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80화 (179/212)

180화 염옥 (1)

한밤중에 아카데미에 나타나 총장을 죽였다.

이건 엄청난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즉각 체포되어 황궁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본 페르디난드와 욜스가 나를 변호해 주었고, 안네리제도 내가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갔다는 걸 증언해 줬다.

그리고… 호수에서 건져 낸 알드바우트의 시체가 너무 심각했다.

“이건… 인간이 아니잖아!”

“설마 총장님이 마교에 입문한 건가?”

욜스 클래스의 조교수인 클로드와 마테우스가 시체를 살피면서 당혹스러워했다.

알드바우트의 시체는 도마뱀처럼 변해 있었다.

특히 온몸에 돋아난 비늘이 흉측했다.

“전신에 부여된 드래곤의 성질이 폭주하면서 이렇게 된 겁니다. 마교의 괴인들과 비슷하죠.”

“에르나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군.”

심각한 표정의 클로드와 마테우스에게 설명을 해 준 뒤, 나는 옆에 있던 욜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욜스 교수님, 보시는 대로입니다.”

“그렇군.”

욜스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들’은 흑천마교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 같다.”

지금 욜스는 철혈검제의 이름을 직접 입에 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으니까.

“에르나스, 역시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습니다, 교수님.”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동쪽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들은 동쪽 바다에 있는 철혈검제의 영묘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동부 지역으로 향해야 한다.

“동부 지역에 진입하기 전에 황궁에 들를 겁니다. 거기서 황녀 전하를 만나 협력을 요청하겠습니다.”

“황녀 전하?”

“황녀 전하와는 일종의 동맹 관계입니다. 사정을 설명한 뒤… 황궁이 보유하고 있는 흑색 엘릭시르를 전부 얻어 내겠습니다.”

“흑색 엘릭시르를……!”

레이나데 황녀는 소설에서 ‘에르나스의 여자판’이라 묘사되는 사람이다.

상황의 심각함을 누구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을 테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나를 도와줄 것이다.

상대가 철혈검제라고 하면 황궁 사람들은 동요하겠지만… 레이나데는 그런 부분을 걱정 안 해도 된다.

“이미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황궁 근처까지 도달했을 겁니다. 기사단과 합류해 동부로 움직여 놈들에 맞서면 됩니다.”

“그렇군.”

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르나스… 지금 전력으로 충분하겠나? 아무리 네가 있다고 해도, 아군의 전력이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은데.”

“어쩔 수 없죠.”

흑천마교와의 싸움에서 브랜틀리와 발렌티아노가 죽었다.

이제 남아 있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는 욜스와 페르디난드 그리고 안겔라밖에 없다.

전력이 부족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래도, 조만간 전력이 보충될 겁니다.”

“……?”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떠올린 건… 하인리히의 얼굴이었다.

하인리히는 흑천마교가 멸망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예상이지만, 아마 아그리파 가문의 영지로 향했을 것이다.

‘하인리히라면 그걸 찾아낼 수 있겠지.’

지금 하인리히는 더 강해지려 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딛고 일어서서, 아그리파 가문의 차기 가주로서 부끄럽지 않은 검사가 되려 하는 중이다.

하인리히라면 아그리파 가문의 영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아티팩트를 찾아낸 뒤…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하인리히가 제때 도착할 수 있느냐인데…….’

여기서부터는 소설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부분이다.

소설에서도 하인리히는 더 강해지기 위해 떠난 뒤 소식이 끊긴다.

철혈검제 세력과의 싸움에서 복귀시킬 계획이었지만, 거기까지는 집필을 못 했다.

‘하인리히를 찾으러 가서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세리느와 베리스리제 등도 현재 그래듀에이트 상급이지만, 절정급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밖에 전력이 될 만한 건… 철혈기사단 4석이었던 폴티아나 클라리온 정도일까.

“에르나스.”

그때 욜스가 다시 나한테 물었다.

“그들이 동부 지역에서 움직인다면… 동부 귀족들이 호응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동부를 대표하는 명문가는 이그니아스 가문과 란즈슈타인 가문이었다.

자연히 다른 가문들도 이그니아스에 가까운 가문들과 란즈슈타인에 가까운 가문들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그니아스 가문이 괴멸되면서, 동부 전체가 친(親)란즈슈타인 성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제 아버지인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이 그쪽에 있는 이상, 동부 지역의 귀족들 중 상당수가 그들에게 호응할 겁니다. 하지만…….”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귀족들도 금방 깨닫게 되겠죠. 그들에게 붙어 봤자 아무런 이득 볼 게 없다는 걸 말입니다.”

“에르나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빌붙는 가문은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득을 얻어 내려고 말이죠.”

내 생각으로는 바스티안 가문이 위험하다.

세리느의 아버지인 유스트 바스티안은 현재 동부에서 가장 영악한 인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만약 유스트 바스티안이 철혈검제 측에 붙어 앞잡이 노릇을 할 경우… 나와 세리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어쨌든 서두릅시다, 교수님.”

조교수들이 알드바우트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욜스와 함께 자리를 떴다.

“분명 놈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더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알겠다, 에르나스.”

욜스가 침착한 목소리로 답하며 내 뒤를 따랐다.

이제 곧… 최후의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 * *

동부 해안.

대륙의 동쪽 끝에 해당되는 바닷가에서 유스트 바스티안은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유스트의 등 뒤에는 바스티안 가문의 모든 병력이 대기하고 있다.

최근 다른 가문들을 복속시켜 세력을 크게 늘렸기 때문에, 현재 바스티안 가문은 동부 최대의 군사력을 지닌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르나스가 흑천마교 토벌을 위해 남부 지역으로 가 있는 동안 진행된 일이었다.

“알레이시 님, 이 정도면 충분한 예우가 되지 않겠습니까?”

옆에 서 있는 흑색 옷의 여성을 향해, 유스트가 말을 걸었다.

“이렇게 많은 병력으로 맞이해 드리면, 다들 만족하실 겁니다.”

“가주님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만.”

차가운 인상의 여성… 알레이시 란즈슈타인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줄곧 영묘 바깥에서 돌아다니며 란즈슈타인 가문을 위해 암약해 왔다.

몇 달 전 이그니아스 가문에게 쫓기던 유스트를 도와준 것도 알레이시였다.

“굳이 이렇게 요란하게 맞이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페르펙티오 님은 그러실 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으시겠죠.”

“…….”

“천 년 전의 예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바스티안 가문의 충성심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이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문 전체가 복종한다는 것을 표현해야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먹구름이 낀 바다 너머에서 시커먼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바위섬 같았는데, 실제로는 흑색 건물이 세워진 섬이었다.

“오오……!”

그리고 그 섬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섬이 마치 배처럼 바다를 가로질러 육지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금방 해안에 도착했다.

“정말로, 정말로… 놀랍군요!”

해안에 나타난 흑색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유스트가 경탄했다.

“저것이 바로… 철혈검제 폐하께서 잠드셨던 영묘(靈廟)!”

제국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본래 유스트 같은 후작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란즈슈타인 가문처럼 위령제를 담당한 가문만이 영묘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유스트는 마침내 영묘를 영접하였다.

“나오시는군요.”

“……!”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영묘 안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란즈슈타인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회색 머리카락의 남성이 나타났다.

붉은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나는, 섬뜩한 인상의 남자였다.

“오오, 페르펙티오 님……!”

유스트는 바닷물에 젖은 모래밭으로 걸어갔다.

“오랜만입니다! 이게 얼마 만인지……!”

“…….”

붉은 눈동자가 유스트를 향했다.

그리고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숙여라, 유스트.”

“네?”

“공작 전하들이 나오신다.”

“……!”

섬뜩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유스트는 반사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전원, 예를 갖춰라!”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여유조차 없었다.

모아 놓은 병력들이 다급히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려왔다.

“윽……!”

그 직후 유스트는 느꼈다.

페르펙티오의 뒤를 이어… 엄청난 존재감을 지닌 인물들이 차례차례 영묘에서 나오는 것을.

‘저분들이 바로……!’

유스트도 나름 실력 있는 그래듀에이트다.

그들 전원이 절정급, 아니 그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존재가 여섯 명 모여 있다.

‘6대 검술명가의 시조… 초대 6공작!’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

초대 아그리파 공작.

초대 슈라이에르 공작.

초대 발트펠트 공작.

초대 랭커스터 공작.

초대 란즈슈타인 공작.

천 년 전에 철혈검제를 보좌했던 초월적인 검사들.

그들은 자신의 주군인 철혈검제와 함께 영묘에 잠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스스로 순장(殉葬)을 선택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언젠가 철혈검제 폐하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그들은 영묘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야!’

그 엄청난 존재감에 몸을 떨면서도, 유스트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얼굴을 훔쳐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신속하게 인사를 올려, 바스티안 가문의 이름을 기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아……!”

하지만, 유스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6명의 초대 공작들은 장엄한 분위기의 예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살점 하나 없는 해골들이었다.

‘뭐, 뭐야? 스켈레톤?’

전혀 예상 못 했던 광경에 유스트가 당황하고 있었을 때.

해골 중 하나가 유스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해골의 눈구멍에서는 적색의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쳤다는 걸 깨달은 순간, 유스트는 머리를 모래밭 위에 처박았다.

“바스티안 가문의 가주, 유스트 바스티안이라고 합니다! 바스티안 가문의 구성원은 모두 철혈검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몸을 벌벌 떨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자…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라, 유스트 바스티안.”

“네, 넵……!”

시키는 대로 고개를 들자 또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해골이라 표정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더 무서웠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와 충성을 맹세하다니, 참으로 기특하다.”

“가, 감사합니다!”

“이 염옥공(炎獄公), 네 이름을 꼭 기억해 두겠다.”

“영광입니다……!”

염옥공이라는 이름을 듣고, 유스트는 저 해골이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칼레온 이그니아스의 선조다.

“염옥공 전하.”

그때였다.

한 발 물러서 있던 페르펙티오가 입을 열었다.

“이그니아스 가문의 몰락에 가장 앞장선 것이 저기 있는 유스트 바스티안입니다.”

“……!”

유스트는 경악했다.

페르펙티오가 이 타이밍에 이런 얘기를 꺼낼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페르펙티오 님, 그건……!”

유스트가 동부에서 반(反)이그니아스 세력을 규합하여 이그니아스 가문과 싸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이그니아스 가문을 무너뜨리고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죽인 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유스트는 줄곧 에르나스에게 협력했고, 그 이후로도 란즈슈타인 가문과 잘 지내 보려고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지금 알레이시 란즈슈타인과 함께 있는 것도 그 증거다.

그런데 왜 페르펙티오가 지금 시점에서 이런 얘기를 꺼낸단 말인가?

자기 아들인 에르나스가 한 짓은 어쩌고?

“그런가.”

염옥공의 입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에 떨면서 유스트는 염옥공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표정이 없어 어떤 반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랬던 것이군.”

“크아아아악……!”

그 순간, 유스트의 전신이 불꽃에 휩싸였다.

염옥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린 불꽃의 검기가 유스트를 덮친 것이다.

“으아악!”

“부, 불이……!”

“살려 줘……!”

유스트뿐만이 아니었다.

배후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바스티안 가문의 병사들도 모조리 불꽃에 휩싸였다.

엄숙한 분위기였던 해안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페, 페르펙티오 님, 살려 주십…….”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유스트는 페르펙티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골인 염옥공보다는 페르펙티오 쪽이 더 말이 잘 통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유스트는 깨달았다.

이쪽을 쳐다보는 페르펙티오의 냉담한 눈빛은, 해골들의 비어 있는 눈구멍보다 더 공허하고 섬뜩했다.

‘광인(狂人)……!’

유스트는 뒤늦게 떠올렸다.

페르펙티오야말로 6대 검술명가의 가주들 중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로 꼽히던… 광기(狂氣)로 가득한 남자였다는 것을.

“페르펙티오.”

“네, 염옥공 전하.”

불에 타고 있는 유스트에게는 더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염옥공과 페르펙티오가 대화를 나눴다.

“내가 6공작의 선봉으로 나설 것이다.”

“알겠습니다, 염옥공 전하.”

“동부 지역을 제압하는 동안, 너는 폐하 곁을 지키도록 해라.”

“맡겨 주십시오.”

페르펙티오가 허리를 숙이며 6공작을 배웅했다.

6공작은 천천히 영묘에서 나와 육지로 내려왔다.

타 죽어 가는 인간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육지에 6명의 해골들이 내려서는 모습은… 마치 지옥의 광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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