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검사의 혈투 (3)
가슴이 꿰뚫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브랜틀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브랜틀리와 알베리히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알베리히가 어떻게 움직여도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알베리히는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브랜틀리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렇군.’
브랜틀리는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 알베리히의 오른팔은 마치 촉수처럼 길게 뻗어 나온 상태였다.
인간의 육체를 버렸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속도로 팔을 뻗어 브랜틀리의 가슴을 찌를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결국 인간의 육체를 버리는 것으로 초월적 존재가 되려 한 건가.’
그동안 흑천마교는 인체를 실험 재료로 삼아 왔다.
어떤 때는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을 소마의 재료로 삼거나 괴인으로 만들었고, 어떤 때는 자기 자신들조차 끔찍한 존재로 개조했다.
그 모든 것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기 위한 실험이었던 걸까.
‘확실히, 인간의 육체를 버리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겠지.’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브랜틀리도 예전부터 한계를 느껴 왔다.
아카데미 동기인 칼레온, 클라우비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엄청난 재능을 지닌 에르나스조차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 정신을 잃은 상태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아까 상대했던 폴카 대주교도 인간의 육체를 버리는 것으로 전투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폴카는 마나 하트를 해체하고 마력을 전신에 전개하여 엄청난 육체 능력을 손에 넣었다.
마인 같은 육체를 손에 넣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폴카라는 강적과의 싸움은 브랜틀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하지만 브랜틀리는 폴카에게서 뭔가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폴카가 마인의 육체에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알베리히에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다.
‘알베리히, 너는 지금까지보다 더 강해졌다. 하지만… 검사로서 더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가?’
알베리히는 검술 실력이 좋아진 게 아니다.
검기를 펼치는 기술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그냥 마력 효율이 좋아졌고… 골격을 변화시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보다 강해졌을 뿐, 그래듀에이트로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알베리히, 어째서 인류가 검을 들고 그래듀에이트가 되었는지 알고 있나?’
먼 옛날.
인류는 마인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마인들에게서 마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운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마인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검이라는 무기를 손에 들고, 그래듀에이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인류가 검을 들고 그래듀에이트의 길을 추구한 건… 맨손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격상(格上)의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였다.’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를 쓰러뜨리기 위해.
검사는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고 마력을 연공하며 자신을 단련한다.
검사로서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격상의 상대를 쓰러뜨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너희는 검사로서 강해진 것이 아니다. 생물로서 강해졌을 뿐이다.’
그렇기에, 알베리히는 더 이상 그래듀에이트가 아니다.
격상의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검사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가슴이 꿰뚫린 채 죽어 가고 있는 브랜틀리와는 달리.
‘내가 그걸 지금 증명해 주겠다.’
가슴이 꿰뚫린 상태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브랜틀리를 향해, 알베리히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브랜틀리는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마지막 공격이 알베리히에게 닿을 거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똑똑히 봐라, 하인리히.’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직접 목소리를 내서 마지막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미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검사로서의 감각으로 알베리히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전신에 남아 있는 모든 마력을 쥐어짜서, 검에 담는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진수다.’
공간을 절단하는 검.
아무리 격상의 존재라도 일도양단할 수 있는 검술.
이 세상 어떤 검술보다도 그래듀에이트의 정신을 담은 아그리파 청월검술에, 브랜틀리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제 이 자부심은… 하인리히가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뒷일을 맡기겠다, 하인리히.’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넨 뒤.
브랜틀리는 마지막 공격을 펼쳤다.
* * *
하인리히는 모든 것을 똑똑히 지켜봤다.
알베리히의 두 번째 공격이 브랜틀리의 머리를 꿰뚫는 것을.
그리고… 그것보다 먼저 펼쳐진 브랜틀리의 공격이 알베리히를 일도양단하는 것을.
“아…….”
아버지, 라고 외치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아버지도 죽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순식간에 죽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크아아아……!”
알베리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 알베리히는 브랜틀리의 아그리파 청월검술에 두 동강 났다.
내장이 쏟아져 나와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알베리히는 죽지 않고 있었다.
“제, 젠장……!”
아까까지만 해도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욕설을 내뱉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빌어먹을……!”
뚜둑, 뚜둑.
절단면에서 살점이 돋아났다.
저렇게 두 동강 난 상태에서도 알베리히는 육체를 재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해할 수 없군…….”
그렇게 육체를 재생시키면서, 알베리히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심장을 꿰뚫렸는데, 어떻게 그런 공격을 펼친 거지? 마나 하트도 소실되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나?”
알베리히는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신들처럼 마나 하트를 없애고 마력을 전신에 전개한 것도 아닌데, 마지막 순간에 그런 공격을 펼쳤다는 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설마 브랜틀리도 마지막 순간에 초월적인 경지에?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저런 놈이 흑천급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헉헉대면서 알베리히가 계속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개죽음이다.”
개죽음.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리며 알베리히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흑천급에 가까운 존재! 아그리파 청월검술로 나를 공격해 봤자 소용없다! 6대 검술명가 중 하나인 아그리파 가문, 제국 최고의 명문가를 이끄는 가주가, 나한테 개죽음을 당했군……!”
알베리히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적대감이 담겨 있었다.
그의 내면에는 6대 검술명가 같은 명문가에 대한 적개심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니다.”
“응……?”
“아버지는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갑자기 들려온 낮은 목소리에, 알베리히가 흠칫했다.
“아버지는, 결코 개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다.”
“하하……!”
자신을 노려보는 하인리히의 모습에 알베리히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인리히 아그리파! 아버지의 개죽음이 안타까운가? 하지만 이걸 알아 두길 바란다! 너희 명문가들에 짓밟혀 개죽음을 당한 하층민들이 더 많이…….”
“닥쳐라, 알베리히 대주교.”
알베리히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하인리히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나 하트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상관하지 않고 마력을 쥐어짰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아그리파 가문의 가주로서… 아니, 브랜틀리 아그리파라는 검사로서 훌륭히 싸웠다.”
“웃기는군! 브랜틀리는 그냥…….”
“지금 내가 그것을 증명하겠다.”
“무슨…….”
어느 순간부터, 하인리히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온갖 사물이 흐릿하게 보였다.
제대로 보이는 건… 두 동강 난 알베리히의 절단면에서 엿보이는, 붉은 구슬 같은 코어뿐이었다.
“나는 하인리히 아그리파.”
불필요한 감각을 모조리 차단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베어 버리기 위해, 육체의 모든 여력을 집중했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계승한, 아그리파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다.”
“……!”
아버지의 마지막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했다.
초고속으로 펼쳐진 검의 궤적이 공간 자체를 절단했다.
“어떻게 네가……!”
알베리히가 절규했다.
절정급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어떻게 네가 쓰는 거냐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리히에게 절정급이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검술을 이어받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아…….”
우우우웅!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이 알베리히의 몸을 다시금 절단하고, 붉은 코어도 파괴했다.
재생되던 절단면에서 살점이 우두두 떨어졌다.
“크아아아악……!”
남아 있는 몸을 비틀면서 절규하는 알베리히.
하인리히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어떠냐, 마교도…….”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한 탓이다.
“이것이… 앞으로 제국을 이끌어 나갈 최고의 검술명가, 아그리파 가문의 검술이다…….”
자부심을 담아, 그렇게 내뱉은 뒤.
하인리히는 눈을 감고 정신을 잃었다.
* * *
“끄으으……!”
알베리히는 남아 있는 몸을 이용해 땅을 기었다.
지금 알베리히의 육체는 짓이겨진 고깃덩이처럼 괴이하게 뒤틀린 상태였다.
알베리히나 폴카 같은 존재는 제대로 된 흑천급이 아니기 때문에 마력을 제어하기 위한 별도의 코어가 필요하다.
그 코어가 파괴되면 마력을 제어할 수 없고, 마인의 육체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알베리히는 골격과 근육과 내장이 뒤집어져 흉측한 고깃덩이로 전락한 상태였다.
“아직, 아직……!”
살덩이에 파묻힌 발성기관으로 소리치면서, 알베리히는 바닥을 기어갔다.
목적지는 깊은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지하 호수다.
화산 지하의 영맥이 집결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물이 아니라 소마로 가득 차 있다.
총대주교는 그곳에서 잠들어 있었다.
“남아 있는 내 몸을 바쳐서… 총대주교님이 1초라도 빨리 깨어나실 수 있도록……!”
시간이 없다.
발렌티아노나 안겔라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총대주교가 빨리 각성하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 총대주교님만 각성하신다면, 모든 것이…….”
체액을 질질 흘리면서 기어가던 알베리히는 마침내 소마 호수 근처에 도달했다.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짜던 순간.
“아…….”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일어섰다.
그동안 계속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던 위대한 존재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아아아……!”
알베리히는 환희했다.
이런 꼴이 되면서까지 시간을 번 보람이 있었다.
“총대주교님……!”
눈물을 터뜨리면서 알베리히는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드디어 흑천급에 도달하신 거군요!”
알베리히는 느낄 수 있었다.
호수 위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막대한 존재감은… 알베리히가 목표로 했던 흑천급의 그것이었다.
“이제 안심입니다, 총대주교님!”
고개를 조아리면서 알베리히는 소리쳤다.
“이제 그 누구도 총대주교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그래듀에이트도,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조차도……!”
총대주교가 흑천급에 도달한 이상, 그 누구도 흑천마교를 막을 수 없다.
이제 곧 알베리히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제국을 무너뜨리고, 모든 명문가를 몰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오로지 개인의 실력만이 인정받는, 투쟁의 세계를……!”
그렇게 소리치면서 알베리히가 다시 고개를 치켜든 순간.
“……!”
총대주교에게서 뻗어 나온 시커먼 기운이 알베리히를 집어삼켰다.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무자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