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3화 (133/212)

133화 절정의 경지로 (7)

가르디우스가 쓰러지자, 이그니아스 가문의 정예병들도 동요했다.

그 틈을 이용해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들이 반격에 나섰고, 결국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에르나스 님……!”

“왜 이제야 깨어나신 거예요!”

모든 싸움이 끝난 뒤, 슈미츠와 비올라가 나한테 달려왔다.

“에르나스 님이 조금만 늦게 깨어나셨어도 우리 모두 다 죽을 뻔했… 읍!”

“전부 다 봤습니다, 에르나스 님!”

비올라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슈미츠가 소리쳤다.

“완벽한 어검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 슈미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검합일을 깨우쳐, 절정급에 도달했어.”

“아아……!”

슈미츠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믿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군요! 이봐, 비올라! 내가 분명히 말했지? 에르나스 님이라면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하실 자격이 있다고!”

“아, 알겠으니까 손 좀 치워요!”

슈미츠를 뿌리치고 비올라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에, 에르나스 님, 그러면 정말로 절정급이 되신 거예요?”

“몇 번을 말해야 되지?”

“와… 대단하신 줄 알고는 있었는데, 정말로 말도 안 되게 대단하시네요.”

비올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마차 안에서 보름 동안 뭘 하셨던 거예요?”

“글쎄…….”

정신세계에서 아칸델과 싸웠던 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내가 생각하는 최고를 뛰어넘는 연습을 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게 있어.”

내가 만든 주인공과 싸웠다고 솔직하게 말해 봤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으으, 뭔가 깨달은 게 있으면 공유 좀 해 주시지…….”

“비올라, 건방지게 굴지 마!”

슈미츠가 비올라를 쥐어박았다.

“미안하지만, 내 사정이 조금 특수해서 너희들한테 말해 줘 봤자 도움이 안 될 거야. 너희들은 너희들의 방식대로 절정급에 도전해야겠지.”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슈미츠가 중얼거렸지만, 나는 슈미츠도 언젠가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마차에서 튀어나오기 전, 슈미츠가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펼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욜스와 나를 제외하고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터득한 건 슈미츠가 처음이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계속 노력하면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슈미츠를 격려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에르나스…….”

페르디난드가 조교수에게 치료를 받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암리타의 마력을 제대로 흡수하고, 절정급에 도달한 모양이군.”

“네, 맞습니다.”

나는 페르디난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부 교수님 덕분입니다.”

“관둬라. 내 덕분은 무슨.”

암리타를 만들어 준 것도 페르디난드고, 내가 보름 동안 마차 안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 것도 페르디난드다.

페르디난드가 없었다면 나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몸으로 동부에 와서 가르디우스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막강한 힘과 뛰어난 기술을 자랑하는 가르디우스를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몸으로 이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교수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페르디난드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관둬라.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네 스승이라도 된 것 같으니까.”

“스승은 스승이시죠. 지도 교수님이신데.”

“나는 너한테 뭐 하나 제대로 가르쳐 준 게 없다. 그러니 그런 소리 하지 마라.”

“…….”

미안하지만, 나는 페르디난드에게 배운 것이 있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페르디난드에게서 얻어 냈으니까.

비록, 페르디난드는 내가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이어받았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하여간… 네 덕분에 다들 목숨을 건졌다. 자칫하면 가르디우스한테 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페르디난드의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은 가르디우스를 상대하기에는 불리하다.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다른 교수들도 가르디우스를 막기 어려웠을 테니, 전멸할 가능성이 높았다.

“플라티온 평야에서 다른 지도 교수들과 함께 가르디우스를 협공할 계획이었는데, 가르디우스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위험했었다.

“플라티온 평야라면…….”

“가르디우스의 세력권이다. 가르디우스는 라티클 이그니아스와 함께 그곳을 지키고 있었지.”

라티클 이그니아스는 칼레온의 사촌 동생이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의 실력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교수님들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아마 플라티온 평야 근처에서 라티클이 지휘하는 병력과 대치하고 있을 거다.”

“그렇군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수님, 그러면 가르디우스는 라티클의 병력을 빌려 여기를 기습한 거겠군요.”

“그렇겠지.”

“라티클은 가르디우스가 당했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을 테고요.”

“그야… 그렇겠지?”

습격해 온 병력을 모조리 잡아 죽인 건 아니다.

도망친 놈도 있겠지만, 아직 라티클과 합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플라티온 평야로 달려가 공격을 개시하면 라티클의 허를 찌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

페르디난드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자식아, 그걸 말이라고…….”

“제 말이 틀렸습니까?”

“허를 찌를 수 있기야 하지. 그런데 거기까지 어떻게 가라고?”

그렇게 말하며 페르디난드가 주위를 둘러봤다.

“인명 피해는 크지 않지만, 다들 쉬어야 한다. 나도 부상을 치료해야 하고.”

“멀쩡한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뭐?”

“저 말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켰다.

“제가 플라티온 평야로 달려가서 라티클을 공격하겠습니다.”

“…….”

페르디난드가 입을 벌렸다.

“혼자서 가겠다는 거냐?”

“다들 쉬어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보름 동안 푹 쉬었던 제가 가야죠.”

“…….”

“그리고 말입니다.”

나는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저 혼자 가는 게 가장 빠릅니다.”

* * *

‘지금쯤 가르디우스 님이 놈들을 다 해치웠으려나?’

라티클 이그니아스는 막사 안에서 하품을 했다.

정예 병력과 함께 갔으니, 지금쯤 적들을 전멸시키고 돌아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에르나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가르디우스 님에게는 상대가 안 되겠지.’

에르나스가 클라우비체를 쓰러뜨렸다는 얘기는 라티클도 들었다.

하지만 클라우비체가 절정급 교수들을 공격하느라 힘이 빠진 틈을 타서 에르나스가 접근해 쓰러뜨린 거라는 소문도 있었다.

‘클라우비체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그래듀에이트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겠지. 가르디우스 님에게는 안 될 거야.’

가르디우스는 근접전에 강하다.

정면 대결이라면 에르나스에게 패배할 리가 없다.

‘그렇게 가르디우스 님이 돌아오면, 저쪽에 대기하고 있는 아카데미의 병력을 쳐야겠어.’

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아카데미의 병력은 지난번 탐색전 이후 조용하다.

서부에서 오는 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르디우스 님이 원군을 미리 격파해 뒀다는 걸 알면 놈들도 당황하겠지.’

칼레온의 명령은 가르디우스와 함께 플라티온 평야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병력을 괴멸할 수 있다면 평야를 벗어나 선제공격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 아카데미의 병력을 괴멸한다면 이그니아스 가문에서의 내 입지도…….’

라티클이 장밋빛 상상에 빠져 있었을 때.

갑자기 막사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냐?”

“라티클 님! 서쪽에서… 으악!”

쿠웅!

비명 소리와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라티클은 검을 들고 막사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뭐냐?!”

많은 병사가 쓰러져 있었다.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일격에 쓰러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병사들을 쓰러뜨린 건… 딱 한 사람이었다.

“…….”

은백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맨손으로 서 있었다.

청년의 몸에서는 푸른색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금방 사라졌다.

“네놈, 누구냐!”

라티클은 검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냐! 은신술이라도 쓴 거냐?!”

은신 능력이 뛰어난 그래듀에이트가 있다는 건 라티클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숨어들지 못하도록 이그니아스 가문 측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 놨다.

대체 저놈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혈검장로회의 암살자냐? 대답해라!”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나?”

“뭐라고?”

“하긴, 옷을 갈아입고 왔으니 모를 수도 있겠군.”

청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보름 동안 옷을 안 갈아입었더니 냄새가 나더라고. 그래서 교복 말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왔지.”

“교복……?”

교복을 입는다는 건,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설마…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렇다, 라티클 이그니아스.”

“……!”

라티클은 다급히 검기를 전개했다.

에르나스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어, 어떻게 된 거냐?”

“뭐가?”

“가르디우스 님을 만나지 못한 건가?!”

혹시 중간에 엇갈리기라도 한 걸까.

가르디우스가 엉뚱한 길로 전진하고 있는 사이, 에르나스가 다른 길을 통해 도착한 거라면 정말로 난감하다.

“가르디우스야 만났지.”

“뭐?”

“우리 야영지를 습격했더군. 그래서…….”

에르나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쓰러뜨렸다.”

“……!”

라티클은 귀를 의심했다.

“우, 웃기지 마라! 네가 가르디우스 님을 쓰러뜨렸다고?”

“…….”

“가르디우스 님은 동부를 대표하는 ‘검왕’이시다! 감히 그딴 소리를……!”

바로 그때.

라티클은 배후에서 바람 소리를 느꼈다.

오늘은 바람이 없는 날이라, 라티클은 위화감을 느꼈다.

“커헉!”

그리고 라티클은 자신의 등에 차가운 칼날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바람 소리는 어디선가 검이 날아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 이건…….”

라티클은 뒤늦게 깨달았다.

주위에 병사들이 잔뜩 쓰러져 있었지만, 에르나스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지 않았다.

“네놈, 설마, 어검술로…….”

어검술은 절정급의 검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에르나스는…….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너 같은 애송이가 절정급에…….”

“한 가지 알려 주지, 라티클.”

에르나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왕의 칭호는 내가 계승했다. 가르디우스가 마지막 순간에 나한테 물려줬지.”

“……!”

“그러니, 감히 그딴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까 라티클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면서, 에르나스가 쏘아붙였다.

“애송이한테 죽는 것보다, 검왕한테 죽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크윽…….”

라티클의 입에서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몸에 꽂힌 칼날에서 냉기가 파고들고 있었다.

몸속이 얼어붙는 감각 속에서, 라티클은 숨을 거뒀다.

* * *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어검술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군.’

나는 라티클의 시체에서 진은검을 회수했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의 냉기를 칼날에 담아 날려 봤는데, 그럭저럭 쓸 만한 것 같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어검술이 잘되는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어검술을 딱히 배운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검술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클라우비체와 싸웠던 경험 때문인가?’

그때 나는 클라우비체가 펼치는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에 맞서 싸웠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어검술 공격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나도 모르게 어검술의 묘리(妙理)를 깨닫게 된 것 아닐까.

‘창뢰비강(蒼雷飛鋼)을 터득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근처에서 달려오는 이그니아스 가문의 그래듀에이트를 향해 진철검을 날렸다.

하지만 마력에 반응하는 성질이 진은검보다 못해서인지 어검술이 원활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군.’

나는 아직 절정급 초입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제대로 파악해 둬야 한다.

그리고 내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라티클 님!”

“저 자식……!”

이그니아스 가문의 병사들이 계속 몰려들었다.

리히테나워 경신술과 창뢰신기를 사용해 여기까지 단번에 침투한 거라, 주위에는 병사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포위하고 공격해라! 아무리 저놈이 강해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다!”

“그건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혼자일까?”

“뭐……?”

바로 그때.

남쪽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설마……!”

“아카데미, 아카데미 놈들이다!”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카데미의 주력 부대 쪽으로 신호를 보내 놨다.

발렌티아노 교수와 안겔라 교수가 그래듀에이트들을 이끌고 돌진해 올 것이다.

“자, 그러면…….”

나는 진철검과 진은검을 두 손에 든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항복할 사람은 빨리 검을 버리는 게 좋을 거다.”

“……!”

경악하는 병사들을 상대로, 나는 전투를 재개했다.

절정급의 경지에 하루빨리 익숙해져,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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