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5화 (135/212)

135화 쌍검의 검후 (2)

아카데미의 군세가 플라티온 평야에서 본격적인 진군을 시작했다.

발렌티아노, 안겔라, 페르디난드라는 절정급 지도 교수가 이끄는 아카데미의 정예 부대였다.

아카데미가 라티클 이그니아스와 ‘검왕’ 가르디우스를 격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동안 몸을 사리고 있던 반(反)이그니아스 세력도 움직였다.

클라리온 가문의 올레아나도 여러 명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지원 병력이 차례차례 합류했다.

아카데미는 충실해진 전력을 이끌고 이그니아스 가문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욜스가 이끄는 별동대도 따로 움직이면서 이그니아스 가문의 측면을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신경 쓰이는 건 바스티안 가문 쪽이군.’

나는 지도를 확인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현재 칼레온이 이끄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주력 부대는 바스티안 가문의 영지를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바스티안 가문의 본성은 무너뜨렸으나 아직 잔당이 많이 남아 있고, 가주인 유스트 바스티안도 도망쳤다고 한다.

‘유스트 바스티안은 세리느의 아버지이기도 해. 칼레온에게 잡혀서는 안 되는데.’

마음만 같아서는 내가 가서 유스트를 돕고 싶었지만, 유스트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 없다.

그쪽은 욜스가 이끄는 별동대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세리느도 클로에와 함께 그쪽으로 갔다고 하니…….’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아카데미의 정예부대와 함께 이그니아스 가문을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원래 이그니아스 가문은 동부에서 가장 군사력이 강했던 가문이고, 지금은 여러 명문가의 협력을 얻어 큰 세력을 형성한 상태다.

우리가 남부에서 슈라이에르 가문과 싸우는 동안에도 열심히 몸집을 불렸기 때문에, 슈라이에르 가문보다 훨씬 강대한 상대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얕봐서는 안 돼. 이그니아스 가문에는 칼레온도 있고… 검후도 그쪽에 붙었으니까.’

동부에는 ‘검왕’과 쌍벽을 이루는 ‘검후’가 있다.

이사벨라 마르테리스라는 이름의 여성인데, 그녀도 절정급의 검사였다.

그녀는 검왕과는 달리 세력도 꽤 있는 편이었다.

‘검후는 검왕과는 다른 의미로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검사지.’

동부는 다른 곳보다 치안이 좋고 안정된 지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밝은 부분만 있는 건 아니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담당하는 암흑가도 존재하는데, 동부 암흑가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 ‘검후’ 이사벨라의 마르테리스 가문이었다.

이사벨라는 매우 잔혹한 성격의 검사로 유명하며, 동부 암흑가를 공포로 지배하고 있다.

동부가 평화로운 건 이사벨라가 암흑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이사벨라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정규 부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하려 할 거야.’

나는 소설에서 이사벨라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되새겼다.

이사벨라는 동부 지역 에피소드에서 비중 있게 등장했던 악역이라, 꽤 자세히 묘사했었다.

‘기습을 하려고 하겠지.’

지도를 다시 살펴봤다.

우리의 진군 경로에는 거대한 상업 도시가 하나 있다.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도시였다.

‘저곳인가.’

내 예상이 맞다면, 이사벨라는 저 도시에서 나를 죽이려 할 것이다.

* * *

상업 도시 브렌시아.

그곳에 위치한 고급 유흥 주점의 VIP실에서, 이사벨라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사벨라 님, 아카데미가 팔레올드 요새를 함락했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빠르군.”

이사벨라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그니아스 가문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걸까, 아니면 아카데미가 생각보다 대단한 걸까.”

“아카데미 측에서는 절정급이 네 명이나 나섰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새에 배치된 병력으로는 막기 어려웠겠죠.”

“그렇다고 해도 너무 이르지.”

팔레올드 요새는 동부 최대의 요새 중 하나다.

이그니아스 가문의 주요 거점으로서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공격에 금방 함락되어 버린 것이다.

“아카데미에는 뛰어난 그래듀에이트가 많지. 하지만 병력 자체는 결코 많지 않아.”

“그렇죠…….”

“요새를 잘 활용하면서 농성한다면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좀 더 영리하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이사벨라는 부하를 상대로 계속 말했다.

“이그니아스 가문은 정면 대결에는 강하지만, 머리 쓰는 것에는 약하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요. 동부 귀족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좌해 줘야 하는 거지만 말이다.”

원래 칼레온은 이사벨라 같은 인물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리를 위해 이사벨라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훗날 칼레온이 제국을 장악하게 되면 제국의 암흑가를 이사벨라가 총괄하게 해 준다는 조건이었다.

도박이나 유흥 등을 완전히 근절할 수 없는 이상, 조직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관리할 수 있는 이사벨라에게 맡기는 편이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팔레올드 요새를 함락한 아카데미는 이곳 브렌시아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물자를 보급하겠지.”

이사벨라는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브렌시아에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병력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 그래서 아카데미 녀석들은 마음 놓고 브렌시아로 들어와 회포를 풀려 할 거다.”

“그렇겠죠.”

“그때를 노리면 되는 것이지.”

술잔을 완전히 비운 뒤, 이사벨라는 미소를 지었다.

“대가리들을 해치우면, 나머지는 이그니아스 가문이 알아서 처리해 줄 거다.”

“그런데… 정작 에르나스가 걸려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걱정하지 마라.”

이사벨라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에르나스를 낚기 위한 미끼가 있으니까.”

* * *

거침없이 진격하던 아카데미는 팔레올드 요새를 함락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마침 상업 도시 브렌시아가 근처에 있어, 그 옆에서 머무르면서 물자를 보급하기로 했다.

“그냥 브렌시아에 주둔하면 안 되는 겁니까?”

“브렌시아는 언제나 중립을 유지해 온 도시야. 아카데미의 군세가 우르르 들어가는 건 거부할 수밖에 없지.”

슈미츠에게 설명을 해 주자, 옆에서 듣던 비올라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침대에서 자고 싶었는데 말이죠.”

“아무리 브렌시아라고 해도 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재워 줄 숙소는 없어.”

“야영은 이제 질렸다고요…….”

“투덜거리지 마라.”

나는 비올라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교수님들이 결정하셨어. 휴식을 취하는 동안, 교대로 브렌시아에서 놀고 올 수 있게 해 주라고 말이다.”

“와……!”

군인들에게도 휴가나 외박이 있는데, 아카데미 교직원 및 학생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래서 시간마다 교대하면서 브렌시아에 다녀올 수 있도록 지도 교수들이 결정했다.

브렌시아 측도 전원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교대로 들어오는 거라면 괜찮다고 허가해 줬다.

“우리는 첫 번째 시간에 배정되었어. 어서 다녀오자고.”

“넵! 바로 준비할게요!”

후다닥 움직이는 비올라를 보면서, 슈미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신이 났네, 신이 났어…….”

“슈미츠, 너도 이번 기회에 마음껏 놀다 와. 매일같이 수련만 할 수는 없잖아.”

“에르나스 님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요.”

“그런가?”

“에르나스 님은 브렌시아에서 뭐 하실 겁니까?”

“글쎄, 맛있는 거라도 찾아서 먹어야지.”

“그럼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어차피 이쪽 세계에는 따로 즐길 만한 오락거리도 없다.

현실 세계의 여러 엔터테인먼트를 생각하면 다들 시시한 것들뿐이다.

그나마 가장 즐길 만한 것이 식도락이었다.

나는 슈미츠와 비올라를 데리고 브렌시아의 음식점 거리로 향했다.

“동부 해안식 조개구이입니다.”

“와우!”

산더미처럼 쌓인 조개를 보고 비올라가 탄성을 질렀다.

“에르나스 님, 에르나스 님! 이렇게 많은 조개는 처음 봐요!”

“너무 호들갑 떨지 마라. 창피하니까.”

비올라가 태어난 북부에서는 해산물을 먹지 않는다.

서부에서도 급식으로 해산물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동부는 넓은 바다에서 풍부한 해산물이 잡히기 때문에, 이런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현실 세계에도 이런 조개구이가 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측근들과 함께 조개를 하나씩 까 먹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진한 감칠맛이 감동적이었다.

‘먹는 것만큼은 현실 세계 못지않아서 다행이야.’

중세 수준 음식밖에 없으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소설 설정을 잘해 놨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하나도 남김없이 싹 먹어 치웠다.

“배, 배불러요…….”

“크흠, 이럴 때 습격받으면 큰일이겠군요. 너무 과식했습니다.”

비올라와 슈미츠가 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다 먹었으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아, 후식인가요?”

“비올라, 배부르다면서 후식을 더 먹을 생각인가……?”

눈을 빛내는 비올라와 어이없어하는 슈미츠를 데리고 이동했다.

내가 향한 곳은… 좀 이상한 가게들이 많은 뒷골목이었다.

“에, 에르나스 님? 왜 저희를 이런 곳에 데려오시는 거죠?”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저는 고향에 약혼녀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오기나 해.”

나는 두 사람을 데리고 커다란 유흥 주점으로 접근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와 우리를 막아섰다.

“에르나스 님, 이놈들……!”

슈미츠가 다급히 검을 뽑으려 했지만, 손을 들어 제지했다.

“슈미츠, 괜찮아.”

“네?”

“내가 얘기할 테니까.”

이미 나는 아틸리온 마력탐측술로 놈들의 존재를 파악해 둔 상태였다.

놈들은 우리가 브렌시아에 들어온 이후부터 계속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너희들의 주인에게 안내해라.”

“……!”

내 말을 듣고 다들 흠칫 놀랐다.

놈들뿐만 아니라 슈미츠와 비올라도 마찬가지였다.

“검후에게 전해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유흥 주점은… 검후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였다.

* * *

‘에르나스가 먼저 찾아왔다고?’

이사벨라는 당혹스러웠다.

에르나스가 브렌시아에 나타났다는 걸 파악하고, 바로 부하들한테 감시를 명령한 참이었다.

하지만 에르나스는 스스로 이사벨라의 은신처로 다가와 이사벨라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마치 이사벨라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눈치챈 거지?’

혼란을 느끼면서 이사벨라는 에르나스를 만나러 나갔다.

지금 에르나스는 측근들과 함께 주점의 홀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나오셨군.”

“……!”

이사벨라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르나스는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옆에 있는 측근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이사벨라는 에르나스를 기습하여 죽일 생각이었다.

에르나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에르나스를 동요시키기 위한 카드를 갖고 있으니까.’

이사벨라가 갖고 있는 카드.

그것은 에르나스가 브렌시아로 들어오지 않을 경우 따로 연락을 취해 끌어내기 위한 미끼이기도 했다.

에르나스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에르나스를 상대할 때 쓸 만한 카드였다.

“만나서 반갑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이사벨라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용무지? 설마 중립 도시인 이곳에 나를 죽이러 온 건 아닐 테고.”

“내 용무가 무엇인지는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사벨라.”

“뭐라고?”

“그쪽에서 나한테 할 얘기가 있지 않나?”

이사벨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에르나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아버지… 페르펙티오 란즈슈타인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을 텐데?”

그 말을 듣고.

이사벨라는 무심코 허리 양쪽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이 녀석, 대체 뭐지?’

이사벨라는 그냥 지금 당장 검을 뽑을까 고민했다.

대화를 나누면 오히려 자신이 동요해서 빈틈이 생길 것 같았다.

‘내 마르테리스 이륜검술(二輪劍術)로 지금 당장 죽여야 하나?’

마르테리스 이륜검술.

그것은 마르테리스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독문 검술로, 두 자루의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고난도 검술이다.

랭커스터 가문의 랭커스터 비익검술과 함께 대륙 최고의 쌍검술로 꼽힌다.

이사벨라는 수백 년 만에 마르테리스 이륜검술의 궁극적 경지에 도달해 동부에서 검후라는 명성을 얻었다.

“어쨌든, 이렇게 만나서 반갑군.”

에르나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여기는 중립 도시니, 서로 차분히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음… 그렇군…….”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이사벨라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에르나스의 손을 맞잡았다.

에르나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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