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백화의 검 (2)
하얀 비늘 같은 얼음의 칼날이 중첩되어, 마치 얼음의 용 내지는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그 움직임은 흑천마교에서 사용하는 사복검술을 연상케 했다.
“백화검린(白華劍鱗)……?”
칼레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에르나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건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파생 기술이다.
하지만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수십 년 동안 수련해 온 페르디난드 교수도 스승에게 배운 것 이상의 기술을 펼치지는 못한다.
그런데 최근에야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에 도달한 에르나스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냈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기존 기술에 새로운 동작을 섞어서 새 기술이라 우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에르나스가 만들어 낸 얼음의 사복검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검술 유파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기술이었다.
“게다가…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화염을 얼리고 있다니!”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인 칼레온은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얼음의 사복검에서 방출되는 냉기가 화염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화염은 순수한 불이 아니라 마력의 불이기 때문에, 이론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할 뿐이다.
“에르나스!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은 거냐! 무슨 수로 이렇게 엄청난……!”
“마음을 먹었거든.”
에르나스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조차 능가하는 검술 천재가 되겠다고 말이야.”
“뭐……?”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공한테는 불가능했던 일까지 할 수 있어야지.”
“……?”
칼레온은 에르나스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갑자기 주인공 운운하는 소리를 하는 걸까.
“누군가의 검술을 흉내 내는 걸로는 부족해. 내 스스로 새로운 검술을 만들어 나가지 못한다면… 주인공을 능가하는 검술 천재라고 자부할 수 없을 테니까.”
“에르나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혼잣말 비슷한 거니까.”
당혹스러워하는 칼레온에게, 에르나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면… 그것이 당신의 한계라는 뜻이겠지.”
“……!”
칼레온은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듀에이트로서 까마득한 선배인 자신을 상대로, 에르나스는 너무나 오만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좋다, 에르나스…….”
까드득.
이를 갈면서 칼레온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칼레온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니플가디르의 힘으로 주위의 화염에서 마력을 재흡수했다.
“잡담은 끝이다. 너를 해치우고 욜스 교수의 숨통을 끊은 뒤… 나머지 지도 교수들을 쓰러뜨리러 출발할 것이다.”
막대한 마력이 혈맥 안에서 끓어올랐다.
그 모든 것을 검에 담아… 칼레온은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결전절기(決戰絶技)를 펼쳤다.
“불타 죽어라, 에르나스!”
굉음과 함께, 드래곤 브레스와 같은 막대한 화염이 방출되었다.
* * *
디 인페르노.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결전절기로, 엘더 드래곤의 브레스 같은 화염을 방출하는 기술이다.
이 세계에는 공격 마법이 존재하지 않지만, 디 인페르노는 화염 속성의 공격 마법이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정말로 압도적인 위력이군.’
본래 칼레온은 이 정도 화력을 낼 수 없다.
칼레온은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지만,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인 염옥공에 비하면 마력이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더 드래곤의 용골에서 마력을 얻고, 니플가디르의 보조까지 받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칼레온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 화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 내 힘으로 이 화력과 정면에서 맞붙는 건…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일이야.’
용골의 마력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나는 칼레온보다 마력이 부족하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로 냉기를 뿜어 대항하려고 해 봤자, 디 인페르노의 화염이 냉기를 모조리 집어삼키고 나까지 불태워 버릴 것이다.
‘내가 칼레온 이상의 마력을 갖고 있다면 냉기와 화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칼레온의 마력이 압도적이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면에서 힘겨루기를 했을 때의 얘기다.
칼레온을 쓰러뜨리는 것 자체만을 목표로 한다면, 디 인페르노를 능가하는 냉기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화염을 뚫고… 칼레온에게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걸 위해… 백화검린을 개발한 거니까.’
콰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방출된 화염이 나를 덮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얼음의 사복검… 그 칼자루 역할을 하는 진은검을 잡은 채, 마력을 제어했다.
“……!”
파앗!
예전에 싸웠던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의 흑천사복검술을 떠올리면서 백화검린을 조종했다.
백화검린은 비늘 같은 형태의 얼음 칼날이 무수히 겹쳐져 있어, 마치 사복검처럼 움직인다.
나를 덮치려 하는 화염의 정중앙을 향해 백화검린을 뻗었다.
꿈틀거리는 얼음의 사복검이 화염 속으로 파고들었다.
‘칼레온, 당신의 디 인페르노는 엄청난 화염을 뿜어 대지.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어.’
원래 디 인페르노는 대량의 적을 한꺼번에 쓰러뜨리기 위한 기술이다.
단 한 사람의 적을 해치우기 위해 펼치는 기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 인페르노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얼어붙게 만드는 거라면, 현재 내 마력만으로도 가능하다.
“하압……!”
경신술을 사용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꿈틀거리는 백화검린이 화염의 마력을 얼어붙게 만들어, 내가 파고들 틈새를 만들어 주었다.
얼어붙은 마력은 내 얼음의 일부가 되었고, 백화검린은 더욱 견고해졌다.
“디 인페르노를 정면 돌파 한다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칼레온이 경악했다.
칼레온은 디 인페르노의 화력이라면 나 정도는 충분히 해치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칼레온, 당신이 디 인페르노에 더 익숙해진 상태였다면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겠지.’
칼레온도 디 인페르노를 실전에서 사용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광범위를 휩쓸어 버리는 기술이기에, 일점 돌파에는 약하다는 걸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광범위 공격인 디 인페르노와는 달리, 백화검린은 마력을 꽁꽁 얼려 압축한 기술이고… 일점 돌파에 적합하지.’
칼레온이 다급히 대처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는 디 인페르노를 뚫고 칼레온에게 쇄도했고… 백화검린을 뻗었다.
“크윽……!”
파앗!
백화검린이 꿈틀거리면서 칼레온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상처가 생기면서 동시에 그 속살까지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속살까지 불태우는 이그니아스 염옥검술과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에르나스……!”
칼레온이 반격을 시도했다.
불꽃의 검기를 두른 검으로 백화검린을 받아치려 했다.
하지만 사복검처럼 꿈틀거리는 백화검린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
백화검린과 충돌한 순간, 불꽃의 검기가 얼어 버렸다.
그리고 산산조각 나서 주위로 흩어져 버렸다.
검기를 얼려서 파괴하는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특성이 발휘된 것이다.
“이런……!”
칼레온의 마력이 충분히 많았다면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냉기를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칼레온은 디 인페르노를 사용하느라 대부분의 마력을 방출했다.
니플가디르로 재흡수하려고 해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칼레온의 검에 전개된 불꽃의 검기는 상당히 빈약해진 상태였다.
“크윽……!”
칼레온은 입술을 깨물면서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다.
니플가디르로 마력을 다시 흡수하면서, 태세를 정비하여 내 공격에 대응하려 했다.
물론, 나는 그걸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
파파팟!
백화검린이 공중에서 춤추며 칼레온을 덮쳤다.
종횡무진 움직이는 백화검린이 칼레온의 곳곳에 상처를 만들었다.
냉기 때문에 상처가 얼어붙어 피투성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대미지가 누적되고 있을 것이다.
“크으윽……!”
하지만, 칼레온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충분한 마력을 재흡수한 뒤, 불꽃의 검기를 극대화했다.
디 인페르노처럼 거대한 화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압축하여 초고열의 검기를 만든 것이다.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에르나스……!”
포효하면서 칼레온이 검을 휘둘렀다.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백화검린의 움직임에 더 잘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
쿠웅!
불꽃의 검기와 백화검린이 충돌했다.
그리고… 백화검린에 균열이 생겼다.
“흥……!”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칼레온이 연속 공격을 펼쳤다.
얼음 조각이 깨져 나가듯이, 백화검린을 구성하는 칼날 하나하나가 부서지며 주위로 흩어졌다.
“너는 마력을 재흡수하지 못하지! 마력이 거덜 나게 해 주마!”
쿠쿵!
니플가디르로 마력을 재흡수한 칼레온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력량에서 앞서는 자신의 공격력이 앞설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압……!”
콰앙!
마침내 굉음과 함께 백화검린 전체가 깨져 나갔다.
산산이 흩어지는 얼음 조각 속에서, 칼레온은 승리를 확신한 듯이 웃었다.
“이걸로 끝이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무수히 많은 얼음 조각이 흩날리는 환상적인 광경.
그 속에서 칼레온이 불꽃의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칼레온 이그니아스.”
“……!”
쏴아아아……!
마치 바람에 꽃잎 내지는 나뭇잎이 흔들릴 때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졌던 얼음 조각들이… 일제히 휘몰아쳤다.
“이건……!”
칼레온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 백화검린을 불꽃의 검기로 완전히 파괴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 생각한 것이다.
백화검린은 어디까지나 비늘처럼 얇은 얼음 칼날의 집합체.
사복검처럼 움직이던 건 내가 마력으로 그렇게 컨트롤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칼날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사방에서 덮치게 할 수도 있다.
“크아악……!”
이미 칼레온은 산산이 흩어졌던 얼음 조각들 사이로 뛰어든 상태.
피할 곳도 없는 포위망 속에서, 무수히 많은 백화검린의 칼날이 칼레온에게 쏟아졌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지.’
칼레온은 그래듀에이트 절정급.
당연히 호신기도 매우 견고하다.
하나로 합쳐진 상태도 아니고, 자그마한 얼음 조각들이 아무리 쏟아져 봤자 치명상을 입힐 수는 없다.
기껏해야 무수히 많은 생채기가 전신에 생기는 정도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 완전히 허를 찔린 상태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미 나는 왼손으로 진철검을 뽑아 든 상태였다.
더 이상 백화검린을 컨트롤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오른손의 진은검도 자유로워진 상태.
양손에 검을 든 채, 나는 남아 있는 마력을 전부 쥐어짰다.
‘자뢰검기(紫雷劍氣)!’
이사벨라에게서 얻어 낸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에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해 만들어 낸, 나만의 경지.
쌍검으로 초고속의 연속 공격을 펼치는 이 자뢰검기야말로, 칼레온 이그니아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준비한 내 두 번째 무기다.
“그 보라색 검기는……!”
칼레온이 백화검린의 폭풍 속에서 눈을 크게 떴다.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의 커니지 블레이드와 비슷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아압……!”
남아 있던 모든 마력을 쥐어짠, 초고속의 21연격.
백화검린에 유린당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던 칼레온의 전신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