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마교 전선 (3)
촤악!
브랜틀리는 확실한 손맛을 느꼈다.
정확하게 빈틈을 파고든 칼끝이 샤르나드 대주교의 호신기를 꿰뚫었다.
“윽……!”
샤르나드가 신음하면서 뒷걸음쳤다.
좌측 어깨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아예 팔을 떨어뜨릴 생각이었는데, 제대로 안 되었군.’
역시 대주교는 대주교다.
겉으로 보기에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지만, 실제로는 브랜틀리보다 더 나이가 많을 것이다.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브랜틀리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또 한 명의 대주교인 제뉼라는 이미 에르나스가 쓰러뜨렸다.
샤르나드는 브랜틀리가 쓰러뜨려야 한다.
‘에르나스한테 모든 공을 빼앗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전신의 근력을 증진시키며, 샤르나드를 향해 다음 공격을 펼쳤다.
검기와 검기가 충돌하면서 굉음이 발생했다.
“큭……!”
샤르나드가 이를 악물고 브랜틀리에게 맞섰다.
샤르나드의 움직임은 브랜틀리보다 느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브랜틀리의 빈틈을 찾기 위해 검을 놀렸다.
그걸 방해하기 위해 브랜틀리는 검을 찔러 넣었다.
“……!”
꽈앙!
샤르나드의 검이 밀려났다.
위로 튕겨지면서 중앙에 빈틈이 생겼다.
그 순간, 아그리파 절검술을 대표하는 초고속의 4연격 ‘더 크럭스’가 펼쳐졌다.
“으윽……!”
쿠쿠쿠쿵!
첫 번째 공격과 두 번째 공격이 샤르나드의 호신기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세 번째 공격과 네 번째 공격은 샤르나드의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빌어먹을…….”
샤르나드가 욕설을 내뱉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브랜틀리는 검을 치켜들었다.
“숨통을 끊으실 겁니까?”
그때 제뉼라를 쓰러뜨린 에르나스가 다가왔다.
“한 명 정도는 생포해도 될 것 같은데요.”
“너무 깊은 상처를 입혔다. 포로로 잡아 봤자 금방 사망하겠지.”
“대주교들은 생명력이 강하니 버틸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브랜틀리는 몸을 낮춰 샤르나드의 가슴을 살폈다.
어느 정도 부상인지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거였지만… 브랜틀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에르나스.”
“네?”
“대주교들은 이렇게 빨리 상처가 회복되나?”
피로 물든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라고 해도 이렇게 빨리 상처가 회복된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
에르나스가 빠르게 검을 휘둘러 샤르나드의 목을 쳤다.
그녀의 머리가 땅으로 굴렀지만, 이변은 계속되었다.
목의 절단면에서 붉은 살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에르나스, 이건……!”
샤르나드뿐만이 아니었다.
방금 에르나스가 쓰러뜨린 제뉼라의 시체에서도 새로운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으로.
“치명상을 입으면 효과를 발휘하는 변이약인 것 같습니다.”
“……!”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제뉼라와 샤르나드의 시체가, 끔찍한 괴물의 모습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 * *
‘소설과 다르군.’
나는 혀를 찼다.
소설에서 제뉼라와 샤르나드는 주인공 일행과의 싸움에서 치명상을 입은 뒤 그대로 사망했다.
이렇게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덤벼드는 전개는 없었다.
‘알베리히 대주교가 손을 쓴 건가.’
알베리히 대주교.
흑천마교 총본산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역이다.
마교도들에게 변이약을 먹여 괴인으로 만든 것도 알베리히가 한 짓이다.
‘제뉼라와 샤르나드가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건가?’
알베리히는 몰래 특제 변이약을 투여했을 것이다.
전투 중에 치명상을 입으면 효과를 발휘하도록 말이다.
효과가 나타나는 순간, 마나 하트의 마력이 폭주하면서 육체가 변질된다.
“그아아아……!”
젊은 외모를 지녔던 샤르나드도.
주름살 가득했던 제뉼라도.
똑같이 기괴한 용모를 지닌 괴인으로 변했다.
곳곳에서 살덩이가 증식하여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에르나스, 이게 대체 뭐지?”
브랜틀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소마를 잘못 복용해서 폭주한 상태와 비슷한데.”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많이 다릅니다.”
예전에 나는 레스터 랭커스터가 소마를 잘못 복용해서 몸집이 커진 걸 본 적이 있다.
“마력이 혈맥을 벗어나 전신에 파고들면서 육체 능력을 폭주시키고 있는 건 비슷합니다만… 계획적인 폭주죠.”
“계획적인 폭주?”
“짧은 시간 동안, 최고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된 폭주입니다.”
브랜틀리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뉼라와 샤르나드가 공격을 개시했다.
거대한 몸으로 우리들을 찍어 누르려 했다.
“……!”
쿠쿵!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충격파가 발생했다.
브랜틀리가 검을 휘둘러 봤지만, 조금도 상처를 내지 못했다.
“매우 견고하게 마력을 전개하고 있군…….”
인상을 찌푸리면서 브랜틀리가 마력을 더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파앗!
검기의 위력을 끌어올린 일격.
이번에는 제대로 살을 파고들 수 있었지만, 상처는 금방 재생되었다.
“쉽지 않은 상대군.”
“그렇지요.”
“평범한 공격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다.”
계속해서 덤벼드는 제뉼라와 샤르나드를 피하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에르나스, 네 금색 검기여야 가능할 것 같다.”
“그걸로도 불가능할 겁니다.”
“뭐라고?”
“제가 보기에 위력이 살짝 모자랍니다.”
제뉼라와 샤르나드의 방어력은 아까보다 훨씬 향상된 상태다.
생명 유지를 고려하지 않고 마나 하트의 마력을 모조리 쥐어짰기 때문이다.
파천검강으로 뚫을 수 있긴 하지만, 저 살덩어리를 모조리 소멸시킬 수는 없다.
“몸통 절반을 날려 버리더라도, 금방 재생해 버릴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은 두 가지 정도 있습니다.”
“말해 봐라.”
“일단… 몇 시간 정도 내버려 두면 마력이 고갈되어 알아서 활동을 정지할 겁니다.”
지금 주위에 아무도 없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아군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가 이 자리를 떠나면 제뉼라와 샤르나드는 아군을 덮칠 테고,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그 방법은 선택할 수 없겠군. 또 다른 방법은?”
“제 공격으로 저 살덩이들에 구멍을 뚫겠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면 내장을 노출시킬 수 있겠죠.”
파천검강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내부에 구슬 같은 게 있을 겁니다. 그걸 브랜틀리 님이 파괴해 주십시오.”
“구슬?”
“저 괴물들의 심장 같은 겁니다. 폭주 상태를 컨트롤하고 있죠.”
“너는 모르는 게 없군.”
브랜틀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 구슬은 내가 파괴할 수 있나?”
“아그리파 절검술로는 어려울 겁니다.”
“…….”
내 말을 듣고, 브랜틀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소리인지 바로 이해한 것이다.
“에르나스.”
“알고 있습니다, 브랜틀리 님.”
제뉼라와 샤르나드의 공격을 피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들에게 보여 주지 않는 게 원칙이죠.”
“얼마 전에 황궁에서 사용했을 때도… 목격한 놈들은 모조리 숨통을 끊었다.”
“제가 목격하게 되면, 저도 죽이실 겁니까?”
“…….”
브랜틀리가 입술을 깨물었다.
“에르나스.”
“네, 브랜틀리 님.”
“어디서도 말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브랜틀리가 이렇게 융통성을 발휘해 주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사소한 일도 아니고 가문의 원칙과 관련된 일인데도 이렇게 해 준다는 건… 브랜틀리가 나한테 신뢰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까.
“그러면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제뉼라부터.”
“어느 쪽이 제뉼라인지 구분이 안 된다.”
“아마… 오른쪽일 겁니다.”
“알겠다.”
브랜틀리가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엄청난 마력이 전개된 주먹질을 피하면서, 샤르나드의 주의를 끌었다.
그동안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파천검강을 준비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면… 복부에 코어가 있을 거야.’
소설 묘사대로라면, 붉은색 구체가 배 속에 박혀 있을 것이다.
최대 약점이니만큼 알베리히가 특수한 처리를 해 놔서 평범한 공격으로는 파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브랜틀리라면 파괴할 수 있으니, 파천검강으로 그걸 노출시키면 된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브랜틀리 님!”
브랜틀리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 뒤, 나는 파천검강을 펼쳤다.
막강한 금색 검강이 뿜어져 나가, 우측에 있던 제뉼라를 덮쳤다.
“그아아아……!”
제뉼라가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저 상태로도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걸까.
“하압……!”
파천검강이 사그러드는 타이밍에 맞춰, 샤르나드를 뿌리친 브랜틀리가 도약했다.
그 칼날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깃들어 있었다.
‘저것이 바로…….’
아그리파 가문의 독문 검술은 세 가지.
일반 검사도 사용할 수 있는 아그리파 속검술.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을 위한 아그리파 절검술.
그리고… 가주만을 위한, 절정급 전용 검술이 있다.
‘아그리파 청월검술(靑月劍術)……!’
브랜틀리는 특별한 움직임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초월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파아아아아앗!
공간이 절단되었다.
초고속으로 펼쳐진 검의 궤적이 공간 자체를 갈라 버린 것이다.
우우우우우우!
순간, 모든 것이 좌우로 갈라졌다.
공간이 절단되는 것이니, 아무리 단단한 물질이어도 두 조각 낼 수 있다.
목표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벨 수 없는 건 없다.
제뉼라의 붉은색 코어도… 두 조각 나 버렸다.
“그아아아……!”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제뉼라의 육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살점이 점토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윽고 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이만 남게 되었다.
“그으으으…….”
제뉼라의 최후를 확인한 샤르나드가 주춤거렸다.
저런 상태에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소설에서 묘사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브랜틀리 님, 한 번 더 가겠습니다.”
“가능한가?”
“네, 여유 있습니다.”
샤르나드에게 한 번 더 같은 위력의 파천검강을 퍼부을 여력은 남아 있었다.
“브랜틀리 님이야말로, 가능하십니까?”
“어리석은 질문이군.”
브랜틀리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나를 너무 얕보지 마라, 에르나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브랜틀리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아아아……!”
샤르나드가 마지막 발악을 하듯이 우리한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파천검강을 펼쳤다.
금색의 빛이 샤르나드를 덮쳤고, 이어서 청색의 궤적이 그 코어까지 파괴했다.
* * *
쿠웅!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하인리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움직임을 멈춘 하인리히의 모습에 옆에서 싸우던 베리스리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인리히, 정신 나갔어? 왜 전투 중에…….”
“아버지와 에르나스가 임무를 완수한 모양이다.”
“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베리스리제를 내버려 둔 채, 검을 휘둘렀다.
우측에서 덤벼든 괴인의 목을 날려 버린 뒤 하인리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전투, 곧 마무리될 거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지? 아직 괴물이 많이 남았는데.”
“네가 아직 내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거다.”
“뭐라고?!”
베리스리제가 눈을 치켜뜨며 하인리히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옆에 있던 세리느가 제지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저는 이미 익숙해졌어요.”
“세리느, 너는 어떻게 저런 놈하고 몇 달씩이나 계속 함께 싸운 거야? 나 같았으면 기회를 봐서 뒤에서 찔렀을 텐데.”
그녀들의 잡담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하인리히는 마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아버지가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사용하셨군.’
아그리파 청월검술은 절정급에 도달한 가주를 위한 검술이다.
아직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머물고 있는 하인리히로서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아그리파 가문의 ‘신동’ 하인리히는 언제나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왔다.
원래 아그리파 절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상급을 위한 검술이지만, 하인리히는 그래듀에이트 하급 시절부터 아그리파 절검술을 능숙하게 사용했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이 절정급 전용 검술이라고 해도… 도전해 볼 만하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터득한다면… 저 사람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겠지.’
하인리히는 굉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아버지와 에르나스, 따라잡고 싶은 두 검사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