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56화 (155/212)

156화 마교를 끌어내라 (1)

제국 남서부 끄트머리.

최근의 전란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를 유지해 온 변방에, 유스바스트 제후공(諸侯公)의 영지가 있었다.

“황녀 전하의 밀서라니…….”

유스바스트는 저택 집무실에서 편지를 개봉했다.

이 편지는 황궁에서 레이나데 황녀가 당숙인 유스바스트에게 은밀히 보낸 밀서였다.

시간을 들여 편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 뒤, 유스바스트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나한테 기회가 오는군.”

유스바스트는 레이나데의 편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을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혼란에 빠진 제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건 당숙님뿐이다… 황녀 전하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 건가.”

레이나데의 편지는 이번에 황궁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전하고 있었다.

철혈기사단이 흑천마교의 술수에 넘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

아카데미가 철혈기사단을 제압하고 황궁을 장악했다는 것.

황제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이 상황을 이용해 에르나스가 리히테나워 기사단장으로 취임해 큰 권한을 손에 넣었다는 것…….

이런 사건들 속에서 레이나데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황녀 전하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무서운 모양이군. 하긴 나 같아도 위협을 느낄 텐데, 열두 살 어린애니 더욱 그렇겠지.”

“…….”

“그래서 황족의 일원인 내가 황궁으로 올라와… 후견인으로서 자신을 지켜 주길 바란다는군.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도 마련해 주겠다면서.”

그렇게 말하며 유스바스트는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문하이젠 대주교.”

“…….”

유스바스트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건, 검은색 두건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그는 유스바스트가 내려놓았던 편지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편지 내용은 저희 흑천마교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과 거의 일치합니다. 혼란을 이용해 에르나스가 주도권을 잡은 게 확실해 보이는군요.”

“에르나스가 황제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황녀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 이 편지에 의하면 황녀 전하는 에르나스가 자신을 해치고 찬탈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

“그 정도면 명분은 충분합니다. 에르나스가 아카데미를 이끌고 황궁을 피바다로 만든 건 사실이니 말입니다.”

흑천마교의 대주교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유스바스트와 예전부터 한패였기 때문이다.

유스바스트는 그동안 흑천마교와 교류하면서 남부 변방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 여기서 내가 잘 처신하면… 나에게 황제 자리가 돌아올 수도 있겠지.”

유스바스트의 꿈은 황제가 되는 것이다.

현(現) 황제에게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의 사촌인 유스바스트는 한때 차기 황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12년 전 레이나데가 태어나면서 유스바스트는 황위에서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스바스트는 아직 황위에 오르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황녀 전하가 나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정식 지명하면, 에르나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

“그렇겠지요. 황족 출신인 유스바스트 공이 리히테나워 대공의 지위까지 손에 넣으면, 에르나스도 섣불리 대들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제국 전체를 정리한 뒤, 황녀 전하가 나한테 황위를 양보하게 만들면… 내가 황제가 될 수 있는 것이지.”

그동안 변방에서 조용히 인내한 보람이 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문하이젠 대주교, 나는 곧바로 황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전력이 필요하겠군요.”

“부탁해도 되겠나? 지금 내 직속 그래듀에이트들만으로는 불안하다.”

정말로 에르나스가 역심을 품고 있다면, 유스바스트에게도 칼을 들이댈 것이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흑천마교의 도움이 필요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를 포함한 정예병들이 동행할 것입니다.”

문하이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유스바스트 공의 측근으로 잘 위장해서 말입니다.”

“그래, 너희들의 위장술은 믿을 만하지. 부탁하마.”

유스바스트는 콧수염을 만지면서 미소 지었다.

“훗날 내가 황제가 되면… 너희들에게도 섭섭하지 않게 해 줄 테니 말이다.”

* * *

유스바스트는 신속히 움직였다.

에르나스가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구성하여 전력을 확충하기 전에 황궁에 도착해야 했다.

물론, 황궁으로 대규모 병력을 끌고 갈 수는 없다.

유스바스트가 데리고 가는 인원은 50명 안팎의 규모였다.

하지만… 그중 절반은 흑천마교에서 파견한 마교도들이 위장한 것이었다.

“대주교님.”

“뭐냐, 볼트라인 주교.”

행군 도중, 문하이젠은 측근인 볼트라인 주교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흑천마교의 전음술(傳音術)을 사용한 것이었다.

“정말로 유스바스트가 권력을 잡고 황제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볼트라인의 질문에 문하이젠은 코웃음을 쳤다.

“유스바스트에게는 그 정도 역량이 없다. 에르나스에게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반격당해 몰락하겠지.”

“네? 그러면 왜 이렇게 유스바스트를 돕는 겁니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볼트라인 주교.”

문하이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는 제국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제국의 정세가 혼란스럽게 돌아갈수록 우리한테도 기회가 생기니까.”

“아…….”

“유스바스트는 황궁에 올라가 황녀를 등에 업고 으스대다가 결국 에르나스에게 처단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겠지.”

유스바스트는 황족이다.

게다가 황녀의 인정을 받아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에 오르면 사실상 황제 다음가는 권위를 갖게 된다.

그 권위를 에르나스가 무력으로 짓밟는다면, 에르나스의 이미지도 추락하게 된다.

“에르나스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올 것이고, 궁내부에서도 에르나스를 위험하게 생각할 거다. 그러면 에르나스는 어떻게 나올까?”

“설마… 정말로 황위를 노릴까요?”

“거기까지는 예상할 수 없지. 다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생각했을 때, 결코 얌전히 있지는 않을 거다.”

결국… 제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대한 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때가 바로 흑천마교가 본격적으로 나설 때다.

“그러니 우리는 이 제국이 그런 혼돈으로 치달을 수 있도록 도우면 되는 거다.”

“그러면 황궁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고 움직이면 되겠군요.”

“그렇지. 최대한 혼돈을 불러일으킨 뒤, 슬쩍 우리들만 빠져나가면 되는 거다.”

문하이젠은 흑천마교에서 가장 경신술이 뛰어난 대주교다.

부하들도 전부 경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전투 사제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유스바스트를 내버려 둔 채 황궁을 빠져나와 총본산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황궁에 잠입했던 카톨레아스 대주교처럼 되는 일은 없어야겠지.”

“카톨레아스 대주교의 죽음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래, 아까운 사람을 잃었지.”

전음으로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문하이젠은 유스바스트의 사병(私兵)들과 함께 계속 행군했다.

하지만… 행군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무슨 일이지?”

“슈라이에르 가문의 검문인 것 같습니다.”

“슈라이에르 가문?”

슈라이에르 가문은 대륙 남서부를 지배하던 검술명가다.

하지만 아카데미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가주인 클라우비체까지 목숨을 잃은 이후로는 예전 같지 못하다는 평판이었다.

“듣거라, 슈라이에르 가문의 검사들이여!”

길목을 막고 있는 슈라이에르 가문의 검사들을 향해, 유스바스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철혈검제의 피를 이어받은 제후공(諸侯公) 유스바스트! 슈라이에르 공작의 사병에 불과한 너희들 따위가 감히 나를 막아서는 거냐?!”

제후공은 이 제국에서 황족에게 주어지는 작위다.

일반 공작과 비교하면 권위는 높지만 실속은 떨어진다.

넓은 영지나 많은 사병을 보유하는 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황실의 일원인 만큼, 공작 가문의 사병들이 무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어서 길을 비켜라! 불경죄로 목이 달아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유스바스트가 권위를 내세우면서 다그쳤지만, 슈라이에르 가문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유스바스트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자가 누구냐! 당장 나와서……!”

“책임자는 접니다, 유스바스트 제후공.”

슈라이에르 가문 쪽에서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미남자였다.

“리히테나워 기사단장,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입니다.”

그 순간, 유스바스트 진영의 모든 이가 숨을 삼켰다.

* * *

“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가 여기에 어떻게……!”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이 당황하면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이냐? 원래 너는…….”

“그건 제가 하고 싶은 질문입니다, 유스바스트 님.”

나는 유스바스트에게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째서 남쪽 영지를 벗어나 병사들을 이끌고 북상하시는 겁니까?”

“……!”

유스바스트가 움찔했다.

“대답해 보시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그건…….”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황녀의 밀서를 받고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기 위해 황궁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그래, 이건 황실 내부의 중차대한 일이라…….”

“거짓을 입에 담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스바스트 님.”

“뭐라고?”

“이미 저는 다 파악하고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니까요.”

유스바스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 에르나스, 설마 내가 황녀 전하의 편지를 받은 것을…….”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유스바스트 님.”

나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흑천마교의 문하이젠 대주교와 손을 잡고, 철혈기사단이 없는 황궁을 쳐서 황위를 찬탈하려는 계획 아닙니까?”

그렇다.

내가 레이나데에게 편지를 부탁한 건, 전부 이 상황을 위한 것이었다.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를 주겠다고 꾀어내면, 유스바스트는 의심하지 않고 황궁으로 달려올 것이다.

그러면 흑천마교에서도 문하이젠 대주교가 직접 나서서 유스바스트를 돕게 된다.

그렇게 예상하고, 미리 길목을 막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 무슨 소리냐?!”

유스바스트가 당황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지,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누명을… 내가 왜 황궁을 습격하고 황위를 찬탈한단 말이냐!”

유스바스트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지금 유스바스트는 어디까지나 황녀를 끼고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에 오르기 위해 황궁으로 가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억울해도 소용없다.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유스바스트 님.”

“시치미가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황녀 전하를 위해……!”

“그렇다면 저쪽에 숨어 있는 문하이젠 대주교는 뭡니까?”

“……?!”

병사들 사이를 가리키자 유스바스트가 숨을 삼켰다.

“흑천마교의 비술로 마력을 숨기고 있는 듯하지만, 저는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어째서 흑천마교의 대주교와 동행하고 있는 겁니까?”

“자, 잠깐만, 나는 모르는 일…….”

바로 그때.

내가 가리킨 방향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당한 것 같습니다, 유스바스트 공.”

“……!”

흉흉한 기운과 함께, 검은색 두건을 쓴 남자가 병사들 사이에서 솟구쳤다.

예전부터 유스바스트와 교류해 온 문하이젠 대주교였다.

“애초에 황녀의 편지 자체가 에르나스의 함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저희를 끌어내서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이었겠죠. 황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

역시 문하이젠 대주교는 유스바스트보다 똑똑했다.

이렇게 다 눈치채 주면 굳이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한 가지 실수를 했군.”

“실수?”

“우리는 너희들에게 일망타진당할 생각이 없다.”

그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 다른 마교도들도 정체를 드러냈다.

그들 모두 문하이젠과 비슷한 기운을 방출하고 있었다.

“이대로 이곳에서 이탈하면 되는 문제니까.”

“자, 잠깐만!”

유스바스트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문하이젠 대주교! 여기서 도망치자는 건가?!”

“착각하지 마십시오, 유스바스트 공.”

“뭐?”

“유스바스트 공까지 함께 데리고 도망칠 생각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

원래 문하이젠은 적당한 시기에 유스바스트를 손절할 생각이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문하이젠이 더 이상 유스바스트를 챙겨 줄 이유가 없다.

유스바스트를 내버려 둔 채 도망쳐 버리면 되는 것이다.

“착각하는 건 네쪽이다, 문하이젠 대주교.”

“뭐라고?”

“너희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내 목소리를 듣고 문하이젠이 눈썹을 찌푸렸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카톨레아스 대주교를 쓰러뜨렸다고 콧대가 너무 높아진 것 같군. 네놈 따위가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애초에 말이다.”

나는 문하이젠의 질문을 무시하며 말했다.

“내가 고작 여기 있는 사람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책략을 준비했다고 생각하나?”

“뭐라고?”

“오늘 여기서 너희들을 제압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는 거다.”

방금 문하이젠은 자신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함정을 꾸민 거라 말했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고작 황족 한 명과 대주교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를 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너희들을 제압하고… 나는 곧바로 황궁에 보고를 올릴 거다. 유스바스트 제후공이 흑천마교와 손을 잡고 있었으니, 유스바스트 제후공의 영지를 수색하여 흑천마교 세력을 색출해야 한다고 말이다.”

“뭐……?”

“그러면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이끌고 남쪽 끄트머리로 진군할 명분이 생기는 거지.”

“……!”

남쪽 끄트머리.

큰 가치가 없는 변방 중의 변방.

하지만, 나는 그곳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놈 설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하이젠은 경신술을 사용해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문하이젠은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을 안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 문하이젠 대주교.”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너희 흑천마교의 총본산이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죽여라……!”

상황을 이해 못 한 유스바스트의 사병들 사이에서, 마교도들이 결사의 각오로 뛰어올랐다.

문하이젠 대주교도 자신의 초고속 검술인 흑천벽력검술(黑天霹靂劍術)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전부 의미없는 저항이다.

“보여 주마, 문하이젠 대주교.”

나는 진은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이제 너희 흑천마교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철혈검제의 후손만이 익힐 수 있는 철혈검마심법(鐵血劍魔心法).

그 궁극의 연공법으로 완벽하게 제어한 대량의 마력을… 나는 일제히 전개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