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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83화 (182/212)

183화 염옥 (4)

아카데미에서 알드바우트를 쓰러뜨린 뒤, 나는 장거리 통신으로 황궁의 세리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동쪽으로 출발했다. 욜스와 페르디난드도 동부에 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 혼자 가는 게 더 빨랐다.

황궁에 도착했을 때 이미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동부로 출발한 뒤였다.

나는 레이나데 황녀부터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황궁에서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그녀 정도였다.

그렇게 레이나데에게 뒷일을 맡긴 뒤 나는 동부로 향했다.

지금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철혈검제의 군세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빨리 달려가야 했다.

쉬지도 않고 동쪽으로 이동한 결과…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에르나스……!”

“에르나스 님!”

내가 착지하자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에르나스, 아버지가……!”

“알고 있어, 세리느.”

나는 착잡한 심정에 휩싸인 채 유스트를 쳐다봤다.

지금 유스트는 두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유스트도 검귀가 되었을 줄이야.’

유스트가 란즈슈타인 가문에 붙어 철혈검제 세력을 지원할 가능성은 높았지만, 설마 검귀가 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원래 유스트는 이기적이면서 자기 몸을 사리는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진해서 검귀가 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란즈슈타인 쪽 사람에게 협박을 당했나?’

알드바우트가 그랬듯이, 검귀가 되면 점점 이성을 잃게 된다.

맹목적인 충성심에 지배당하게 되며, 공격성도 강해진다.

그러니 검귀 상태인 사람을 설득하려 해 봤자 소용없다.

“세리느, 일단…….”

세리느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을 때.

나는 거대한 마력을 감지했다.

“다들 호신기를 전개하면서 후퇴해!”

“……!”

쿠쿠쿠쿵!

하늘에서 불꽃의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면서 백화검형(白華劍形)을 전개했다.

검제급의 힘으로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진화시킨 기술이었다.

“하압……!”

파파파팟!

허공에 무수히 많은 얼음의 검이 전개되었다.

대량의 빙검(氷劍)이 중첩되어 용암조차 막을 수 있는 방벽을 형성했으나, 불꽃의 폭우를 완전히 막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

쿠웅!

얼음 방벽을 뚫고 떨어진 불꽃이 유스트를 집어삼켰다.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세리느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쪽을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베리스리제, 세리느를 부탁해.”

“에르나스……!”

가까이 있던 베리스리제에게 세리느를 맡긴 뒤, 나는 공중으로 도약했다.

불타는 평원 한가운데에 말을 타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우아한 예복을 몸에 걸친 해골이었다.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 염옥공!’

그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선조인 염옥공이었다.

철혈검제를 보좌하던 6공작 중의 한 사람이다.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사용하던 불꽃의 검기는 염옥공이 개발한 것이다.

‘이 화력은… 칼레온을 훨씬 능가해!’

칼레온은 선조였던 염옥공의 화력을 재현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염옥공이 보여 준 화력은 칼레온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이것은 염옥공이 천 년 동안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내가 염옥공을 포착하자, 평야에서 십여 명의 검사가 솟구쳤다.

지금까지 염옥공의 명을 받들어 동부 지역의 그래듀에이트들을 학살하던 검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원래는 평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유스트처럼 본의 아니게 검귀가 되어 염옥공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빨리 끝내 주마.’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들이 검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전투력은 알드바우트에게 못 미칠 것이다.

알드바우트는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었지만 그들은 상급 내지는 중급 정도였을 테니까.

‘정신세계의 속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지.’

유스트와 마찬가지로, 나보다 한 단계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상대는 되지 못한다.

“창뢰검형(蒼雷劍形).”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8식 창뢰검형이 펼쳐졌다.

정신세계의 속도를 물질세계에 구현하여,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적을 유린하는 초고속의 공격기.

검귀가 된 그들은 내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겠지만, 대응할 수는 없다.

“……!”

콰르릉!

허공에서 번개가 종횡무진 작렬했다.

나 자신이 번개였고 내 검기도 번개였다.

번개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검귀들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일격으로 흉골을 파괴했으니, 알드바우트처럼 절명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정신세계의 초월적 감각으로 내 속도를 인식했겠지만, 물질세계의 육체가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정신세계에서 전개되는 의념의 속도를 물질세계의 육체에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거야.’

그들은 알드바우트보다 못한 반쪽짜리 검귀.

검제급의 속도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검귀를 전멸시킨 뒤, 나는 불타는 평야에 착지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염옥공에게 시선을 향했다.

“…….”

말을 타고 있는 해골.

그 눈구멍에서는 붉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붉은 안광(眼光)이 위압감을 줬다.

“놀랍군.”

염옥공이 입을 열었다.

“지금 너는 의념(意念)으로 몸을 움직였다. 물질세계의 한계를 초월하여, 정신세계의 이치를 구현한 것이다.”

그는 뼈다귀밖에 없는 손을 치켜들어 나를 손가락질했다.

“유한한 몸뚱이에 속박되지 않는, 무한한 마음의 검… 심검(心劍)을 대체 누구한테 배운 것이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어.”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지.”

“…….”

내가 생각한 소설 설정이다.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놀랍구나, 정말 놀라워.”

염옥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감탄하는 목소리였다.

“이 시대에 너 같은 검술 천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도 네 나이 때는 검기를 겨우 만드는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천 년 전에는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천재적이었지.”

원래 검기는 오랜 세월 수련한 소드 마스터만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아카데미 덕분에 스무 살 전후의 학생도 검기를 쓸 수 있지만 말이다.

“젊은 검술 천재여, 어느 가문 출신이냐?”

염옥공이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적대감은 찾아보기 어려운 목소리였다.

방금 전 내가 부하들을 전부 쓰러뜨렸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목소리였다.

“이름을 알려 다오. 궁금하구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내 대답을 입에서 되풀이하면서 염옥공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설마 페르펙티오의 아들이냐?”

“그래, 맞아.”

“허어… 정말 놀랍구나.”

염옥공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페르펙티오 녀석… 아들이 이 정도 실력을 지녔다고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

그건 당연한 일이다.

페르펙티오는 에르나스에게 무관심했으니까.

그러니 굳이 6공작들 앞에서 에르나스 얘기를 할 이유가 없다.

소설 속의 무능한 가짜 천재 에르나스도,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검술 천재 에르나스도… 다를 바 없다.

“어쨌든, 네가 페르펙티오의 아들이라면 반갑구나.”

왠지 염옥공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르나스, 나는 선봉장으로서 다른 공작들보다 앞장서고 있다. 나와 함께 서쪽으로 진격하자꾸나.”

“함께?”

“그래, 너라면 방금 쓰러진 반쪽짜리 검귀들보다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

염옥공은 진지하게 나를 부하로 삼으려는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염옥공… 나는 당신한테 협조할 생각이 없는데.”

“뭐라고?”

염옥공이 이해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왜 당신 부하들을 쓰러뜨렸다고 생각하지?”

“그건… 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럴 리가.”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나는 페르펙티오의 아군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지? 페르펙티오의 아들이라면서?”

“부자(父子) 사이여도 진영이 다를 수 있는 거지.”

“…….”

염옥공이 잠시 침묵했다.

“에르나스, 설마… 철혈검제 폐하께 반기를 들 생각이냐?”

“애초에 철혈검제에게 충성을 바친 적이 없는데 반기라고 할 것도 없지.”

“네놈…….”

“염옥공, 분명히 말해 주지.”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당신들 6공작을 해치운 뒤 철혈검제까지 쓰러뜨리기 위해서야. 당신들에게 이 제국을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

염옥공은 얼굴이 없기 때문에 표정도 없다.

하지만… 눈구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더 격렬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충성스러운 페르펙티오의 자식이… 이런 미치광이였을 줄은 예상 못 했군.”

“미안하지만, 페르펙티오가 더 광기로 가득 찬 인물이야.”

그렇게 대꾸하면서 나는 검을 치켜들었다.

“그래, 염옥공… 한 가지만 더 알려 줄까.”

“뭘 말이냐?”

“가주였던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쓰러뜨려 이그니아스 가문을 멸망시킨 게 나야.”

“…….”

염옥공이 다시 침묵했다.

그리고…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염옥공의 분노가 주위로 파급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네 뜻은 잘 알겠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무서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염옥공이 검을 들었다.

칼날에 타오르는 듯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의 검… 염살검(炎殺劍)이었다.

“하지만, 나는 관대하다.”

“관대하다고?”

“너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마.”

염옥공의 마력이 전개되어, 염살검의 칼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내가 너한테 벌을 내릴 것이다. 목숨을 건진다면… 너를 용서하고 거둬들여 주마.”

“정말로 관대하군.”

나는 혀를 찼다.

“유스트 바스티안이나 다른 그래듀에이트들도 그런 식으로 거둬들여 검귀로 만든 건가?”

“그렇다, 에르나스.”

염옥공 입장에서는 정말로 관대한 행위였을 것이다.

단번에 재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화력을 조절해 준 모양이다.

“그러니… 버텨 보거라.”

그 순간.

막대한 열량이 염옥공에게서 방출되었다.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는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한 채 불꽃에 휩싸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검제급에 도달한 상태.

염옥공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다.

“……!”

콰쾅!

불꽃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하면서, 염옥공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의념을 담아 창뢰검형을 펼치며, 염옥공을 향해 검을 꽂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내 검은 염옥공에게 닿지 못했다.

염옥공 또한 의념을 담은 검으로 내 검을 쳐 냈기 때문이다.

“네놈……!”

쿠웅!

막대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그 충격파에 휘말려 염옥공이 타고 있던 말이 즉사했다.

결국 염옥공은 말에서 내려와 두 다리로 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벌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군, 염옥공.”

“에르나스……!”

염옥공의 목소리가 한층 더 거칠어졌다.

심검의 속도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서로 속도가 비슷한 이상, 한쪽이 한쪽을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도 염옥공도 전력을 다해서 정면 대결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덤벼라, 염옥공.”

염옥공은 내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적 중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선봉장인 염옥공조차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다른 공작들이나 철혈검제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그러니 나는 여기서 염옥공을 쓰러뜨리고… 더 성장해야 한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이 오만한 놈……!”

염옥공이 분노하면서 전신에서 불꽃을 뿜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초월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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