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혼돈의 황궁 (5)
촤악!
카톨레아스의 목에 깊은 상처가 새겨졌고, 피가 솟구쳤다.
“컥……!”
카톨레아스는 목을 부여잡고 뒷걸음쳤다.
하지만 치명적인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출혈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이건 절정급의 마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끄윽…….”
결국 카톨레아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잠시 부들거리며 경련했지만, 그것도 곧 멈췄다.
“…….”
카톨레아스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손목의 팔찌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니플가디르의 ‘마력 장악’이 개시되었다.
[유효 범위 안에서 ‘마력 장악’을 시도합니다.]
[유효 범위 안에 ‘마력 장악’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유효 범위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마력의 제어권을 획득합니다.]
대량의 마력이 나에게 흡수되었다.
주위에 흩어진 백화검린의 마력을 회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카톨레아스의 천수검기에서 유출된 마력도 확보했다.
‘역시 흑천마교의 마력은 혼탁한 느낌이야.’
흑천마교에서는 소마를 사용해 마력을 획득한다.
정교하게 제작되는 에테르와는 달리 온갖 재료를 마구잡이로 집어넣어 제작하기 때문에 마력이 거칠고 불안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흑천마도연공법으로 강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된다.
‘SS랭크의 흑천마도연공법이 없었으면 혈맥이 터져서 이 자리에서 죽었겠지.’
나는 예전에 아르테클라스 대주교를 쓰러뜨리고 흑천마도연공법을 획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톨레아스의 혼탁한 마력을 어려움 없이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마력과 조화시키기는 건 쉽지 않겠어.’
내 마력은 암리타와 에테르 등을 통해 얻은 것이다.
맹렬한 기세를 지닌 용골의 힘도 흡수했지만, 이 정도로 혼탁한 마력을 받아들인 건 처음이었다.
자칫하면 내 마나 하트 자체가 오염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소설 속 설정을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기존의 마력과 새로운 마력을 조화시켜 최대 효율로 정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제를 만나야겠군.’
병석에 누워 있는 황제.
그를 만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철혈검제의 후손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온 특별한 기술을 터득한 상태니까.
‘물론… 그 전에 저 싸움이 정리되어야겠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카톨레아스 대주교와 싸우는 동안에도, 거대한 마력이 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그 싸움도 끝날 것이다.
* * *
마르타와 실리온드.
철혈기사단 차석과 3석을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은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황궁을 지키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검사들 중에서 최상위권에 해당되는 실력자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그들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칼레온이라는 규격 외의 힘을 지닌 검사와 싸워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칼레온이 펼치던 화염의 검기에 비하면, 마르타와 실리온드의 검기는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하인리히, 힘들면 물러서라.”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하인리히 곁에는 아버지인 브랜틀리가 있었다.
브랜틀리는 하인리히가 오기 전부터 마르타와 실리온드를 혼자서 상대하고 있었다.
‘역시 아버지야말로… 제국 최강의 검사다!’
아버지와 함께 싸우고 있는데,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인리히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며 기사들에게 맞섰다.
“덤벼라……!”
“젊은이가 건방지군!”
실리온드가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하인리히를 향해 금색 검기를 휘둘렀다.
발트펠트 가문의 검기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검기를 파훼하는 검기였다.
“버릇을 고쳐 주겠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묵직한 검기.
하지만 하인리히는 그걸 정면에서 받아 낼 생각이 없었다.
저 검기와 충돌하면 자신의 검기가 깨져 나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누구 마음대로……!”
하인리히는 실리온드의 공격을 받아 내는 척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몸을 비틀었다.
금색 검기가 허공을 가른 직후, 하인리히의 칼날이 실리온드의 어깨를 스쳤다.
“음……!”
실리온드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을 뿐이다.
그 몸에서는 피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빈약한 검기로 나를 상처 입힐 수는 없다네!”
“……!”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답게 실리온드의 호신기는 매우 견고했다.
하인리히의 평범한 검기로는 호신기를 뚫고 실리온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불가능했다.
“확실히 스피드는 뛰어나지만, 단지 그것뿐!”
“큭……!”
실리온드가 무서운 기세로 하인리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내 공격을 잘 피하고 있는 건 인정해 주겠네!”
“……!”
“하지만 요리조리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승리를 거둘 수 없는 법!”
쿠웅!
실리온드의 일격에 건물의 벽이 무너졌다.
공격 자체는 피할 수 있었지만, 무너진 벽의 파편이 날아와 하인리히를 덮쳤다.
“윽……!”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흐트러진 하인리히를 향해 실리온드가 쇄도했다.
하지만, 이건 하인리히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더 크럭스!’
아그리파 절검술을 대표하는 초고속의 4연격이 펼쳐졌다.
허를 찔린 실리온드가 방어 자세를 취했다.
“음……!”
파파파팟!
4연격 중에서 두 번은 막혔다.
하지만 두 번은 좁은 틈새를 파고들어 실리온드의 몸에 닿았다.
물론… 그저 닿았을 뿐이다.
“역시 미숙하군!”
“윽?!”
쿠웅!
실리온드의 반격에 하인리히는 뒤로 튕겨져 나갔다.
검기가 깨져서 마력이 주위로 흩어졌다.
“자네의 미약한 검기로는 나한테 아무런 상처를 줄 수 없네……!”
“큭……!”
하인리히는 다시금 검기를 재구성하여 실리온드에게 달려들었다.
아그리파 절검술의 각종 기술을 펼치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실리온드는 코웃음만 쳤다.
“소용없다고 말했을 텐데!”
이제 실리온드는 제대로 방어조차 안 하고 있었다.
하인리히의 공격이 자신의 호신기를 뚫을 수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 정도 경지에 도달한 건 훌륭하나… 아직 멀었군!”
“……!”
하인리히와 공방을 펼치는 도중, 실리온드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브랜틀리와 마르타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이다.
하인리히가 실리온드의 공격을 피해 도망 다니다 보니, 브랜틀리에게서 너무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 하인리히는 브랜틀리가 도와주러 오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라면 몰라도… 자네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네!”
“크윽…….”
하인리히가 입술을 깨무는 모습을 보면서 실리온드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실리온드가 계속해서 하인리히를 도발하는 건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굴욕감을 느끼나 보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닥쳐라, 실리온드!”
“자네도 신동이라 불리긴 했지만, 이제 옛날 일이 되었지! 불세출의 검술 천재인 에르나스 란즈슈타인한테는 한참 못 미치니까!”
“닥치라고 했을 텐데!”
하인리히의 연속 공격이 실리온드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실리온드는 팔뚝의 호신기로 여유롭게 막아 냈다.
“불쌍하구나, 하인리히 아그리파!”
실리온드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만 없었어도 어려움 없이 아카데미의 정점에 올라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었을 텐데… 정말로 안타깝군!”
“실리온드……!”
하인리히가 목소리를 높이며 실리온드에게 달려들었다.
그 무모한 움직임을 보며 실리온드가 히죽 웃었다.
“이 정도 도발로 이성을 잃다니, 역시 미숙하군!”
달려드는 하인리히를 향해 실리온드의 노련한 일격이 펼쳐졌다.
하인리히의 검을 쳐 내고, 그 가슴을 꿰뚫을 수 있는 궤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
“엇……?”
파직!
스파크를 발생시키며, 하인리히가 가속했다.
실리온드의 공격을 완벽하게 피하고, 그 오른쪽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허를 찔린 실리온드가 눈을 크게 떴다.
그래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하인리히의 검기가 자신의 호신기를 뚫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으윽?!”
촤악!
두터운 호신기를 뚫고, 하인리히의 검기가 실리온드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근육을 가르고 뼈에 닿는 일격이었다.
“어, 어떻게?!”
실리온드가 경악했다.
지금까지 하인리히의 검기는 실리온드의 호신기를 단 한 번도 뚫지 못했다.
그렇기에 안심하고 하인리히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신기를 찢어발기고 실리온드의 어깨에 큰 상처를 입혔다.
실리온드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
그런 실리온드를 향해, 하인리히는 지체 없이 다음 공격을 펼쳤다.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이기에 숨이 가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하아앗!”
콰콰쾅!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연속 공격이 펼쳐졌다.
실리온드는 다급히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오른쪽 어깨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어차피 속도는 하인리히 쪽이 앞서고 있었기에, 결국 실리온드는 하인리히의 연속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크아악……!”
실리온드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하인리히는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푸른 검기가 흐트러질 것 같았으니까.
‘절정급을 꺾으려면… 욜스 교수님에게서 배운 이 검기밖에 없다!’
그렇다.
처음부터 하인리히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검기로 승부를 낼 생각이었다.
방금 실리온드의 도발에 흥분한 모습을 보인 것도, 호신기에 흠집을 낼 수 없는 평범한 검기만 펼친 것도, 전부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야만 실리온드를 방심시킬 수 있으니까……!’
어차피 정면 대결로는 하인리히가 불리하다.
마력도 실리온드가 더 많은 데다가, 실리온드의 금색 검기는 하인리히의 검기를 파괴할 수 있으니까.
정면에서 충돌하면 결국 하인리히가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인리히는 실리온드를 방심시키는 작전으로 나갔다.
마력을 조절해서 검기의 위력을 일부러 약하게 만든 뒤, 실리온드를 향해 무의미한 공격을 반복한 것이다.
그 결과, 실리온드는 하인리히의 검기가 자신을 상처 입힐 수 없다고 확신했다.
방어를 소홀히 하고 호신기로 하인리히의 공격을 받아 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하인리히가 이성을 잃고 흥분했다는 착각까지 했다.
그런 상태에서 하인리히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로 한계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실리온드에게 칼을 꽂을 수 있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실리온드를 쓰러뜨리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원래 이건 하인리히의 스타일이 아니다.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면서 싸우는 건 에르나스의 스타일에 가깝다.
하지만 하인리히도 이제는 달라졌다.
격상(格上)의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정면에서 부딪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동안 에르나스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터득한 것이었다.
“윽……!”
그러던 도중, 하인리히는 머릿속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계를 넘어선 힘을 계속해서 발휘한 탓에, 현기증이 느껴진 것이다.
잠시 공격의 기세가 흐트러진 순간을 노려, 실리온드가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
쿠웅!
실리온드의 주먹이 하인리히의 오른팔을 강타했다.
이미 실리온드는 전신이 피투성이였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멀었다, 애송이……!”
실리온드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검을 치켜들었다.
하인리히를 두 조각 내려는 듯이 거대한 검기가 전개되었다.
“그래, 아직 멀었던 것 같군…….”
하인리히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그리파 절검술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더 확실하게 조화시키지 못하면, 절정급의 그래듀에티를 꺾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
“……?!”
실리온드가 눈을 크게 뜬 순간.
그 가슴에서 칼날이 솟구쳤다.
“커헉?!”
경악하면서 실리온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 뒤에는… 어느새 달려온 브랜틀리가 있었다.
하인리히가 실리온드를 붙잡아 놓고 있는 동안 마르타를 쓰러뜨리고 달려온 것이다.
“하인리히, 쓸데없는 도움이었나?”
“아닙니다, 아버지.”
하인리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실리온드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펼쳤다.
“지금의 제 실력으로는, 이 정도가 적절할 겁니다.”
아직은 절정급을 단독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얻은 경험은… 그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면서, 하인리히는 실리온드의 목을 날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