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총본산 공략전 (2)
특별한 전술 지시는 필요 없었다.
그동안 흑천마교와 싸울 때처럼 움직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발렌티아노 교수의 1부대와 안겔라 교수의 2부대가 괴인들을 상대로 버티는 동안, 유격대가 움직여 괴인들을 조종하는 지휘관을 해치우면 된다.
“세리느, 하인리히, 분대를 이끌고 따라와라.”
“네, 브랜틀리 님.”
“네……!”
세리느와 하인리히는 유격대를 이끄는 분대장이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그들은 매우 놀라운 활약을 보여 줬다.
그들은 아직 학생에 불과하지만, 적들과 싸우는 모습은 아그리파 가문의 베테랑 그래듀에이트 못지않았다.
전부 다 에르나스가 선발했다고 하는데, 에르나스는 인재 보는 눈도 훌륭한 걸까.
“…….”
브랜틀리는 고개를 돌려 발렌티아노와 안겔라에게도 눈짓을 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기사단을 지휘하며 괴인들을 상대해 줄 것이다.
그들이 버텨 주는 동안, 브랜틀리가 유격대와 함께 폴카 대주교를 쓰러뜨리면 된다.
“그아아아!”
“키에에엑!”
맷집이 뛰어난 오크 타입.
근력이 강한 오거 타입.
체구가 거대한 자이언트 타입.
세 가지 타입의 괴인들이 진형을 갖춘 채 돌격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일일이 상대해 주고 있을 필요는 없다.
“경신술로 돌파한다.”
“네!”
브랜틀리는 경신술을 사용해 도약했다.
가장 앞쪽에서 달려들던 오크 타입의 괴인들을 뛰어넘은 뒤, 그 뒤에 있던 오거 타입을 일도양단하면서 착지했다.
그 직후 다시 도약하면서 자이언트 타입 하나의 목을 날렸다.
다른 괴인들이 브랜틀리를 잡으려고 몰려들었지만, 굳이 상대해 줄 필요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괴인들을 돌파하여 폴카 대주교에게 도달하는 것이니까.
“하압……!”
등 뒤에서 하인리히의 기합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꽤 가까이서 쫓아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브랜틀리가 보기에 하인리히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머지않아 절정급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훌륭하다, 하인리히.’
하인리히뿐만이 아니라 세리느와 슈미츠 등 다른 학생들도 우수했다.
클라우비체의 딸인 베리스리제도 상당히 우수한 모습을 보여 줬다.
그들을 이끌고 돌격한다면, 에르나스가 쉬고 있는 동안에도 충분히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캬아아아!”
“그오오오!”
앞을 가로막는 괴인들을 격파하면서 계속 전진했다.
마교도가 아니라 민간인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변이약이 투여되어 저런 괴물이 된 사람을 치료할 방법은 없다.
차라리 빨리 숨통을 끊어 주는 편이 더 낫다.
“브랜틀리 아그리파다……!”
“막아라!”
화산 근처까지 가니, 멀쩡한 인간 모습의 마교도들도 보였다.
폴카 대주교의 호위 담당 같았다.
“방해하지 마라.”
브랜틀리는 검기를 더욱 강하게 했다.
일격에 해치우기 위해 공격을 펼치려던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그아아아……!”
괴성과 함께 놈들의 육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일종의 변이약을 복용하여 육체를 강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력을 강제로 폭주시키고 있군. 그래서는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텐데.”
“닥쳐라, 브랜틀리 아그리파!”
“폴카 대주교님을 위해, 우리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들은 폴카에게 충성을 바치는 마교도들인 것 같았다.
자기 목숨까지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니, 대단한 충성심이다.
“그렇다면, 그 목숨 내가 거둬들이마.”
“……!”
촤악!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놈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브랜틀리가 바람처럼 움직이면서 휘두른 칼날에 당한 것이다.
다른 놈들이 브랜틀리한테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크억!”
“아악……!”
하나, 둘, 셋, 넷… 다섯 명까지 쓰러뜨렸을 때, 유격대가 비로소 도착했다.
“아버지!”
“세리느, 하인리히.”
브랜트리는 여섯 명째의 목을 날리며 말했다.
“잔챙이들은 너희들에게 맡기겠다. 할 수 있겠나?”
“맡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유격대의 학생들에게 뒷일을 맡긴 뒤, 브랜틀리는 도약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아 있던 놈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브랜틀리! 멈춰… 크윽!”
“너희들은 우리가 상대한다!”
하인리히와 세리느의 실력이면 저 정도 놈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뒷일을 맡기고, 브랜틀리는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
그리고 용암이 흐르는 화산 중턱에 착지했다.
열기가 엄청났지만,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브랜틀리는 버틸 수 있었다.
“폴카 대주교.”
“용케 여기까지 올라왔군, 브랜틀리 아그리파.”
폴카는 무인(武人)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몸집이 컸고, 험상궂지만 호탕해 보이는 이목구비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 온 흑천마교의 대주교들은 사악한 놈이라는 걸 첫눈에 알 수 있었는데, 폴카는 좀 다른 것 같았다.
“그런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보이지 않는군. 어디로 갔지?”
“후방에서 휴식 중이다.”
“휴식 중?”
브랜틀리의 말을 듣고, 폴카가 피식 웃었다.
“그렇군. 총본산을 보호하는 환술을 깨기 위해 과도한 마력을 쓴 건가.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목숨이 위태로워진 모양이군.”
“착각하지 마라, 폴카 대주교.”
“뭐라고?”
“에르나스는 딱히 목숨을 아끼기 위해 후방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다.”
브랜틀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휴식을 취하지 않고 앞으로 나왔겠지.”
“그 말은… 지금은 에르나스가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건가?”
“그렇지.”
그런 게 아니었다면, 에르나스는 순순히 후방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폴카 대주교, 너희들 정도는 이 브랜틀리 아그리파 혼자서 쓰러뜨릴 수 있다. 에르나스도 그렇게 판단했기에 후방으로 물러나 쉬고 있는 것이다.”
“뭣……!”
“그리고 또 한 가지.”
브랜틀리는 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여기서 체력을 온존해 놔야 하니까 말이다.”
“체력을 온존한다고?”
“총본산으로 들어가 총대주교를 죽이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낫겠지.”
“……!”
폴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군, 브랜틀리 아그리파.”
“내 말에 문제라도 있나? 우리는 총본산을 무너뜨리고 총대주교를 처단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다.”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불가능할 이유는 뭐지?”
“흥, 웃기는군.”
폴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희들은 총본산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만에 하나 들어간다고 해도… 너희들이 총대주교님을 죽이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는 거지?”
“총대주교님이야말로 절대적인 힘을 지닌 분이시니까.”
그렇게 말하며 폴카가 자신의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브랜틀리는 깨달았다.
폴카는 허리에 일곱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브랜틀리 아그리파, 우리가 왜 흑천마교에 충성을 바치는 줄 아나?”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혼돈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닌가?”
“그건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교의(敎義)에 지나지 않아. 우리 대주교들이 흑천마교에 충성을 바치는 건… 총대주교님의 압도적인 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지.”
“압도적인 힘?”
“그렇다, 브랜틀리 아그리파.”
폴카의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총대주교님이야말로 세계의 정점에 오르셔야 하는 분이다. 철혈검제의 피를 이어받았을 뿐인… 별 볼 일 없는 황제들 따위가 아니라 말이다.”
“…….”
“그러니… 보여 주마.”
그 순간.
폴카의 시커먼 기운이 거센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총대주교님에게 전수받은… 이 흑천칠염검술(黑天七炎劍術)의 힘을!”
쿠쿠쿵!
폴카에게서 막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위험을 감지하고 브랜틀리는 경신술을 사용해 솟구쳤다.
‘이건……!’
이그니아스 가문의 이그니아스 염옥검술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타오르는 불꽃의 검기를 사용한다는 건 같지만, 그 성질이 달랐다.
이 시커먼 불꽃은… 폴카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어검술인가!”
“그렇다, 브랜틀리!”
쿵, 쿵, 쿵……!
폴카에게서 시커먼 불꽃이 연달아 솟구쳤다.
그것들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폴카의 검에 전개된 불꽃의 검기였다.
“……!”
폴카가 차고 있던 일곱 자루의 검.
그것들이 모두 시커먼 불꽃의 검기를 두른 채 공중에서 요동쳤다.
“불꽃에 난도질당해 죽어라, 브랜틀리!”
“……!”
쿠쿠쿠쿠쿵!
폭음을 발생시키며 불꽃의 검이 날아왔다.
브랜틀리는 경신술을 사용하여 그 공격을 피하려 했다.
일곱 자루를 동시에 다룬다고 해도 브랜틀리는 충분히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의 슈라이에르 비격검술도 상대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음……!”
쿵!
불꽃의 검을 받아친 순간, 브랜틀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충돌하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발생하면서 브랜틀리의 검기가 손상되었다.
“그렇군, 이런 성질인가.”
상대방의 검기를 손상시키는 불꽃의 어검술.
이게 일곱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온다면,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어떠냐, 브랜틀리!
폴카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놈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나! 절정급은 에르나스 말고도 있을 텐데!”
“…….”
그 말을 들으면서 브랜틀리는 후방을 살폈다.
발렌티아노 교수와 안겔라 교수는 지금 기사단을 이끌고 괴인들을 상대하는 중이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면 기사단은 괴인들에게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확실히 더 유리하기는 하겠지.”
“크흐흐, 그런가? 역시 너조차도…….”
“하지만, 싸움이라는 건 꼭 유리한 상황에서만 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브랜틀리는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 지금 상황도… 딱히 불리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뭐라고?”
“오히려 나한테는 꽤 반가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폴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갑다고? 웃기는군!”
쿵! 쿵! 쿠웅!
일곱 자루의 검이 마치 시위하듯이 폭음을 발생시키며 브랜틀리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내 흑천칠염검술에 완전히 포위된 상태이면서, 뭐가 반갑다는 거냐!”
“반가울 수밖에 없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검기에 포위되어 있다.
그러니… 바깥에서는 브랜틀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고 검술을 펼칠 수 있으니 말이다.”
“뭐라고?”
그 순간.
흑천칠염검술의 포위망을 뚫고, 브랜틀리의 아그리파 청월검술이 작렬했다.
* * *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브랜틀리와 폴카 대주교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로 전장의 상황을 확인한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에르나스 님.”
클로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조금 더 쉬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직도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요.”
“확실히 100% 완벽한 상태는 아니야.”
클로에의 말대로, 지금 나는 완벽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
철혈검마심법을 사용해 마나 하트와 혈맥을 안정시키고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진은검과 진철검을 동시에 뽑으려던 순간.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마차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얼굴을 지닌, 장발의 남자였다.
“……!”
클로에가 다급히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장발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클로에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다짜고짜 검부터 뽑는 건 좋지 않지요. 안 그렇습니까?”
“글쎄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진은검과 진철검을 뽑았다.
“너 같은 놈한테는 다짜고짜 검부터 뽑는 게 정답이겠지… 알베리히 대주교.”
흑천마교의 기술 개발 총괄.
수많은 사람에게 변이약을 투여해 괴물로 만든 극악인(極惡人)이자, 총대주교를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흑천마교를 지휘하고 있던 흑막.
알베리히 대주교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