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62화 (161/212)

162화 총본산 공략전 (1)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거침없이 남하했다.

흑천마교의 괴인 군단이 계속해서 나타났지만, 이미 기사단은 그들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괴인들을 조종하는 건 대주교가 아니라 주교급 성직자들이었는데, 나는 브랜틀리나 유격대와 함께 움직이면서 그들을 빠르게 격파했다.

지휘관을 잃은 괴인들은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되었고, 기사단의 공격에 금방 괴멸당했다.

그렇게 흑천마교의 괴인 군단을 돌파하면서 우리는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유스바스트의 영지를 확인한 뒤… 제국 영토의 최남단에 도달했다.

“나도 여기까지 오는 건 처음이야.”

남부 출신의 베리스리제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슈미츠 하르트만, 너는 어떻지?”

“저도 뭐…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죠.”

마찬가지로 남부 출신인 슈미츠가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람이 굳이 접근할 필요가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 아무것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는 언덕 위에 올라 전방을 살폈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건… 거대한 화산 지대였다.

‘엄청나군…….’

나도 모르게 경외심을 느꼈다.

그 정도로 눈앞의 화산 지대는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대한 활화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분화구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땅은 온통 시커먼 화산암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에서 용암이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런 화산 지대가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그야말로 지옥 같은 광경이었다.

“에르나스… 저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소설에도 설정을 안 해 놨다.

그냥 저 화산 지대가 제국의 남쪽 경계라고 서술했을 뿐이니까.

흑천마교 놈들은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을까?

“후후, 에르나스도 모르는 게 있군요.”

세리느가 내 옆에서 웃었다.

왠지 머쓱해져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에르나스, 그런데… 저쪽에 정말로 흑천마교의 본거지가 있는 건가요?”

“그래, 총본산이 숨겨져 있지.”

“아무리 마교도들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사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대체 여기서 뭘 먹고 살죠?”

세리느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농작물도 가축도 재배할 수 없으니까.

“글쎄,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버섯이라도 키우나 보지.”

실제로는 지하에 식량 공급용 시설이 있다는 설정이지만… 그것까지 얘기해 주면 너무 수상하다.

나는 모르는 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옆에 있는 측근들뿐만 아니라,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그래듀에이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대로 더 나아가면 화산 지대의 용암에 휩쓸려 녹아내린다… 그런 생각에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보여 줘야지.’

나는 진은검을 들었다.

그리고 마나 하트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철혈검마심법(鐵血劍魔心法)으로 제련된, 철혈의 마력을.

‘케르베스트 백화검술, 백화검람(白華劍嵐).’

문하이젠 대주교와 싸웠을 때 사용했던, 내 오리지널 기술.

막대한 얼음의 폭풍이 전방을 향해 휘몰아쳤다.

하지만 위력은 문하이젠를 상대했을 때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문하이젠, 제뉼라, 샤르나드를 차례차례 쓰러뜨리면서 그 마력도 흡수했기 때문이다.

베리스리제나 브랜틀리 등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 모든 마력을 빨아들이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은 마력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오오……!”

불타는 대지 위에서 휘몰아치는 얼음의 폭풍에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음……?”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역시 브랜틀리였다.

“아버지, 왜 그러십니까?”

“전방의 공간이…….”

파직.

파직, 파직.

파직, 파직, 파직……!

유리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진 뒤,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암이 흐르던 시커먼 대지 위에… 넓은 ‘길’이 출현했다.

“이건……!”

“환술이었나?!”

이 화산 지대에는 흑천마교의 환술이 전개되어 있었다.

용암 때문에 접근 자체가 어려운 곳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존재했다.

그걸 흑천마교가 환술로 위장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냉기로 용암을 식히시려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군요.”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아, 클로에.”

“후후, 알고 있어요. 강력한 광범위 공격으로 환술 자체를 파괴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클로에의 말대로, 나는 방금 기술로 흑천마교의 환술을 파괴했다.

백화검람을 사용한 건 가장 유효 범위가 넓은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님은 점점 대단한 경지에… 에르나스 님?!”

클로에가 다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내가 현기증 때문에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에르나스 님!”

다들 놀란 표정으로 나한테 몰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치켜들어 제지했다.

“잠깐 어지러울 뿐이야. 별거 아니니까 내버려 둬.”

“별거 아니라니요!”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다들 호들갑을 떨었지만, 대꾸해 줄 여유가 없었다.

클로에에게 부축받으면서 나는 체내에서 마력을 순환시켰다.

방금 전에 방출한 백화검람의 마력은… 재흡수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마력을 한꺼번에 사용한 탓이다.”

가만히 지켜보던 브랜틀리가 입을 열었다.

“현재 에르나스는 지금 여기 있는 누구보다 많은 마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마력을 갖고 있어 봤자 인간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브랜틀리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내 말이 틀렸나, 에르나스?”

“틀리지 않았습니다, 브랜틀리 님.”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대답했다.

“방금 전처럼 대량의 마력을 한꺼번에 방출하는 건… 제 기량으로는 아직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마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해서 그래듀에이트의 힘이 두 배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마력은 어디까지나 연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마력을 갖고 있으면 최대 출력의 공격을 연발할 수 있겠지만, 최대 출력을 뛰어넘는 공격은 할 수 없다.

방금 전에도 최대 출력을 살짝 넘어서는 위력으로 백화검람을 사용하니… 금방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그렇게 많은 마력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내 육체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네 기량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

브랜틀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역시 너도 인간이었군. 조금 안심했다.”

“저를 뭘로 보셨던 겁니까?”

내 질문에 브랜틀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기사단장은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 한다. 내가 선두에 서겠다.”

“아, 알겠습니다!”

브랜틀리는 내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

그대로 기사단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클로에에게 부축받은 채 뒤에 남았다.

“클로에, 에르나스를 부탁할게요.”

“네, 맡겨 주세요, 세리느 님.”

세리느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클로에에게 뒷일을 맡긴 뒤, 다른 유격대원을 데리고 브랜틀리를 따라갔다.

브랜틀리도 그렇고 세리느도 그렇고, 내가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움직여 주고 있었다.

“에르나스 님, 후방의 마차로 이동할게요.”

“그래, 부탁할게.”

나는 클로에의 부축을 받으며 후방에 있던 물자 수송용 마차로 향했다.

“후우…….”

클로에의 도움을 받아 마차 안에 누운 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면목 없군.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다니.”

“꼴사납다니요.”

클로에가 미소를 지으며 물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 줬다.

“방금 전에 브랜틀리 님의 말씀대로 ‘에르나스 님도 역시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요.”

“그러니까, 나를 대체 뭘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을 초월한… 만능 무적의 존재?”

“농담하지 마.”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존재면 당장 날아가서 흑천마교의 총본산을 화산과 함께 두 조각 냈겠지.”

“후후, 에르나스 님이 그런 존재면 전쟁 자체가 성립할 수 없겠죠.”

그렇게 말한 뒤, 클로에가 내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에르나스 님.”

“뭐지?”

“스스로 한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닌가요?”

“…….”

역시 클로에는 날카로웠다.

검사로서 내가 어느 정도 경지에 있는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브랜틀리겠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건 클로에일 것이다.

“지금 에르나스 님은 엄청난 마력을 지닌 상태예요. 하지만 브랜틀리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몸으로는 그 마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죠.”

“…….”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인간의 몸으로는 지난번 칼레온 이그니아스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게 한계인 것 같아요.”

지난번에 칼레온은 용골을 통해 획득한 마력으로 ‘디 인페르노’를 연발했다.

하지만 칼레온이 더 많은 마력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그 이상의 위력으로 디 인페르노를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마력의 양에 한계가 있으니까.

나는 철혈검마심법을 활용해 마력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고 있기 때문에 칼레온보다 더 많은 마력을 뿜어낼 수 있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지금 에르나스 님은 그 한계에 도전하는 중이신 거죠?”

“역시 너한테는 못 당하겠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작 소설의 아군 진영에서 유일하게 에르나스의 지략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게 클로에다.

그동안 계속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보좌했으니… 이 정도는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벽을 부수려면 벽을 최대한 두들겨 봐야 하니까.”

“역시 그렇군요.”

한계에 도전하면 도전할수록, 한계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다음번에 비슷한 짓을 했을 때, 나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마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쓰러지는 일도 없지 않을까.

“그런데, 에르나스 님.”

클로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벽을 부수면… 그 너머에 새로운 길이 있는 건가요?”

“…….”

“지금의 에르나스 님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클로에의 목소리에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내가 무리해서 생명이 위태로워질까 봐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브랜틀리 님이나 발렌티아노 님에 비해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끼실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더 강해지셔야 하는 건가요?”

“…….”

클로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한계를 넘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가 배드 엔딩을 맞이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브랜틀리는 말없이 전진했다.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이끌고, 용암지대 사이에 나타난 길을 행군했다.

에르나스가 사전에 알려 준 정보대로라면,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활화산에 흑천마교의 총본산이 있을 것이다.

‘에르나스가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브랜틀리는 에르나스가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힘과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브랜틀리는 지금 당장 에르나스에게 검을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에르나스는 진심으로 흑천마교를 쓰러뜨리려 하는 것 같았으니까.

“다들 멈춰라.”

브랜틀리는 손을 치켜들어 기사단을 정지시켰다.

전방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화산 중턱에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용케 눈치챘군.”

갑자기 주위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산 위에 서 있는 남자가 마력을 담아 말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을 칭찬해 주마, 제국의 칼잡이들이여.”

커다란 몸집을 지닌 사내였다.

먼 거리인데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브랜틀리는 저 남자가 지금까지 싸워 온 대주교들 중에서 가장 강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아마 폴카 대주교일 것이다.

“폴카 대주교.”

브랜틀리도 목소리에 마력을 실어서 말했다.

“네가 우리를 상대할 대주교인가.”

“그렇다. 총본산을 지키는 것은 내 임무다.”

폴카 대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노려보면서, 브랜틀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지, 폴카 대주교.”

“뭐냐.”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유스바스트 제후공의 영지에 진입했다. 하지만… 아무도 남아 있지 않더군.”

유스바스트의 영지는 완전히 약탈당한 상태였다.

심지어… 시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린애 한 명 남아 있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갔지?”

“그게 궁금한가.”

폴카가 천천히 손을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화산 중턱에서 무수히 많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에 있다만.”

“…….”

오크 타입, 오거 타입, 자이언트 타입… 그동안 질리도록 싸워 온 흑천마교의 괴인들이 우르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놈들은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유스바스트의 영지에서 민간인들을 싸그리 납치해 개조한 것이다.

“기사단 전원, 전투 준비.”

그렇게 말하며 브랜틀리는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브랜틀리는… 명백히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폴카 대주교를 격파하고, 총본산을 무너뜨린다.”

“네……!”

용암에 몸이 불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괴인들이 뛰어내려 왔다.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그래듀에이트들도 검기를 전개했다.

타오르는 대지에서, 흑천마교 총본산 공략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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