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혼돈의 황궁 (4)
나는 동부에서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쓰러뜨리고 전리품을 얻었다.
유스레흐트와 마찬가지로 고대의 아티팩트인 ‘니플가디르’였다.
니플가디르에는 자신이 방출한 마력을 재흡수하는 ‘마력 회수’ 능력이 있었지만, 내가 니플가디르를 장비하자 잠재 능력이 개방되어 ‘마력 장악’으로 진화했다.
마력 장악은 자신의 마력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력까지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칼레온이 방출한 마력까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SS랭크의 흑천마도연공법으로 최대한 마력을 연공한 결과…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대량의 마력이 내 마나 하트에 정착되었다.
‘니플가디르의 마력 장악 능력이… 마력 연공의 효율까지 향상시켜 주는 것 같았어.’
이미 나는 암리타를 복용하여 그래듀에이트 절정급 평균 이상의 마력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용골의 마력까지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막대한 마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칼레온은 마력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상태였지만, 나는 그런 것도 아니다.
니플가디르와 조합하면 디 인페르노 같은 광범위 공격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 백화검린(白華劍鱗)!’
백화검린.
칼레온에게 맞서기 위해 내가 직접 창조한 기술이 전개되었다.
비늘처럼 얇은 얼음의 칼날이 대량으로 중첩되어, 마치 사복검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을 취했다.
하지만, 칼레온과 싸울 때처럼 좁은 범위만 커버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공간 전체를 유린하는 카톨레아스 대주교의 천수검기에도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거대한 빙룡(氷龍)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크으윽!”
카톨레아스가 신음 소리를 내면서 천수검기를 더 크게 전개했다.
검붉은 촉수가 백화검린을 집어삼키기 위해 사방에서 쇄도했다.
“……!”
파파팟!
백화검린이 살아 있는 용처럼 거칠게 몸을 틀면서 천수검기를 찢어발겼다.
천수검기보다 백화검린이 더 견고하고 날카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놈, 어떻게 이런……!”
카톨레아스가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나는 대꾸해 줄 여유가 없었다.
백화검린을 제어하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력량이 많아지니, 컨트롤이 더 어려워졌어.’
나는 온몸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마력이 크게 늘어난 상태지만, 그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으며 제어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집중력을 잃으면 백화검린이 산산이 깨져 흩어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카톨레아스의 마력 제어가 칼레온보다 더 뛰어나.’
칼레온은 용골의 마력을 흡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디 인페르노를 사용할 때도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반면 카톨레아스는 상당히 예전부터 대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수검기 같은 기술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파파팟!
백화검린이 공중에서 춤추며 천수검기와 격투를 벌였다.
천수검기는 넓은 범위를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백화검린을 펼치지 않으면 대응하기 어려웠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냉기를 방출하여 천수검기와 함께 카톨레아스까지 얼려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실력으로 그것까지는 어려웠다.
‘지금 가능한 건, 내 사각을 노리는 검기의 가닥을 얼려서 방어하는 것 정도야.’
현재 내가 냉기를 방출하여 얼릴 수 있는 범위는… 나를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정도.
그 이상은 더 수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니, 백화검린으로……!’
파아앗!
백화검린과 천수검기가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칼레온과 싸울 때는 화염의 검기를 얼려서 백화검린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량의 마력을 제어하는 실력은 칼레온보다 카톨레아스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애송이가……!”
카톨레아스가 포효했다.
더욱 격렬해진 천수검기가 사방에서 몰려들며 백화검린을 집어삼키려 했다.
이제 백화검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아까보다 더 교묘하게 천수검기를 조작해 백화검린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해진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뚫을 수 있어!’
쿠쿠쿵!
살아 있는 용처럼 꿈틀거리면서, 백화검린이 천수검기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수많은 검기의 가닥이 백화검린을 제압하려 했지만, 미세한 빈틈을 파고들어 돌파해 나갔다.
“윽……!”
천수검기를 뚫고 쇄도하는 얼음의 용.
그 모습에 카톨레아스가 눈을 크게 뜨면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백화검린이 접근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크윽……!”
그 순간, 카톨레아스가 천수검기를 방어 모드로 전환했다.
수많은 가닥의 검기가 카톨레아스를 감싸면서 방어막 같은 형태를 취한 것이다.
예전에 아르테클라스 대주교가 흑천사복검술로 자신을 방어했던 것의 발전형이라 할 수 있었다.
“……!”
쿠쿵!
백화검린이 천수검기의 방어막에 충돌했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천수검기를 한곳에 집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충돌하는 순간 백화검린이 튕겨져 나가, 내 몸에도 충격이 전해졌다.
“큭……!”
“으윽!”
하지만, 충격이 전해진 건 카톨레아스도 마찬가지.
검붉은 방어막 안에서 카톨레아스가 신음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충격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백화검린으로 맹공을 펼쳤다.
* * *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보통 녀석이 아니다!’
카톨레아스는 천수검기의 방어막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에르나스가 절정급에 도달해서 칼레온 등을 쓰러뜨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이 녀석의 마력량은… 나를 능가한다!’
지금 에르나스가 펼치고 있는 얼음의 검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력을 극도로 압축해서 얼린 것인데, 카톨레아스가 펼치는 천수검기 전체보다 더 많은 마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마력을 얻을 수 있을까.
‘에르나스… 설마 소마를 복용한 건 아니겠지?’
흑천마교에서 제조하는 영약인 소마는 엘릭시르보다 효과가 강하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평범하게 엘릭시르를 복용하는 것보다 많은 마력을 얻을 수 있다.
혹시 에르나스는 제국 검술명가의 후계자이면서 소마를 복용한 이단자인 걸까.
‘빌어먹을… 에르나스를 너무 얕봤다.’
하지만,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카톨레아스가 보니 에르나스는 철혈기사단의 평기사에게서 검을 빼앗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듀에이트를 위한 검이긴 하지만, 카톨레아스의 검처럼 진은을 많이 사용해 제작된 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에르나스가 지금처럼 강력한 기술을 계속 펼친다면… 검이 부러질 수밖에 없다.’
카톨레아스도 흑천천수검술을 펼칠 때는 평범한 검을 쓰지 않는다.
평범한 검은 천수검기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분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부서져 버린다.
에르나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버티면 된다!’
에르나스가 평소 쓰던 검을 몰수당한 상태여서 다행이었다.
이대로 버티고 있으면 에르나스가 먼저 자멸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을 노려 반격하면 카톨레아스의 승리다.
“크으으윽……!”
계속해서 쏟아지는 얼음의 검기를 버티면서, 카톨레아스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
파팟!
얼음이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카톨레아스의 감각은, 방금 전까지 천수검기의 방어막을 공격하던 얼음의 검기가 산산조각 났다는 걸 정확히 감지했다.
‘지금이다!’
카톨레아스는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몸을 지키기 위해 압축해 놨던 천수검기를 확산시킨 순간, 산산히 흩어지고 있는 얼음 조각들이 보였다.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하면서, 카톨레아스는 천수검기를 뻗었다.
검이 부러진 채 망연자실해 있을 에르나스를, 일격에 해치우기 위해.
“……?!”
그 순간.
카톨레아스는 눈을 의심했다.
에르나스가… 멀쩡히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카톨레아스가 의문을 느낀 직후.
갑자기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위로 흩어졌던 얼음 조각들에서 발생한 소리였다.
“……?!”
샤아아아아앗!
무수히 많은 얼음 조각이 천수검기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천수검기는 방어 모드를 해제하고 주위로 퍼지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파고 들어올 만한 틈이 많았다.
얼음 조각… 아니, 얼음의 칼날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카톨레아스를 덮쳤다.
“크아아악!”
카톨레아스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비명을 질렀다.
다급히 천수검기로 대응하려 했지만, 이렇게 작은 얼음들이 휘몰아치고 있는 거라면 막아 낼 수 없다.
이미 얼음의 칼날들이 몸을 유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까처럼 천수검기를 압축하여 방어막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결국 카톨레아스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천수검기에 사용하던 마력을 회수하여 호신기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
하지만, 그 순간.
약체화된 천수검기 사이로, 에르나스가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칼날에는 금색의 기운이 전개되어 있었다.
“이런……!”
에르나스의 작전에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검이 카톨레아스를 덮쳤다.
* * *
카톨레아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천수검기를 파훼해야 했다.
하지만 카톨레아스는 대량의 마력을 지니고 있고, 흑천천수검술에도 익숙하다.
정공법으로 천수검기를 꺾는 건 어려운 일이었기에, 작전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검린이 깨진 것처럼 위장한 거지.’
백화검린은 무수히 많은 얼음 칼날의 집합체.
산산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어검술과 같은 원리로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카톨레아스는 백화검린이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해 방어막을 해제했지만, 그 순간 얼음 칼날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그런 상황에서 카톨레아스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은 호신기를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호신기를 강화하려면 천수검기에 투입하고 있던 마력을 다시 끌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덕택에 천수검기가 약체화되었고, 내가 파고들 틈이 생겼다.
‘호신기를 강화한 상태라고 해도, 파천검강이라면……!’
파천검강은 발트펠트 금강검술을 응용해서 만들어 낸,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검강이다.
카톨레아스가 엄청난 마력으로 호신기를 강화한다고 해도… 충분히 뚫을 수 있다.
“크윽……!”
쿠쿠쿵!
호신기를 파괴한 파천검강이 카톨레아스의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어깨에 파고든 정도로는 부족하다.
“하앗……!”
마나 하트에 남아 있는 마력을 총동원해, 근력을 극대화했다.
카톨레아스의 어깨에 파고든 검에, 내 모든 힘을 실었다.
“크아아악……!”
그 순간, 내가 사용하던 검이 한계에 도달했다.
내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카톨레아스의 오른쪽 팔은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크윽, 허억…….”
카톨레아스가 신음하면서 휘청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검을 잡았다.
방금 카톨레아스의 팔이 떨어지면서,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 카톨레아스의 검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검은 진짜 사피아스 단장이 쓰던 검이겠지.”
“……!”
흠칫 놀라는 카톨레아스를 향해,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이건 사피아스 단장을 위한 복수가 될 것이다.
“사피아스 단장의 검으로 죽어라, 카톨레아스 대주교.”
“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절규하는 카톨레아스를 향해, 다시 한번 파천검강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