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쌍검의 검후 (3)
‘도무지 알 수 없는 놈이야.’
이사벨라는 에르나스와 악수를 하면서 그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차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에르나스의 얼굴에서 속내를 읽어 내는 건 쉽지 않았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방금 그 얘기는 뭐였지?”
그래서 이사벨라는 질문을 던졌다.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 네 아버지에 대한 얘기라니?”
“시치미를 떼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이사벨라.”
에르나스가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사벨라는 당혹감을 느꼈다.
‘내가 페르펙티오 얘기를 꺼내며 에르나스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던 걸 알고 있는 건가?’
이사벨라는 에르나스를 죽이기 위해 페르펙티오 얘기를 써먹을 생각이었다.
만약 에르나스가 브렌시아에 들어오지 않으면 편지를 보내서 에르나스를 불러낼 생각이었다.
에르나스가 브렌시아에 들어와 싸돌아다니면, 사람을 보내 페르펙티오 얘기를 꺼내 유인할 계획이었다고 말이다.
‘페르펙티오의 비밀을 알려 줘서 에르나스를 동요시킨 뒤, 기습으로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었는데…….’
이사벨라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에르나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였나? 오해한 거라면 사과하지.”
“…….”
“나는 당신이 아버지 관련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에르나스가 웃었다.
“당신이 아버지와 유착 관계였다는 건 이미 다 알고 있거든.”
“……!”
이사벨라가 눈을 크게 뜬 순간.
에르나스는 이사벨라의 손을 놓아 주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 *
[마르테리스 이륜검술(SS랭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꼈다.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유스레흐트의 능력 재현으로 이사벨라의 검술을 복사하고 있었다.
‘이사벨라는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겠지.’
내가 굳이 이사벨라를 만나러 온 건, 이렇게 육체 접촉을 하면서 능력 재현을 시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절정급의 경지에 어울리는 새 검술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까.
‘마르테리스 이륜검술(二輪劍術)은 지금 나한테 딱 알맞은 검술이야.’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은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쌍검술이다.
제국에서 쌍검술이라고 하면 헨리 랭커스터가 쓰던 랭커스터 비익검술(比翼劍術)이 가장 유명하지만, 랭커스터 비익검술은 길이가 짧은 소검을 사용한다.
하지만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은 두 자루의 장검을 사용한다. 진은검과 진철검을 사용하는 나한테 딱 맞는 검술이라 할 수 있었다.
‘페르디난드의 창고에서 찾은 진은검과 살바토레를 쓰러뜨리고 얻은 진철검… 두 검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으니까.’
요즘 나는 두 자루의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원래 쌍검술 내지는 이도류라는 건 그리 실용적이지 않다.
두 자루의 검을 동시에 휘두를 힘으로 한 자루의 검을 휘두르는 편이 더 빠르고 위력적으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하고 신검합일을 터득하면서, 이런 단점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기존 검술을 응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본격적으로 쌍검술을 탐구하려면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을 얻는 게 최선이지.’
마르테리스 이륜검술 자체만으로도 써먹을 수 있겠지만,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나 아이오니아 신속검술 등과 접목하여 사용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게 판단했기에, 굳이 이사벨라를 만나러 와서 이런 촌극을 벌인 것이다.
“에르나스…….”
내 이런 속셈도 모르고, 이사벨라가 나를 무서운 눈으로 쳐다봤다.
“내가 네 아버지와 유착 관계라니, 무슨 소리지?”
“다 알고 있으니, 시치미 떼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
이사벨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어떻게 알았느냐.’ 같은 소리를 입에 담지는 않았다.
마지막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단 말이지.’
현재 ‘검후’ 이사벨라는 이그니아스 가문에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전혀 달랐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아니라 란즈슈타인 가문에 붙어서 움직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내 행동 때문인지, 이사벨라의 포지션이 많이 바뀌었어.’
소설에서 이사벨라는 란즈슈타인 가문을 위해 암약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캐릭터였다.
동부 암흑가를 주름잡는 ‘검후’답게 다양한 모략으로 주인공들을 괴롭혔었다.
하지만 칼레온 이그니아스가 소설보다 빠르게 궐기하면서, 이사벨라는 이그니아스 가문 쪽에 붙어 버렸다.
계속 침묵하고 있는 란즈슈타인 가문보다 이그니아스 가문에게 협력하는 게 유리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에르나스, 내가 페르펙티오와 어떻게 유착 관계라는 거지?”
“글쎄,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
이사벨라는 페르펙티오에게 ‘의뢰’를 받는 입장이었다.
란즈슈타인 가문이 직접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사벨라에게 의뢰하여 처리하는 것이다.
그 대가로 란즈슈타인 가문은 이사벨라가 동부 암흑가를 장악하는 걸 묵인해 주고 있었다.
‘아마 이사벨라는… 그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겠지.’
이사벨라는 란즈슈타인 가문의 내부 사정을 몇 가지 알고 있다.
그걸 들먹이면서 나를 꾀어낸 뒤 함정에 빠뜨릴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먼저 찾아와서 선수를 쳤기 때문에, 그런 계획도 무의미해졌다.
“어쨌든, 당신이 그렇게 자꾸 시치미를 뗀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군.”
“에르나스…….”
“그러면 다른 얘기를 꺼내지, 이사벨라.”
나는 손가락을 깍지 끼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곳은 황제 폐하가 인정한 중립 도시지. 이곳에서는 아카데미도 이그니아스 가문도 무력을 써서는 안 돼.”
“그렇지…….”
물론, 양지의 인물이 아닌 이사벨라한테는 상관없는 얘기다.
이사벨라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습격해서 죽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무력을 쓰는 건 가능하지.”
“뭐라고?”
“이 문서를 봐 줬으면 좋겠군.”
나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주둔지에서 미리 작성해 온 문서였다.
“이사벨라 마르테리스가 지금까지 동부 지역에서 저질러 온 온갖 범죄를 고발하는 문서다.”
“……!”
“당신을 체포해서 이 문서와 함께 브렌시아 시청에 넘겨줄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사벨라의 부하들은 당황해하며 이사벨라를 쳐다봤고, 이사벨라 본인은 내가 내민 문서를 빼앗아 낱낱이 살폈다.
“어떻게 이런…….”
이사벨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거기에는 이사벨라 본인과 최측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가 가득 적혀 있었다.
“무슨 근거로 이런 걸……!”
“구체적인 근거는 시청에 따로 제출하도록 하지. 종이 한 장에 적기에는 공간이 부족해서 말이야.”
나는 소설의 작가다.
소설 속에 묘사된 이사벨라의 과거 행적을 다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바탕으로 이사벨라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면 된다.
“정신 나간 건가, 에르나스!”
이사벨라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런 걸 고발하면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도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적혀 있는 일들 중 상당수는 네 아버지가 의뢰하거나 묵인한 일들이니까!”
“글쎄, 내 아버지가 과연 처벌을 받을까?”
나는 코웃음을 쳤다.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영묘에 들어가 철혈검제 폐하의 위령제를 진행 중인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을… 대체 누가 처벌한다는 거지?”
“……!”
“남의 일을 걱정하기 전에, 자기 자신이나 신경 쓰시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사벨라를 노려봤다.
“이사벨라 마르테리스, 순순히 자수하여 조사를 받겠나?”
“…….”
이사벨라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단숨에 내뱉으면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 버려!”
주위에 있던 이사벨라의 부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 *
쿠쿵!
고급 유흥 주점이 폭삭 주저앉았다.
나는 무너지는 유흥 주점 지붕을 뚫고 날아올랐다.
슈미츠, 비올라와 함께였다.
“에르나스 님, 신호라도 좀 주시죠!”
비올라가 투덜거렸다.
내가 강력한 일격으로 건물을 무너뜨려 이사벨라의 부하들을 생매장했기 때문이다.
“비올라,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슈미츠가 다급히 소리쳤다.
무너진 유흥 주점 속에서 이사벨라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에르나스……!”
달려드는 이사벨라를 보면서, 나는 검을 뽑았다.
“슈미츠, 비올라, 이사벨라의 부하들 중에 살아 있는 놈들을 해치워라.”
“에르나스 님, 그러면…….”
“이사벨라는 내가 상대할 테니, 도와줄 생각은 안 해도 돼.”
그렇게 지시한 뒤, 나는 이사벨라를 향해 움직였다.
“죽여 주마……!”
파팟!
이사벨라가 두 자루의 장검을 휘두르며 나를 공격했다.
그녀도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그래듀에이트다.
신검합일 상태에서 펼쳐지는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은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
하지만, 이사벨라의 검은 단 한 자루도 나한테 닿지 못했다.
내가 양손에 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이, 그녀의 쌍검을 완벽히 막아 냈기 때문이다.
“이 녀석……!”
파앗, 파팟, 파앙!
우리는 근처 건물들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검을 부딪쳤다.
네 자루의 검이 서로 어지럽게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가 어떻게……!”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사벨라가 소리쳤다.
“지금 네가 사용하고 있는 쌍검술은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이다! 그걸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글쎄, 어디서 배웠을까.”
“설마 페르펙티오한테서 배운 거냐?!”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었다.
이사벨라가 아주 심하게 헛다리를 짚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버지한테 검술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어.”
“……!”
에르나스는 페르펙티오에게 검술을 배운 적이 없다.
다른 검술명가의 가주들은 후계자들에게 직접 검술을 전수해 줬는데, 페르펙티오는 에르나스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된 거냐?! 마르테리스 가문의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나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을 사용하다니,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걸 내가 너한테 알려 줄 이유가 없지.”
쿠웅!
마르테리스 이륜검술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조합해, 순간적으로 검기의 위력을 끌어올렸다.
이사벨라는 검기의 차이 때문에 후방으로 밀려 나갔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르나스, 너란 놈은 대체…….”
“이사벨라.”
나는 칼날 위의 검기를 조정하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중립 도시인 브렌시아에서 나 하나만을 꾀어내서 죽일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그건 큰 실수였다.”
“……!”
“너는 홀로 나서는 게 아니라 이그니아스 가문의 정예 그래듀에이트들과 함께 단체 행동을 하며 싸워야 했다.”
‘검왕’ 가르디우스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병력과 함께 움직였다.
플라티온 평야를 지키는 그들의 위세가 너무 압도적이라, 발렌티아노와 안겔라는 제대로 공격도 못 하고 원군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사벨라도 그렇게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특히 네가 칼레온 이그니아스와 호흡을 맞춰 협공했다면… 나로서는 대응하기 어려웠을 거다.”
“……!”
“그래, 너희들이 나를 꺾으려면 그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지.”
이사벨라와 칼레온이 동시에 나한테 달려든다면, 솔직히 승산이 별로 없다.
만약 이사벨라가 따로 움직이지 않고 칼레온 곁에 대기하고 있었다면 따로 대책을 세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사벨라가 칼레온의 곁을 떠나 단독으로 움직이면서, 그들이 승리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소멸해 버렸다.
“너는 그냥 칼레온 곁에서 얌전히 대기하고 있어야 했던 거다, 이사벨라 마르테리스.”
“에르나스……!”
분노한 이사벨라에게서 막강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쌍검의 검기도 한층 격렬해지면서, 흉흉한 보라색을 띠기 시작했다.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의 진정한 힘… 커니지 블레이드를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덤벼 봐라, 검후.”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이사벨라를 노려보면서, 나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검왕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건방진 놈……!”
흉흉한 보라색 검기를 전개하며, 검후 이사벨라가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네 자루의 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초고속의 공방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