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8화 (137/212)

138화 염옥의 검 (1)

울창한 삼림 지대.

어디에 몬스터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숲속에서, 세리느와 클로에는 경신술을 사용해 이동 중이었다.

“미안해요. 결국 이번 탐색에서도 수확은 없었네요.”

“신경 쓸 거 없으세요, 세리느 님.”

세리느의 사과에 클로에가 미소 지었다.

“그만큼 아버님이 꼭꼭 잘 숨어 있다는 얘기니까요.”

“네…….”

그동안 세리느와 클로에는 유스트 바스티안을 찾고 있었다.

세리느의 아버지인 유스트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공격을 피해 잠적한 상태인데, 아카데미로서는 그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무사하실 거예요. 이그니아스 가문에서 확보했다면 대대적으로 발표했겠죠.”

“그렇겠죠…….”

“일단 돌아가서 욜스 교수님에게 보고하죠.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도 하고요.”

현재 두 사람은 욜스 교수가 이끄는 별동대 소속이다.

욜스 교수는 발렌티아노 교수가 이끄는 본대와는 별도로 이그니아스 가문을 측면에서 견제하면서 유스트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에르나스 님은 잘 계실지 모르겠네요.”

“에르나스요?”

“본대에 합류했을까요?”

“글쎄요…….”

슈라이에르 가문과의 전쟁이 끝난 뒤, 에르나스는 세리느와 클로에를 두고 아카데미에 복귀했다.

그 이후 이그니아스 가문과의 싸움이 결정되어 세리느와 클로에는 바로 동부로 향했기 때문에, 에르나스하고는 한동안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다.

“세리느 님, 요새 에르나스 님 얘기를 꺼내면 왠지 반응이 이상하시네요?”

“그, 그런가요?”

“무슨 일 있었던 건가요?”

“따, 딱히…….”

클로에의 예리한 질문에 세리느는 시선을 돌렸다.

“에르나스하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괜히 넘겨짚지 말아 줬으면 좋겠네요.”

“흠, 그러면 세리느 님과 에르나스 님 사이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인데…….”

클로에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 베리스리제 님이 에르나스 님한테 고백이라도 했나요?”

“어, 어떻게 그걸……!”

“어라, 제 추측이 맞았나 보네요?”

“윽…….”

역시 클로에는 감이 좋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세리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백 같은 건 아니에요.”

“그럼 뭐죠?”

“베리스리제가 말하더라고요. 황권을 강하게 만들면 에르나스가 황녀 전하하고 정식으로 결혼할 필요가 없어질 거라고.”

“음, 그럴 수도 있죠.”

“그때 가서 황녀 전하와의 약혼을 취소하고 에르나스가 자유의 몸이 되면… 자신을 결혼 상대로 고려해 달라는 거였어요.”

“고백 맞네요.”

“아, 아니라니까요.”

세리느는 다급히 부정했다.

하지만, 클로에의 말대로 고백이 맞을지도 모른다.

베리스리제가 에르나스에게 애증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세리느도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몇 달 동안 룸메이트 생활을 하면서, 베리스리제의 속마음도 대충 눈치챌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베리스리제 님한테는 최선의 선택이긴 해요. 에르나스 님과 결혼하면 슈라이에르 가문의 미래도 보장되는 거니까요.”

“그건… 그렇죠.”

아카데미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가주인 클라우비체까지 사망하면서, 슈라이에르 가문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베리스리제가 자력으로 슈라이에르 가문을 재건하는 건 쉽지 않을 테고… 리히테나워 대공이 된 에르나스와 결혼하는 게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래서, 에르나스 님은 뭐라고 하셨죠?”

“너무 훗날 얘기고… 그리고 지금은 이런 걸 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면서 대답을 피했어요.”

“흐음, 에르나스 님답지 않게 애매한 대답이군요.”

“네?”

“평소 에르나스 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아무런 마음이 없으면 단칼에 거절하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그런 식으로 ‘보류’하는 건… 어느 정도는 고려해 줄 생각이 있다는 얘기 아닐까요?”

“에, 에르나스가 베리스리제와 결혼하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보는 거예요?”

“적어도 부정적은 아닌 거죠.”

“그렇다면… 아윽!”

세리느는 발을 헛디뎌서 나무에 부딪혔다.

그 모습을 보고 클로에가 한심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리느 님, 너무 동요하는 거 아닌가요?”

“하, 하지만…….”

“뭐, 에르나스 님 나름대로의 배려일 수도 있어요.”

“배려라고요?”

“에르나스 님은 베리스리제 님의 아버지를 죽였잖아요. 그러니 베리스리제 님에게 모질게 대하기 어려우셨을 수도 있죠.”

“아…….”

“아니면, 세리느 님의 친구라서 배려해 주셨을 수도 있고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니, 에르나스 님이 베리스리제 님과의 결혼에 긍정적이라고 지레짐작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클로에가 먼저 그런 식으로 얘기한 거잖아요…….”

“어라, 걱정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 거군요.”

“……!”

세리느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크, 클로에, 저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뜻? 무슨 뜻인가요?”

“클로에……!”

울상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이자, 클로에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리느 님, 인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를 하는데요. 슬슬 솔직해지시죠?”

“소, 솔직해지다니요…….”

“에르나스 님과의 약혼을 취소하고 싶어 했던 과거가 있는데,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으신 거잖아요.”

“클로에……!”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가 없다고 느끼시는 거겠죠? 사실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해요.”

클로에가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리느 님을 도와드릴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알아서 결정하세요.”

“…….”

세리느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클로에 말대로 염치가 없는 일인 건 사실이다.

그토록 에르나스를 싫어했으면서,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면 너무 뻔뻔하다.

“저는… 에르나스가 정말로 수준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하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에르나스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어요.”

에르나스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숨겨 왔던 진짜 모습을 보여 준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의 에르나스는, 세리느가 호감을 가지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혼란스러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클로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언해 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알아서 판단하세요.”

“클로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리느 님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편이 저한테 더 유리하고 말이죠.”

“……!”

클로에의 말을 듣고, 세리느는 흠칫 놀랐다.

“클로에, 그 말은…….”

“왜 놀라시죠? 베리스리제 님과 마찬가지로, 저한테도 에르나스 님과 결혼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잖아요.”

“…….”

클로에는 권력욕이 강하다.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려는 욕망은 아니고, 권력을 보좌하는 위치를 차지하려는 욕망이다.

그러니 클로에도 에르나스와 결혼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리히테나워 대공부인으로서 에르나스를 보좌할 수 있게 된다면, 클로에로서는 최상의 결말일 것이다.

“클로에는… 단지 그것뿐인가요?”

“뭐가요?”

“에르나스를 남자로서 좋아하는 마음도… 있는 건가요?”

“…….”

세리느의 질문에, 클로에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미소를 지었다.

“그건 비밀이에요.”

“크, 클로에, 그건 치사해요!”

“굳이 제 속마음을 세리느 님에게 다 털어놓을 필요 없잖아요.”

“하지만……!”

“그리고.”

클로에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한자리에서 너무 시간을 끌면서 소란을 피운 모양이네요. 몬스터가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

바위덩이를 연상케 하는, 덩치 큰 회색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이 숲속에 서식하는 몬스터인 트롤이었다.

“세리느 님, 트롤은 움직임이 느리니…….”

“알고 있어요. 앞을 가로막는 녀석들만 처리하면서 신속히 빠져나가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자 하나를 갖고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검사의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트르르르…….”

트롤들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면서 돌격 준비를 했다.

하지만, 세리느와 클로에가 리히테나워 경신술로 몸을 날리는 게 더 빨랐다.

“트르르?!”

세리느와 클로에의 칼날에 트롤 두 마리의 목이 동시에 떨어졌다.

트롤은 재생력이 강해 골치 아픈 몬스터지만… 이미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한 두 사람에게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빠르게 이 자리를 벗어나죠, 클로에!”

“네, 세리느 님!”

세리느는 클로에와 함께 숲속을 질주하며 트롤들을 돌파했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을 에르나스를,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면서.

* * *

이그니아스 가문의 본진은 계속 들려오는 비관적인 소식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발렌티아노의 본대와 욜스의 별동대가 양방향에서 압박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왕’ 가르디우스와 ‘검후’ 이사벨라라는 외부 영입 인사도 에르나스에게 쓰러져, 이제는 확실히 불리해진 상태였다.

“그러면 지금 아카데미 쪽에는 절정급이 다섯 명인 건가?”

“발렌티아노 교수, 안겔라 교수, 페르디난드 교수, 욜스 교수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까지 합치면 다섯 명인 거지.”

“가주님이 다섯 명을 다 상대할 수는 없잖아. 승산이 없는 것 아닌가?”

“아무리 우리가 병력이 몇 배는 많다고 해도, 절정급의 숫자가 저렇게 차이가 나면… 아!”

수군거리던 병사들이 움찔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가주 칼레온의 아들… 이그니아스 가문의 후계자인 루퍼스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루퍼스는 병사들이 하는 얘기를 전부 다 들었다.

얼마 전에 루퍼스도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했기 때문에, 작은 속삭임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을 나무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 불리한 건 사실이니까.

‘병사들도 불안하겠지.’

착잡한 기분을 느끼면서 루퍼스는 가던 길을 걸었다.

가문의 위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너무 한탄스러웠다.

“아버지, 저입니다.”

루퍼스는 작은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에 이그니아스 가문이 접수한 이후, 칼레온의 숙소로 쓰이고 있는 장소였다.

“무슨 일로 부르셨…….”

“루퍼스.”

칼레온의 모습을 보고 루퍼스는 흠칫 놀랐다.

그가 웃통을 벗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 연공을 하시는 중이셨습니까?”

“루퍼스, 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다.”

루퍼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칼레온이 바로 용건에 들어갔다.

“지난번에 베르디에 후작에게서 빼앗은 용골(龍骨)을 기억하나?”

“네, 기억하죠.”

용골은 드래곤의 뼈… 그중에서도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흉골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매우 희귀한 소재인데, 베르디에 가문에서는 대대로 용골을 가보로 간직해 오고 있었다.

그것도 가끔 세상에 나타나는 ‘레서 드래곤’의 용골이 아니라, 먼 옛날에 멸종된 ‘엘더 드래곤’의 용골이었다.

“그건 너를 위해 확보한 것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루퍼스는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에르나스와 아카데미를 쓰러뜨리고 제국을 장악한다고 해도, 루퍼스를 리히테나워 대공 자리에 앉히면 모양새가 썩 좋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칼레온은 용골을 사용해 루퍼스의 마력을 크게 늘릴 계획이었다.

“평범한 그래듀에이트는 용골의 에너지를 제어 못 하지만, 우리 가문의 비전(秘傳) 연공법을 터득한 너라면 용골에서 막대한 마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네…….”

그래듀에이트 상급.

칼레온은 루퍼스가 그 정도 경지에 오르는 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게 됐다.”

“네?”

“용골은 내가 써야겠다.”

“……!”

그 말을 듣고.

루퍼스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루퍼스, 미안하다. 이게 전부…….”

“아닙니다, 아버지!”

사과하는 아버지 앞에서 루퍼스는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복용하십시오! 이그니아스 가문의 승리를 위해서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복용하셔야 합니다!”

“용골에서 마력을 흡수하더라도, 내 마나 하트에 영구적으로 정착되지는 않을 거다.”

칼레온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마나 하트는 이미 한계까지 마력을 저장한 상태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다면 모르겠지만… 용골에서 마력을 얻어 봤자 결국 다 빠져나갈 거다.”

“그래도 아버지의 능력이라면 며칠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루퍼스…….”

“훗날 저의 체면을 살리는 건 중요치 않습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 정도는 제가 노력해서 도달해도 됩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사용해 주십시오!”

루퍼스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용골의 힘을 얻어, 며칠 동안만이라도 전투력을 증폭하실 수 있다면…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진정한 힘.

그것은 천 년 전에 철혈검제와 함께 수많은 적을 도륙한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의 힘이다.

염옥공(炎獄公)이라 불리기도 했던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은 한 번의 공격으로 수천에 달하는 적을 몰살했다고 한다…….

그 일격은 마치 화룡(火龍)이 뿜는 화염의 브레스와 같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 아버지, 용골의 힘을 사용해 주십시오!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의 진정한 힘을 발휘해… 아카데미의 지도 교수들 그리고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쓰러뜨리는 겁니다!”

“…….”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칼레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루퍼스.”

“아버지……!”

“이그니아스 가문의 승리를 위해, 내 한 몸을 불사르겠다.”

칼레온은 루퍼스와 눈을 마주치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미래를 위해, 모든 적을 불태워 죽이고 오겠다.”

염옥검(炎獄劍) 칼레온 이그니아스.

그가 마지막 역전을 위해 새로운 경지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의 지도 교수들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쓰러뜨리기 위한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 * *

상업 도시 브렌시아를 떠난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은 이그니아스 가문이 장악한 성채를 공격했다.

하지만 나는 공성전에 참가하지 않고 후방에서 대기했다.

표면적으로는 브렌시아에서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근신이었지만, 실제로는 내가 직접 후방 대기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사벨라에게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을 얻어 자뢰검기를 만들어 냈지만, 칼레온과의 결전을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한적한 후방에서 대기하면서, 나는 진은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니… 이걸 완성해야 하는 거지.’

마력을 집중한 진은검.

그 은백색의 칼날에서는… 새하얀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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