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총본산 공략전 (5)
“그아아악……!”
코어를 파괴당한 폴카 대주교의 체내에서 마력이 폭주했다.
마나 하트를 해체하고 전신에 마력을 전개한 상태였는데, 그걸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니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제뉼라 대주교와 샤르나드 대주교처럼 코어를 파괴당해도 육체가 붕괴하지는 않았다.
아직 폴카의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아아아아!”
그래도 제대로 된 이성을 유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괴성을 지르면서 몸을 비틀어 댈 뿐이었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브랜틀리가 다시 검을 치켜들자, 폴카의 몸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전신에서 괴이한 돌기 내지는 촉수 같은 것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
브랜틀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전까지 전력을 다해 실력을 겨루던 상대가,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괴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아아아아!”
폴카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지르는 살덩이 괴물로 변모한 상태였다.
꿈틀거리는 촉수가 흑천칠염검술을 연상케 할 뿐, 방금 전까지 투지를 드러내던 폴카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버지!”
그때 하인리히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잔챙이들을 처리하고 브랜틀리를 따라잡은 것이다.
“브랜틀리 님, 저건……!”
이어서 도착한 세리느가 폴카의 모습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폴카 대주교의 마력 폭주다.”
브랜틀리는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유격대원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보아하니 난도질해서 완전히 해체해야 할 것 같다. 유격대 전원, 놈에게 공격을 집중해라.”
“네……!”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폴카를 완전히 침묵시키기 위해, 브랜틀리와 유격대가 공격을 펼쳤다.
이놈을 쓰러뜨리면 총본산 내부로 돌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 *
알베리히 대주교의 분신을 쓰러뜨린 뒤, 나는 곧바로 클로에를 깨웠다.
클로에는 흠칫 놀라면서 눈을 떴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나스 님이 격퇴하셨군요.”
“분신이라서 쫓아내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어.”
“분신… 혹시 알베리히 대주교였나요?”
“그래, 맞아.”
알베리히 대주교가 온갖 마법에 능통한 존재라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역시 알베리히 대주교는 무서운 존재군요. 아무리 분신이라고 해도, 혼자서 여기까지 침투하다니…….”
“그렇지.”
“알베리히 대주교가 작정하고 기습했으면 위험할 뻔했네요.”
클로에의 말대로 내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당했다면 위험했다.
하지만, 알베리히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알베리히는 내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어.”
“네?”
“지금까지 대주교들을 내보냈던 것도 어디까지나 시간을 끌기 위해서야. 대주교들은 다들 속고 있었던 거지.”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알베리히에게 중요한 건 총대주교뿐이니까.”
“그게 무슨 뜻이죠?”
“알베리히는 총대주교를 최강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야. 흑천마교가 추구하는 초월적 존재… 흑천급(黑天級)으로 만들 생각이지.”
“흑천급……!”
“대주교들을 내보내서 우리들을 상대하게 하는 것도, 총대주교가 흑천급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의도야. 대주교들이 우리를 쓰러뜨리는 건 별로 기대하지 않아.”
대주교들이 차례차례 죽어 나간다고 해도 알베리히 입장에서는 별로 아쉬울 게 없다.
총대주교만 흑천급에 도달하면 대주교들 따위는 굳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만약 흑천마교가 세계를 정복하여 통치할 생각이 있다면 대주교 같은 간부들을 남겨 놔야겠지. 하지만 흑천마교가 원하는 건… 무정부 상태니까.”
흑천마교는 마인들의 사상을 이어받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통치할 고위 관리직들을 남겨 놓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대주교들은 흑천마교 내부에서 나름 세력을 갖고 있어. 그 세력을 바탕으로 나중에 왕 노릇을 하려고 들 수도 있지.”
“일찌감치 숙청했다는 건가요? 우리들을 이용해서?”
“그런 셈이지.”
번거로운 일을 리히테나워 기사단에게 떠넘긴 셈이다.
그 과정에서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전력이 소모된다면, 번거로운 일을 더 줄일 수 있고 말이다.
“그렇다면… 총대주교가 흑천급으로 각성하기만 하면 우리들을 쓰러뜨릴 자신이 있다는 얘기군요.”
“맞아.”
알베리히는 총대주교가 흑천급이 되면 나도 브랜틀리도 발렌티아노도 안겔라도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대주교라는 전력을 잃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에르나스 님, 그러면 우리는 빨리 총본산으로 들어가서 총대주교를 해치워야겠네요. 총대주교가 흑천급에 도달하기 전에 말이죠.”
뛰어난 두뇌를 지닌 클로에답게, 지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클로에 말대로 총본산으로 진입해 총대주교를 빨리 해치우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클로에.”
“네?”
“미안하지만, 네가 발렌티아노 교수님과 안겔라 교수님한테 전달해 줘.”
나는 마차 바닥에 앉은 채 말했다.
“나는 아직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아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나를 내버려 두고 총본산 안으로 돌입해 달라고 말이야.”
“……!”
클로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 * *
총본산을 지키던 마교 측의 전력은 괴멸되었다.
폭주하던 폴카 대주교는 브랜틀리와 유격대의 공격에 완전히 침묵했다.
우르르 몰려 나왔던 괴인들도 발렌티아노와 안겔라가 이끄는 그래듀에이트들이 정리했다.
이제 총본산에 직접 돌입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문제는…….
“클로에, 에르나스가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
“네, 발렌티아노 교수님.”
클로에가 전해 준 얘기를 듣고 발렌티아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녀석이 이 상황에서 엄살을 피울 리도 없고… 그렇다면 정말로 상태가 안 좋은 모양이군.”
“에르나스 님도 죄송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마나 하트가 안정되지 않는 상태면 어쩔 수 없지. 그런 사람을 전선에 내보낼 수는 없으니까.”
“마력이 안정되는 대로 뒤따라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르나스는 여전히 후방에 있다.
클로에에게 그 얘기를 전달받은 지휘관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에르나스가 후방에 남아도 상관없다.”
“브랜틀리 부단장…….”
“어차피 흑천마교의 전력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발렌티아노와는 달리 브랜틀리는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폴카 대주교와의 싸움에서 체력을 많이 소모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또렷했다.
“남아 있는 간부는 알베리히 대주교와 총대주교뿐이다. 그 정도면 여기 있는 전력으로 충분히 해치울 수 있겠지.”
“그야…….”
“안겔라 교수, 어떻게 생각하지?”
브랜틀리가 질문을 던졌지만, 안겔라는 생각에 잠긴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에에게 시선을 향했다.
“클로에, 에르나스가 정말로 우리들끼리만 총본산으로 돌입하라고 했어?”
“네, 맞습니다.”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안겔라가 다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며 발렌티아노가 인상을 찡그렸다.
“안겔라 교수, 왜 그러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발렌티아노의 질문에 안겔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에르나스가 그렇게 말했다면, 우리들만으로 총본산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겠죠. 또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놈들을 빠르게 제압해야 합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발렌티아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우리는 에르나스에게 너무 의지했어. 에르나스가 아직 스무 살 정도밖에 안 된 젊은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이지.”
“네, 에르나스가 많이 힘든 상황이라면 쉬게 해 주는 편이 낫겠죠.”
결국 이대로 에르나스를 쉬게 한 채 총본산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부단장인 브랜틀리가 에르나스를 대신하여 총지휘를 맡을 것이다.
“…….”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기 시작한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들을 지켜보며… 클로에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나는 마차에서 가부좌를 틀면서 생각에 잠겼다.
‘클로에라면 내 지시대로 잘 움직여 주겠지.’
클로에는 내가 이미 회복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클로에라면 시치미를 떼면서 다른 사람들을 속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세리느나 다른 사람이었다면 좀 불안했겠지만… 클로에는 이런 걸 잘하니까.’
내 옆에 있던 게 클로에여서 다행이었다.
갑작스러운 명령에도 불구하고 클로에는 꼬치꼬치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나한테 계획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여 줬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사람들을 돌입시키는 수밖에 없어.’
그냥 바깥에서 무한정 기다리게 할 수도 없다.
그사이 알베리히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총본산 안으로 돌입시켜 알베리히를 압박하는 편이 더 낫다.
운이 좋으면 총대주교가 각성하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 전력으로도 알베리히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문제는 총대주교의 각성이 더 빨리 끝날 경우다.
내 예상대로라면 시간이 상당히 촉박하다.
총대주교가 각성하면… 브랜틀리와 발렌티아노, 안겔라가 다 같이 덤벼들어도 역부족이다.
‘그리고… 내가 합세해도 마찬가지지.’
나를 포함하면 절정급이 네 명이다.
네 명의 절정급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흑천급이 된 총대주교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애초에 알베리히는 내가 총대주교에게 달려드는 걸 원하고 있을 거야.’
지금 알베리히는 내가 총본산에 들어오는 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를 총대주교의 ‘먹잇감’으로 삼을 생각이니까.
‘흑천마교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제는 총대주교의 먹잇감으로 쓸 생각이겠지.’
알베리히는 진심으로 나를 포섭할 생각이었다.
권력에 큰 관심이 없는 나라면 총대주교의 후계자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단칼에 거절해 버렸으니… 총대주교의 먹잇감으로 써먹어야 한다.
‘알베리히, 미안하지만…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알베리히 대주교의 분신… 아니, 분신의 시체가 남아 있었다.
알베리히의 분신은 환영이 아니라 실체를 지닌 육체이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네가 저지른 커다란 실수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
알베리히는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원래 알베리히는 자기 육체를 분열시켜 물량전을 펼치는 대주교로, 총본산 안에는 저런 분신이 잔뜩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분신 하나 정도는 나한테 보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는 분신을 보낸 것 자체가 알베리히의 최대 실책이었다.
‘너는 내가 아티팩트를 갖고 있다는 건 꿰뚫어 봤지만,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모르고 있었지.’
아까 자뢰검강으로 알베리히의 분신을 무력화했을 때… 나는 일부러 알베리히를 즉사시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분신의 생명 활동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었다.
‘내가 유스레흐트를 사용할 시간이 남아 있었던 거야.’
클로에를 깨우기 전, 나는 알베리히의 분신에 손을 대고 능력 재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알베리히에게서 능력을 얻어 내는 것에 성공했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케르베스트 백화검술(SS랭크)]
[발트펠트 금강검술(SS랭크)]
[마르테리스 이륜검술(SS랭크)]
[철혈검마심법(SS랭크)]
[흑천마인대법(SS랭크)]
== 영구 귀속 ==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S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S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S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흑천마인대법(黑天魔人大法).
그동안 갖고 있었던 SS랭크의 흑천마도연공법을 삭제하고, 알베리히에게서 새로 획득한 마력 연공법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인 같은 육체를 손에 넣기 위한 힘으로… 마나 하트를 해체하여 전신의 혈맥에 마력을 충만하게 만든다.
지금 총대주교는 이 흑천마인대법을 사용해 흑천급에 도달하려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흑천급은 정답이 아니야.’
총대주교는 절정급을 넘어선 초월적 경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흑천급이 진정한 초월적 경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흑천급의 한계를 자세하게 묘사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이미 손에 넣은 상태지.’
흑천급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그것은… 황제에게서 얻은 철혈검마심법이다.
‘철혈검마심법과 흑천마인대법을 조합한다면…….’
철혈검제의 철혈검마심법.
흑천마교의 흑천마인대법.
서로 동떨어진 이 두 가지 연공법을 조합하는 건 소설에도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나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능력들을 조화시키는 것에 특화된 존재였으니까.
‘이것으로…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 수 있어.’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아칸델은 이런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벽을 뛰어넘기 위해 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철혈검마심법과 흑천마인대법을 조화시키는 것으로… 벽을 정면에서 깨부술 수 있었다.
“…….”
나는 눈을 감은 채 철혈검마심법과 흑천마인대법을 동시에 운용했다.
철혈검제와 흑천마교의 철학이 내 안에서 섞이며… 초월적 경지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