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68화 (167/212)

168화 검사의 혈투 (2)

알베리히가 흑천마교에 귀의한 건 반세기 전의 일이다.

원래 알베리히는 북부 변방에 살던 평민이었다.

춥고 척박한 지역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고향 사람들은 대부분 몬스터 사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알베리히도 어렸을 때부터 몬스터 사냥을 도우며 성장했다.

물론, 몬스터를 직접 사냥한 건 아니고 그냥 남들 뒤를 따라다니며 잡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알베리히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함께 각목을 들고 칼싸움 놀이를 하던 모습이 우연히 영주의 눈에 들면서부터였다.

영주는 알베리히에게 검술을 배울 기회를 주었고, 알베리히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될 무렵에는… 영주를 섬기는 베테랑 검사들조차 꺾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마력을 다루는 방법을 정식으로 배워, 그래듀에이트가 되고 싶었다.

알베리히는 자신의 뜻을 영주에게 전했고, 영주는 고심 끝에 알베리히를 발트펠트 가문으로 보냈다.

발트펠트 가문에는 그래듀에이트가 많으니, 그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그래듀에이트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발트펠트 가문에 도착한 알베리히는 곧바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검사들이 넘쳐 났기 때문에, 알베리히의 실력으로는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여러 가문의 검술들을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자신을 철저히 단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발트펠트 가문에서 젊은 검사들을 위한 검술 대회를 개최했다.

알베리히는 대회에 참가하여 연전연승했고, 마침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백작 가문의 장남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맞서 싸웠다.

30분 가까이 이어진 혈투 끝에 알베리히의 목검이 상대의 오른쪽 손목을 부러뜨렸고, 알베리히는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의 발트펠트 공작은 알베리히를 치하한 뒤, 알베리히에게 마력 연공법을 배울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마침내 알베리히에게 그래듀에이트가 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알베리히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승전 상대였던 백작 가문의 장남은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알베리히에게 손목 골절상을 입어 아카데미에 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 원한 때문에 백작 가문이 움직였다.

백작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알베리히의 숙소에 찾아왔고… 알베리히는 양팔과 양다리가 부러진 채 눈 덮인 들판에 버려졌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알베리히는 포기하지 않았다.

발트펠트 공작은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고 마력 연공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러니 발트펠트 공작을 만나 호소하면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눈밭을 기어가 겨우 만난 발트펠트 공작은… 알베리히를 힐끔 쳐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발트펠트 공작은 이미 백작 가문에서 알베리히에게 제재를 가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 검술이 뛰어날 뿐인 평민의 자식을 돕는 것보다, 발트펠트 가문에 협력적인 백작 가문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 더 우선한 것이다.

비통하게 소리 지르던 알베리히는 발트펠트 가문의 검사들에게 린치를 당한 뒤 설원에 버려졌다.

절망에 빠져 죽어 가던 알베리히를 구해 준 건… 북부 지역에서 암약하던 흑천마교의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알베리히를 치료해 준 뒤, 흑천마교의 마력 연공법을 가르쳐 줬다.

복수심에 불타는 알베리히는 금방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했다.

당시 북부 지역에 와 있던 흑천마교의 대주교는 알베리히의 재능에 주목해 대량의 소마를 투입했고,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알베리히는 어느새 주교급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강력한 힘을 갖게 된 알베리히는 복수에 나섰다.

자신을 린치한 백작 가문을 몰살했고, 대주교의 도움을 받아 늙고 병든 발트펠트 공작을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복수를 완수했지만, 알베리히는 만족하지 못했다.

명문가들이 모든 걸 지배하는 제국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대주교는 알베리히를 총본산으로 보냈다.

알베리히의 재능이라면 총대주교를 도와 흑천마교의 비원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알베리히는 운이 좋았다.

북부에 계속 남았다면 새롭게 발트펠트 가문의 가주가 된 미하일 발트펠트의 표적이 되었을 테니까.

그렇게 운 좋게 북부를 빠져나온 알베리히는 남부 변방의 총본산에 도착했고… 총대주교를 만났다.

총대주교는 알베리히에게 직접 가르침을 주었다.

철혈검제가 만들어 놓은 제국의 체제가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알려 줬다.

흑천마교가 새롭게 만들 투쟁의 세계가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가르쳐 줬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은 알베리히는 총대주교의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알베리히는 총대주교 밑에서 흑천마교의 온갖 지식을 흡수했고… 마침내 대주교 자리까지 올랐다.

알베리히는 천재였다.

흑천마교의 모든 검술을 이해하고, 모든 비술(秘術)을 계승했다.

하지만 그런 천재였기에, 흑천마교에 미래가 없다는 것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다른 대주교들에게는 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능력도 의지도 없다.

말단 사제들은 그냥 지방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들일 뿐이었다.

총대주교는 위대한 사람이지만… 혼자 힘으로는 세계를 개혁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하나… 흑천마교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초월적 경지 ‘흑천급’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알베리히는 변이약을 계속해서 개량하면서 마인과 관련된 자료를 연구했다.

그 덕분에 흑천급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곧바로 알베리히는 총대주교와 함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총대주교는 흑천급에 도달하기 위해 긴 잠에 빠져들고, 대주교들은 총대주교가 눈을 뜨기 전까지 최대한 제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기로 했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대주교들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황제의 죽음을 전후해 궐기할 것이라고 대주교들에게 말해 뒀지만, 대주교들이 다른 마음을 먹지 않도록 목표를 던져 준 것에 불과했다.

대주교들의 역할은 총대주교가 각성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알베리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대주교를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총본산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유가 없어진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면서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총대주교만 각성하면, 모든 적을 쓰러뜨리고 이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알베리히는 목숨을 걸고 마지막 싸움에 나섰다.

* * *

“슈미츠! 뒤로 물러서요!”

“죄, 죄송합니다, 세리느 님……!”

부상을 입은 슈미츠를 대신하여 세리느가 알베리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세리느의 공격을 완벽하게 흘려 보낸 뒤 반격했다.

“윽……!”

자칫하면 슈미츠처럼 팔에 부상을 입을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막아 낸 세리느를 보면서 알베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기술이 뛰어나군요, 세리느 바스티안.”

“……!”

파팟!

알베리히의 연속 공격이 세리느를 몰아세웠다.

“세리느 님!”

“가세할게요!”

비올라 등 다른 사람들도 세리느를 돕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알베리히의 압도적인 검술 앞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이 사람의 검술… 브랜틀리 님보다 뛰어나!’

세리느는 전율했다.

지금 알베리히는 다른 흑천마교 간부들처럼 특별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검술만으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세리느!”

“베리스리제……!”

그때 베리스리제가 알베리히를 측면에서 공격하며 소리쳤다.

“격상(格上)의 적과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 주눅 들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알고 있어요……!”

세리느는 베리스리제의 질타에 이를 악물었다.

항상 위기에서 구해 주던 에르나스는 지금 여기에 없다.

옆에서 보좌해 주던 클로에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에르나스 곁에 남았다.

그러니 여기서는 세리느가 중심이 되어 적을 상대해야 한다.

“비올라! 저와 함께 정면에서 알베리히를 공격해요! 슈미츠와 베리스리제는 측면을!”

“알겠습니다……!”

주위에 있는 그래듀에이트 상급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세리느는 검기를 펼쳤다.

에르나스가 없는 이상,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자신이 지켜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 * *

“크윽……!”

알베리히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뒤, 브랜틀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검을 거둬들였다.

“아버지……!”

하인리히가 다급히 달려왔다.

“팔에서 피가……!”

“폴카 대주교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가 벌어졌을 뿐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브랜틀리는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눈앞에는… 알베리히 대주교가 ‘다섯 명’이나 쓰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제대로 된 길로 들어선 것 같군.”

“네, 이곳만 단단히 지키고 있군요.”

브랜틀리는 하인리히의 유격대 2분대를 이끌고 총본산 내부를 탐색 중이었다.

그러던 도중, 알베리히의 분신이 대량으로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았다.

알베리히의 분신들은 전투력이 상당히 뛰어나서, 브랜틀리도 꽤 애를 먹었다.

“하인리히, 너야말로 상처는 어떠냐.”

“별거 아닙니다. 이미 지혈은 끝났습니다.”

피로 물든 왼쪽 어깨를 으쓱하며 하인리히가 답했다.

하인리히도 아버지를 도와 알베리히의 분신과 싸우느라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버지, 그러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하인리히가 눈앞에 펼쳐진 어두운 계단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쪽으로 모이라고 발렌티아노 교수와 안겔라 교수 쪽에 연락을 취할까요?”

“연락을 취해야 하겠지만… 그들이 도착하는 걸 기다려서는 안 될 것 같다.”

“네?”

“알베리히가 이렇게 자신의 분신을 대량으로 운용하는 놈이라면, 교수들에게도 분신들을 보냈겠지. 지금쯤 전투 중일 거다.”

“아…….”

“그들을 도와 분신들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모이는 사이… 알베리히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브랜틀리가 계단 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부로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하인리히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근처에 있던 측근에게 지시를 내렸다.

“카밀로, 여기서부터는 따라오지 마라.”

“하인리히 님…….”

“교수들에게 달려가서 이곳의 위치를 전해라. 그게 너희들의 임무다.”

“알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방해가 되겠군요.”

청색 2반 시절부터 하인리히를 보좌해 온 카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하인리히에게 홀대받았던 카밀로지만, 지금은 어엿한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뒷일을 부탁한다, 카밀로.”

그렇게 부하들을 보낸 뒤, 브랜틀리와 하인리히는 둘이서만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습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눅눅하군요. 그리고… 냄새가 납니다.”

“그렇군.”

브랜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흑천마교의 사제들이 소마를 제조하던 곳에서 자주 맡을 수 있었던 냄새다.”

“…….”

10분 정도 계단을 내려가니, 비로소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온갖 기괴한 장치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장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브랜틀리 아그리파.”

“알베리히 대주교.”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이렇게까지 빨리 여기에 도달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

방금 전까지 상대하던 분신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모가 똑같을 뿐이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이 분신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본체인 것 같군요.”

“그런 것 같다.”

브랜틀리와 하인리히는 동시에 검을 치켜들었다.

아그리파 절검술의 자세를 취하는 부자(父子)의 모습에 알베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알베리히 대주교, 그 뒤에는 뭐가 있지?”

브랜틀리가 질문을 던졌다.

알베리히의 배후에는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한 것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흉흉한 기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총대주교가 그곳에 있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의외로 알베리히는 순순히 인정했다.

“여러분이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 제 임무지요.”

“그렇다면, 아직 늦지 않은 거군.”

브랜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기를 전개했다.

“여기서 너를 쓰러뜨리고 총대주교의 목을 치면 모든 싸움이 끝나는 건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브랜틀리 아그리파.”

“자만하지 마라, 알베리히.”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도 없다.

브랜틀리가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마음껏 사용해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그쪽이야말로… 자만하지 말길 바랍니다.”

바로 그때.

알베리히가 소매에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하인리히가 다급히 검을 던져 방해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설마……!”

약병에서 물약을 들이마신 직후, 알베리히에게서 강렬한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폴카 대주교처럼… 마인과 같은 육체로 변모하려는 건가!”

“제 재능으로는 흑천급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두 눈에서 시커먼 피눈물을 흘리면서, 알베리히가 미소 지었다.

“현재 흑천급에 가장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이 알베리히 대주교입니다.”

“하인리히, 몸을 피해라!”

다급히 소리치면서 브랜틀리가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펼쳤다.

모든 것을 베어 버릴 수 있는 공간 절단의 검술로, 알베리히가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승부를 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뻗어 나온 알베리히의 검기가, 브랜틀리의 가슴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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