”
나는 흑천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말했다.
“의념의 힘을 사용하여 물질세계의 한계를 초월한… 심검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물리법칙을 초월한 속도를 발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념을 실어 이런 식으로 공격을 강화한다면, 그건……!”
염옥공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심검은 철혈검제 폐하께서 추구하시는……!”
“그래, 철혈검제가 추구하는 진정한 심검이지.”
철혈검제가 추구하는 것도, 의념을 자유자재로 구현하는 경지다.
이것은 단순히 힘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철혈검제가 천 년 전부터 원했던 ‘검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도 철혈검제는 영묘에서 페르펙티오의 도움을 받으며 진정한 심검을 완성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6공작을 상대하며 이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철혈검제보다 더 완벽한 심검을 펼치지 못한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염옥공이 절규했다.
지금 내가 한 짓은 염옥공에게 신성모독처럼 느껴지고 있을 것이다.
“어찌 너 따위가 감히… 오로지 폐하만이 추구하실 수 있는 경지를……!”
빙검에 관통당한 염옥공의 전신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분노의 의념이 담기기라도 한 건지, 빙검조차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염옥공의 골격까지 불타고 있었다.
“네놈 따위가 검신급(劍神級)의 경지를 넘본다니, 용납할 수 없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 결전절기(決戰絶技) ‘디 인페르노’.
칼레온이 마지막 싸움에서 펼쳤던 궁극의 화염 공격이 10배 이상의 화력으로 뿜어져 나왔다.
염옥공 자신조차 불태워 버리는, 궁극의 화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