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61화 (160/212)

161화 마교 전선 (4)

괴인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놈들을 지휘하던 대주교가 격파되었다는 걸 눈치챈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본격적인 섬멸에 나섰다.

“단장과 부단장이 대주교를 해치웠다! 이제 잔챙이들은 우리가 쓸어버린다!”

1부대장을 맡고 있는 발렌티아노 교수가 목소리를 높이며 기사단원들을 독려했고, 제2부대장인 안겔라 교수도 부하들을 이끌고 거침없이 괴인들을 공격했다.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주력은 그동안 대륙 곳곳을 누비며 활약했던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이다.

그들은 그동안 소수 정예로 여러 가문들을 격파해 왔지만, 머릿수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그리파 가문과 슈라이에르 가문이 협력하면서 이 문제도 해결되었다.

남부에서 상당한 세력을 지닌 두 가문이 검사들을 보내 준 덕분에,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대규모 전투에 대응할 수 있는 병력을 갖추게 되었다.

“세리느 님! 이대로 우측의 괴인들을 치겠습니다!”

“네, 저희들이 해치우죠!”

그리고 베테랑 검사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하는 학생 중심의 부대가 있었다.

그들은 1부대에도 2부대에도 소속되지 않는 유격대로, 에르나스가 직접 선발한 학생들이 배속되어 있었다.

세리느가 이끄는 1분대와 하인리히가 이끄는 2분대로 나뉘어 있었는데, 특히 1분대에는 아카데미 출신인 베리스리제도 소속된 상태였다.

“하압……!”

파직!

슈미츠가 펼친 푸른색 검기에 우측의 괴인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싸우던 세리느가 감탄했다.

“슈미츠, 이제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네요.”

“아직 멀었습니다. 에르나스 님의 발끝에도 못 미치죠.”

현재 슈미츠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펼치면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욜스 교수에게 전수받은 뒤 혼자서 계속 연습하다가, 최근 비로소 요령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확실히…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하니 훨씬 더 안정적입니다.”

“그렇겠죠.”

세리느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클로에와 비올라도 강력한 검기를 펼치며 적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모두…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했군요.”

세리느와 슈미츠뿐만 아니라 클로에와 비올라도 현재 그래듀에이트 상급이었다.

최근, 황궁에서 백색 엘릭시르를 받았기 때문에 다들 마력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원래 백색 엘릭시르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에르나스가 손을 써서 백색 엘릭시르를 하나씩 준비해 줬다.

그 덕분에 에르나스의 측근 4인방 모두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전부 에르나스 덕분이지.”

푸욱!

달려드는 괴인의 머리를 레이피어로 꿰뚫으면서, 베리스리제가 입을 열었다.

베리스리제는 현재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지만, 에르나스의 판단으로 세리느의 제1분대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나도 에르나스가 준비해 준 영약 덕분에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할 수 있었고 말이야.”

베리스리제도 에르나스를 통해 백색 엘릭시르를 얻었다.

원래 에르나스에게 수여된 것이었지만, 현재의 에르나스한테는 필요 없다고 베리스리제에게 넘겨준 것이다.

원래 베리스리제는 아버지가 모아 둔 영약의 재료를 넘겨주는 대신 나중에 새로운 영약을 받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

페르디난드 교수가 아직 암리타를 추가로 제작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대신 백색 엘리시르를 받은 것이다.

“베리스리제… 한동안 실전에 나서지 못했을 텐데, 움직임이 매우 날카롭네요.”

“흥, 내가 슈라이에르 본성에서 놀고만 있었는 줄 알아?”

지금 베리스리제는 슈라이에르 가문의 독문 검술인 슈라이에르 천검술(穿劍術)을 사용하고 있었다.

클라우비체가 근접전에서 사용하던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로, 찌르기 위주로 빠른 공격을 펼치는 게 특징이다.

베리스리제는 슈라이에르 가문에서 머무는 동안 슈라이에르 천검술을 철저히 수련했다.

언젠가 다시 전장에 나섰을 때, 슈라이에르 가문의 대표로서 부끄럼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지휘나 해, 세리느.”

베리스리제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금 내 능력으로는 적들과 싸우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휘하는 건 버거워. 하지만 너는 할 수 있잖아?”

에르나스가 베리스리제를 유격대 1분대에 배치한 건 베리스리제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슈라이에르 가문의 병력을 통솔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격대에서 세리느의 지시를 받으며 움직이도록 했기 때문에, 베리스리제는 복잡한 일들에서 벗어난 채 검만 휘두르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안 드는 얘기지만, 너는 나보다 사람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에르나스의 구상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베리스리제…….”

“그러니까 에르나스도 너한테 분대장을 맡긴 거겠지. 그 역할, 잘 수행해 줘.”

베리스리제의 목소리를 듣고, 세리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많이 도와줘요, 베리스리제.”

“널 돕는 게 아니라 에르나스를 돕는 거야.”

그러는 사이, 남들보다 커다란 몸집을 지닌 괴인이 다가왔다.

전투 직전에 에르나스가 주의해야 한다고 귀띔해 준 거인형 괴인이었다.

“베리스리제, 슈미츠와 함께 정면에서 견제해 주세요! 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측면을 치겠습니다!”

“알겠어!”

근처에서는 이미 하인리히가 비슷한 거인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인리히의 2분대보다 먼저 쓰러뜨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세리느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마력으로 검기를 펼쳤다.

* * *

1차전은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완승으로 끝났다.

제뉼라 대주교와 샤르나드 대주교는 사망했고, 그들에게 조종당하던 마교도들도 전멸했다.

다만 전투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단순히 패퇴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확실히 전멸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한 놈도 빠뜨리지 않고 몰살시키는 건 확실히 힘들더군.”

“놓쳐 버리면 민간인들을 습격할 수도 있으니까요.”

임시 막사 안에서 발렌티아노와 안겔라가 고충을 토로했다.

“자칫하면 아군의 체력이 먼저 고갈될 뻔했어.”

“아그리파 가문과 슈라이에르 가문의 병력이 없었다면 일단 물러나야 했었을 겁니다.”

완승을 거두긴 했지만, 결코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흑천마교를 상대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닫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 확인한 결과, 괴인은 크게 세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에르나스의 참모로서 참석하고 있던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뚱뚱해서 맷집이 뛰어난 괴인, 상체가 발달하고 근력이 강한 괴인, 그리고 몸집이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큰 괴인… 이렇게 세 종류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클로에는 미리 작성해 온 비교용 그림을 보여 줬다.

“각각 오크 타입, 오거 타입, 자이언트 타입이라 하겠습니다. 숫자는 오크 타입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많은 게 오거 타입 그리고 전체의 5% 미만인 게 자이언트 타입입니다.”

“놈들이 진형을 갖춰서 덤벼들 때는 상당히 골치 아프더군.”

발렌티아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크 타입이 앞장서서 아군의 1차 공격을 막으면, 오거 타입이 빠르게 튀어나와서 반격하고… 자이언트 타입은 우월한 육체 능력으로 아군의 진형을 무너뜨리려 하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꽤 위협적이었어.”

“몬스터들 중에도 지휘관급 개체가 있으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위협적이더군요.”

“하지만 후방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대주교들이 쓰러지자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져 버렸지.”

그렇게 말하며 발렌티아노가 고개를 돌렸다.

“결국… 놈들을 상대할 때는 지휘관을 얼마나 빨리 쓰러뜨리냐가 관건이 되겠군. 그렇지 않나, 에르나스?”

“맞습니다, 교수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렌티아노의 말에 동의했다.

“괴인들은 강력한 육체 능력을 지녔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은 상태입니다. 지휘관들이 조종해 주지 않으면 그냥 본능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공격할 뿐이죠.”

“그래,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싸우더군.”

“그러니 지휘관을 빨리 해치우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 나는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브랜틀리와 함께 대주교들에게 달려갔다.

대주교들을 빨리 해치우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전투에서도 비슷한 작전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브랜틀리… 그리고 세리느와 하인리히가 지휘하는 유격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발렌티아노와 안겔라가 적군과 정면 대결 하는 동안, 우리가 따로 움직이면서 적 지휘관을 찾아내 해치워야 한다.

“다음 전투라…….”

발렌티아노가 인상을 찡그렸다.

“에르나스, 자네는 다음 전투도 비슷할 거라 보는가? 마교 놈들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어 투입할 거라고?”

“네, 그렇겠죠.”

“흑천마교의 병력이 그렇게 많을까?”

“평신도들을 최대한 긁어모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흑천마교 수뇌부에게 마교도들의 목숨 같은 건 그냥 소모품일 뿐이다.

전부 괴인으로 만들어서 전장에 투입해도 아무 문제 없다.

“그리고… 놈들은 그동안 줄곧 민간인들을 납치해 왔습니다. 그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면 병력은 충분합니다.”

“화가 나는 얘기군…….”

“그러니 더더욱 놈들을 빨리 섬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주위 사람들을 쳐다봤다.

“미적거릴 시간은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진군합시다.”

“그래, 맞는 말이야.”

바로 그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브랜틀리가 입을 열었다.

“에르나스, 대주교들은 어떻게 나올 거라 생각하지?”

“대주교들 말입니까?”

“제뉼라 대주교와 샤르나드 대주교가 쓰러진 건, 놈들에게도 예상 밖의 일이었을 거다.”

제뉼라와 샤르나드는 최대한 우리들의 발을 묶은 뒤 후퇴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브랜틀리가 모든 걸 제쳐 놓고 달려드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제 폴카 대주교와 알베리히 대주교만 남은 상황이다. 놈들이 직접 괴인들을 이끌고 우리를 막으러 나올 거라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주교급 부하들을 내세우겠죠. 본인들은 총본산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말입니다.”

“놈들이 총본산에 틀어박혀 있을 이유가 뭐지?”

브랜틀리가 의문을 제기했다.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총본산에서 도망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놈들의 우두머리인 총대주교가… 총본산 바깥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니까요.”

* * *

총본산 지하.

폴카 대주교는 어두침침한 실험실에 발을 들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알베리히!”

잠시 뒤, 안쪽에서 하얀 얼굴을 지닌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총대주교를 대신해 흑천마교를 지휘하고 있는… 기술 개발 총괄, 알베리히 대주교였다.

“샤르나드와 제뉼라가 당했다! 자신만만하게 얘기하더니 이게 뭔가!”

폴카는 무서운 눈으로 알베리히를 노려보며 말했다.

“에르나스와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게 대체 뭐냔 말이다!”

“확실히… 놈들의 기세가 우리들 예상을 뛰어넘은 건 사실입니다.”

알베리히가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뭐라고?”

폴카가 눈을 치켜떴다.

“큰 차이가 없다? 샤르나드와 제뉼라가 죽었는데?”

“네, 그분들이 죽든 말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대주교다! 두 명이나 죽었는데 뭐가 차이가 없다는 거냐?!”

“관점을 바꿔 봅시다, 폴카 대주교.”

“관점?”

“이렇게 금방 죽어 버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우리들에게 굳이 중요한 전력이 아닌 겁니다.”

“……!”

알베리히의 궤변에 폴카가 할 말을 잃었다.

“그 두 사람이 희생해 준 덕분에, 우리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현재 역량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죠.”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현재 역량?”

“네, 그러니 이건 상당히 큰 성과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베리히가 웃었다.

“물론,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건 사실입니다. 놈들이 총본산에 접근하기 전에 해치우는 건 어려워졌죠.”

“그래, 그러니 이렇게 태평한 소리는…….”

“그래도 말입니다.”

폴카의 말을 끊으면서 알베리히가 웃었다.

“놈들이 총본산에 접근하는 걸 막기 어렵다면… 총본산에 접근한 뒤에 쓰러뜨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걱정 마십시오, 폴카 대주교.”

알베리히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금 전에 걸어나온 깊은 어둠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에르나스의 역량은 이미 파악했습니다. 놈들이 여기까지 도달하기 전에… 준비를 마칠 수 있습니다.”

“준비라면…….”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알베리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놈들이 이곳까지 도달해 봤자… 오랜 잠에서 깨어나신 총대주교님에 의해 몰살당할 겁니다.”

흑천마교의 수장, 총대주교.

그가 완전한 모습으로 강림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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