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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4화 (134/212)

134화 쌍검의 검후 (1)

플라티온 평야를 지키고 있던 이그니아스 가문의 방어 부대가 무너졌다.

지휘관인 라티클 이그니아스는 목숨을 잃었고, ‘검왕’ 가르디우스 플라티온도 죽었다. 전부 다 절정급으로 각성한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공적이었다.

이그니아스 가문의 일반 병력은 남쪽에서 올라온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이 섬멸했다.

이어서 서쪽에서 진군해 온 페르디난드의 병력도 도착하면서, 플라티온 평야에 아카데미의 주력 부대가 집결하게 되었다.

“페르디난드 교수, 부상이 심한가?”

“팔다리가 떨어지지는 않았으니, 심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발렌티아노의 질문에 페르디난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쪽은 이번에 별 고생을 안 한 것 같군. 병력 소모도 별로 없었던 것 아닌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지난번에는 탐색전만 했고, 이번에는 소탕전이었으니까.”

에르나스가 적진 한가운데로 침투하여 라티클을 비롯한 수뇌부를 쓰러뜨려 준 덕분에, 발렌티아노 측은 어려움 없이 이그니아스 가문의 병력을 섬멸할 수 있었다.

“기껏 탐색전을 펼치면서 가르디우스와 라티클의 전력을 살폈는데, 별 의미가 없었군.”

“에르나스 녀석 때문이라 할 수 있지.”

“정말로… 남들이 기껏 세워 놓은 작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군.”

“적군의 작전도, 아군의 작전도… 상관하지 않고 다 무너뜨려 버리지.”

상식을 초월한 제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뒷담화를 하면서 두 교수는 피식 웃었다.

“페르디난드 교수, 그런데 정작 에르나스는 어디 있지? 휴식을 취하러 갔나?”

“아까 보지 못했나?”

페르디난드가 멀리 보이는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겔라 교수한테 대련을 신청하더군.”

“안겔라 교수한테?”

그 직후, 숲을 가르며 시커먼 빛이 치솟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 * *

리히테나워 경신술과 창뢰신기를 조합해 숲속을 질주했다.

지금 가능한 최대 속도를 내고 있었지만, 안겔라의 속도는 결코 나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 정도가 한계냐, 에르나스?”

“……!”

음침한 목소리와 함께 시커먼 검기가 나한테 날아왔다.

나는 창뢰신기를 사용해 직각으로 경로를 변경했다. 그 덕분에 흑색 검기를 피할 수 있었지만, 안겔라는 내 움직임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후후.”

“윽……!”

쿵!

안겔라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로 대응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안겔라의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안겔라가 나름대로 위력을 조절했겠지만, 창뢰신기가 없었다면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역시… 아카데미에서 가장 빠른 검사는 안겔라인가.’

나는 땅바닥 위에 드러누운 채 숨을 가다듬었다.

벌써 30분 넘게 최고 속도로 싸웠다.

이제는 슬슬 쉬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후우, 나도 이제 그만하고 싶군.”

그때 안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0분이나 이 속도를 유지하면서 싸우다니, 너무 피곤하다.”

“안겔라 교수님은 아직 여력이 남아 있지 않으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왜 학생과의 대련에서 전력을 다해야 하는 거지?”

안겔라가 어깨를 으쓱하고 근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내가 전력을 다했다가… 너도 무심코 전력을 다해서 필살의 일격을 날리면 나만 손해 아닌가?”

“저는 이미 전력을 다했습니다.”

“농담하지 마라. 너에겐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다.”

그건 내가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방금 전까지 죽을 힘을 다해 안겔라 교수님에게서 도망쳤습니다만…….”

“죽을 힘을 다했을 뿐이지, 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

“에르나스, 너는 목숨이 오고 가는 실전에서 더 진가를 발휘하는 타입이다.”

그렇게 말하며 안겔라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나 같은 경우는 실전이든 대련이든 별로 다를 게 없지. 상황에 무관하게 내 최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

“하지만 너는 다르지. 목숨이 걸린 실전에서 최대 실력을 발휘하는 타입이야.”

안겔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계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타입이라 할까.”

“…….”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더 진화시키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격상의 상대를 쓰러뜨리기도 하는 거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브랜틀리 아그리파와 대련을 했을 때도… 나는 일부러 목숨을 건 실전처럼 만들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창뢰검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싸운다면,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이 되겠지. 아마 그렇게 하는 편이 너한테는 더 도움이 될 거다.”

“네…….”

“하지만, 그럴 경우 내 목숨이 날아갈 위험성이 있지. 학생과의 대련에서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제 목숨이 날아갈 위험성도 있죠.”

“그래, 그러니 그런 싸움은 적들과 하도록 해라. 우리 교수들을 상대로 시도하려 하지 말고.”

안겔라의 말이 맞을 것이다.

교수들과 생사결을 펼칠 수도 없는 이상, 교수들하고 대련하는 것으로는 큰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크게 성장하려면 역시 가르디우스 같은 강적들과의 혈전을 경험해야 한다.

“오히려 앞으로는… 우리가 너한테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 아직은 그렇지.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안겔라가 미소를 지었다.

“에르나스, 너는 아직 절정급의 초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나하고 거의 대등한 승부를 펼쳤지.”

“…….”

“앞으로 네가 얼마나 성장할지 기대되는군.”

그렇게 말하며 안겔라가 나한테 손을 내밀었다.

“네가 나한테 가르침을 줄 날을 기다리고 있겠다, 에르나스.”

“…아직 저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교수님.”

나는 안겔라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번 대련에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래?”

“네, 정말로요.”

안겔라의 손을 잡은 상태지만, 유스레흐트로 능력 재현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면 안겔라 전용 검술인 베르틴스키 흑쇄검술을 복사하여 활용할 수 있겠지만… 굳이 필요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베르틴스키 흑쇄검술은 안겔라한테만 어울리는 검술이야.’

이번에 대련을 하면서 철저히 검증해 봤다.

베르틴스키 흑쇄검술은 안겔라가 자신의 체형이나 마력 특성 등에 맞춰 최적화한 검술이다.

내가 쓰면 안겔라만큼의 성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안겔라의 베르틴스키 흑쇄검술은 SS랭크… 랭크를 올려서 영구 귀속으로 올릴 수도 없지.’

최고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검술이 슬롯 한 칸을 계속 차지하고 있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이번 대련으로 얻은 게 있었어.’

욜스와 발렌티아노, 페르디난드와 마찬가지로… 안겔라도 내 스승이다.

오늘 이 대련에서도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상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나는 안겔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겔라가 진지하게 상대해 준 덕분에,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제 나는… 절정급에 걸맞은 새로운 검술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S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의 이해도가 일정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랭크)의 성장과 함께 영구 귀속이 진행됩니다.]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S랭크)의 영구 귀속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능력 재현’으로 획득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잠정 획득 ==

[케르베스트 백화검술(SS랭크)]

[발트펠트 금강검술(SS랭크)]

[흑천마도연공법(SS랭크)]

[---]

[---]

== 영구 귀속 ==

[아이오니아 신속검술(SS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S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S랭크)]

[아틸리온 마력탐측술(S랭크)]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 * *

“에르나스가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했다니, 그게 사실이냐?!”

칼레온 이그니아스는 귀를 의심했다.

플라티온 평야 방면에서 전해져 온 소식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사실로 보입니다, 가주님.”

소식을 가져다준 전령이 고개를 숙였다.

“에르나스가 라티클 님을 쓰러뜨릴 때, 어검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병사가 여러 명 있습니다.”

“정말 어검술이었나? 비검술이 아니라?”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어검술 같습니다.”

“크흠…….”

칼레온은 신음하면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절정급만이 사용할 수 있는 건데… 에르나스 그놈이 어검술을 썼다?”

“가주님…….”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 벌써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어느새 칼레온의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대체 어떻게 가능하지?”

“소문에 의하면, 페르디난드 교수가 특별한 영약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특별한 영약을 개발했다고 해도 그렇지!”

절정급은 마력만 많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검합일의 깨달음을 얻어야만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다.

“에르나스 그놈이 벌써 신검합일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가주님…….”

“이그니아스 가문에서 영재 교육을 받았던 나도, 그래듀에이트 초입에서 절정급까지는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브랜틀리나 클라우비체도 마찬가지였고!”

아카데미 동기였던 가주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칼레온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떻게 에르나스는 10분의 1도 안 되는 시간에 절정급에 도달한단 말이냐!”

“…….”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이런 사례는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대체 에르나스는 어떻게 된 놈이란 말인가.

“역시 그놈은… 정말로 검술의 천재인 건가?”

“…….”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지닌… 진정한 천재란 말이냐?”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칼레온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을 때.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가 진정한 천재면 뭐가 어떻다는 거냐. 꼴사나운 소리 하지 마라, 염옥검.”

“……!”

이그니아스 가문에서 칼레온에게 이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칼레온에게 말을 건넨 건… 가문 바깥 사람이었다.

“검후(劍后)……!”

새카만 흑발을 머리 위로 묶은, 원숙미가 있는 여성.

비정상적으로 긴 장검을 허리에 찬 그녀가 느긋한 발걸음으로 칼레온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도 네가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인가?”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검후!”

‘검후’ 이사벨라 마르테리스.

그녀야말로 동부에서 검왕과 대등한 존재로 꼽히던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였다.

이번에 검왕과 마찬가지로 칼레온이 아군으로 끌어들인 인재였다.

“염옥검, 최고의 재능을 지닌 아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건 아니었지.”

“뭐……?”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앞서 나가고 있던 어른들에게 목이 달아나는 일도 많았으니까.”

“……!”

이사벨라의 말에 칼레온이 눈을 크게 떴다.

“에르나스가 역대 최연소로 절정급에 도달했다? 확실히 대단한 일이지. 하지만 역대 최연소라는 게 당대 최고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그건…….”

“이번에 에르나스가 가르디우스를 죽였다는 것 같지만, 그게 염옥검 당신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지. 안 그런가?”

“…….”

“착각하지 마라, 염옥검. 에르나스는 아직 절정급 초입에 불과하다.”

이사벨라가 칼레온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더 성장하기 전에 에르나스를 죽여 버리면 된다. 그리고… 네 아들인 루퍼스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올리면 되는 거지.”

“……!”

“에르나스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무슨 소용인가. 이미 죽어 버렸는데.”

그렇다.

결국 칼레온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에르나스가 리히테나워 대공이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에르나스를 죽여 버리면 아무 문제 없다.

루퍼스가 에르나스보다 재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에르나스가 죽으면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걱정 마라, 염옥검.”

이사벨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지금처럼 동부를 제압하는 걸 우선해라. 바스티안 가문의 잔당들을 쫓아 유스트 바스티안을 죽이는 거다.”

지금 칼레온의 군세는 바스티안 가문의 본성(本城)을 무너뜨린 뒤 잔당들을 토벌하는 중이었다.

특히 바스티안 가문의 가주인 유스트 바스티안을 잡는 게 중요했다.

그 남자가 살아 있으면 언제든지 반(反)이그니아스 세력이 재집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나스는 내가 상대할 테니까 말이다.”

“검후… 괜찮겠나?”

칼레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녀석이 검왕도 죽였다고 한다.”

“그런 것 같더군.”

그 순간.

차분했던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언젠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그렇게 남의 손에 죽어 버리다니… 정말로 안타깝구나.”

“검후…….”

“그러니, 더더욱 에르나스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은 거다.”

그렇게 말하며 이사벨라가 칼레온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비록 초입이라도, 절정급의 검사를 죽일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검후’ 이사벨라 마르테리스.

동부에서 가장 잔인한 검사로 꼽히는 그녀가 에르나스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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