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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43화 (142/212)

143화 백화의 검 (3)

쿠쿠쿵!

전광석화 같은 연속 공격에 충격파가 발생했다.

주위에서 휘몰아치던 얼음 칼날도 모조리 소멸했다.

그 속에서 불어닥친 21연격에 칼레온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미 백화검린으로 칼레온의 호신기는 너덜너덜해져 있었기에, 자뢰검기로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그동안 칼레온이 입은 상처들은 냉기 때문에 얼어붙어 출혈이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 칼레온의 전신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아…….”

칼레온의 입에서 짧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치명상을 입힌 것을 확인하고, 나는 뒤로 물러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칼레온보다 마력량이 적다.

백화검린을 전개하는 데 이미 대량의 마력을 사용한 터라, 내 몸은 완전히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아직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칼레온이 포효했다.

이미 팔뚝의 힘줄이 끊겨 검을 들 수 없는 상태일 텐데, 마력으로 보강한 건지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나는 칼레온 이그니아스! 이그니아스 가문의 미래를 위해,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단 말이다……!”

“……!”

칼레온의 검이 격렬한 불꽃으로 휩싸였다.

디 인페르노처럼 거대한 화염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칼레온이 펼쳤던 불꽃의 검기 중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마력이 아니라 생명력을 불태우는 듯한, 칼레온 일생일대의 반격이었다.

“이그니아스 가문의 긍지! 이그니아스 가문의 미래! 그 모든 것을 위해! 여기서 너를……!”

불꽃의 검기가 나를 덮치려 했다.

이미 내 몸은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고, 그 공격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

화르르!

칼레온의 전신이 불꽃에 휩싸였다.

이미 칼레온은 마력으로 검기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꽃의 검기가 칼레온의 육체까지 뒤덮어 버린 것이다.

칼레온의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새로운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도달하여 나에게 돌격할 수 있었겠지만…….

“아…….”

불꽃이 폭주했다.

표면에서 머무르며 내부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조절이 불가능했다.

격렬한 화염이 칼레온의 육체까지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칼레온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 하고 있었지만, 불타 버린 손가락이 부스러지면서 검을 놓쳐 버렸다.

“…….”

칼레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명력까지 쥐어짜서 만들어 낸 최후의 불꽃은, 칼레온의 전신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숨통을 끊어 줘야 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칼레온…….”

털썩.

새까맣게 타 버린 칼레온이 쓰러졌다.

이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나는 착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만약 당신이 아카데미에 남아서 정도(正道)를 걸었다면… 이런 최후를 맞는 일은 없었겠지.”

루퍼스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만드는 걸 포기하고 아카데미 지도 교수로서 나에게 협력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한계를 넘어선 불꽃을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몸을 불태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공투(共鬪)하는 것으로 그동안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몰라.”

그동안 칼레온은 실력이 정체되어 있었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는 용골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하고 손을 잡았다면… 스스로를 불태우는 일 없이, 다음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겠지.”

이그니아스 가문을 이끄는 가주로서의 책임감.

그것이 칼레온을 이런 길로 몰아넣었다.

칼레온은 이그니아스 가문을 더 번영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클라우비체와 다를 바 없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걱정 마라, 칼레온. 이그니아스 가문을 멸문시키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쯤 발렌티아노 교수가 이끄는 아카데미의 정예부대가 이그니아스 가문의 본진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이그니아스 가문은 칼레온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고 하겠지만… 칼레온은 이미 죽었다.

칼레온이 없는 본진 정도는 발렌티아노와 안겔라의 힘으로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빨리 항복한다면…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다.

“루퍼스가 잘 처신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루퍼스는 인성이 나쁘지 않다.

또래 세대 중에서는 재능도 뛰어난 편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아카데미에 고개를 숙인다면, 이그니아스 가문의 새로운 가주로서 대우받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하여 마지막까지 저항한다면, 루퍼스도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앞으로의 일은 루퍼스에게 달린 셈이다.

“그러니 칼레온… 뒷일은 아들에게 맡겨라. 당신 역할은 이제 끝났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나는 칼레온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부서진 팔뚝에서 굴러떨어진… 붉은색 팔찌를 집어 들었다.

“…….”

지금 나는 마력을 많이 잃은 상태다.

백화검린을 전개하느라 대량의 마력을 체외로 내보냈는데, 모든 칼날이 산산이 흩어졌기 때문에 그 마력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자뢰검기까지 썼기 때문에… 암리타를 복용해서 획득한 대량의 마력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붉은색 팔찌를 장착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티팩트 ‘니플가디르’에 대한 이해도가 90%입니다.]

[아티팩트 ‘니플가디르’의 잠재 능력이 개방됩니다.]

[아티팩트 ‘니플가디르’의 ‘마력 회수’가 ‘마력 장악’으로 진화합니다.]

유스레흐트를 처음 사용했을 때처럼, 잠재 능력이 개방되었다.

나는 니플가디르의 설정을 만든 작가 본인이다.

칼레온 이상으로 니플가디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잠재 능력이 개방되어 새로운 능력으로 진화된 것이다.

‘소설에서 니플가디르는 자신이 사용한 마력만 재흡수할 수 있었지.’

칼레온은 이그니아스 염옥검술로 방출한 불꽃의 마력만 회수했다.

내 백화검린에서 유출된 마력은 흡수하지 못했다.

마력 회수에서 마력 장악으로 진화한 지금, 니플가디르는 어떤 효과를 보여 줄까.

[유효 범위 안에서 ‘마력 장악’을 시도합니다.]

[유효 범위 안에 ‘마력 장악’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습니다.]

[유효 범위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마력의 제어권을 획득합니다.]

대량의 마력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왔다.

백화검린이 흩어지면서 유출되었던 마력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칼레온이 방출했던 화염의 마력도 나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내가 방출한 것이 아닌 마력도 나에게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칼레온의 마력은 용골에서 얻어 낸 것일 텐데…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

디 인페르노를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대량의 마력이었다.

용골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마력의 성질도 거칠고 위협적이었을 텐데…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니플가디르의 ‘마력 회수’가 ‘마력 장악’으로 진화한 영향인 것 같았다.

“…….”

나는 눈을 감은 채 모든 마력을 내 몸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렇게 마력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100% 완벽하게 마나 하트에 정착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마력뿐만 아니라 칼레온의 마력까지 회수하는 것으로…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마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을 획득했다면… 디 인페르노도 사용할 수 있는 마력량일 거야.’

이번에 나는 칼레온에게서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을 획득하지 않았다.

고화력으로 광범위 공격을 할 때는 확실히 강력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히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범위 공격도 케르베스트 백화검술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케르베스트 백화검술로 넓은 범위를 얼리는 건 불가능했지만, 앞으로는 가능해질 거야.’

디 인페르노로 넓은 범위를 불태울 수 있었던 마력량이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에 적용하면 비슷한 범위를 얼리는 것이 가능할 터.

화염과 냉기라는 차이점은 있지만, 이제 나도 광범위 공격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칼레온은 대량의 마력을 얻었지만, 그걸 단순히 화력 증강에만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마력을 마나 하트에 최대한 정착시켜, 다음 단계에 도전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절정급을 뛰어넘기 위해… 이 마력을 사용해야 해.’

지금 나는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절정급을 넘어선 경지가 존재한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으로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경지에 도달해야 했다.

* * *

“어이쿠… 다 끝난 건가?”

몸을 숨기고 있던 유스트 바스티안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활활 타오르고 있던 숲이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칼레온이 이긴 건지, 아카데미 쪽이 이긴 건지 알 수가 없군…….”

거리가 너무 멀어서 판별하기 어려웠다.

유스트의 기량으로 저렇게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까지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카데미 쪽이 이겼습니다.”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유스트는 흠칫 놀랐다.

전신을 검은색 옷으로 감싼 여성이 어느새 옆에 서 있었다.

“아, 알레이시 님, 어디 계셨습니까?”

“전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곁을 떠나서 죄송합니다, 후작님.”

“아니, 죄송하실 건 없습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좀 불안했었거든요.”

칼레온의 공격으로 바스티안 가문의 본성(本城)이 함락된 뒤, 유스트는 동부의 산간지대로 도망쳤다.

최대한 빨리 아카데미 측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이그니아스 가문의 추격대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러던 유스트를 도와줬던 것이… 지금 곁에 있는 알레이시였다.

“그런데 아카데미 쪽이 이겼다는 건… 욜스 교수가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꺾은 겁니까?”

“아닙니다. 에르나스 님이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쓰러뜨렸습니다.”

“네? 에르나스 님이?”

유스트는 귀를 의심했다.

이렇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막강한 화염을 뿜어내던 칼레온을, 아직 젊은 에르나스가 쓰러뜨렸단 말인가?

“에르나스 님은 이미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절정급!”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하지만, 절정급도 아닌데 칼레온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정말 놀랍군요. 역시 에르나스 님은 불세출의 검술 천재인 것 같습니다.”

“네, 저도 놀랐습니다. 원래 저런 재능을 가졌던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

“하하, 역시 란즈슈타인 쪽에 줄을 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원래 유스트는 이그니아스 가문에 붙는 것도 고민했다.

란즈슈타인 가문은 가주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영묘로 들어갔지만, 이그니아스 가문은 동부에서 엄청난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유스트는 이그니아스 가문에 등을 돌리고 에르나스에게 붙었다.

비록 본성이 함락되고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에르나스가 칼레온을 쓰러뜨린 이상, 이쪽 진영의 승리다.

이번에 바스티안 가문이 입은 피해는 이그니아스 가문에게 배상받으면 되는 거고 말이다.

“후작님, 이제 아카데미 측과 합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겠군요.”

칼레온도 쓰러졌으니, 이제 은신처를 나와 아카데미에 합류해도 될 것이다.

오랜만에 딸을 만날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면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알레이시가 떠나려 하는 걸 보고, 유스트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닙니다.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알레이시 님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진작 이그니아스 가문의 포로가 되었을 겁니다.”

유스트는 처세술에 능하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미 유스트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란즈슈타인 공작… 페르펙티오 님에게 말씀 잘 전해 주십시오. 앞으로 바스티안 가문은 전력을 다해 란즈슈타인 가문을 지원하겠다고 말입니다.”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

그 남자가 모든 싸움을 주시하고 있었다면… 빠르게 그쪽에 붙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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