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2화 (132/212)

132화 절정의 경지로 (6)

“에르나스 님!”

“에르나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주위는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슈미츠, 지금 어떤 상황이지?”

“야, 야영 중에 습격을 받았습니다! ‘검왕’ 가르디우스에게……!”

슈미츠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눈앞에 있는 건장한 노인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저 노검사가 ‘검왕’ 가르디우스인 것 같았다.

“에르나스 님, 마력 연공은 다 끝나신 겁니까? 저희가 그동안 얼마나 오래 기다렸…….”

“슈미츠, 얘기는 나중에.”

나는 슈미츠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쓰러져 있는 비올라를 부축해 주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앗, 네……!”

“가르디우스는 내가 맡을 테니까.”

슈미츠가 다급히 움직였다.

나는 입을 다문 채 가르디우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가르디우스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소설 속 묘사대로,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그동안 계속 너를 만나고 싶었다. 이제야 겨우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군.”

“가르디우스 플라티온.”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 학교 사람들을 많이 해친 모양이군.”

“잠들어 있었다고?”

가르디우스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때 멀리서 페르디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

페르디난드는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몸을 일으키기 어려워 보였지만, 치명상은 아닌 것 같았다.

“가르디우스는 강하다! 동부 검술답게 완성도가 높으면서 북부 검술처럼 파괴력이 강해……!”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

나는 짧게 대꾸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단 쉬고 계십시오.”

“……!”

차분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페르디난드가 숨을 삼켰다.

그리고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이렇게 차분한 것인지, 눈치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쿨쿨 잠들어 있었나? 어이가 없군.”

가르디우스가 코웃음을 치며 다시 말했다.

“뭐, 좋다. 나는 너하고 정면 대결을 할 수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가르디우스가 검을 치켜들었다.

“자, 덤벼 봐라, 에르나스.”

“…….”

“네 실력이 계속 궁금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가르디우스가 다시 재촉했다.

“뭐 하고 있지? 시작하자니까?”

“가르디우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뭐라고?”

“시작하자고?”

눈을 깜빡이는 가르디우스를 향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시작된 거 아니었나?”

쐐액!

숲속에서 날아든 은색 칼날이 가르디우스의 배후를 덮쳤다.

뒤늦게 눈치챈 가르디우스가 다급히 몸을 틀었지만, 칼날은 가르디우스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검술(御劍術)?!”

가르디우스가 경악했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어검술을… 윽!”

쿠웅!

가르디우스가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내가 오른손에 든 진철검으로 공격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왼팔을 치켜들자, 방금 가르디우스의 어깨를 스쳐 지나간 진은검이 내 왼손에 돌아왔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녀석……!”

가르디우스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어떻게 벌써 어검술을 쓰는 것이냐!”

쿠웅!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면서 격심한 충격이 발생했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뒤로 물러서면서 진은검을 투척했다.

평범한 비검술(飛劍術)처럼 직선으로 날아가던 진은검은 공중에서 궤도를 바꿔 가르디우스의 측면을 노렸다.

“어검술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손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파앗!

가르디우스가 진은검을 쳐 내면서 소리쳤다.

“네녀석, 설마……!”

경악으로 가득찬 가르디우스의 목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그 나이로… 절정급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냐?!”

* * *

그래듀에이트 절정급.

그것은 그래듀에이트 초입, 하급, 중급, 상급을 넘어선 경지를 말한다.

영약을 많이 복용해서 마력량을 늘린다고 절정급이 될 수는 없다.

절정급이 되기 위한 깨달음을 얻어야 비로소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절정급이 되기 위한 깨달음을 얻으려 했다.

암리타를 통해 충분한 마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깨달음만 얻으면 절정급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신세계에서 계속 아칸델과 싸웠다.

내가 동경하는 주인공인 아칸델을 꺾는 것으로,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세계에서 아칸델을 쓰러뜨렸을 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내 모든 것을 검에 담아 일격을 날린 순간, 나 자신과 검이 일체화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내 몸과 검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가 되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분명 절정급을 위한…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감각이었다.

‘그래, 느껴진다.’

나는 오른손에 든 진철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내 몸을 흐르는 혈맥이 진철검에도 이어져 있는 것 같은 감각이다.

지금 진철검은 내 몸의 일부였다.

‘이 감각이야.’

이어서 왼손으로 날린 진은검에도 의식을 향했다.

분명 손에서 벗어났는데, 마력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었다.

내 몸에서 떨어져 있어도, 진은검은 내 몸의 일부였다.

‘이 신검합일의 경지라면……!’

어검술로 진은검을 조종하여 가르디우스를 견제했다.

그러면서 진철검에 흐르는 마력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은 마치 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믿기지 않는구나!”

가르디우스가 소리쳤다.

그는 검을 휘둘러 진은검을 막아 내는 중이었다.

“그 나이로 절정급에 도달했다고? 신검합일의 깨달음을 얻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놀라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흥분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쿠쿵!

가르디우스의 전신에서 막강한 투기(鬪氣)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가르디우스의 마나 하트에서 뿜어져 나온 막대한 마력이었다.

현재 가르디우스는 검기와 호신기의 구분이 없는 상태였다.

“흐읍!”

꽈앙!

가르디우스가 주먹을 휘둘러 진은검을 쳐 냈다.

어찌나 강하게 쳤는지 진은검이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보여 다오!”

포효하면서 가르디우스가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네 진정한 실력을 나한테 보여 봐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신검합일 그 자체.

가르디우스가 나를 향해 돌격해 왔다.

한 자루의 커다란 검이 나를 죽이기 위해 날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내 검에는 금색의 검강이 전개되어 있었고, 내 몸을 보호하는 호신기도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절정급의 경지로 펼쳐지는 파천검강이었다.

“……!”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졌다.

충격파가 발생해 주위 나무가 쓰러졌다.

슈미츠와 비올라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크윽…….”

그리고 가르디우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절정급의 파천검강은 가르디우스의 검기를 파훼하고, 그 검을 부러뜨린 상태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진철검의 끝부분이 가르디우스의 가슴 부분을 훑고 지나가,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로… 훌륭하구나!”

쿠웅!

그 상태로 가르디우스가 움직였다.

검은 부러진 상태였지만, 계속 검기를 전개하여 나를 향해 휘둘렀다.

“너 같은 녀석과 싸워 보고 싶었던 거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큰 부상을 입은 인물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나를 두 조각으로 만들려는 듯한 공격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머리에 닿기 전에 이미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으음?!”

파앗!

방금 전과는 달리, 푸른색 기운을 두른 채 움직였다.

칼레시우스 창뢰검술 제6식, 창뢰신기(蒼雷迅氣)였다.

“어, 어디냐!”

가르디우스가 다급히 고개를 움직이며 내 움직임을 좇으려 했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는 내 움직임을 좇는 건 가르디우스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 움직임은 지난 번에 클라우비체를 상대했을 때보다 더 빠르고 정확했다.

신검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서, 창뢰신기의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라면…….’

나는 손을 뻗었다.

방금 전에 가르디우스가 날려 버렸던 진은검이 어둠 속에서 날아왔다.

나는 진철검을 오른손에, 진은검을 왼손에 든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동안 나는 양손에 검을 든 채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른손의 진철검도 왼손의 진은검도 이미 내 몸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창뢰신기… 굉뢰(轟雷)!’

콰르르릉!

폭음을 발생시키며 움직였다.

창뢰신기의 성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된 몸으로, 가르디우스를 향해 연속 공격을 시전한 것이다.

“크아악……!”

초고속으로 움직이며 가르디우스의 전후좌우를 난도질했다.

진철검과 진은검이 번뜩일 때마다 가르디우스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가르디우스는 마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내 나에게 대응하려 했지만, 가르디우스의 검이 나에게 닿는 일은 끝끝내 없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창뢰신기를 해제하고 지상에 발을 내디뎠다.

막대한 마력을 한꺼번에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별다른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약간의 권태감은 있었지만, 이건 오랫동안 마차 안에 갇혀 있었던 탓일 것이다.

조용해진 숲속에서 고개를 돌렸다.

피투성이가 된 가르디우스가 마치 한 그루의 거목(巨木)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르디우스 플라티온.”

“…….”

“만족했나?”

질문을 던지자 가르디우스가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할 나위 없는 충족감이 담겨 있었다.

“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수십 년… 그동안 수많은 싸움을 겪어 왔지만, 이처럼 격렬했던 혈전(血戰)은 처음이다.”

“…….”

“나 정도 위치가 되면, 동급 이상의 실력자와 생사결을 펼칠 기회가 거의 없어서 말이다.”

당연한 얘기였다.

평화로운 동부 지역에서 절정급의 실력자끼리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얼마나 있을까.

“정말로… 만족스러운 싸움이었다.”

가르디우스가 밝게 웃었다.

“이그니아스 가문과 손을 잡은 보람이 있었군.”

“가르디우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내 이름을 부르면서, 가르디우스가 천천히 오른팔을 들었다.

그리고 부러진 검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랫동안 내가 차지하고 있던 칭호… ‘검왕’을 너에게 넘겨주겠다.”

“…….”

“이제부터 너는 ‘검왕’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

그렇게 말하며 가르디우스가 웃었다.

“거부권은 없다. 검왕을 쓰러뜨린 남자로서, 검왕의 이름을 이어받도록 해라.”

“가르디우스…….”

“더 그럴듯한 이름을 손에 넣을 때까지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가르디우스가 쓰러졌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듯이, 쿵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쓰러진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동부 지역에서 이름을 날렸던 ‘검왕’ 가르디우스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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