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82화 (181/212)

182화 염옥 (3)

“이것 참…….”

유스트 바스티안은 몸통에 꽂힌 검을 뽑아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치명상이었겠지만, 유스트는 멀쩡했다.

지금 유스트는 ‘검귀’가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격에 당하다니.”

며칠 전, 유스트는 동부 해안에서 염옥공을 만났다.

바스티안 가문의 모든 병력을 이끌고 가서 환영 인사를 했고, 염옥공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페르펙티오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유스트가 이그니아스 가문 멸망에 앞장섰다고 얘기를 듣고, 염옥공은 유스트를 불태웠다.

바스티안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들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유스트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마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버틴 결과였다.

그렇게 살아남은 유스트는 불타 버린 몸으로 무릎을 꿇고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했다.

그 결과… 유스트는 검귀로 다시 태어나 염옥공의 부하가 될 수 있었다.

“아직 검귀의 힘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검귀는 엘더 드래곤의 데이터를 응용해서 인간을 강화시킨 것이라 한다.

지금 유스트는 평범한 인간일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육체 능력이 향상된 상태다.

온몸이 불에 타서 뼈까지 드러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마력 효율도 엄청나게 향상된 상태였다.

“뭐… 잔챙이들은 충분히 해치울 수 있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스트는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올레아나 따위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었다.

지금 유스트가 해야 하는 건, 염옥공의 진격을 방해하는 적들을 처단하여 충성심을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음……?”

앞으로 걸어가던 유스트는 눈썹을 찌푸렸다.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세리느…….”

“아, 아버지?!”

세리느가 유스트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아버지가 여기에…….”

“세리느, 방금 네가 검을 날린 거냐?”

유스트가 질문하자, 세리느 곁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대답했다.

“아니, 방금 공격은 내 비검술(飛劍術)이야, 유스트 바스티안 후작.”

“베리스리제 슈라이에르……?”

“사악해 보이는 괴인이 있어서 일단 검을 날렸는데, 설마 당신일 줄은 몰랐네.”

슈라이에르 가문의 임시 가주가 유스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리느, 네 아버지한테 다짜고짜 검을 날린 건 사과하겠는데… 아무래도 네 아버지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

“베리스리제…….”

“몸통에 구멍이 뚫렸는데 멀쩡히 살아 있잖아. 게다가 얼굴도 완전히 불에 탄 시체 같고… 아무래도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베리스리제의 말을 듣고, 세리느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치켜들고 유스트를 노려봤다.

“아버지,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설명? 무엇을 말이냐?”

“어째서 아버지가 동부 지역을 유린하는 괴집단의 일원이 되어… 올레아나 님을 공격하고 있었는지 말입니다.”

“흥, 괴집단이라.”

유스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불경한 소리를 하지 마라, 세리느.”

“불경하다고요?”

“나는 위대하신 철혈검제 폐하의 군세에 합류했을 뿐이다. 지금 염옥공 전하와 함께 작전행동을 하고 있으니, 너도 어서 합류해라.”

“……!”

세리느가 눈을 크게 떴다.

“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철혈검제 폐하와 6공작들이 천 년 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이 땅에 돌아오셨다. 그러니 제국의 신하로서 복종해야지 않겠나?”

“아버지……!”

“바스티안 가문은 이미 그분들에게 복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니 너도 따라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유스트는 웃었다.

“수많은 가문 중에서 우리 바스티안 가문이 가장 먼저 합류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날 제국에서 우리는 1등 공신으로서 어마어마한 권위를 갖게 될 거다.”

“아버지, 제발……!”

세리느가 절박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니에요!”

“뭐라고?”

“아버지는 권력욕이 강하신 분이었지만, 지켜야 할 건 지키시는 분이었어요! 이런 끔찍한 일에 가담하실 분은 아니었다고요!”

그렇게 외치며 세리느가 손을 치켜들었다.

불바다가 된 플라티온 평야에서 수많은 검사가 불타 죽고 있는 중이었다.

“아버지, 제 정신을 찾으세요! 지금 아버지는 이성을 잃으신 상태라고요!”

“내가 이성을 잃었다고? 웃기는 소리 마라. 나는 멀쩡하다.”

“아버지가 멀쩡하셨다면, 왜 베리스리제의 비검술에 몸이 꿰뚫린 거죠?!”

“뭐라고?”

“아버지의 실력이라면, 상당히 먼 거리에서 베리스리제가 날린 비검술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눈앞의 올레아나 님에게 정신이 팔려서 그대로 몸이 꿰뚫린 거죠!”

“…….”

유스트는 무심코 자신의 상복부를 만졌다.

베리스리제의 비검술에 뚫린 구멍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확실히… 예전 같았으면 저런 애송이의 기습에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째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어느새 감각이 둔해졌던 걸까?

아니면, 세리느의 말대로…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서?

“웃기는군.”

하지만, 유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세리느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너야말로 정신 차리고 이쪽으로 와라.”

“아버지……!”

“제국의 검사로서, 바스티안 가문의 딸로서, 충성심을 발휘할 때가 왔단 말이다. 함께 싸우자, 세리느.”

세리느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 옆에서 베리스리제가 한숨을 쉬었다.

“세리느,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베리스리제…….”

“이성을 잃고, 맹목적인 충성심에 사로잡힌 상태야. 에르나스가 통신으로 알려 준 대로 말이야.”

“하, 하지만……!”

“그래, 네 아버지가 저렇게 되었을 줄은 예상 못 했지.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베리스리제가 착잡한 표정으로 불타는 평야를 쳐다봤다.

“네 아버지가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막아야지.”

“…….”

세리느가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세리느, 아무래도 너는 말로 해서는 안 될 것 같구나.”

“아버지…….”

“좋다. 그러면 너에게 벌을 주겠다.”

유스트는 검을 치켜들고 자세를 잡았다.

“나도 염옥공에게 벌을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너도 벌을 받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아버지……!”

쿵!

땅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전형적인 동부 검사인 유스트는 평소 이렇게 저돌적인 돌격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유스트는 충동에 몸을 맡긴 채 세리느에게 달려들었다.

“하압……!”

“……!”

쿠웅!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면서 충격파가 발생했다.

놀랍게도 세리느는 유스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냈다.

“세리느, 제법이구나!”

쾅, 콰앙!

유스트가 연속으로 공격을 펼쳤지만, 세리느는 모조리 방어해 냈다.

딸의 실력이 이 정도로 좋았을 거라고는 예상 못 했기 때문에, 유스트는 조금 허를 찔렸다.

“역시 시야가 좁아져 있네, 유스트 바스티안!”

“……!”

유스트는 어깨에서 통증을 느꼈다.

베리스리제가 어느새 옆으로 접근해 남부 검술 특유의 쾌검을 펼친 것이다.

“육체 능력은 향상된 듯하지만, 공격 충동이 너무 강해져서 시야가 좁아지고 움직임이 단조로워진 상태야!”

“뭐, 뭐라고?”

“동부의 명문가 바스티안의 가주가 이 정도라니, 실망스러운데!”

베리스리제뿐만이 아니었다.

세리느의 다른 동료들도 사방에서 유스트를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비올라! 세리느 님을 도와라!”

“네, 슈미츠 님은 베리스리제 님과 함께 측면을……!”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검기의 수준을 보니 다들 그래듀에이트 상급인 것 같았다.

“으음……!”

유스트는 신음 소리를 냈다.

애송이들 주제에 공격이 제법 매서웠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늘어만 갔다.

“얕보지 마라, 애송이들……!”

평소라면 결코 입에 담지 않았을 거친 발언을 내뱉으며 검을 휘둘렀다.

측면에서 달려들던 베리스리제를 튕겨 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세리느가 달려들었다.

“세리느!”

“아버지……!”

세리느의 찌르기가 유스트의 우측 상체를 노렸다.

무심코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궤도였다.

유스트는 방어를 포기했다. 어차피 조금 찔리는 것 정도로는 끄떡도 않는 몸이다.

세리느의 찌르기가 몸에 박힌 순간, 검을 휘둘러 세리느의 팔을 떨어뜨릴 생각이었다.

“……?!”

하지만, 세리느의 검이 교묘하게 흔들렸다.

동부 검술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움직임이다.

서부 검술에 가까운 변칙적인 움직임에 유스트는 잠시 혼란을 느꼈다.

그 직후, 좌측 어깨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크아악……!”

촤악!

전력을 다한 세리느의 공격이 유스트의 좌측 팔을 떨어뜨렸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동료들과 협공하는 중이라고는 하나, 딸의 공격에 한쪽 팔을 잃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리느 이 녀석… 나보다 검술이 더 뛰어난 건가?!’

세리느는 그동안 여러 전장에서 싸워 왔다.

얼마 전까지는 남부 변방에서 흑천마교를 상대로 혈전을 벌였다.

그 실전 경험을 통해… 동부 귀족들 사이에서 느긋하게 지내 왔던 유스트의 검술 실력을 능가한 것일까?

‘감히……!”

유스트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식의 성장을 기뻐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까 세리느와 베리스리제가 지적한 대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별 상관 없었다.

“세리느……!”

그 순간.

유스트는 흉골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정신세계에 진입했다.

검귀가 된 이후, 유스트는 정신세계의 속도를 물질세계에 구현하는 공격이 가능해졌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검귀가 되면서 유스트의 몸에 정신세계의 활용법이 각인되었을 뿐, 그 이치를 제대로 깨달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스트가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였다면 이 능력을 보다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세리느를 죽이기에는 충분하다.

‘감히 아버지한테……!’

이제 유스트는 세리느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펼칠 것이다.

아무리 세리느의 검술 실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정신세계의 속도를 구현하는 이 공격에는 대응하지 못한다.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유스트는 자신의 딸에게 치명상을 입혀 줄 생각이었다.

‘……?’

바로 그때.

유스트는 시야 끄트머리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감지했다.

정신세계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다. 그런데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뭐지?’

의문을 느끼면서 의식을 그쪽으로 집중시킨 순간.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딸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상태라면… 봐줄 필요는 없겠지.”

콰르릉!

천둥 소리와 함께 날아온 푸른 번개가 유스트의 오른쪽 팔을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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