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31화 (131/212)

131화 절정의 경지로 (5)

“큭…….”

또다시 검에 꿰뚫렸다.

얼굴 없는 아칸델은 여전히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정신세계 속에서 진행된 싸움에서, 나는 아칸델에게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정말 불세출의 천재군…….”

아칸델은 나보다 빨랐다.

아칸델은 나보다 날카로웠다.

아칸델은… 정말로 최강의 주인공이었다.

“그래, 내가 너를 최고의 검술 천재로 설정했으니까 말이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칸델을 쳐다봤다.

이목구비를 구분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그에게서는 주인공다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런 아칸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존재인가.

“환골탈태를 하고, 암리타를 복용해도… 결국 에르나스는 아칸델처럼 될 수는 없는 건가?”

그렇게 패배감을 느낀 순간.

이번에는 아칸델의 검이 내 목을 베었다.

이 정신세계에서는 아무리 치명상을 입어도 죽지 않지만, 목이 날아가니 한동안 의식이 끊겼다.

“…….”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칸델은 묵묵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서 다시 검을 들면, 아칸델은 다시 나한테 달려들 것이다.

“아칸델.”

나는 드러누운 채 입을 열었다.

“가끔 생각해 봤어, 네가 이 세계에 존재하면 어땠을까 하고.”

소설과는 달리, 아칸델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이 세계로 와서 에르나스가 되었다.

하지만, 나와 아칸델이 동시에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엄청나게 쉬웠을 거야. 하드 모드가 아니라 이지 모드였겠지.”

검술의 천재인 아칸델과 계략의 천재인 에르나스가 손을 잡는 것이다.

내가 소설 지식을 활용해서 아칸델을 지원하면, 모든 문제를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유스레흐트의 능력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아쉬운 건 그런 부분이 아니야.”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아쉬운 건, 너하고 함께 싸울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지.”

내가 만든 최고의 주인공이다.

소설을 쓰면서 몇백 화 동안 함께했던, 나의 동반자.

그런 주인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없다는 건, 나한테는 무척 아쉬운 일이다.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이 내면세계에서 아칸델을 만나게 된 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아칸델이야말로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아칸델이 나타나서 주인공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마음이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거겠지.”

나는 내가 쓴 소설을 좋아했고, 내가 만든 주인공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계속 아칸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어.”

이 세계에 아칸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아칸델이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세계의 주인공은 아칸델이 아니야. 이제는 에르나스가 주인공이지.”

그러니, 아칸델을 동경할 필요는 없다.

나는 에르나스로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이 세계에서 싸워 나가면 된다.

“그러니… 아칸델.”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검을 치켜들자 아칸델도 자세를 취했다.

“네가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건 인정할게. 너는 최고의 검술 천재야.”

이렇게 정신세계에서 수없이 검을 맞대 보니, 이 부분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내 상상력의 산물에 불과해. 내 창조물인 거지.”

나는 최고의 검술 천재를 상상했다.

그 결과물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능가하는 존재도 창조할 수 있을 거야.”

최고의 검술 천재 아칸델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능가하는 검술 천재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을 터.

“아칸델, 확실히 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네가 더 뛰어나. 몸놀림도 네가 더 재빠르지.”

아칸델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고 정확한 움직임으로 다가와,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쿠웅!

굉음과 함께, 아칸델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나는 네가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할 수 있어.”

금색으로 빛나는 검강.

파천검강이 아칸델의 공격을 튕겨 냈다.

이건 소설 속의 아칸델은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

“네가 터득하지 못한 것도, 나라면 터득할 수 있으니까.”

쏴아아아!

칼날에서 뻗어 나온 냉기가 아칸델의 몸을 얼렸다.

페르디난드의 케르베스트 백화검술도, 소설의 아칸델은 터득하지 못했던 검술이다.

“최고의 검술 천재인 너를 능가하는 것… 그건 나만이 가능한 일이야.”

아칸델은 내가 만든 최고의 검술 천재였다.

그렇다면 나는 최고를 넘어선 검술 천재가 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켜 봐라, 아칸델.”

나는 아칸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조금이라도 여력을 남겨서는 안 된다.

전력을 다해서,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다해서,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최고의 검술 천재를 능가할 수 있다.

“너를 능가하는 검술 천재가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을.”

파앗.

내 모든 것을 담은 일격이 아칸델에게 꽂힌 순간.

얼굴 없는 아칸델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콰앙!

전장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왕(劍王) 가르디우스 플라티온의 일격에 마차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도망치지 마라, 페르디난드!”

“큭……!”

페르디난드는 몸을 날리면서 가르디우스의 공격을 피했다.

한밤중에 나타난 가르디우스의 기습 때문에 야영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이 남자… 강하다!’

가르디우스는 주름살이 가득한 백발의 노인이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모습에서는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고, 동시에 절도가 있었다.

‘이것이 플라티온 격멸검술……!’

플라티온 격멸검술은 플라티온 가문의 독문 검술이다.

동부 검술답게 완성도가 뛰어나면서 북부 검술 못지않게 파괴적이라고 하던데, 실제로 경험해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발렌티아노 교수가 패배한 것도 이해가 되는군……!’

예전 일이라고는 하나, 가르디우스는 발렌티아노를 꺾은 적이 있다.

그 정도로 대단한 검사인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일단……!’

페르디난드는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펼쳤다.

절정급의 막대한 마력을 냉기로 바꾸어 사용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빙검술(氷劍術)이었다.

“오오, 그게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인가!”

가르디우스가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발렌티아노나 안겔라의 검술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네가 익혔다는 그 빙검술만큼은 한번 구경해 보고 싶었다!”

“큭……!”

조금도 주춤하지 않고 달려드는 가르디우스를 향해 냉기를 날렸다.

페르디난드의 마력이면 사람 하나를 얼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가르디우스의 막강한 호신기 앞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페르디난드는 냉기를 칼날에 집중시켰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만의 검기가 형성되면서, 칼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걸로… 가르디우스의 검기를 얼린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은 상대편의 검기를 얼릴 수 있다.

마력의 흐름이 멈추기 때문에, 그 상태로 다시 충격을 가하면 검기가 깨져 나간다.

페르디난드는 이 수법으로 가르디우스의 맹공을 파훼할 생각이었다.

“소용없다!”

“……!”

검과 검이 부딪치려던 순간, 가르디우스가 교묘하게 검을 움직였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페르디난드의 빈틈을 찌른 것이다.

“윽……!”

파앙!

페르디난드가 튕겨져 나갔다.

호신기 덕분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충격이 심했다.

“커헉!”

입에서 피를 토했다.

내장이 다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르디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냉기로 내 검기를 얼리려는 게 눈에 보이더군. 내가 호응해 줄 이유가 없지.”

“크윽…….”

“흥미로운 검술이긴 하지만, 그 정도라면 나한테는 안 통한다.”

사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은 자신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상대를 일방적으로 얼려 버릴 때 효과적인 검술이다.

하지만 가르디우스는 페르디난드보다 마력도 많고, 기술도 더 뛰어나다.

상성을 생각했을 때 불리한 상대였다.

“페르디난드, 그걸로 끝인가?”

“…….”

“얼음으로 된 칼날을 마구 날려 댄다든가, 그런 기술은 없나?”

클라우비체도 아니고, 그런 기술은 없다.

페르디난드가 입술을 깨물며 침묵하자, 가르디우스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흠, 재미없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르디우스가 주위를 둘러봤다.

현재 야영지에서는 가르디우스와 함께 온 이그니아스 가문의 정예병들이 아카데미의 그래듀에이트와 전투 중이었다.

“에르나스는 어디 있지?”

“뭐……?”

“사실 나는 오늘 에르나스를 상대하고 싶어서 달려온 건데, 전혀 보이지 않는군.”

가르디우스는 페르디난드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설마 에르나스가 여기에 없는 건 아니겠지?”

“그건…….”

“가만있자.”

가르디우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단순히 눈으로 살펴보는 게 아니라, 마력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쪽에 커다란 마력이 있군.”

“……!”

가르디우스가 쳐다본 곳에는, 에르나스가 마력 연공을 하고 있는 특수 마차가 있었다.

페르디난드는 다급히 검을 들고 가르디우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르디우스의 완벽한 방어가 페르디난드의 공격을 막아 냈다.

“너한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페르디난드.”

“윽……!”

촤악!

가르디우스의 칼날이 페르디난드의 호신기를 찢어발기고 깊은 상처를 입혔다.

“아, 안 돼…….”

휘청대는 페르디난드를 뒤로하고, 가르디우스가 마차 쪽으로 다가갔다.

마차는 에르나스의 측근인 슈미츠와 비올라가 지키고 있었는데, 이그니아스 측의 그래듀에이트와 전투 중이었다.

“비켜라.”

“……!”

아군을 옆으로 밀치면서 가르디우스가 마차로 접근했다.

비올라가 다급히 막아섰지만, 가르디우스의 싸대기 한 번에 땅을 뒹굴었다.

“머, 멈춰!”

“애송이들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슈미츠가 앞을 가로막는 걸 보면서 가르디우스가 코웃음을 쳤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라!”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애송이?”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슈미츠가 검을 휘둘렀지만, 가르디우스는 맨손으로 검을 낚아챘다.

손가락에 전개된 호신기만으로 검기를 잡아 낸 것이다.

“나이에 비하면 훌륭하지만, 단지 그것뿐이군.”

“으윽……!”

그 순간.

슈미츠가 눈을 부릅뜨면서 검기를 극대화했다.

푸른빛이 번쩍인 직후, 가르디우스의 손가락에서 피가 솟구쳤다.

“흐음?”

가르디우스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슈미츠의 검기가 갑자기 강해진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방금 뭘 한 거지?”

“이게 바로 아카데미의 최신 검술이다… 늙은이!”

슈미츠가 만들어 낸 푸른 검기는 욜스 클래스에서 수련할 때 배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이었다.

아직 미숙해서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동안 계속 수련하고 있었다.

“흥미롭긴 하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군.”

“……!”

꽈앙!

가르디우스가 검을 휘둘러 슈미츠의 검을 부러뜨렸다.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수련해야 실전에 쓸 만한 수준이 될 거다.”

“크윽……!”

경악하는 슈미츠 앞에서 가르디우스가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가르디우스의 검이 슈미츠를 일도양단하기 직전.

“……?!”

쿠웅!

마차를 부수며 튀어나온 검 한 자루가, 가르디우스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이건……!”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마차 쪽을 쳐다봤다.

귀에서 피를 흘리는 가르디우스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셨군…….”

가르디우스가 입맛을 다시며 미소를 지었다.

“너무 늦게 나타나는 것 아닌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부서진 마차 안에서, 은백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신은 푸른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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